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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기는 영주, 책 쓰는 아이들] 울릉, 이야기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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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6-11-04 16:39 조회 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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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 이야기를 담다

을릉고 독서캠프에서 지역 기반 짧은 소설 쓰기


지난 7월, 울릉고 독서 인문학 캠프에 초청을 받아 울릉도로 향했다. 강의 제목은“ 울릉, 이야기를 담다.” 영주에서 지역의 장소와 인물, 오래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책 쓰기 활동을 이어 왔다면, 이번에는 울릉고 학생들과 함께, 학생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짧은 소설의 재료로 삼아 보는 시간이었다.

이지현 영주서부초 사서교사



바다산책로 사진 한 장: 지역 자료로 말문을 열자!

울릉도는 나에게 낯선 곳이었지만, 울릉고 학생들에게는 매일 보고 듣는 생활 공간이었다. 외부 강사인 내가 울릉도를 새롭게 소개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장소를 잠시 이방인의 시선으로 다시 보게 하고 싶었다. 때때로 내가 사는 지역도 낯선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 새롭다. 그

 낯섦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 첫 장면은 활동지 표지에 넣은 행남해안산책

로 사진에서 시작했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었다. 멀

리서 보면 평화로운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 길을

걸어 보면 바람이 몸을 밀고 파도의 포말이 차갑게

튄다. 가파른 소라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는 숨이 가

빠지고, 발아래 바다의 높이도 다르게 느껴진다. 보

기 좋은 풍경도 인물의 몸을 통과하면 사건이 된다.

그 차이 안에서 소설의 장면이 시작될 수 있다고 학

생들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글을 쓰자고 하지는 않았다. 먼저 울릉도

안에 이미 깃든 이야깃거리를 함께 들여다보았다. 지

역 관공서나 관광재단 홈페이지에는 생각보다 많은

글감이 숨어 있다. 유물, 문화재, 지명 유래, 민담과 전

설, 오래된 인물 이야기까지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지

만, 정작 그 지역에 사는 학생들도 자세히 들여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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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많지 않다.
수업에서는 울릉도의 자연과 관광지만 보여 주기보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문화재와 전설, 인물 이야기를 함께 펼쳐 놓았다. “이건 들어 본 적 있어요?” “이 장소는 가 본 적 있나요?”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누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짧은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 학생들은 아는 이름을 다시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너무 가까워서 지나쳤던 이름들이 글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다음 활동지 가운데에 ‘울릉도’를 적고, 강의를 들으며 떠오르는 단어를 마인드맵으로 정리하게 했다. 오징어, 호박엿, 바위, 산, 배처럼 금방 나오는 말도 있었고, 독도, 강치, 괭이갈매기, 우산국, 이사부, 선녀, 봉래폭포, 향나무(울릉도의 대표 거목), 화산섬 같은 말도 보였다. 어떤 활동지에는 ‘고양이?’라고 적혀 있었고, 또 다른 활동지에는 독도 옆에 ‘강치’가 붙어 있었다. 마인드맵은 정답을 찾는 활동이 아니었다. 학생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울릉도의 조각을 꺼내 놓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먹거리에서 시작했고, 누군가는 독도와 역사로 눈길이 갔다. 어떤 학생은 괭이갈매기와 검은 고양이를 한 이야기 안에 넣으려 했고, 어떤 학생은 ‘화산섬’이라는 말 옆에 ‘비밀’ 같은 단어를 적어 두었다. 짧은 아이스 브레이킹이었지만, 그 말들은 곧 소설의 재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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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으로 이야기 안쪽에 들어가기

수업 중 학생들에게 이런 문장을 던졌다. “내가 울릉도에 살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를 몰랐을 것이다!” 짧은 소설은 길게 설명할 시간이 많지 않다. 첫 문장 안에 인물과 장소, 궁금증이 함께 담기면 이야기가 빨리 움직인다. 이 문장을 시작점으로 삼으면 학생들은 ‘울릉도에 사는 나’ 혹은 ‘울릉도를 잘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관광객이 보고 지나가는 풍경보다, 그곳 안쪽에서만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로 시선이 옮겨 간다. 그렇다고 익숙한 지역이라고 자료 확인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늘 보던 장소일수록 대충 알고 있다고 지나치기 쉽다. 실제 지명과 자연환경은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하고, 인물의 말과 마음, 사건의 빈칸은 학생들이 채워 보게 했다. 학생들이 가장 쉽게 하는 방식은 조사한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울릉도는 화산섬이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 있는 분지이다” “독도는 우리나라의 섬이다” 같은 문장은 맞지만, 아직 소설은 아니다. 봉래폭포를 조사했다면 그 앞에 선 인물이 무엇을 듣고 왜 멈춰 섰는지를 써야 했다. 독도를 고른 학생은 멸종된 강치(바다사자)를 떠올렸고, 우산국을 적은 학생은 이사부와 연결했다. 선녀와 바위를 적은 학생은 설화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그 안에 갈등을 넣어 보려 했다.


 
시놉시스라는 작은 설계도

바로 초고를 쓰게 하지는 않았다. 먼저 활동지에 시놉시스를 작성하게 했다. 작품명, 작가명, 예상 독자, 기획 의도, 장르, 배경, 인물을 적고, 주인공과 빌런, 조연을 나누어 생각했다. 줄거리는 기승전결로 나누어 사건과 감정의 변화를 정리하도록 했다. 활동지에는 이 과정이 초고 작성을 위한 설계도로 제시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쓴 설계도는 저마다 달랐다. 장르는 추리, 역사, 설화, 판타지, 스릴러까지 다양했다. 주인공 옆에는 선녀, 학생, 괭이갈매기, 안용복, 화랑 같은 이름이 적혔고, 빌런 자리에는 옥황상제, 검은 고양이, 악당, 혹은 인간의 욕심이라는 말이 놓였다. 한 활동지에는 작품명이 「선녀의 바다」라고 적혀 있었다. 장르는 재난·역사·설화. 배경은 울릉도 나리분지와 선녀탕, 성인봉이었다. 또 다른 활동지에는 「괭이갈매기」라는 제목 아래 고양이 ‘마리’와 괭이갈매기 ‘마리’가 등장했다. 흑염소 두 마리가 빌런으로 적혀 있고, 조연에는 살쾡이 세 마리와 또 다른 괭이갈매기가 있었다. 장난처럼 보이던 설정도 기승전결 칸으로 내려가자 제법 이야기가 되었다. 어떤 학생은 기획의도 칸에 “새의 삶을 이해해 줘”라고 적었다. 울릉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도 누군가에게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역을 쓴다는 것은 유명한 장소만 고르는 일이 아니라, 늘 곁에 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했다.


울릉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쓰다

캠프의 제목은 ‘울릉, 이야기를 담다’였지만,

학생들이 담아낸 것은 울릉도의 정보에 머물

지 않았다. 괭이갈매기와 고양이의 갈등, 강치

와 독도, 선녀와 바위, 우산국과 이사부, 봉래

폭포와 향나무 같은 말들은 학생들의 손을

거치며 조금씩 인물과 사건이 되었다.

수업을 하며 나 역시 울릉이라는 장소를

몸으로 겪었다. 수업 중 전날 내린 폭우 탓인

지 갑자기 전기가 나가 컴퓨터가 꺼졌고, 다음

날에는 배 운항이 취소되었다. 나에게는 당

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울릉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다음 일을 조정했다. 바람과 비, 파도와 배편은 이곳에서 예외적인 사건이라기보다 하루를 함께 정하는 조건에 가까웠다. 그 순간, 울릉의 자연은 자료 속 배경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라는 것이 실감났다. 글쓰기 수업이 늘 매끄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어떤 학생은 금방 쓰고, 어떤 학생은 오래 망설인다.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어떤 이야기는 뜻밖의 장면에서 빛이 난다. 그래도 그날 학생들은 울릉도라는 이름을 자기식으로 한 번씩 지나갔다. 한 학생은 성찰일지에 “다음에 또 오신다면 그때는 더 즐겁게 했으면 한다”고 남겼다. 울릉고에서의 소설 쓰기 캠프는 내게도 지역 기반 책 쓰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때때로 내가 사는 지역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익숙해서 지나쳤던 장소가 새롭게 보인다. 늘 듣던 이름도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면 다른 표정을 갖는다. 그날 학생들은 울릉도라는 이름을 자기식으로 써 내려갔고, 완성한 구상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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