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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 영원한 이별을 마주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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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4-04 10:51 조회 1,39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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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별을 마주한다는 건



주해선, 정승연, 김소연, 박다솜 예민한 도서관 




#할머니의 고추장

우리 집 냉장고는 언뜻 보면 요리 고수의 냉장고 같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보내 주신 온갖 식재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던 동생이 냉장고 속 딸기잼 병을 꺼내 들며 물었다. “언니, 이 고추장 이야기 들었어?” “아니. 그거 딸기잼이 아니라 고추장이었어?” 이어지는 동생의 이야기는 있는 줄도 몰랐던 그 고추장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추장 있잖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직접 담그신 거래. 그래서 엄마가 이거 다 떨어지면 다시는 못 먹는다고 많이 아껴 먹는다더라.

저번에 아빠가 콩나물국 싱겁다고 이 고추장 조금 넣어서 먹었다가 엄마한테 한소리 들었대.”


평소 요리할 때 갖가지 양념을 듬뿍듬뿍 넣던 엄마가 아껴 먹는 고추장이라니. 엄마에게 이 고추장은 어떤 의미일까? 엄마가 이제 다시 느낄 수 없다고 말한 건 단지 고추장의 맛뿐만은 아닌 것같았다. 그 이후로 우리 자매는 새빨간 고추장을 볼 때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할머니 집에 가면 웰컴 티처럼 휘휘 저어 건네주신 복숭아 아이스티, 손잡고 함께 가던 동네 목욕탕, 헤어질 때마다 엄마 몰래 손에 쥐여 주셨던 용돈. 이 고추장을 다 먹어 버리면 할머니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걸까. 함께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아직 고추장을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질 어린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주할 ‘이별과 상실의 순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그 아픔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소개할 몇 권의 그림책은 할머니의 고추장처럼 이별에 관한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꺼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머나먼 여행

어릴 적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침대에 누워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에 대한 답을 고민했다. 그때의 나는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혀 조그마한 돌멩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돌멩이가 물에 둥둥 떠다니며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상상을 하다 잠이 들곤 했다. 오늘 밤에도 많은 어린이가 나처럼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어린이들이 삶보다 죽음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아무도 알려 주려고 하지 않는 죽음의 세계가 막연히 무섭게 느껴져서 그럴 것이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끝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내기 위해 죽음의 의미와 인생의 유한함을 생각해 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서영 작가의 『여행 가는 날』은 죽음을 먼 곳으로의 여행으로 비유하여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어느 밤 주인공 할아버지의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데, 할아버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님을 반기고 부지런히 여행 준비를 시작한다. 먼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자신이 떠난 후 슬퍼할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며 쪽지를 남긴다. “걱정 말거라.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야.” 작가는 이 쪽지를 통해 어쩌면 죽음은 새롭게 시작되는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죽음을 단지 어둡고 슬픈 것으로만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자연의 섭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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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어린이들에게 “내가 먼 여행을 떠날 때 가져갈 준비물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스마트폰, 이불, 안경 등 다양한 준비물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신라면’과 ‘도미노 피자’다. 여행지에 먼저 도착한 가족들에게 맛있는 라면을 끓여 주고 싶다는 어린이와 평소 자신이 자주 먹던 피자를 함께 나눠 먹고 싶다는 어린이.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봄처럼 따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갈 때 무엇을 챙겨 가면 좋을까? 그때까지 함께 나누고 싶은 소중한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야겠다.



 #어느 날 찾아온 이별

어린이가 대부분 제일 먼저 겪는 이별은 조부모 또는 반려동물과의 이별일 것이다. 처음이라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다음 그림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해도 돼.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는 거야.” 이적 작가의 『어느 날,』은 어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담은 그림책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현관 앞 신발장엔 아직 할아버지 구두가 세 켤레나 놓여 있는데.”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여전히 할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다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할아버지 옷에 쏙 들어가 희미하게 남은 냄새를 맡으며 그리워하고, 할아버지의 도장을 꾹꾹 눌러 찍으며 슬퍼한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할아버지는 어디로 돌아가신 걸까? 밤하늘 저 너머 원래 계셨던 그곳으로 돌아가셨나?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그림책 앞, 뒤표지에 그려진 서 있는 할아버지와 주인공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을 활짝 펼치면 두 사람이 길게 늘어뜨린 털실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희미해지겠지만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책을 통해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홀로 선 모든 이들이 서로 공감하며 위로를 주고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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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라이스의 그림책 『망가진 정원』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멍멍이를 잃은 여우 에번의 이야기이다. 그는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상실감에 빠진다. 그 상실감을 분노로 표출하며, 멍멍이와 가꿔 온 소중한 정원을 마구 망가뜨렸다. 행복한 곳이었던 둘의 정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한 곳이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상처 가득한 마음을 회복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는 다시 사랑할 용기가 조금씩 자라난다. 에번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잡초 사이에 피어난 호박 덩굴을 보고 슬픔에서 벗어날 용기를 낸다. 그리고 그 덩굴을 정성스레 돌보며 희망을 되찾는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이별의 아픔과 상실감에 빠져 있다면, 언젠가는 피어날 호박 덩굴을 기다려 보자. 마음속 땅은 조금씩 단단해지는 중일 테니.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치른다. 슬픔과 위로의 마음을 나누는 장례식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지켜야 하는 여러 가지 예절이 있다.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이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잘 가.”라는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조원희 작가의 그림책 『콰앙!』을 보면 어린아이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행인들의 얼굴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뒤에 로드킬을 당한 아기 고양이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차가운 무관심만 묻어날 뿐이다. 말없이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 구급차는 언제 와요?”라고 묻는 어린이의 말이 “모든 생명이 정말 똑같이 소중한 게 맞나요?”처럼 들린다. 모두가 외면하는 작고 약한 존재들의 떠나는 길은 너무나 외롭다.

김동수 작가의 그림책 『잘 가, 안녕』은 이 아픔 가득한 존재들에게 따뜻한 작별 인사를 건넨다. 주인공 할머니는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동물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정성스레 돌본다. 정답게 말을 걸며 다독이고, 상처를 꿰매고, 붕대를 감고, 미처 감지 못한 눈을 감기고, 포근한 이불을 덮어 준다. 어두운 새벽, 숲길을 지나 물가에 도착한 할머니는 조각배에 동물들을 눕히고 예쁜 꽃도 놓아 준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먼 여행을 떠나는 그들에게 할머니는 “잘 가, 안녕.”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든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2022년도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 저감대책’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일어난 로드킬 수는 37,261건이다. 하지만 로드킬 사고를 신고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도로 위 안타까운 죽음은 더 많을 것이다. 로드킬 사고를 목격했다면 고속도로는 1588-2504(한국도로공사), 일반도로(국도·지방도 등)는 110(국민권익위원회)으로 연락하면 된다. 인간이 조각낸 터전에서 목숨을 잃은 동물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자.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자. 그들의 마지막이 조금 덜 아플 수 있도록 외면하지 말자.

문득 자연재해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그들에게, 슬프고 아파서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작별 인사를 건네 본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닿길 바라며, 그들에게 내가 희미한 점이 될 때까지 손 흔들며 배웅해야겠다. 조심히 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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