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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목소리가 큰 진경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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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9 17:03 조회 7,56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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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선생님 알아요.”
조용한 교무실이 울린다.
“쉿! 진경(가명, 중1 여)아! 유치원 자원봉사 신청하러 온 거지?”
“네, 쌤 내 이름도 아시네요.”

여전히 목소리가 크다. 사실 이름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복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본 것뿐이다.
“선생님은 항상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아요. 나도 그런데…”
유치원 자원봉사는 유치원생 25명 정도를 4개 조로 나누어 한 조에 중학생 1~2명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독후활동을 지도하는 4회기 프로그램이다. 유치원생들의 반응도 좋지만 중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아 방학 때마다 진행하고 있다. 진경이는 중학교 1학년이라 3학년 아이들의 보조진행을 맡았다.

당황스런 유치원생 만나기
첫 시간, 진경이네 조, 민서(가명, 7세 남)가 울기 시작했다. 각 조마다 다른 그림책을 준비했는데 민서는 진경이네 책이 싫다는 것이다. 어차피 4주 동안 돌아가면서 볼 책이라 다음 주에 보고 싶은 책을 보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진경이가 땀을 흘리며 민서를 달래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다행히 유치원 선생님께서 설득해서 민서는 다시 진경이네 조에 들어가서 끝까지 무사히 활동을 마쳤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평가를 하면서 진경이에게 어렵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더니 재미있었다고 짧게 이야기를 했다. 돌아가는 뒷모습이 풀이 죽어보며 힘들면 다음 주부터는 조를 바꾸어도 된다고 했더니 “괜찮아요. 제가 좀 대책 없이 긍정적이라서요.” 하며 뛰어갔다.

아이들을 보내고 유치원 선생님께 민서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아침 7시 반에 유치원에 와서 저녁 10시에 부모님이 데리고 가신다고 했다. 그리고 2년을 다니는 동안 한 번도 결석을 한 적이 없을 만큼 가족행사나 가족 여행이 없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항상 부모의 손을 그리워하는데 부모님도 사는 것이 너무 힘드셔서 그런지 한 번도 밝은 모습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민서와는 3번을 더 만나고 겨울방학이 끝났다. 마지막 프로그램 시간, 진경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큰 소리로 아이들을 안아주며 일일이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
“그 동안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보자.”
“거짓말!”
민서다.

“다시 보자는 거 거짓말이잖아. 아까 선생님이 오늘 마지막이랬잖아.”
진경이는 당황하며 횡성수설하기 시작했다.
“너 이 동네에 있으니 지나가다 볼 수도 있고, 내가 놀러오면 되잖아. 진짜 올꺼야.”
민서는 금방이라도 다시 울 기세다.
“거짓말이야. 다시 못 만날 거잖아.”

우리는 서둘러 유치원을 나왔다. 그리고 이번 활동 평가를 했다. 그리고 민서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선생님, 3일만 학교 나가고 바로 봄방학이니 민서 만나러 가도 돼요? 저 민서 심정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침 민서와 비슷한 상황의 유치원 야간반 아이들이 3명 정도 있다고 해서 어렸을 때 방치(?) 경력 있는 아이들 3명이 모여 한 달 더 1:1 멘토를 해주기로 했다.



그림책 고르기
그 다음날부터 진경이는 민서를 만날 책과 교안을 만들기 위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림책을 쌓아놓고 민서랑 만날 책을 고르기 위해 열심히 그림책을 읽었다.

『엄마는 나 없을 때 뭘 할까』와 『나는 엄마가 좋아』, 『엄마 마중』, 『엄마를 화나게 하는 10가지 방법』 등 엄마랑 만날 시간이 적은 민서를 위해 엄마에 관한 책을 잔득 골랐다고 했다.
“그림책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요. 제가 어렸을 때 이런 책 읽었다면 이렇게 공부 못하지 않았을 텐데…”
“그 그림책 대부분이 너 어렸을 때 있었던 책이야. 하하”

진경이는 그림책 중에 엄마 이야기가 나오는 그림책을 읽으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막내언니와 16살 차이나는 늦둥이이다. 엄마는 지금 오십 세가 훌쩍 넘으셨고, 언니도 서른이 넘었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도 진경이는 항상 집에 혼자 있었다.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는 항상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셨고, 시외버스 운전을 하는 아버지는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들어오셔도 술만 드시고 잠만 주무시는 아버지였다. 언니가 엄마를 대신하여 봐주는 날이 많았지만 언니 역시 친구들에게 전화 오면 나가버린 기억이 더 많다.

진경이가 대부분 시간을 보낸 곳은 집 앞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 엄마들이 부르면 혼자 덩그러니 남은 놀이터, 그 기억이 좋지 않아 진경이는 다른 친구들이 집에 갈 낌새가 보이면 먼저 집으로 가야한다며 바쁜 척했다고 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일 하시는 데다 형제도 없어서 진경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민서와 읽을 그림책을 선정하기 위하여 그림책을 펼쳐 놓고 누가 더 궁상맞은 짓을 했는지 내기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많이 웃었다. 실컷 웃었다.

“선생님은 밝아서 좋아요.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상담하고 하면 선생님들은 불쌍한 표정으로 절 보셨어요. 아빠가 술 마시고 심하게 때리기도 해요. 언니는 심하게 다쳐 입원을 한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요, 학교에 오면, 아이들 만나면 그냥 웃게 되요. 그게 나아요. 우울한 건 딱 질색이거든요.”
“내가 맘에 들었다니 영광인걸. 하하! 나도 성격상 같이 ‘어머, 어떡하니? 맘 아파서… 흑흑’ 뭐 이런 거 잘 못해. 차라리 ‘그래? 그럼 우리 뭐할까?’ 그게 좋지. 하하”
진경이는 다음 날부터 그 아이와 1시간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 고민하는 일을 계속했다.

목소리가 작아진 진경이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진경이 목소리가 많이 작아졌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유치원생과의 만남으로 이제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개학날이 가까워왔다. 진경이는 한껏 들떠 교무실에 들어섰다.
“이번 방학은 참 유익하게 보낸 것 같아요. 하하. 참, 선생님, 제가 어떻게 선생님을 아는지 이야기했던 가요? 선생님들께 인사하면 인상 쓰고 그냥 지나가시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제 인사를 못 들었나 하고 인사를 크게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가 작게 인사해도 항상 웃으면서 ‘응, 너두 안녕’ 해주셨어요. 그래서 샘을 잘 기억해뒀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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