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 여름에게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7-01 15:53 조회 2,486회 댓글 0건본문
여름에게
정승연, 주해선, 김소연, 박다솜 예민한 도서관
여름 방학,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다. 책을 많이 읽자고 늘 다짐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에겐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마음에 크게 와닿는, 담긴 문장은 짧지만 글의 깊이는 남다른 책들이 있다. 여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팥빙수에 숨겨진 이야기,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어린이, 인어 소녀와 해녀 할머니가 건강히 살기 위한 이야기 그리고 어릴 적 여름에 느꼈던 열기를 기억하게 하는 이야기들에 푹 빠져 잠시 여름의 더위를 잊어 볼 수 있길 바란다.
#살살 녹는 시원한 이야기
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여름엔 팥빙수 한 숟가락, 셔벗 한 스쿱이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 준다. 요즘에는 다양한 맛의 팥빙수, 셔벗이 있는데 이 음식들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여기 팥빙수와 셔벗을 만든 지혜로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림책 『팥빙수의 전설』(이지은)은 제목처럼 팥빙수의 전설을 보여 준다. 옛날옛날 한 할머니가 수박과 참외, 딸기, 단팥죽을 보따리에 싸서 장에 내다 팔러 가는데 갑자기 눈호랑이가 나타난다. 눈호랑이는 여느 옛이야기처럼 할머니에게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겁을 주고 할머니는 눈호랑이에게 딸기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음식을 내어 준다. 마지막 남은 단팥죽만큼은 끝까지 사수하다가 결국 놓쳐 버리고, 뜨거운 단팥죽을 몸에 뒤집어쓴 눈호랑이는 서서히 녹는다. 그렇게 눈호랑이와 단팥죽 범벅은 아주 맛있는 팥빙수가 되어 할머니를 통해 방방곡곡 알려진다. 어린이들이라면 눈앞에 놓인 눈호랑이 범벅을 어떻게 했을까.
팥빙수처럼 여름에 찾는 또 하나의 별미가 있다. 바로 시원한 셔벗! 셔벗이 만들어진 전설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림책 『달 샤베트』(백희나)에는 주민들이 여름에 과도하게 사용한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가 뿜어 내는 열기에 달이 녹아내린다. 반장 할머니는 달방울을 받아 셔벗을 만드는데 달셔벗을 한 입 먹자 놀랍게도 더위가 싹 달아나 버린다. 반장 할머니는 집을 잃은 달토끼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지혜를 발휘하여 달토끼를 살려 낸다. 어린이들이라면 녹아내린 달을 어떻게 했을까? 집을 잃은 달토끼에게 무엇을 해 주었을까? 새로운 지혜를 나눠 보면서 더위를 함께 나는 법을 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두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더위를 싹 달아나게 해 주는 시원한 음식, 할머니들의 지혜, 동물 친구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팥빙수와 달셔벗이 먹고 싶어서 군침이 돌고, 시원한 그림을 보며 침을 삼키게 된다. 책에 나온 음식들을 어린이들과 함께 만들어서 먹어 보면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입안에서 살살 녹을 것이다. 음식을 함께 먹고 어린이들에게 전설 속 할머니가 되어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이야기 한 편 들려 달라고 부탁해 보자.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
무더운 여름, 거리를 걷다 보면 시원한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럴 땐 이 그림책 속으로 빠져 보자. 표지만 봐도 시원해지는 그림책 『3초 다이빙』(정진호)에는 다이빙을 좋아하는 한 어린이가 등장한다. 이 어린이는 “나는 잘하는 게 없는 거 같아.”라고 말한다. 달리기도 느리고 수학 문제도 잘 풀지 못한다는 어린이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버티기 힘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는 걸까 걱정한다.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한방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기도 하는데, 주인공은 “난 이기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왜 이기고 싶지 않을까? 어차피 이기지 못할 테니까? 자신이 없어서? 이어지는 주인공의 말은 내 마음을 쿵 내리친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꼭 져야 하니까.” 그 대신 주인공은 모두 똑같이 3초면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 수 있고, 물속에서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다이빙을 하러 간다.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누군가 기뻐할 때 누군가는 슬퍼한다. 주인공의 말처럼 다 함께 즐거울 수는 없을까?
작년 우리 교실에는 높은 점수와 일등에 집착하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너는 이것도 못해?”, “내가 너보다 더 똑똑해.”와 같이 다른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런 어린이들과 함께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함께 읽기 가장 적절한 시기는 ‘운동회’라고 생각했다. 운동회는 일 년 중 어린이들의 경쟁심을 가장 자극하는 날이다. 그렇기에 어린이들이 서로 다투거나 상처받는 일이 많이 생기기도 한다. 운동회 전날 교실에서 이 책을 읽고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운동회를 위한 약속’을 정했다. 다치지 않기, 이기더라도 상대 팀 약 올리지 않기, 지더라도 다른 친구 탓하지 않기 등 중요한 규칙들이 어린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운동회가 끝난 후에는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나누고,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운동회를 위해 노력했던 친구를 칭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넘어졌을 때 “괜찮아?”라고 물어 봐 준 친구, 피구 공을 던질 기회를 양보한 친구, 달리기를 져서 속상한 자신을 위로한 친구 등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장면들을 어린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칭찬을 듣는 어린이도, 칭찬하는 어린이도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무엇일까?” 그날 너희들이 답했던 소중한 마음을 잘 간직할 수 있길, 그 마음을 지켜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바다를 부탁해
여름철 인기 피서지 중 1위는 단연 바다가 아닐까. 푸른 물결이 끝없이 일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물 아래의 세상이 궁금해지곤 한다. 육지 동물은 색다른 모습의 생명들이 만들어 놓은 바다 세상의 일부분만 엿볼 수 있다 보니, 바닷속 세상에 대한 상상의 나래는 드넓은 바다만큼 널따랗게 펼쳐진다.
아마 우리 조상님들도 그랬는지 큰물이 배경인 옛이야기에는 용왕님이 사시는 용궁이 꼭 등장한다. 그림책 『할머니의 용궁 여행』(권민조)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별주부전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바닷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해녀 할머니는 물질하다 만난 광어를 따라 으리으리한 용궁에 간다. 도착하자마자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간을 내놓으라는 위협을 받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할 리 없는 우리네 할머니는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용왕에게 호통을 친다(“간 같은 소리 하네!”). 얼마나 아픈지 엉엉 우는 용왕 거북이의 코에 콕 박힌 빨대를 발견한 해녀 할머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용왕이 아픈 원인을 한 방에 해결해 주는데, 그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아프다며 치료받으러 모인 바다 생물의 줄이 끝없이 늘어진다.
동화책 『인어 소녀』(차율이)의 바닷속 세상도 해양 쓰레기로 오염되어 있다. 사라진 아빠를 찾아 깊은 바다로 향한 혼혈 인어 규리는 쓰레기를 삼켜 몸 안에 큰 상처가 생기거나 목숨을 잃는 생물들은 물론, 기형으로 태어나 소외된 존재를 만난다. 규리는 아빠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 청소를 하고 아픈 바다 생물들을 치료해 주지만, 푸른 빛이 가득해야 할 바닷속 세상을 뒤덮은 하얀악마(플라스틱)는 계속 쌓이고 늘어나기만 한다.
땅을 넘어 바다까지 뒤덮은 생활 쓰레기로 인해 고통받는 생물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올여름 휴가로 바다를 찾을 예정이라면 상반기 동안 사용했던 플라스틱의 행방을 떠올리며 ‘줍깅’에 동참해 보면 어떨까. 줍깅은 줍기와 조깅을 합친 단어로 플로깅(이삭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pick up)’과 조깅(jogging)의 합성어)의 파생어이다. SNS에서 줍깅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편리한 삶의 이면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고 많은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이 뒤따라 온다. ‘버리는 손’이 ‘줍는 손’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작은 행동으로 실천해 보자!
#여름을 기억하는 방법
대학교를 졸업한 지 딱 10년이 된 지금, 4년간 공부했던 지식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이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경과 배경의 관계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인식할 때 관심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전경으로, 관심 밖에 놓여 있는 부분을 배경으로 둔다는 이론이다. 이윤희 작가의 만화 『열세 살의 여름』을 읽으면서 이러한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떠올랐다.
열세 살의 여름 방학,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바다가 있는 도시로 떠난 해원이는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가진 같은 반 친구 산호를 발견한다. 등대 근처에서 날아간 모자를 산호의 도움으로 찾으면서, 해원이의 배경에 존재했던 산호는 점점 해원이의 전경 안으로 들어온다. 휴가 동안 좋아하는 바다를 실컷 본 해원이는 ‘여름 방학이 끝나 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해원이를 둘러싼 일들은 갑작스러운 열기에 멍해지는 여름의 어떤 순간들과 닮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해원이에게 아빠는 마음을 괴롭히는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싸우고 왜 그런지 물어 보고 따져 보라고 이야기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나 아무 일도 없어요!”였지만, 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는 해원이를 조용히 응원하고 싶어진다.
『열세 살의 여름』에 등장하는 펜팔, 교환일기, 공중전화, 귀신이 나오는 집 등은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해원, 산호, 진아, 우진 그리고 같은 반 친구들이 겪은 여러 사건, 미묘한 관계, 설레지만 낯선 감정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이가 충분히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이다. 어린이들은 열세 살의 여름을 어떤 마음으로 기억하게 될까? 우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도 주지 못한 기억을 떠올릴까? 아니면 피구를 할 때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생각날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 여름 방학마다 해원이와 산호가, 진아가, 우진이와 려희가 떠오를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