[지구별 사서의 오늘]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작은도서관의 꿈이 싹텄어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03-29 10:16 조회 4,583회 댓글 0건본문
파닥파닥! 날개달린 도서관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에서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날개달린 도서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낯선 환경과 언어적 한계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자국의 책 읽기로 안정감을 찾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끔 독서로 날개를 달아주자
는 취지로 2014년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이 중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날개달린 도서관’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격주로 자국의 책을 함께 읽고 읽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두 팀으로 나누어 책 속의 주인공들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때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는 취지로 2014년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이 중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날개달린 도서관’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격주로 자국의 책을 함께 읽고 읽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두 팀으로 나누어 책 속의 주인공들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때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참가자 대부분이 교과서 외의 책을 읽은 경험이 거의 없는 청년들이어서 ‘날개달린 도서관’은 항상 소리 내어 책 이어 읽기로 시작한다. 앉은 순서대로 한 단락씩 읽고 다음 사람이 이어 읽는 형식인데, 이 짧은 시간에도 참여자들은 최선을 다해 또박또박 책을 읽는다. 이들의 책 읽는 소리를 듣는 이 시간은 내가 제일 행복해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이원수 동화작가의 『고향의 봄』을 함께 읽었던 때다. 출판사들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과 연계하여 이중언어 책을 많이 내는데 나는 이 가운데서 기증 받은 『고향의 봄』을 선택했다. 이따금 『설빔』(배현주), 『틀려도 괜찮아』(마키타 신지) 등의 그림책을 내가 먼저 읽고 결혼이주민들이 바로 통역하면서 책 읽기를 하기도 한다.
『고향의 봄』을 읽고서 우리는 캄보디아의 계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은 한국에 이런 봄이 있어서 참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책을 읽은 후에는 독후활동으로 <고향의 봄> 노래 배우기를 했다. 3명씩 팀을 이루어 노래를
불렀는데 음정과 박자가 제각각 달라 한바탕 웃음이 일기도 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불렀는데 음정과 박자가 제각각 달라 한바탕 웃음이 일기도 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참가하는 이주민은 20명 남짓으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편찮으신 부모님이나 동생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한국으로 온 사람들도 있다. 이 가운데 17살, 18살 앳된 얼굴의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활동에 참여한다. 책만 읽으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2주일 동안 이 시간을 제일 기다린다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어쩌면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파랑새를 책 속에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한겨울의 미나리
캄보디아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노동자들은 거의 농업 현장에 취직한다. 충청도의 버섯 농장으로, 경기도의 미나리 밭, 또는 전라도의 인삼 밭으로…
작년 겨울이었다. 멀리서도 스레이니의 책을 잡은 손이 유난히 붉은 것이 눈에 띄어,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이에게 물어보았더니 미나리 밭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겨울에 미나리 농사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핸드크림을 꺼내 손등에 잔뜩 발라주고는 스레이니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 보면 겨울에도 마트에서 미나리를 본 것도 같다. 미나리 밭에서 일하는 것은 조금 힘든 일에 속하는데, 다른 곳보다 월급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겨울 미나리 밭의 일은 꽝꽝 얼어붙은 얼음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새벽의 어둠을 헤드라이트로 밝힌 채, 얼음을 깨고 물 속에 들어가 미나리를 자르고 이를 밭 사이사이에 떠 있는 바구니에 80킬로그램이 될 때까지 담아 뭍으로 끌어올린다고. 이 일은 하루에 12시간씩 계속되기도 한단다. 겨울 나물의 50% 이상이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올라온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한겨울의 미나리가 비싼 이유를, 그리고 우리가 한 톨의 쌀도, 한 줄기의 채소도 헛되이 버려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작년 겨울이었다. 멀리서도 스레이니의 책을 잡은 손이 유난히 붉은 것이 눈에 띄어,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이에게 물어보았더니 미나리 밭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겨울에 미나리 농사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핸드크림을 꺼내 손등에 잔뜩 발라주고는 스레이니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 보면 겨울에도 마트에서 미나리를 본 것도 같다. 미나리 밭에서 일하는 것은 조금 힘든 일에 속하는데, 다른 곳보다 월급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겨울 미나리 밭의 일은 꽝꽝 얼어붙은 얼음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새벽의 어둠을 헤드라이트로 밝힌 채, 얼음을 깨고 물 속에 들어가 미나리를 자르고 이를 밭 사이사이에 떠 있는 바구니에 80킬로그램이 될 때까지 담아 뭍으로 끌어올린다고. 이 일은 하루에 12시간씩 계속되기도 한단다. 겨울 나물의 50% 이상이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올라온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한겨울의 미나리가 비싼 이유를, 그리고 우리가 한 톨의 쌀도, 한 줄기의 채소도 헛되이 버려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너희가 모두 내 아이들이다
2016년 4월 무렵이었다. 국내 NGO 단체가 우리나라 전래동화를 번역하여 해외 초등학교에 보급하고 독후감대회를 열어, 이에 입상한 캄보디아 어린이 2명과 학교 교장선생님을 우리나라에 초빙했다. 우리 도서관의 ‘날개달린 도서관’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이주노동자들과 두 어린이, 교장선생님 두 분이 함께 책읽기를 하게 되었다. 책을 함께 읽어나가는데, 점점 목소리들이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모두가 흐느껴 울게 되어 진행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은 고향에서 온 어른들을 보니 집에 있는 엄마와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울고, 노동자들은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남자 어른임에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서로에 대한 격려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뒤범벅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마치는 즈음에 노동자들이 돈을 모아 아이들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집에 가는 길에 맛있는 것 사먹어. 너희가 모두 내 아이들 같다! 우리 아이들도 너희처럼 책도 많이 읽고, 훌륭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참고 있던 눈물이 한번에 터져 나왔다. 함께 있던 노동자들이 내게 휴지도 가져다주고 어깨를 다독거려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문화작은도서관에서 ‘사서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오후였다.
아무래도 도서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날개달린 도서관’에 참가하는 사람은 한 번에 대략 스무 명 정도다. 참가자 중에 캄보디아에서 도서관에 가본 경험이 있는 청년은 1명 정도로, 95%의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우리 도서관을 만나면서 처음 으로 도서관 경험을 한다. 처음에는 책 읽기가 낯선데다 “수고롭게 책 읽기를 왜 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던 청년들이 막상 책을 접하면서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한 번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스무 명 중의 다섯 명 정도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간다. 그 다섯 명 중 한두 명은 이주일에 한 번 정도 도서관을 꾸준히 찾는 독서가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모여 이번에 ‘큰일’을 냈다.
부모님 가게 옆, 방이 비어 있으니 그곳에 동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던 라찌나. 언젠가는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던 결혼이주민 챙부속깐야. 이들의 희망이 모여 드디어 프놈펜에 작은도서관을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이 프놈펜에 안산과 연대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그 공간에 작은도서관을 열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주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도서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만 원씩 돈을 모아서 나의 왕복 항공권을 지원하였고, 도움을 요청한 지 일주일이 되던 2월 16일, 나는 캄보디아로 날아갔다. 우선 도서관을 열기 위해 필요한 물품 목록을 만들고 한국에서 캄보디아로 귀환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책을 기증 받기로 했다. 이에 한국에서는 우리 도서관이 앞장서서 현지에서 필요한 한국어 관련 도서, 그림책, 한국 생활에 필요한 생활 정보가 담긴 책 등을 모으기로 했다.
도서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귀환노동자들이 한 달에 1달러씩 모으고, 한국에 있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이 1000원씩, 우리 도서관의 이용자들도 1000원씩 모아 기부하기로 했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누구보다도 캄보디아에서 시집을 온 결혼이주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도서관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들 스스로가 도서관을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하고, 운영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낸 것은 어떤 거대한 사업을 기획하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었다. 캄보디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앞으로 만들어질 도서관을 통해 수세기를 걸쳐 가장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자신들을 발견해 내며, 빛나는 캄보디아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23평의 작은도서관에서 시작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