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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서 ON, 다시 여는 성교육] 어린이 성교육 책, 업데이트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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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5-03-05 13:52 조회 3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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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성교육 책,

업데이트하셨나요?


긴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퀴즈를 하나 내 봅니다. 전국의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 어린이실에서 곧잘 읽힌 끝에 가장 너덜너덜해지곤 하는 책 1위는 무엇일까요? 하나, 둘, 셋! 정답은‘ WHY? 학습 만화 시리즈’ 중 한 권인 『Why? 사춘기와 성』입니다. 서현주 성교육 활동가, 작가



강산이 변해도 여전한 인기 도서, 그런데요


제가 초등 담임교사였을 때 학생들 도서실 방문 수업을 할 때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어요. 학습 만화계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WHY?’ 시리즈의 서가 위치를 알고 있는 학생들은 다른 아이들이 책을 선점하기 전에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가장 먼저 꺼내어 40분 수업 시간동안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중에서도 『Why? 사춘기와 성』은 이미 읽고 있는 어린이 옆에 현장 대기 줄이 있을 정도의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학교 현장에 있는 사서선생님들께 여쭤보니 『Why? 사춘기와 성』의 입지는 아직도 굳건하다고 합니다. 성에 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더 새로운 책들이 나오고 있지 않아서일까요? 성에 관한 신간은 있지만 어린이들의 구미를 확 당길 만한 대체재가 나타나지 않은 걸까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WHY?’ 시리즈 초판이 발간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가 집중적으로 다루는 과학적 내용도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성에 관한 문화와 지식은 어떠할까요. 예전에는 성적 표현물을 보려면 몰래 책이나 영상 저장 매체를 구해 오거나 PC를 켜는 등의 행위가 필요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된 이후로는 이러한 귀찮음과 기다림은 사라졌어요. 호기심과 욕망을 충족하려면 내 손 안에서 바로 원하는 것을 보면 되니까요. 사용자들의 클릭 수와 페이지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본은 자극적인 매체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사, 광고, 웹툰, 웹소설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는 점점 더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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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이 발간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폭발적으로 읽히는『 Why? 사춘기와 성』.
어린이를 위한 새로운 성교육 도서
대체재의 출현은 과연 요원한 걸까요?



양육자 민원으로 움츠러드는 성교육 현실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 라인이 생기기도 전에 몰아친 자극의 홍수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어린이·청소년입니다. 최근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관련 통계를 보면 그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딥페이크 가해자 중 80% 그리고 피해자의 60%가 10대로 나타났습니다. 음란물에 등장하는 몸과 아는 사람의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의 ‘콜라주’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의 딥페이크와는 피해의 차원이 다릅니다. 디지털 성범죄에 이용된 파일은 무한 전송될 수 있으며, 완전 삭제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해 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범교과 차원에서의 성교육이 연간 15시간 범위에서 이뤄지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범교과 수업은 다른 교과의 연계를 통해 내용 지식을 다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국어 시간에 성교육에 관한 텍스트를 읽고 토의를 했다면 성교육 1시간을 한 것으로 인정되는 거죠. 연간 15시간은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적은 시수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내용의 통일성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에서는 성교육에 관한 일정한 성취 기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 무엇을, 어디까지 배워야 하는지 국가 공통의 기준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은 다른 교과의 수업 시간에 성교육에 대해 살짝 발만 담갔다가 궁금증을 안은 채 호기심을 삭이게 됩니다.

교육 현장의 한계는 명백한데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해 가니 양육자, 교육자 모두의 머릿속에는 같은 물음표가 생깁니다. ‘성교육 참 중요한데, 어떻게 가르치지?’ 교실에서 학생들과 부대끼는 교사들은 당장 피부에 와닿는 교육을 실행하고 싶어도 커리큘럼이 없다 보니 개인의 노력으로 공백을 채워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더욱이 교사의 교육 활동에 대한 민원이 빈번한 현실에서 교사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습니다. 양육자들은 공교육에서 성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는 사교육에 성교육을 맡깁니다.



낙인찍히는 금서, 피해자는 어린이·청소년


성교육 커리큘럼 부재는 성교육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과외식 성교육과 외부 강사가 하는 학교 성교육은 그 한계가 명백합니다.

첫째, 국가에서 공인하는 성교육 강사 자격증이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후죽순 늘어난 민간 자격증일 뿐입니다. 성교육에 관한 자격증과 가장 가까운 것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발급하는 폭력예방 통합교육 전문강사가 유일합니다. 둘째, 민간 성교육 강사들이 아동 발달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성교육을 해야 한다면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좋지 않을까요. 셋째, 일회성의 특별 교육은 그 이후의 꾸준한 인식 변화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이벤트성 교육으로 약간의 화두는 열 수 있지만 올바른 성인지 정서와 태도 습득을 이루기는 역부족입니다.

이상적인 성교육이란, 과목으로서의 성교육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유아부터 중등까지 현실에 맞는 학교급별 성취 기준을 마련하여 교재까지 만드는 것이지요.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해진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과목으로 설정하는지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도덕’ 과목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도덕 교과에서는 성실, 배려, 정의, 책임이라는 핵심 가치를 내세우고 도덕적 탐구와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타인을 왜 도와야 하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처럼 성인이 떠올리면 당연한 이야기를 학교에서는 교재와 각종 수업 자료를 통해 꾸준히 가르치는 거죠. 이처럼 성교육에서도 세부적 핵심 내용을 가지고 학년별 커리큘럼을 꾸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이상향을 실현하기에 요원한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우리가 모두 성적인 존재임을 터부시하는 문화적 배경, 성교육을 바라볼 때 정치적·종교적 틀로 해석하려는 시도, 성범죄나 성폭력은 개인의 일탈과 본능에 의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사법부의 판결 등 말이지요.

이런 배경에서 상처를 받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좋은 책으로 치유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2019년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배울 수 있는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입니다. 나다움 어린이책에서 선정한 199종의 어린이책은 유네스코 성교육 가이드에서 말하는 성의 인지·정서·신체·사회적 측면을 폭넓게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습니다.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공교육 현장과 양육자들에게도 희소식이었죠. 하지만 일부 단체에서 199종 책 중 몇 권이 학생들에게 과도한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도서라며 금서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어린이들이 보면 안 되는 도서로 지정했습니다. 부모가 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는 이유로요. 유럽에서 출간된 지 50년도 넘은 이 책은 202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음란 도서 딱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일부 공공도서관은 성교육 책들을 폐기해 달라는 민원까지 받았습니다. 그 여파로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 역시 예정보다 빨리 막을 내리게 됩니다. 어린이책에서 드러내는 성을 부끄러워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태어났나요? 가 물어다 주어 이 세상에 나오셨나요. 번식 및 출산 행위가 음란하다면 음란함의 결과물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 일상생활은 어찌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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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본부에서 발간한

「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 라인」(2018).

‘나다움 어린이책’은 이 가이드라인에서 말하는

가치들을 폭넓게 가르칠 수 있는 도구다.



‘이 책들 정말 아이들이 읽어도 될까요?’ 걱정하시는 분들이 아직 계시긴 합니다. 도리어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포털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왜곡된 포르노로 성을 배우길 원하시나요, 아님 검증된 어린이책으로 먼저 알기 원하시나요? 섹스는 더럽다고 생각하고 사춘기를 맞길 바라시나요, ‘성관계는 동물이나 인간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런 행위다’라고 알고 넘어가길 바라시나요? ‘금서 지정 및 폐기 요구’라는 행위는 명백한 위헌일뿐더러 폭력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도서들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2024년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도 결정했음은 당연한 결과였고요. 안타깝게도 지금도 어느 공공도서관에서는 성교육 관련 도서를 폐기하라는 악성 민원을 받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몇몇 경기도 학교도서관에서 폐기했다는 뉴스도 이와 별개가 아니겠지요.

성교육은 단순히 섹스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닙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타인과의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아는 것부터가 성교육의 시작이지요. 넓은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는 것도 성교육의 일종입니다. 이제는 사춘기, 월경, 자위, 몽정 이야기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청소년도 성적 욕구가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한민국에서 성이란 어떤 맥락을 가지고 다뤄지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살펴야 합니다. 딥페이크 가해자를 색출만 한다고 해서, 성폭력 예방 의무교육을 실시했다고 해서 폭넓은 성교육이 이뤄졌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폭넓은 성교육과 금서로 지정된 책들에 대해 다뤄 보려고 합니다. 성에 관한 도서를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어른들과 성장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궁금한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해서요. 멀기만 한 학교 성교육의 갈 길에 징검다리가 될 만한 단단한 도서들을 함께 두드려 보고 열어보는 시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그 책 말고, 다양한 빛깔의 흥미로운 책을 학교도서관에서 잔뜩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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