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새 학년 새 학기,
어떤 성교육이 필요할까요?
2026년 달력 두 장이 넘어갔습니다. 학교에 계신 분들에겐 이제야 새해겠네요. 모든 것이 새로운 3월이 진정한 1년의 시작이니까요. 출발을 신선함으로 즐기는 이들도 있지만 낯선 환경이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올 3월은 어떤 기분으로 맞이하고 계신가요. 제가 교사로서 3월을 맞이할 땐 늘 긴장 상태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을 만날지, 이번 학년도가 끝날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서현주 전 초등 교사, 폭력예방교육 전문 강사
학습보다 인성교육이 중요한 봄
학생들도 새 교실이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교실 공기가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으로 지낼 때는 첫 1∼2주를 매우 공들였습니다. 기초 공사가 잘 돼야 건물이 잘 지어지듯, 3월 한 달을 탄탄하게 보내야 1년이 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 시기에는 학습보다는 인성교육이 우선입니다. 부끄러워서 제대로 인사를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용기를 주고, 예의 없이 말하는 학생에게는 따끔하게 주의를 주는 것도 교사가 3월에 할 일입니다. 칭찬할 점은 확실하게 칭찬하고, 수정할 점은 단
호하게 지도해야 학생들도 편안함을 느낍니다. 교실 안에서 지켜야 할 명확한 선이 있다는 것을 체득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사와 학생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 가기 위함입니다. 교사가 사사건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차가워 보였는데 지내다 보니 공정하신 거였네.’ ‘이 정도 행동은 선생님이 받아 주시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남을 배려 못 한 거였구나, 다음부턴 조심해야지.’ 비단 사제 간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 온전하게 서 있어야 학생들도 각각 단단하게 여물어 갈 수 있습니다. 3월을 불안정하게 보내고 나머지 1년도 힘들게 지내는 교실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원인은 다를 수 있지만 나타나는 현상은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내뱉는 말 한마디,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분 못 하는 행동들, 틈만 나면 오가는 비난, 규칙을 가볍게 여기고 지키지 않는 태도까지. 이런 교실의 구성원들은 다음 해에 각기 다른 반으로 흩어지기 때문에, 그 문제가 그 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슬픈 일이죠.
선생님의 ‘월경’을 이해하는 교실
한 명의 교사가 교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건강한 인간관계인지, 타인 존중의 언행은 어떤 것인지는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매일 학교에서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간관계 존중, 성교육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성교육을 떠올리면 어른들은 각기 다른 핵심어를 떠올립니다. 사춘기, 2차 성징, 임신, 출산, 자위, 성폭력 정도의 단어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성교육을 부담스러워하고 기피합니다. 하지만 성교육은 일상적이어야 합니다. 편안해야 합니다. 성교육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내 아이를 지키는 성인지 감수성 수업』에서 성교육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적인 존재임을 인식하고, 생애주기별 몸과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일. 건강한 관계를
맺고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아는 것. 교육이 아닌 동행.”
모든 인간이 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삽니다.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도, 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도 성적인 존재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월경 주간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하셨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과도한 정보 전달이며 부끄러운 것이라고 반응하는 분도 계셨지만 저는 반가웠습니다. 저희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본인이 생리통이 심하다는 사실을 전달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남자인 저희 아이는, 자신의 인생에서는 못 겪을 일을 선생님이라는 권위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것입니다. 교실의 여자아이들에게는 어떨까요. ‘월경이라는 것은 저런 것이구나. 일할 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구나. 몸이 아프고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선생님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학생은 미래에 겪게 될 상황에 대비할 것입니다. 이미 초경을 시작한 학생이라면 선생님과 동질감을 느낄 것이고요.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는 어린이에게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가끔 귀여운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도 엄마가 있어요?” “선생님도 방학 때 집에서 늦잠을 자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고, 규율을 제시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존재가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교실의 NPC(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는 도우미 캐릭터)로 느껴지기 때문이겠죠. 선생님도 엄마가 있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화장실도 가는 것을 알면 아이들은 일종의 안도를 합니다. ‘아!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그러니 선생님도 월경을 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안다면 어떨까요? 또 한 번의 안도와 반가움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성교육에 관한 강연을 하며 교사와 양육자를 만날 때마다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양육자들은 학교에서 성교육이 잘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고, 교사들은 성교육이 가정의 몫이라고 여깁니다. 이 평행선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운이 나쁜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성적인 존재’인 어른을 만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성년인 ‘나’는 자신과 어른의 사이에서 단절감을 느낍니다. 인간이 생애주기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사춘기를 맞이하면, 아이들이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들은 사춘기 때 뇌 구조의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치르게 됩니다. 호르몬 때문에 온종일 울적하다가 웹툰 한 컷에 큰 웃음을 짓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한 없이 작아진 자신이 미워집니다.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해 권위에 도전하고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사춘기를 예전에 떠나보낸 어른들도 호르몬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다가 하염없이 울고,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가 낯설어집니다. 운동을 해도 근육이 빠져서 슬픈데 온몸의 털마저 얇아지고 힘 없어지니 세월이 야속해서 한숨을 쉽니다.
동행하는 성교육을 위한 책 읽기, 시작!
그림책 『나이가 들면 어때요?』에 등장하는 어린이는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때요?” 할머니는 말해 줍니다.
“어릴 때는 많이 웃잖아. 나이가 들어도 그래. 어릴 때는 가끔 입맛에 맞지 않는 게 있지?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는 모두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고, 그 안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성교육은 타인의 몸과 마음, 나아가 삶을 이해하는 도구가 됩니다. 아이 를 키워 본 양육자들은 알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에너지는 정말 엄청나다 는 것을요. 우리가 자랄 때도 그랬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늘 활동적입니 다. 땀 흘리고 잘 뛰어놀아야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잡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도 알게 됩니다. 여자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몸이 말랑말랑하고 남자아이들은 같은 무게라도 뼈대가 묵직하다는 것을요. 남자아이들은 자 라면서 느낍니다. 나를 보호해 줬던 엄마, 할머니, 이모도 초등 고학년 이상 이 되면 힘으로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요. ‘나에게는 당연하게 느껴 지는 것들이 남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구나.’ 하고, 유전적으로 타고난 성별 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교육이 주는 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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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면, 내 몸을 잘 달래어 건강하게 가꾸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을까, 나에게 맞는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인생에서 맺은 여러 관계가 나를 만듭니다. 우리는 오늘도 관계에서 위로를 받고, 관계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주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내가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끊임없이 나에게 접촉을 시도해서, 망쳐 버린 것 같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좋은 인연을 꾸준히 이어 나가고 싶어서… 사람을 마주할 때 단순한 호불호를 떠나 어떤 것이 나를 살리는 관계인지 혹은 망치는 관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도 자주 실수를 합니다. 기분에 취해서, 호르몬에 이끌려 무리한 약속을 하고 무엇에 홀린 듯 남은 인생을 덜컥 걸기도 합니다. 작은 실수가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어릴 때부터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관계인지 나만의 정답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교육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진정한 성교육은 일방적으로 이끄는 모습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따뜻한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이 이상적입니다. 『나이가 들면 어때요?』에서 공원을 산책하는 할머니와 손주처럼요. 너와 나의 모두 인생이 처음인 만큼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3월을 맞이하는 어른들과 나누고 싶은 성교육의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