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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교육의 자유와 방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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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8 12:54 조회 7,30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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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첫날 학생들에게, 제발 버스나 지하철에서 교수를 비롯한 사람들에 대해 그가 누구든 욕설로 비난하지 말 것, 공공장소에서 떠들지 말 것, 특히 손전화를 키지 말 것, 공공장소에서 서서 또는 걸으며 먹거나 담배 피지 말 것, 슈퍼의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집어 먹지 말 것, 꽁초를 버리거나 껌과 침을 뱉지 말 것, 교실에서 모자를 쓰지 말 것… 따위의 공중도덕을 가르친다. 그리고 MT 따위에 따라가 선배라는 자들의 무모한 명령에 복종하지 말 것, 특히 선배라는 악당의 소위 ‘단체기합’이나 강요된 음주에 대한 맹종으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바보짓을 하지 말 것, 축제라는 미명의 술 퍼먹이기의 개판에 개처럼 따라다니지 말 것 따위의 주의사항을 가르친다. 특히 성적에 너무 민감하지 말 것, 리포트를 인터넷에서 베끼지 말 것,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무조건 출석이나 성적에 이의 신청을 하지 말 것 따위를 가르친다.

학생들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온갖 것들과의 싸움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몇 가지 보기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수업에서의 내용을 둘러싼 전쟁이다. 내가 가르치는 ‘법과 예술’이라는 과목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소위 우파라는 신문들이나 TV의 입장이 스테레오로 반복되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객관식 문제의 4지선다형 답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훈련만을 쌓은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하는 버릇부터 가르친다. 법도 모르고 예술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시집이나 소설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고, 음악 한 곡 그림 한 장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세계 예술에 나타난 법의 모습을 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할 지경이니 역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3월 개학은 나에게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뜻하고 한 학기 수업은 그 과정이며, 한 학기 마지막은 앞에서 말한 모든 것이 실패하는 것을 증명하니 패배를 뜻한다. 여기서 싸움이란 잘못된 교육 정책을 실시하는 정부나 학교 당국과의 그것이 아니라 학생들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내가 반反교육적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학생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정부, 학교, 교사, 가정, 학부모, 선배와의 전쟁, 유교적이고 군사적이며 획일적인 권위주의적 집단주의와의 전쟁, 그리고 그것과 기묘하게 공존하는 천박한 경쟁주의, 권력주의, 계급주의, 자본주의, 우열주의, 출세주의, 학력주의, 기회주의, 이기주의 등과의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자유가 방종을 낳는다? 방종이 자유를 타락시킨다!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나는 그것이 요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몸에 익히지 못하고 강력한 권위에 의한 기계적 지시의 학습에만 익숙하며 여타의 일상생활에서는 내 외아들, 외딸 하며 귀엽다고 방종을 일삼도록 허용하는 최근 한국의 교육법 탓이라고 본다. 즉 학습은 물론 여타의 생활도 주체적인 개인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학입시를 목표로 한 학습만이 강조되면서 그것을 위한 획일적 암기라는 것만을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대신 여타의 행동은 철저한 이기적인 방종으로 무조건 허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까지 자유를 익힐 틈이 없다. 게다가 이는 성인이 되어 군대나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런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로 이루어지는 사회는 자유로울 수 없다. 방종과 권위가 공존하는 가운데 자유는 죽고 자유에서 나오는 개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기계적인 무개성의 획일적 제품의 인간만이 예찬된다. 그렇게 우리의 아이들은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이러한 개인의 비자유는 민족의 비자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되풀이하듯 말이다. 인류 역사에서 오래 지속된 농경사회에서는 자유나 개성이 생기기 어려웠다. 19세기에 서양의 침략을 받은 비서양 사회가 받아들인 서양 문화의 하나가 자유나 개성이었어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기껏 정치적으로 이용된 구호로 그쳤다. 그런 가운데 제국주의 하에서 재산을 갖는 특수 계층에게만 허용된 자유는 방종일 수밖에 없었고 나머지 빈민 계층은 방종조차 누리지 못했다. 수천 년 봉건제 하에서 기계적인 획일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자유를 몸에 익힐 수 없었다. 민주화 과정에서도 자유는 무시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유를 강조한다. 나는 자유의 타락을 몸으로 느끼기에 이를 강조한다. 그래서 최근의 학생 인권에 대한 논의를 지지하면서도 학생 인권의 보장만이 아니라 수업을 포함한 교육 전반이 자유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사회가, 나라가, 세계가 자유로워진다. 자유롭게 자라야 자유로운 성인이 될 수 있다. 자유가 방종을 낳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인 성적우월주의가 빚은 방종이 모두의 참된 자유를 타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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