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서 ON, 다시 여는 성교육] 어린이날에 떠올리는 어린이의 성(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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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 떠올리는
어린이의 성(性)
지난 4월호부터『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 라인』(2018)과 금서를 엮어 성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안내해 드렸습니다. 가이드 라인의 첫 번째 핵심 개념인‘ 관계’ 다음으로 함께 살펴볼 핵심 개념은‘ 2. 가치, 권리, 문화, 섹슈얼리티’입니다. 서현주 성교육 활동가, 작가
어른들의 관습이 그르친 것
두 번째 핵심 개념은 조금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쉽습니다. ‘성’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준은 모든 국가가 같을까요? 자세히는 몰라도 서로 같을 거라고 예상하지 않으실 겁니다. 쉬운 예로 포경수술을 떠올려 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남성에게 포경수술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사춘기가 채 오기도 전에 수술을 시키는 것이 다수였어요. 그렇지 못한 남성은 군대에 가서 수술을 하거나 놀림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전 세계에서 포경수술을 하는 국가는 극소수라는 통계와 포경수술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가 언론에서 보도된 후 그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20년간 국내 포경수술 비율은 2000년 초반 80%에서 20%로 크게 낮아졌다고 합니다. 사실 포경수술이 사회 전반적으로 행해질 때에도 그것을 권장하는 이유가 첫째는 위생, 둘째는 성 감 증진이었으니 남성의 음경에 대해서 우리나라가 어떤 가치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어요. 본래 갖고 태어난 생살을 잘라내는 아픈 수술을 꾹 참는 것이 성관계를 할 때 더 높은 쾌감을 느낄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기도 하죠. 조금 먼 나라로 시선을 옮겨 볼까요. 세계보건기구(WHO)가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30국에서 최소 2억 명의 여성이 할례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할례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인구의 약 네 배의 숫자네요. 여성 할례는 유아기에서 15세 사이의 어린 여아의 성기 일부를 훼손하거나 봉합하는 등의 행위입니다. 보통 종교적 이유나 문화적 관습이라는 이유로 행해집니다. 농업을 주 생계 수단으로 삼는 일부 국가에서 흉작으로 인한 위기가 아동 교육 단절로 이어지며 여아 조혼과 할례로 나타난다고 해요. 대한민국에는 여성 할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여성 할례가 있다고? 그것도 아이들에게?” 하며 놀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러한 놀라움은 포경 수술을 하지 않는 국가들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할 겁니다. 결국 국가적·문화적·사회적·시대적 배경에 따라 성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경수술과 할례 풍습 모두 어른들의 관습에 의해 미성년의 성기를 해하는 행위입니다. 성교육의 관점까지 가지 않고 인권 측면에서만 봐도 폭력적이고 끔찍하게 여겨지는데요. 인간의 재생산 도구이자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성기를 타인이 함부로 대한다면 다른 신체와 정신적 부분에 대한 존중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하여 이번 호에선 어린이의 권리와 섹슈얼리티,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서들을 함께 살펴보려고 해요.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것
“자신의 권리와 인권은 국내법 및 국제협약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성교육 가이드』 2.2 인권과 섹슈얼리티 학습목표 중에서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할례를 받다가 병에 걸리고 죽어 가 는 어린이들, 그리고 과거에 어른의 손에 이끌려 포경수술을 받 았던 한국의 어린이들이 더 생겨나지 않으려면 권리에 대한 교 육이 꼭 필요합니다. 내 몸은 나의 것이고 어른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단순한 명제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슬퍼요. 5월은 어린이날이 있는 달이기도 하니 어린이 인권을 또다시 떠 올려 봅시다. 어린이 인권을 다룬 책을 소개하려고 해요. 『존엄을 외쳐요』는 국제앰네스티 창립 60주년을 맞아 국제앰 네스티 한국지부가 세계인권선언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기획한 도서예요. 김은하 작가가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으로 옮긴 30개의 선언에 장마다 한 편의 작품 같은 윤예지 작가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번 주제와 어울리는 몇 개의 선언을 옮겨 볼게요. | 『존엄을 외쳐요』 김은하 지음│윤예지 그림│사계절│ 2022 |
“4. 어느 누구도 나를 노예로 만들 수 없어요.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은 나예요.”
“25.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어요. 어린이라도 노인이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
는 음식과 옷, 집이 있어야 해요. 아프면 치료 받고, 사회 보장 제도를 누리 권리가 있어요.”
-『존엄을 외쳐요』 중에서
어린이의 몸은 본인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이나 성기에 관련해서는 보호자나 권위자의 말에 따르도록 강압하는 문화는 이제는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에게 건강한 몸과 마음에 대한 권리를 알려 주는 것이 성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니까요.
사랑을 느낄 권리가 있다
『나에겐 권리가 있어요』는 1989년 비준한 유엔의 아동권리협 약을 토대로 글과 그림을 엮어 낸 도서입니다. 『진정한 챔피언』 을 쓰고 그린 이란의 작가 레자 달반드가 활기차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아동의 권리를 직관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림책에는 다채로운 배경에 다양한 피부의 어린이들이 등장합니다. “폭력 에서 보호를 받고, 학대를 받지 않으며,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 도 있고요.”라는 문장이 쓰인 장면에는 작은 아기가 아빠의 품 에 꼭 안겨 있습니다. 길거리에는 소리치고 싸우는 사람들 때문 에 소란스러운데 아기는 아빠의 웃는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니 매우 편안해 보여요. 이렇게 어린이는 어떤 순간에서도 보호받아야 마땅합니다. |
『나에겐 권리가 있어요』 레자 달반드 지음│이세진 옮김│ 책연어린이│2023 |
『나에겐 권리가 있어요』 마지막 장에는 별이 빛나는 밤 한 어린이가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있고 두 양육자가 아이를 토닥이고 있어요. 이 그림에 작가가 써넣은 어린이 권리는 ‘나는요,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린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어른들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에요. 두 책을 통해 살펴본 국제 어린이 인권 선언보다 훨씬 앞선 어린이 존중이 대한민국에 있었습니다. 바로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날 선언입니다. 2022년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선포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1923년에 발표된 어린이 선언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었어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 자세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보십시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방정환 선생이 발표한 어린이 선언문(1923) 중에서
2025년을 사는 어린이들에게 100년 전의 조언이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합니다. 이 중에서 크게 와닿는 부분이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보십시오.”입니다. 저 역시도 성교육의 실천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어서예요. 어린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에 무엇이 아픈 상태인지, 어디가 변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매번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성장 과정을 이미 거쳐 온 어른이 관찰자의 시선에서 어린이의 몸을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죠. 어린이들과 『존엄을 외쳐요』, 『나에겐 권리가 있어요』, 방정환 어린이 선언을 모두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그리고는 어떤 선언문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는지 물어보면 어떨까요? 어른도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어른이 어린이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현재의 어린이와 나눔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나와 타인을 소중히 돌보는 연습
“사회문화적 규범이 어떻게 성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성교육 가이드』 2.3 문화, 사회와 섹슈얼리티 학습목표 중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존중하는 어린이가 되려면 2차 성징 이후 나타나는 성적 행동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자신의 결정이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학습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도 말이에요. 초등 고학년부터 청소년까지 이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좋은 도서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소녀와 소년, 멋진 사람이 되는 법』은 시원시원한 그림이 적 재적소에 삽입돼 있어서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어린이도 재 미있게 읽을 수 있는 지식교양서입니다. 여자아이들에게 하는 조언과 남자아이들에게 하는 조언이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차 이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어 떤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지를 상세하기 가르치기 위함이에요. 저자는 여자아이들에게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칭찬 에 매달리지 않는 소녀가 되자고 말합니다. 미디어에서 예쁜 외 모라고 여겨지는 기준을 어린이·청소년이 따라 하고 그 기준에 충족해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 외모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악순 환이 현실에 존재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는 |
『소녀와 소년, 멋진 사람이 되는 법』 윤은주 지음│이해정 그림│사계절│ 2019 |
책이 청소년의 자존감을 향상하게 하고, 섹슈얼리티를 올바르고 단단하게 하는 힘을 주겠지요. 또한 이 책은, 남자아이들에게는 자주 씻고, 스스로 밥을 하고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자고 다독입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귀하게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도 덜렁대는 남학생을 챙기라는 목적으로 야무진 여학생을 일부러 짝으로 앉히기도 했었죠. 성별에 따른 관습보다는 자신을 알아서 챙기고 여유가 있으면 남을 도울 수도 있다는 관점을 우리는 지향해야 합니다. 또, 남성에게 편하고 당연한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힘든 세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는 조언은 성범죄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인 사회에서 꼭 필요한 교육입니다.
우리의 섹슈얼리티,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청소년에게 선물하고 싶은 훌륭한 성 교양서인 『소녀소년 평등 탐구생활』은 특히 제1장의 세 번째 이야기 ‘당당하게 알고 싶 은 성 이야기’가 가장 돋보입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안내 하면서 성적인 행동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알려 줍니다. 실제로 성적 접촉이 있었던 청소년들을 조사해 보니 여성 청 소년의 경우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남자친구가 원해서 성 경 험을 했다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고 해요. 여성도 청소년도 성 적인 욕구가 있을 수 있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 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 관계에서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 이 상황이 흘러갈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 니라 여성 자위, 실제 피임법, 임신 중단, 남성 성폭력 피해자 |
『소녀소년 평등 탐구생활』 양해경 지음│권송이 그림│ 파란자전거│2013 |
이야기까지 두루뭉술한 성교육이 아닌 실제적인 내용이 가득합니다. 전국의 모든 청소년이 어른이 되기 전에 꼭 읽었으면 하는 양서예요. 만약 이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청소년은 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아집에 사로잡힌 존재일 겁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어린이였던 어른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소개하는 도서들이 큰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