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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데아 [책을 품은 교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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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1-02 12:00 조회 1,08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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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신현주 서울중원초 교사




시간은 여지없이 흘렀고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컸다. 처음에는 연필 잡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글씨도 제법 잘 쓴다. 뭘 써야 하는지 모른다고 했던 아이들이 “제 생각을 쓰면 되죠?” 하고 먼저 묻는다. 책을 읽을 때 표지만 보고도 누가 그린 것 같은데 하면서 서로 작가 이름을 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재밌게 읽은 책을 돌려 보는 일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때가 다가왔다.

 



교실 도서관 정리하기


한 해를 정리하는 활동으로 12월에는 교실 도서관을 재정비한다. 교실 도서관을 마련해 두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과 정리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 게 중요하다. 처음에는 반듯하게 놓였던 책들이 거꾸로 꽂혀 있거나 책장 뒤쪽으로 넘어가서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교실 도서관 사용법을 설명할 때 ‘읽었던 책은 제자리에 놓기’와 같은 규칙을 설명하고 습관을 들일 때까지 연습하게 한다. 우리 반은 매주 2명씩 학급 일을 돌아가며 하는 ‘꿀벌’ 활동이 있어서 꿀벌 아이들이 교실 도서관을 정리한다. 12월에는 시간을 넉넉히 두고 반 아이들 모두가 정리에 참여해서 망가진 책은 같이 수선하고, 분류를 다시 한다. 이때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도 하고 책꽂이 사이에 끼어 있던 책을 운 좋게 손에 쥐기도 한다. 올해도 책장 구석구석을 정리하다가 한 해를 돌아보기 좋은 그림책 한 권을 찾았다. 


『어린이의 열두 달』은 지금은 절판되어 아쉬운 그림책이다. 서양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어린이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읽다 보면 조금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계절의 변화에 따른 삶의 풍경이 담긴 시와 그림이 독자에게 공감을 안겨 준다. 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사이 나의 지난날이 스쳐 지나갔다. 그림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에게 어떤 달이 제일 좋은지 물으니 다들 “제 생일이 있는 달이요!”라고 외친다. 어린이다운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3월에 만나 열 달을 같이 보낸 우리 반 친구들과 어떤 추억을 쌓았는지 묻고 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가 많이 들렸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간직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얼른 펜을 들었다. 학기 초에 만났을 때 북 히스토리를 통해 독서에 대한 기존 경험을 들었던 것처럼, ‘한 해를 돌아보며’라는 주제로 간단한 설문지를 만들어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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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열두 달』 

존 업다이크 지음

트리나 샤르트 하이먼 그림

장경렬 옮김│열린어린이│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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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대개 설문지 문항에 짧게 답을 쓰곤 한다. 그럴 때는 그 단어를 물꼬 삼아 ‘이야기가 흐르도록’ 교사가 길잡이를 하면 좋다. 예를 들어 효진이는 독서를 하며 달라지거나 성장을 했다고 느낀 점으로 공부가 더 쉬워졌다고 간단하게 썼다. 필자가 어느 지점에서 공부가 쉽게 느껴졌는지 물었더니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 제가 문제집을 푸는데 옛날에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아무래도 2학년 때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렇듯 짧은 답변을 나침반 삼아 아이들이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의 바다를 헤엄치듯이 말하게 하면 보물 같은 답을 건져 낼 수 있다. 



좋아하는 책과 사진 찍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좋아하는 책과 사진 찍기’가 그랬다. 아이들의 글을 보니 좋아하는 작가와 자신이 뽑은 올해의 베스트 책 3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어떤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좋아하는 작가와 사진을 찍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대신 좋아하는 책과 사진을 찍기로 했다. 촬영 직후 바로 인화할 수 있는 카메라를 구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인화물을 뽑아 선물로 주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모습이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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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과 함께 찰칵



책 달력 만들기


한 해를 돌아보는 활동이 끝난 후에는 내년을 준비하는 일을 한다. 아이들과 보내는 일 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독서 습관을 갖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꾸준히 이어지기도 어렵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고 말하는 아이도 늘어난다. 올해 책을 읽었던 시간을 밑천 삼아 내년에도 스스로 책 읽기를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책 달력을 만들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나만의 DIY 달력 만들기’ 키트를 샀고, 달력 페이지는 ‘한 해를 돌아보며’에서 쓴 것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달력 표지에는 나만의 달력 이름을 지어서 써 넣고, 두 번째 장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하거나 작가의 사진을 찾아 붙이거나 편지를 썼다. 세 번째 장에는 내년에도 읽고 싶은 베스트 책 3권을 골라 정성스레 소개했다. 마지막 월별 달력은 각자 개성대로 꾸미도록 했다. 아이들은 날짜를 채워 넣고 빈칸마다 친구 혹은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붙이거나 책 속 인상 깊은 구절을 쓰고 그리는 등 저마다 채우고 싶은 것들을 담았다. 한 아이는 종이로 대문을 만들어서 문을 열면 자기가 쓴 책에 관한 명언이 보이도록 작은 팝업을 만드는 기발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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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올 때마다 조금씩 채워 나간 책 달력이 차례차례 완성되기 시작했다. 달력을 완성한 아이들에게 준비해 둔 선물을 꺼냈다. 아이들 이름이 새겨진 스탬프 책 도장이었다. 집에서 매일 집중해서 40분간 책을 읽고 사인을 하는 숙제를 내곤 했는데, 내년에는 나와 함께할 수 없으니 스스로 해 보고 찍을 수 있도록 책 도장을 주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지 책 도장을 받고 나서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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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팝업 요소를 더한 책 달력 표지 / (우) 나의 베스트 책 3권을 콜라주로 꾸민 페이지


우리 반 책의 날··· 아이들 기분 '최고 좋음!' 

모두가 달력을 완성하고 한 권씩 펼쳐 보는 시간을 가졌다. 새 달력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쉬는 날을 확인하고 나와 가족의 생일을 찾아 메모해 둔다. 우리 반도 서로 기억할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싶었다. 매년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해서 기념하는 것처럼 ‘우리 반 책의 날’을 정하면 어떤지 물었다. 아이들도 좋다고 해서 책 달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날을 ‘우리 반 책의 날’로 기념하기로 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책 읽고 마음껏 놀고 싶다고 해서 그날을 ‘책 읽은 만큼 노는 날’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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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표현한 월별 달력 페이지


드디어 ‘우리 반 책의 날’이 다가왔다. 책 읽고 놀 생각에 아이들은 들뜬 표정이었다. 책을 읽은 시간만큼 노는 시간도 늘어난다니 평소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 나는 집중해서 읽기 좋은 책을 미리 교실 바닥에 두고 표지를 보며 고르게 한 후 40분 책 읽기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아이들은 지난 시간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복수의 여신』(송미경), 『책 먹는 여우』(프란치스카 비어만), 『돈 잔치 소동』, 『마법사 똥맨』(송언) 등을 골랐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게 교실 문을 열었고, 40분이 흐르자 책 읽기 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마침 비가 내린 후라서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희고 선명했다. 맑은 날씨만큼 아이들 기분도 ‘최고 좋음’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40분간 아이들은 다양하게 놀았다. 미래 곤충학자를 꿈꾸는 두 아이는 루페(확대경)를 들고 학교 화단 주위를 돌아다니며 벌레를 관찰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저 구름은 못 먹겠죠?”라고 말했다. 감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까치를 보고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남자아이들은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해 서로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한창 공놀이에 재미를 붙인 여자아이들은 어느새 공을 가져와 골대 앞에 서 있다. 나는 술래도 되었다가 골키퍼도 하면서 운동장을 달렸다. 신나게 뛰고 깔깔대는 아이들을 보며 이들에겐 세상이 온몸으로 넘기는 책이구나 싶다. 노는 시간은 왜 이리 빨리 흐르는 걸까? 40분을 뛰어놀고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은 여전히 생기가 넘쳤고 더 놀지 못해 아쉬운 표정이다.



“얘들아, 책 읽기만큼 노는 게 그렇게 좋니?” 

“책 읽을 때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집중하니까 피곤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나가서 바람 쐬고 달리니까 머리가 시원해져요.” 

“책을 실컷 보고 실컷 밖에서 놀 수 있다니, 처음이었지만 재미있어요. 맨날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책 읽었던 시간이 더 짧게 느껴졌어요. 더 놀고 싶어요. 다음에는 책 20분, 놀이 30분으로 해요.” 

“집에서도 노는 시간만큼 책 읽기를 하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놀았던 경험에 훨씬 힘을 주어 말한다. 다행이다. 오늘처럼 걱정 없이 뛰놀았던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하길 소망한다. 아이들 그리고 책과 보냈던 나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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