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데아 [색다른 모두의 그림책 교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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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10-02 13:22 조회 221회 댓글 0건본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 수업
1학년 생활의 첫걸음과 동행한 그림책들
지그재그 특수교사연구회 셋업(SET-UP) 유닛
직장인들은 흔히 3, 6, 9년의 주기마다 번아웃이 온다고 한다. 3년을 잘 버틴 특수교사로서 ‘사람마다 다른 거야, 괜찮아.’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4년 차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를 옮겨 본 선생님들이라면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학생, 새로운 학부모를 만났을 때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 봤을 것이다. 올해 처음 특수학교로 근무 환경을 옮긴 나는 그 긴장감과 함께 다시 신규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학교를 옮긴 후 어리둥절하게 배정된 학년을 확인하니 학생들도 학교가 처음인 1학년이었다.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버티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럼에도 셋업 연구회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다 보니 “그래, 다시!”를 외칠 수 있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번 호에서는 그렇게 그림책을 통해 비틀거렸지만 계속 걸어간 ‘나의 수업 실천기’를 소개한다.
마주하고 대면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제 막 초등 1학년이 된 학생들은 ‘의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유치원에서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실행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로 ‘바닥’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3월 우리 교실의 모습은 아비규환이었다. 앉거나 누워서 집에 가고 싶어 칭얼거리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3월의 첫 과제는 자연스럽게 ‘바른 자세로 앉기’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그림책 수업을 시작하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종이 그림책을 보여 주면 아이들은 책을 넘기기보단 찢기에 흥미를 가졌고, 도서관에 가면 뛰어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그림책과 친해지기 위해 책놀이 수업을 고루 진행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들과 입학 초기 적응활동을 해나가며 국어과 수업과 연계하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라는 그림책을 읽어 보았다. 다양한 떡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가위바위보’를 놀이를 시작하는 이 책에는 무지개떡, 시루떡, 인절미떡 등 캐릭터의 특징이 흥미롭게 묘사돼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다채로운 떡들의 특징에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나와 학생들은 이 책을 읽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큰 소리로 외쳐 보았다. 구어 발화가 어려운 아이들은 종이로 깔때기를 만들어 소리치는 모습을 흉내 내었다. 책에 나온 전래놀이를 실제로 해보기 위해 색깔판으로 학생들이 설 자리를 표시하고, 색 테이프로 출발선과 도착선을 표시했다. 학생들이 한 칸씩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이동 칸을 구분했다. 이후 직접 술래가 되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자 교실의 풍경은 생경해졌다. 출발선에 있던 학생들이 색깔판을 들고 앞으로 한 칸씩 침착하게 이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교실 곳곳에서 뛰어다니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놀이에 참여하며 노력하는 두 눈, 쉬는 시간에 자신의 책상 앞으로 그림책을 가져가던 두 손, 그 시간을 고이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설렘 가득한 학교생활 열기:『 컬러몬스터: 학교에 가다』
특수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통합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초등학교 때 특수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12년간 한 학교에서 재학한 후 졸업한다. 입학 후 학교는 학생에게 오래 생활 하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낯선 학교에서 타인들에게 두려움보다 설렘을 느끼는 바람으로 학생들과 함께 『컬러몬스터: 학교에 가다』라는 그림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책에서 ‘학교’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주인공 컬러몬스터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친구 노나는 그런 컬러몬스터에게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교사는 1학년 학생들의 얼굴을 넣어 편집한 그림책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우리는 학교에 올 때 어떤 준비물을 챙겨오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우선 각자의 책가방을 직접 들여다봤다. 좋아하는 손가락 인형부터 보호자와 함께 찍은 인생 네 컷 등 책가방에는 아이들 각자의 취향이 묻어났다. |
학교 공간 탐험하기
책가방을 확인한 우리는 한 줄로 서서 차례를 지키며 학교에 있는 여러 공간으로 출발했다. 특수학교는 보통의 학교와 같지만 ‘색다른 공간들’이 존재한다. 감각 역치가 다양한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심리안정실, 요리부터 빨래까지 일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상생활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자립생활실, 도전 행동을 보였을 때 다른 친구들을 보호하며 학생이 진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지연하는 긍정적행동지원실 등이 그것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특별실에 직접 찾아가 이름을 불러 보며 학교라는 공간에 첫 발자국을 찍었다. 어떤 학생은 자립생활실에서 먹는 팝콘이 맛있었는지 2교시 종료를 알리는 종이 칠 때면 매일 “팝, 팝콘”을 외치곤 했고, 긍정적행동지원실에 있는 텐트(진정 영역)와 인형들이 좋아서 점심시간마다 특별실을 열어달라고 고집 부리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특별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스크랩북으로 『우리들은 1학년』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종이책이라면 찢으려고 사족을 못 쓰던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이 담긴 책은 소중하게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곁에 두려는 학생들을 보며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도전 행동에 적응하기:『 할머니의 여름휴가』
입학 상담 때부터 유독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학생이 있었다. 보호자께서 ‘특히 안내 방송이 나오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경기를 일으키며 운다.’라고 말씀하셔서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보호자와 상담 후 주관적 관찰기록을 세워 확인해 보니 학생이 ‘위험으로부터의 회피’하는 기능(기재)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이 학생은 안내 방송을 위험 신호로 생각하여 “위험해.”라고 말하며 정문을 향해 달리거나 몇 시간이고 울며 뒹굴었다. 같은 소리지만 우리에게는 정보 전달로 느껴진 안내 방송이 이 학생에게는 대피하라는 무언의 신호로 들렸던 것이다. |
보호자가 없는 공간에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소리는 단순한 자극이 아닌 커다란 공포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곧바로 교실에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도록 방송 선을 자르고, 해당 학생의 사물함에 미리 헤드셋을 구비해 두었다. 학생들에게 학교에서의 활동 순서를 보여 주는 시각적 일과표로 하루 일과를 안내해 주니 눈에 띄게 학생이 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불안감이 다소 해소된 듯했다. 뒤로 미뤄두었던 국어과 ‘2. 여러 가지 소리’ 단원을 공부하기로 했다. 학생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소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할머니의 여름휴가』라는 그림책을 읽어 보았다.
바닷가에 다녀온 손자가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소라를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사물의 소리를 통해 시원한 상상의 순간을 독자에게 선물한다. 그림책을 읽고 여름에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삐용’ 막대, 오션 드럼과 같은 악기를 사용해 파도, 갈매기, 선풍기 등 여러 가지 여름의 소리를 내보았다. 사물의 소리를 듣고 칭얼거리던 학생은 처음엔 악기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필요하단 뜻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먼저 악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고, 학생들은 차츰 자유롭게 움직이며 연주를 시작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놀랍게도 고개를 저었던 학생은 자신의 자리에 놓여있던 악기를 흔들며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악기를 들고 내리치며 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은 내 마음속 무엇보다 커다란 울림으로 자리 잡았다. |
시작을 외칠 용기는 계속된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과 함께한 나의 수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동굴인 줄 알았는데 계속 가다 보니 터널이었다.” 어느 책 속 구절과 같다. 어딜 향해 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흘러가는 대로 가는 그곳이 ‘나의 방향’이었고, 종종 어둠이 찾아왔지만 동시에 빛나는 순간도 존재했다. 혼자 걸어왔다고 생각한 이 길은 우리 반 학생들, 셋업 선생님들 등 함께한 이들과 서로 기대어 걸어올 수 있었던 길이었다. 이렇듯 주변을 둘러보니 두려움 속에 갇혔다가도 시작을 외칠 용기가 생긴다. 또다시 어둠이 다가올 때도 있겠지만, 멈추지 않고 걸어온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출구를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