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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 일하는 새벽에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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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12-02 10:19 조회 2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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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새벽에 우리가 있다

민주인권그림책과 함께한 노동인권 수업


주해선, 박다솜, 정승연, 김소연 예민한 도서관



다음 책표지 속 바나나가 그려진 상자를 잡고 있는 두 손. 저 사람은 누구일까? 저 안에 진짜 바나나가 들어 있을까? 6학년 어린이들과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의 표지를 살펴보며 나눈 이야기다. 우리는 그림책 제목의 뒷부분에 들어갈 말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나나에게 예쁜 날개를 달아 줄 거라는 창의력 넘치는답변도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대부분 “배송이 빨리 오는 것으로 주문한다” “로켓 배송으로 시킨다” “빨리 주문한다”라고 답했다.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또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림책 읽기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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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그림책 활동 ①  바나나 한 송이로 연결된 사람들


그림책을 한 장 넘기니, 어린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민주 씨’가 보인다. 민주 씨는 아침 대신 먹을 바나나를 주문한다. 바나나가 아침 일찍 도착하도록. 어린이들에게 민주 씨처럼 새벽 배송이나 당일 배송 서비스를 이용한 적 있는지 물었다. 매일 아침 현관문 앞에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는 어린이, 미술 준비물을 미리 못 사서 급하게 새벽 배송으로 주문했던 어린이 등 스무 명이 넘는 어린이들 모두 이와 관련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빨리 배송받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벽 배송으로 주문한 바나나 한 송이를 민주 씨네 집 문 앞에 도착시키기 위해 밤을 새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돌고 돌아 마지막 장면에 다시 등장한 민주 씨를 본 어린이들은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라고 얘기한다. 어린이들과 함께 한 명의 소비자인 민주 씨부터 택배 기사, 주유소 직원, 정비사 등을 비롯해 다시 어린이집 교사인 민주 씨까지 등장인물을 차례대로 한 명씩 정리해 보았다. 동그란 띠 모양으로 이어지는 등장인물을 보며 바나나 한 송이로 연결된 노동자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어린이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노래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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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그림책 활동 ②  모두를 일찍 움직이게 한 사람들


학급 전체 학생을 세 팀으로 나눠 ‘바나나 빨리 배송하기’ 놀이를 진행했다. 팀원 모두가 손을 X자로 교차하여 잡고 동그랗게 선다. 노란색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활동인데, 어떤 팀이 가장 빠르게 세 바퀴를 도는지 기록을 재 보기로 했다. 모든 팀이 가장 좋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 “빨리! 빨리!”를 외치며 놀이에 참여했다. 마음이 너무 급하거나 손발이 맞지 않아 바닥에 공이 떨어져서 시간이 지체되는 팀도 있었다. 그 결과, A팀은 10.93초, B팀은 12.38초, C팀은 8.5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게임이 끝난 후 “여러분이라면 A, B, C 기업 중 어디에서 바나나를 주문할 건가요?”라고 물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가장 빠른 C팀이라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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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기 전 물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이들은 처음과 달리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이 새벽에도 일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그림책을 읽기 전 우리는 편리한 소비 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책을 읽고 나서 편리한 생활 뒤편에 많은 사람의 노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도.



 둘째 그림책 활동 ①  타오 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타오 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타오 씨 이야기』를 읽기 전에 표지를 보며 어린이들과 가장 처음 함께 나눈 질문이다. 표지에는 타오 씨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대답은 제각각이다. “외국 사람 같아요.” “스쿠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같아요.” 등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수집하여 말하는 어린이들도 있고,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요.” “친절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같아요.”처럼 상상력을 발휘한 어린이들도 있다.

『타오 씨 이야기』는 타오 씨의 하루를 따라 흘러간다. 무채색이 가득한 공장에서 겨울의 추위가 느껴지는 거리가,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는 그리움과 따뜻함이 담긴 풍경이 펼쳐진다. 글을 읽으면서 타오 씨에게 궁금한 점을 벌집 모양의 허니컴보드에 적어 보았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타오 씨가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타오 씨는 가족 중에 타오 씨 빼고 일할 사람이 없나요?’ ‘남편은 어디 있나요?’와 같이 가족에 대한 질문, 좋아하는 것과 나이를 묻는 질문, 그리고 ‘한국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와 같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묻는 질문도 함께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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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타오 씨가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이들에게 물어봤다. “타오 씨는 왜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을까요?” “돈 때문이에요.”라는 대답이 나왔다. 2024년 7월부터 시행되는 베트남의 지역별 최저임금은 시간당 65센트에서 90센트이다.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시간당 9,860원)을 약 7.80달러라고 보았을 때, 베트남 최저임금의 약 8배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며 우리는 타오 씨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타오 씨의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학생들과 함께 타오 씨가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을 찾아보았다. 이때 물리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정서적 어려움도 함께 생각하기로 했다. 아래는 학생들이 찾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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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 씨 이야기』에서는 이주노동자가 한국 생활을 하며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그리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하루를 따라가 보면 우리는 충분히 그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이런 공감을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연결하기 위해 어린이들과 두 기사를 함께 읽어 보았다. 첫 번째는 화성 화재 참사에 관한 기사였다. 해당 기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안전교육과 대피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며, 만약 교육이 제공되더라도 언어 장벽으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타오 씨가 일터에서 겪는 작고 큰 위험들처럼 실제 이주노동자들도 동료가 작업 중 손가락이나 다리가 잘리는 등의 사고를 목격했고,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다. 기사를 읽고 뉴스 영상을 보는 어린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둘째 그림책 활동 ②  타오 씨는 우리의 이웃일까요?


“이런 문제는 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요?”라는 질문과 함께 다음 기사를 함께 살폈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1950∼1970년대 한국인 이주노동자인 파독 간호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당시 독일은 ‘손님 노동자’로 불리는 비귀화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시행했고,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 등이 독일에 파견되었다. 계약 만료 후에도 독일에 남고 싶어 하는 이들은 자국민 우선 정책에 의해 노동 허가와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해 사실상 반강제 추방되기도 했다. 이에 독일 각지의 간호사들을 비롯한 많은 한인들은 “우리는 독일 병원이 간호사를 필요로 해서 이곳에 왔으며, 당신들을 도와 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돌아가고 싶을 때 다시 돌아가겠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에서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맡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도 ‘우리의 필요’로 한국에 온 것이며, 그들이 받는 차별이 ‘외국인’이라서 받는 것이라면 우리 또한 타국에서 ‘외국인’이 되었을 때 차별을 받을 수 있음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마지막 활동은 내가 타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라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애착 이불”, “인권” 등 아이들의 답변은 굉장히 다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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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무리하며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타오 씨는 우리의 이웃일까요?” “네, 같은 사람이니까요.”라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같은 나라에 사니까 이웃이죠.”라며 당연하다는 듯 답하기도 했다. 뒷자리에 앉은 한 친구가 손을 들었다. “이웃이에요. 우리는 공통점이 많고 같이 놀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이웃을 규정할 때 나의 가족, 친구,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으로 한정 짓곤 한다. 그 선을 벗어나는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이다. 어린이들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가족을 그리워하고 친구를 아끼는 마음, 고향의 음식을 좋아하는 마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마음… 『타오 씨 이야기』를 함께 읽은 날은 화성 아리셀 공장의 화재가 발생한 지 10일이 된 날이었다. 매체에서 수많은 보도를 했지만, 우리는 이를 나와 ‘우리’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기도 한다. 타오 씨가 우리의 이웃이듯, 뉴스와 인터넷 공간, 길에서 만나는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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