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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시가 내렸네, 아이들 가슴에 - 한명숙 남춘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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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4-01 02:11 조회 9,41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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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학교 아이들과 함께한 도서관 시 체험 수업 사례다. 보통 10차시 정도로 탐구수업(개인별 시집 읽기, 나만의 시와 시구 찾기), 토의수업(두레시, 학급시 토의하여 정리하기), 감상수업(시낭송회, 시비평회, 시화전시회, 시낭송축제의 밤), 체험활동수업(시인초청강연회, 시낭송기행) 순으로 진행했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시집을 대상으로 교과서 밖의 시 세계를 찾아 떠나는 시 여행! 자유롭게 탐구하고, 낭송하고, 비평하고, 감상하며, 아이들은 시 수업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참여했다. 반복되는 시 수업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가 매년 시 감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갔다. 중학교 3년 동안아이들은 300~400여 편의 시를 읽고 친구들의 시 감상까지 온전하게 간접 경험하며 미래 시 독자로서의 저변을 탄탄히 다지는 셈이다.

3월 학년 초부터 아이들이 시 읽기를 생활화하며 자연스럽게 시와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수업의 시작과 끝 인사로 시를 함께 낭송하고, 더러는 조・종례 시간에도 시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어느 날은 시노래를 음반으로 들려주고, 영상시를 감상하며 흥미를 북돋우고. 시 읽기의 생활화는 혼자 읽기, 더불어 함께 낭송하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암송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시 암송하기는 아이들이 ‘더불어 함께 리듬을 타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그것은 소리를 통해 몸의 안과 밖이 소통하며 ‘개인의 앎이 모두가 함께 하는’ 광장으로 나아가는 체험활동이다. 또한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심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소리 맞춰 시를 암송하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겨워 소리소리 외치며 마음을 열어간다.

얘 들 아, 시 랑 놀 ~자 ~
“차렷! ‘풀꽃’시작~” 시작 종이 울려 퍼지자 도서관에 미리 올라와 두레별로 자리를 찾아 앉은 아이들은 국어부장의 신호에 따라 한목소리로 시를 읊는다. 스스로한 송이 풀꽃이 되어 아니, 양지바른 운동장가 모데기로 피어나 한꺼번에 작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풀꽃들이 되어, 몸을 흔들어대며 시 인사를 나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은 시집에 푹 빠져서 간간이 웃음을 터트리며, 눈시울이 살포시 붉어지기도 하며 저마다의 감상에 젖어 시 읽기에 빠져들곤 했다.

선별된 시집들을 다양하게 갖춰야
수업이 시작되기 전 책상 위에는 다양한 시집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국어시간에 시읽기 1,2,3』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중1 시, 중2 시』 『재미로 읽는 시』 『내 무거운 책가방』 『난 빨강』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시 100』 『청소년, 시와 대화하다』『국어선생님의 시 배달』 등. 자칫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시집을 준비시키는 경우서점가에 무더기로 전시되어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사랑, 이별, 눈물 따위의 얄팍한 감상성만으로 청소년들의 건강한 정서와 세계관을 오도하는 시집류를 들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선별된 시집들을 갖출 필요가 있다.

교과서 시 외에는 제대로 시집을 접해보지 않은 중학생들에게는 한 시인의 단행본 시집보다 여러 시인들의 다양한 작품을 엮은 시집 읽기가 더욱 흥미와 관심을 끌었다. 각자 책상 위에 준비된 시집을 한 권씩 선택하여 한 시간 이상 집중하여 읽도록 하면 아이들은 도서관의 가장 편안한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햇살이 드는 창가에, 푹신한 소파에, 혹은 구석진 서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저마다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나를 사로잡은 시가 네 마음에도 새겨지길
자유롭게 시집 읽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탐구활동에 들어간다. 한 시간 동안 읽은 시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나만의 시 10편 뽑기’이다. 준비한 활동지를 나눠주고 시 제목과 시인을 쓰고, 옆에는 간략하게 뽑은 이유, 인상적인 이유를 함께 정리하도록 했다. 시집에 따라 주제별로 분류된 경우는 각 주제에서 한 편씩 뽑도록 권장한다. 더불어 ‘내 마음을 울린 시구’를 찾아 별도로 정리한다.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구가 또 다른 아이의 마음속에 새겨지길 바라면서….

학급시 정하고 함께 낭송하는 즐거움‘나만의 시 10편 뽑기’ 개인별 탐구활동이 끝나면 2차 활동지와 함께 각자 선정한 열 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 세 편을 선정하도록 하고, 세 편 중에서 다시 최종 ‘나만의 낭송시’ 한 편을 정하도록 한다. 이어서 5~6명이 한 두레를 이루는 두레활동으로 각자가 최종적으로 뽑은 시를 서로 소개하고 토의하여 두레시 세 편을 뽑도록 한다. 그리고 두레원이 함께 낭송할 두레시 한 편을 마지막으로 뽑으면 된다.

두레별 토의활동이 정리되면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 두레별로 뽑은 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두레원 모두가 함께 일어나 시를 낭송하도록 하고 나머지 두레원들은 시를 감상하며 마음속으로 학급시를 정해보도록 한다. 때때로 아이들은 무작정 자기 두레의 시를 뽑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기 두레시를 제외한 다른 두레시에 의견을 표시하도록 하여 세 편을 뽑고, 다시 최종 한 편을 토의하여 학급시가 정해진다. 학급시는 학급원들이 시시때때로 함께 낭송하며 자연스럽게 학급의 애송시가 되고 나아가 암송시가 된다.



음미해봐… 왜 이 시가 네 가슴에 와 닿았는지
시집 읽기를 바탕으로 하여 탐구활동으로 펼친 개인별-두레별-학급시까지 정하고 나면, 2단계 활동으로 가장 인상적인 ‘나만의 애송시’를 골라 다음 시간에 이어질 시낭송회 및 비평회를 준비하며 활동지에 정리하도록 한다.
‘나만의 애송시’한 편을 선택하고, 천천히 생각하고 음미하면서 시 전문을 또박또박 옮겨 쓰자. 왜 이 시가 내 가슴에 와 닿았는가? 시의 화자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현재 시의 화자의 마음 상태는 어떠할 것으로 짐작되는가? 나의 지난 시절에 시적 화자와 비슷한 경험은 없었는가? 이 시에서 잘 되었거나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표현이나 생각은? 이 시에 아쉬움이 있다면?

“얘들아, 다음 시간은 시낭송과 시비평 시간이야. 서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니 성심껏 준비하렴.”아이들이 학급시로 정한 시를 한목소리로 읊어대며 도서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 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꽃들에겐/김명수」

시 에 젖 은 아 이 들 은 눈 부 시 다
아침부터 도서관이 부산스러웠다. 지난 시간에 미리 예고한 시낭송과 시비평회를 준비하며 아이들은 각자 준비한 배경음악 파일을 도서관 컴퓨터에 저장하느라 분주했다. 자신이 선택한 시 한 편을 발표하기 위해 느낌과 분위기를 시화로 표현해보고, 시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을 찾아 준비하고 실제로 친구들 앞에서 낭송과 비평을 하는 가슴 떨림. 더불어 친구들의 발표를 들으며 감상을 메모하고 사고하며, 진지하게 평가하는 활동을 통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 총체적인 언어활동을 수행하는 수업.

그러기에 아이들에겐 충분한 준비 시간을 확보해주고, 미처 준비가 부족한 아이들은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며 미리 낭송 연습과 나아가 암송을 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어쩌면 한순간의 발표를 위해 긴 시간을 준비하며 조바심치고 마음 설레는 과정이 아이들에겐 더욱 소중한 체험이 되어 시의 가슴을 품게 했다.



시화 전시회로 분위기 만들기
아이들만 분주한 것은 아니었다. 시낭송과 시비평 발표수업을 위해 도서관의 분위기도 최선을 다해 꾸몄다. 시탐구수업을 통해 미리미리 제출한 인상적인 시구들은 산뜻한 색상지에 인쇄하여 도서관에 오르는 계단 사이사이에 붙여 걸음이, 마음이 머물도록 했다. 도서반 아이들의 봉사 활동으로 화장실 눈길 가는 곳에도 붙여주었다. 아이들 각자가 A4 용지에 미리 제출한 나만의 애송시화들은 모두 코팅하여 창가에 걸어주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시란 □이다’라는 네모퍼즐을 공모하여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동원했다. 그리고 우수작은 도서관의 눈에 띄는 곳곳에 게시하여 다시금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점심시간에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풍선시 만들기를 하여 크게 불게 한 후, 자발적으로 인상적인 시구를 써넣어 여기저기 매달아 재미와 분위기를 한층 띄웠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미술선생님의 협조였다. 학기 초에 사전 협의를 하여 2학년 미술시간에 학급공동작으로 시 글자 조각을 하였다. 아이들이 미리 토의하여 정한 학급시를 각자 1~2개의 글자를 맡아 종이공예로 부조하여 전지 판넬에 붙이면 멋진 한 편의 시 조각 협동작품이 됐다. 도서관 복도에 이젤에 세워 전시한 시화를 감상하며 아이들은 스스로 대견해 하고 뿌듯해 했다.



시낭송・비평・감상 나누기
시낭송과 비평회가 시작되면 어느 누구도 중간에 끼어들지 않도록 하고, 오롯이 시를 읊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 되도록 했다. 상호감상 활동지에 발표자의 태도, 낭송(호흡과 어조), 비평(내용), 인상적인 점 등을 간단히 기록하며 듣도록 하면 아이들은 마치 스스로 비평가와 평론가가 되기라도 한 듯 사뭇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참여했다. 굳이 순서를 정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발표 순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무대 옆에 대기석을 마련하여 다음 발표자가 미리 대기석에 나와 앉아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면 자신 있는 아이들부터 발표를 하게 되고, 아이들은 스스로 배워갔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잊지 못할 수업은 홍천 시골학교 아이들과 함께 교정 뒷동산에서 야외수업으로 펼친 시감상 수업이었다. 노란 산국이며 구절초, 쑥부쟁이가 피어나고, 바람은 산들한데, 단풍이 막 물들어가는 떡갈나무 아래 둘러앉은 아이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무대를 이루었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애송시를 모두 암송하여 자신감에 넘치고 나름대로 감상과 비평을 막힘없이 풀어내며 누구랄 것도 없이 스스로 일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 주인공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특수학급 친구가 어눌한 목소리로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낭송을마쳤을 때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가 울렸었다. 그날 상호감상 활동지에 수업 소
감을 정리하며 아이들의 눈빛에 어린 즐거움과 상기된 표정이 불현듯 생각날 때마다 코끝이 싸~해지곤 했다. 그 가을날, 부서질 듯 투명한 햇살 아래 한 폭의 맑은 수채화로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아이들…….

시낭송축제의 밤, 시 읽기 멋대로, 맛대로, 맘대로!
학급별로 시낭송과 비평을 겸한 ‘작은 시낭송회’가 끝나면 도서관 행사로 시낭송축제의 밤을 열었다. 우선 학급에서 상호감상 평가를 통해 추천된 아이들과, 교내시암송대회에서 선발된 아이들이 우선 순서를 맡고, 희망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나머지 순서를 맡았다. 그저 참가하겠다는 아이들에게도 자유롭게 방청객 순서를 넣었다. 혼자서 혹은 둘이서, 더러는 선생님과 함께 짝을 이룬 적극적인 아이들도 있었고, 희망하는 학부모들도 참여했다. 교정의 은행잎이 노랗게 흩어지는 시월의 마지막 밤, 아이들은 이미 교내 시암송대회를 통해 개인별 애송시, 두레시, 학급시는 물론 전교생 지정시로 안내한 「사랑/김남주」과 국어시간마다 함께 읽은 시를 통해 15~20여 편의 시는 절로 암송했다.

좀 더 적극적인 아이들은 30~40여 편의 시도 거뜬하게 읊조렸다. 장날에 미리 잘익은 홍옥 사과를 한 바구니 사두었다가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님과 더불어 사과를 쪼개 나눠 먹으며 김남주 시인의 「사랑」을 함께 낭송했다.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가질 줄 안다.’ 시낭송축제의 밤, 아름다운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아이들의 애송시가 이어지고, 중간 중간 시인의 육성 녹음시와 선생님과 부모님의 애송시도 이어졌다. 친구를 위한 헌시가 발표되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꼬리를 물며 헌시 낭송과 암송이 감동의 물결 속에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한밤중, 별똥별이 지는 운동장에 나가서는 두 남학생이 자발적으로 주고받으며 「별헤는 밤」(윤동주)을 막힘없이 암송했다.

자정이 되어서야 자리를 정돈하고 그 밤, 아이들은 영화 속 시인의 삶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 포스티노>(마이클 레드포드 감독),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적 명성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지중해의 작은 섬 어부의 아들인 우편배달부 청년 마리오와의 우정과 잔잔한 사랑, 시에 대한 열정. 그림같은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답고 무한한 시적 은유의 세계로, 마치 한 편의 시를 써 내린 듯한 영화의 흐름 속으로 아이들의 마음은 차츰 젖어들었다. 한 아이는 그 밤의 느낌을 “시가 내게로 왔다”고 쓰기도 했으며, 한 편의 시로 막힘없이 마음을 표현한 아이도 있었다.

축 제
잊을 수 없네,/ 재잘대던 목소리/ 저릿하게 울리던 목소리/ 온 밤을 함께 했던 몸짓
별빛이 흐르는 시간/ 시가 흐르는 시간/ 마음이 마음으로 흐르는 시간/ 멈추고 싶었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듯/ 누군가를 위해 묻어둔 마음/ 낭랑한 목소리로 내보이던 시간/ 시에 취해, 우정에 취해/ 울먹이던 눈망울/ 영화보다 진지했던 표정/ 이슬떨이, 먼저 일어나/ 새벽을 훔쳐버린 우리들/ 텅 빈 운동장 가슴가득 밀려왔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 한 자락/ 살며시 품었다네/ 마음은 시를 노래하고
눈은 깜박이며 수없이 셔터를 누르고/ 가슴 깊이, 깊숙이/ 누구도 갖지 못할 나만의,
우리들만의 추억을 품었다네,/ 축제의 그 밤.
-「시낭송축제의 밤을 마치고」, 동화중 2학년 김순근

시인과의 만남, 그 아름다운 소통과 향기
“얘들아, 시인이 오신대~. 정말 살아 계신 국어책의 작가, 시인이 오신대~.”
아이들이 먼저 흥분하여 들썩였다. 그해 여름, 정호승 시인은 초록의 싱그러운 햇살을 안고 정말로 강원도 산골 학교를 찾아오셨다. 버스를 타고 여우고개를 넘어 구불구불 소구니 강변을 따라,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 한 자락에 선물처럼 시인이 오셨다.

아이들이 선택한 시인은 정호승 시인. 아이들은 손수 초청글을 보내고 성심을 다하여 시인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준비했다. 평소에 날마다, 다달이 시를 읊고 암송하며 시와 친해진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도서관에 시인의 시집과 산문, 동화 등 50여 권을 미리 구비하여 읽고, 전교생이 시인의 인상적인 시를 각자 시화로 꾸며 시인이 들어오는 현관 입구에서부터 복도의 창가까지, 도서관의 온 사방에 전시하고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에도 들며날며 감상했다.

시인의 시를 낭송하고 암송하며 시노래를 함께 부르고 악기로 연주했다. 시집에 대한 감상을 다행시로 표현해 보기도 했다. 다양한 내용의 질문지도 미리미리 받아 따로 전시했다. 교사들도 아이들의 들썩임에 동참하여 틈틈이 짬을 내어 기타 반주에 맞춰 시인의 「수선화에게」 시노래를 연습하며 사전 공연을 준비했다. 정작, 시인과의 만남을 설렘으로 준비하며 기다리는 한 달여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시인을 만나고, 아이들은 어느덧 스스로 시인이 되었네
아이들은 두어 시간이 넘도록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시인의 강연과 대화에 몰입했다. 아예 도서관 책상과 의자를 모두 치우고 바닥에 편히 앉아 전교생과 교직원, 그리고 문화적 경험이 거의 없는 시골의 학부모님들까지 초대하여 한바탕 잔치처럼 즐겁고 신나게 시인과의 만남을 가졌다. 시낭송을 주고받고 시인의 자작시 낭송을 화답으로 듣고, 교사들의 시노래 중창과 아이들이 특별히 준비한 플루트와 리코더 연주를 감상하며 우리는 행복했다. 아담한 학교도서관에 시와 음악이 흐르는 작은 시낭송콘서트 무대가 열린 듯했다.

시인과의 만남 이후, 시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는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매달 시암송 활동에도 더욱 열의를 보였고, 아이들은 어언간 모두가 스스로 시인이 되어갔다. 짧고도 아쉬웠던 시인과의 만남이었지만 아이들, 교사, 학부모, 교육공동체 모두가 더불어 시를 사랑하는 평생 시 독자가 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그해 가을, 독서기행에서 노란 은행잎이 꽃잎처럼 흩날리던 부석사 무량수전 오르는 길에 놀랍게도 아이들은 정호승 시인의 「그리운 부석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거침없이 읊조렸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있겠느냐…” 아이들이 몇 잎씩 주워 온 은행잎을 잘 눌러 도서반 아이들과 서가를 누비며 책갈피에 꽂았다. 아이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은행잎은 방부제 역할을 함은 물론 하마 언제쯤,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장을 넘기다가 은행잎이 발견되면 아이들은 잠시 생각에 젖어 그 가을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리라…. 그랬다. 해가 바뀐 이듬해 봄에 우연히 은행잎을 발견한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책 속 보물찾기가 따로 없었다. 무슨 대단한 보물을 찾기라도 한 듯이 환호성을 지르며 교무실까지 냅다 달려오는 아이들까지….



아이들 삶에 잊지 못할 ‘시간의 점’으로 자리매김한 시인 두 차례에 걸쳐 손택수 시인과의 만남을 가졌다. 청소년기 남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형님 같은 시인으로 손택수 시인이 떠올랐다. 시인의 따듯하고 쉬우면서도 현실에 발 딛고 선 예리한 시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교정에 은행잎이 날리던 시월의 어느 멋진 날, 난생처음 시인을 만나 본다며 도서관에 모여든 아이들에게 시인의 존재를 오롯이 보여 준 손택수 시인. 이듬해 새로 옮긴 학교 운동장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아침, 손택수 시인은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반갑게 찾아왔다. 믿음직한 형님처럼. 그렇게 손택수 시인은 아이들 삶에 잊지 못할 ‘시간의 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겨울, 자신들의 심금을 울린 시인이 손꼽은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몇몇 아이들은 고전장편영화 <닥터 지바고>를 감상했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은 운동장에 쌓인 눈만큼이나 깊어진 마음으로 러시아 대평원의 눈 덮인 영상 속으로 시인의 마음이 되어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 초청강연은 만남 그 자체의 순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만남을 위해 설렘으로 기다리는 사전 준비 활동이 더욱 소중하다. 시인의 시집을 미리 읽고, 읊조리며, 느낌을 표현해 보고, 궁금한 것들을 생각해 보며 각자의 마음속에 시인을 미리 모시다 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정말 오붓하고 알찬 만남의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의 삶에 소중한 시인과의 만남은 훗날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지치고 힘들어 나락에 빠져들 때 불현듯 솟구치는 힘이 되어 아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리라. 시인과 더불어 품었던 시의 가슴이 아이들의 흔들리는 영혼을 붙들어 주리라 믿는다.

초록 숲으로 시낭송기행 떠나자
학기말고사가 끝나고 아이들도 교사도 학교생활이 지루하고 느슨해질 즈음, 시낭송기행은 최고의 선물이다. 아니, 어쩌면 학기 초에 예고한 기다림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아이들과 설렘으로 만났던 3월 초, 국어수업을 시작하면서 매주 시 한 편씩을 더불어 낭송하고 암송하기로 한 약속을 실천하며 어언 한 학기의 끝에 섰다. 수업 시작과 끝 인사로, 더러는 학급의 조・종례 시간에 노래처럼 읊조렸던 시 편수만큼이나 그새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부쩍 자랐다. 2학기에도 이어지는 시 암송하기 중간 정리 겸, 한 학기 시 수업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수업에 열심히 동참한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시낭송기행 참가권을 상품으로 주어 격려하면 2학기 시 외우기는 거의 쟁탈전에 가깝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삶과 문학을 찾아
만해 한용운 시인의 삶과 문학을 찾아 떠나는 내설악의 백담사는 시낭송기행의 해마다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장소이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빛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해 한용운 시인의 문학과 삶의 발자취’를 찾아 백담사 경내의 만해기념관과 ‘나룻배와 행인’ 시비, 만해 동상, 그리고 백담사를 찾았던 많은 시인들(김시습, 고은, 오세영, 이성선 등)의 시비공원까지 탐방할 수 있고, 오가는 길목의 쉼터인 인제 합강공원에 자리 잡은 박인환시비 탐방까지 곁들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진수인 단풍이 절정인 가을날, 아이들을 이끌고 다시 백담사를 찾았다. 설악산 단풍이 가을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그 햇살 아래 한 손엔 시낭송기행 자료집을, 한 손엔 빨간 사과를 움켜쥐고 단풍 속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교감선생님을 총 인솔자로 1학년부장과 국어교사, 학부모 몇 분, 그리고 희망학생 40여 명이 함께 한 시낭송기행은 오래오래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학교도서관에는 시낭송기행에 관련된 시집과 자료들을 인쇄해 두고 아이들이 사전에 충분히 활용하도록 하였으며, 아이들이 만해 한용운 시 감상, 시인의 삶 탐구 등 밀도 있는 독서활동과 개인별 애송시 준비 등, 자기주도적 탐구 활동과 종합적인사고력, 상상력을 키우며 살아 있는 문학 수업의 감동을 스스로 느껴 가도록 하였다. 단풍잎이 떠도는 백담계곡을 따라 걸었던 길목에서, 버스 안에서 참가한 아이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애송시를 읊고 친구들의 시낭송을 감상하며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단풍 숲에서 숲속 시낭송회 열다
단풍 숲을 따라 내설악 깊은 백담계곡을 오가며,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걸으며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특히 단풍이 곱게 물든 숲속에 자리 잡고 앉아 갈바람에 지는 낙엽을 온몸으로 느끼며, 참가자 누구나 자유롭게 나서서 펼쳤던 ‘숲속 시낭송회’는 인상 깊은 추억이 되어 아이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지나던 행인들이 아늑한 단풍 숲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음성과 이어지는 박수갈채를 이상히 여겨 어느 종교집단 행사장으로 오인까지 하여 국립공원관리자가 찾아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소나기마을에서 김기택 시인과의 만남
황순원 문학촌의 소나기마을 독서기행을 겸하여 문학촌 운영을 맡고 있는 김기택시인과의 만남. 소설 「소나기」가 간결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오래도록 독자에게 읽혔던 점에 착안하여 소설 읽기와 시 읽기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소나기마을은 양평 두물머리 근처에 자리 잡아 강바람과 산바람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김기택 시인의 친절한 소나기마을 소개와 간결한 문학 강연, 질의응답을 마치고, 문학관 탐방에 이어 야심차게 준비한 소나기마을 추적놀이를 두레 활동으로 펼쳤다. 여섯 명씩 짝을 지은 두레별로 소나기마을을 탐방하며 주어진 미션지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미션 수행의 절정은 ‘소년, 소년을 업다!’. 김기택 시인의 「소」 「껌」 「웃음에 바퀴가 달렸나 봐」 등 시 한 편을 뽑아 쟁반시 방식으로 나누어 두레원이 함께 암송하여 겨루기. 시 한 편을 온전히 먼저 암송한 두레는 의기양양하여 소나기마을 탐방로에서 가장 흥미로운 개울의 징검다리를 상대편 소년들에게 업혀 건널 수 있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시낭송기행
가장 잊을 수 없는 시낭송기행은 홍천 작은 학교에서 전교생이 전상국 작가와 함께 소설 속 현장을 찾아 체험하는 문학기행, ‘동행-작가와 함께 걷는 길’이었다. 아침까지 청명했던 날씨가 돌연 변하여 버스가 학교를 출발할 즈음, 는개 같은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소 실망하는 아이들 기분 전환을 꾀하며 즉석에서 하나의 약속이 정해졌다. 오늘 하루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가을비스럽다’를 외치자고. 아이들은 갑자기 부슬대는 가을비가 친근감이 드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그랬다. 그날 온종일 아이들도, 교사들도, 작가님도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가을비스럽다’를 중얼거렸다. 하얀 우비를 걸친 아이들이 작가를 따라 한 줄로 서서 들길을 걷는 모습은 마치 목동이 양떼를 몰고 가는 풍경이었다. 졸지에 목동이 된 작가님도 흥이 났는지 더욱 따듯하고 친절한 작품 해설로 아이들을 이끌어 주셨다.

산마루 솔밭에 이르러 한숨 돌리며 시낭송회가 시작되었다. 부슬비는 흩날리고 산 이내가 조금씩 에워싸며 자연스런 무대를 이루고 우비를 입은 아이들은 거리낄 것도 없이 그대로 솔밭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혼자서, 둘이서, 혹은 몇 명이 짝을 이루어 시구를 주고받으며 애송시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깜짝 놀라 시낭송회에 젖어든 분은 다름 아닌 전상국 작가였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시를 즐기며 노는 모습을 처음 보신 듯했다. 전교생이, 다소 몸이 불편한 특수학급 아이들까지도 빠짐없이 나서서 시낭송을 하며 진정한 삶의 ‘동행’을 온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시낭송회를 마치고 자작고개를 넘어오며 아이들은 스스로도 대견한지 ‘가을비스럽다’를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그날의 풍경을 떠올리면 코끝이 싸해진다. 정녕, 아이들도 그러리라. 가을비 속 솔밭 시낭송회는 아이들의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아 삶이 지치고 힘든 순간에 맞닥뜨릴 때마다 불현듯 떠올라 ‘가을비스럽다’를 외치며 극복하는 힘이 되리라….

시 읽기는 삶의 힘이다
중학교 남학생들이 과연 시를 읽을까 의심했었다. 천방지축인, 그렇지만 아직은 앳된 이 아이들에게도 시 마당을 열어주자 시 읽기는 즐거움이었다. 처음엔 국어시간마다 시를 낭송하며 인사를 대신하는 것을 무척이나 어색해하며 입도 벙긋하지 않던 아이들이었다. 한두 달이 지나자 누구에게 질세라 즐겁게 시를 읊어대며 닫혔던 마음들을 풀어놓는 듯했다. 때로는 시 노래를 함께 부르며, 몸을 흔들어대며 소리소리 운율에 맞춰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중학교 시절 ‘나만의 시’를 찾아 이렇듯 외우고 읊조린 시구들은 먼 훗날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현듯 마음속에 떠올라 삶의 힘이 되어 다시 솟구칠 것이다. 시 읽기는 진정한 삶의 힘이다. 먼 훗날,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며 힘들고 지칠 때, 청소년기에 함께 읊고 암송했던 한 구절의 시가 위안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아이들이 품은 시의 가슴이 질곡의 세상을 열어가는 희망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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