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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도서관 학교도서관 분투기]난 믿는다, 늘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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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1-05 14:12 조회 7,1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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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곱등이, 돈벌레, 쥐며느리, 지네…. 2008년 3월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처음 발령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 문을 열었더니 나를 아주 반갑게 반겨준 녀석들이다. 두 달 가까이 그 녀석들과 영역 싸움을 한 끝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사서교사가 처음 배치된 학교였기 때문에 사서교사에 대한 선생님들의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고 나에게는 그것에 대한 열정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이러한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 속에서 맡은바 임무를 완벽히 소화해야겠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았기에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범위내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그쳤다. 이렇게 배우며 일 년이 지났고 드디어 푸른바다에 깊이 잠겨 있는 보물함의 자물쇠를 열 준비가 완료되었다.

‘올해는 딱 두 가지만 하자’는 결심을 했다. 하나는 책을 통해 인성교육을 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듣기 자료를 통해 독서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는 것이었다. 너무 어려운 과제와 목표를 설정한 건 아닌가 싶었지만 반드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보물을 찾겠다고 생각하며 깊은 바다의 보물을 찾으러 거친 물살로 뛰어들었다. 인생이 그러하듯 계획하고 의도된 방향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항해 도중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행사 진행을 위한 빈곤한 재정과 참신한 프로그램의 부재였다. 다른 사람이 해 놓은 것을 가져와 그대로 진행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완득이, 어머니독서회, 교장선생님, 그리고…

이렇게 진척 없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새로 구입한 도서가 도착하였고 『완득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다읽은 후 올해 세운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완득이』는 학교부적응, 학교폭력, 다문화가정, 장애우, 이성교제라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한 독서교육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독서교육활동으로 만들고 싶었다. 독서치료와 역할치료의 만남은 이런 열망에 의해 이루어졌다. 평소에 독서치료에 관심이 있어 제주도내에 있는 독서치료, 역할치료, 드라마치료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의 연락처를 알아둔 것이 도움이 되었다. 30여 개의 단체에 전화를 하고 독서치료와 역할치료가 가능한 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YMCA에서 적임자를 추천받았다. 커피숍에서 강사를 기다리는 동안 내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강사와 논의한 내용은 대략 이렇다. 『완득이』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교화시킬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앞서 언급한 『완득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주제인 다섯 가지를 역할극으로 꾸며 직접 체험해보고 토론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는데 문제는 참여 대상과 모둠원 구성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재정이었다. 학생들만 참여하게 되면 우리가 계획하고 의도한 의미를 100프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전문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필자가 근처 공공도서관의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독서회 회원 분들을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거였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계신 분들 그리고 가정환경이 열악한 우리 학생들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실 수 있는 분들이 바로 어머니독서회 회원 분들이었다.

이렇게 참여대상과 모둠원 구성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제 마지막 문제인 프로그램 운영비가 남았다. 교장실을 찾아가 교장 선생님께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예산 지원을 부탁드렸다. 고민을 하시던 교장 선생님께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박선생, 지금 이야기 한 프로그램은 일시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공공도서관과 연계되어 진행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지역사회 단체와 동창회에 공문을 보내서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리고 농산어촌 고등학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확보해주도록 하겠네.”라며 나를 향해 웃음을 지으셨다.

교장실을 나와 문을 등지고 잠깐 동안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교장 선생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장 선생님은 이미 알고 바라고 계셨다. 당신과 내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이 자리에 없다는 것과 이 프로그램이 당신과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이곳에는 영원히 존재하기를 말이다.

뜨거운 박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총성
행정실로 달려가 동창회원의 연락처를 확보하여 공문을 보내고 근처 지역사회 단체장인 농협조합장, 수협조합장, 신협조합장, 유리의 성 대표를 찾아가 진행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날 무렵 도서관에 전화벨이 울렸다. 동창회장이라고 밝히고는 의미 있는 독서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어 동창들이 조금씩 모았다며 800만원을 보내주셨고 그후로 농협에서 100만원, 유리의 성에서 100만원을 보내주어 총 1,000만원의 예산이 마련되었다. 이제 최선을 다해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학교 및 도서관 관계자, 어머니독서회 회원, 교사, 학생 들이 모여 ‘나를 발견하자’라는 주제로 인성교육 독서캠프를 운영하였다. 독서캠프는 총 다섯 모둠으로, 각 모둠은 교사 두 명, 학생 두 명, 어머니독서회 회원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활동이 시작됐을 때 모둠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어색함을 친숙한 분위기로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 시간정도 사전 편성하였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벌칙 카드를 한 장씩 나눠주고 무작위로 상대를 선정하여 가위바위보를 한 후 패배한 사람이 이긴 사람의 벌칙 카드를 수행하는 방식의 게임을 진행하였다. 단 한사람도 빠짐없이 놀이에 참여하였고 정확히 한 시간이 흐른 후 모둠원은 모두가 가족이 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벌칙은 학생에게 무릎 꿇고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본 프로그램인 역할놀이에 들어갔다. 방법은 이러했다. 다양한 장면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을 모둠별로 나눠주고 ‘『완득이』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사진을 고르게 하고 왜 그 사진을 선택하였는지 발표하는 방식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바람개비였고, 바람개비는 바람의 도움으로 돌아가듯 완득이도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설명이다. 이렇게 『완득이』의 의미를 깊이 마음속에 새긴 후 모둠별로 주제를 정하여 상황극을 펼쳤다. 학교부적응을 주제로 한모둠은 교사와 어머니독서회 회원이 학생역할을, 학생은 교사 역할을 하며 서로간의 의견과 견해 차이를 좁힐 수 있었고,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모둠은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교사들에게 학교생활의 어두운 이면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하는 현재진행형인 역할극을 마친 후 미래지향적인 역할극으로 재구성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창조적이고 다양한 방법들을 적용하여 역할극으로 재현하고 그것을 통해 반성하고 고민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세 시간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우리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난 그때 느꼈다. 이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도 같다는 것을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지금까지 매해 똑같은 주제로 대상을 달리하며 캠프를 운영한다. 순간 반짝이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언제 읽어도 독자를 흡입하는 스테디셀러이고 싶은 까닭이다. 양적인 실적에 치중하기보다는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 시행착오를 통해 견고해지면서 표준화시킬 수 있는 멋진 모델로 정착되도록 최선과 노력을 기울이는 게 우리의 과제이자 숙제이다. 현재 ‘귀로 듣는 독서’를 3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 사실 시행착오를 겪는 게 두렵고 현재에게 미안하지만 난 늘 기대하고 믿는다. 내 최선이 그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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