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 동화 속에서 나를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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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4-04 13:22 조회 3,435회 댓글 0건본문
동화 속에서 나를 본 적 있나요?
정승연, 김소연, 박다솜, 주해선 예민한 도서관
영화 <마틸다>에서 주인공 마틸다는 혼자서 글을 깨우치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간 다. 매일매일 마틸다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사서선생님은 마틸다에게 책 대출하는 법을 알려 준다. 마틸다가 처음으로 책을 빌려 수레에 담아 흥겹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흐뭇하게 보는 장면일 것이다. 마틸다는 자신과 다른 성향의 가족과 힘겹게 지내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그는 책 속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하거나 다양한 인물을 만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이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선물 이자 공공도서관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취학 전부터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도 있지만, 많은 어린이에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나는 학교도서관이 ‘첫 도서관’일 것이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 도서관이 나의 첫 도서관이었다. 학교도서관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 저층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시설적인 장벽으로 인해 문을 밀고 도서관에 들어가 기 힘들다면? 그렇다면 학교도서관이 위에서 언급한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마틸다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느꼈지만,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어맨다 레덕)에서 아이르네 콜트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화 속에 내가 있는 경우는 한 번도 없어요. 동화에서 나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동화에서 나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항상 나쁜 녀석이었어요.” 휠체어를 탄 소녀가 도서관 문을 밀고 들어가서 고른 책에서 자기 모습을 닮은 악당을 발견한다면, 그곳은 적어도 그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은 아니지 않을까?
#세상의 창으로 기능하는 도서관
내가 자주 다니는 시립도서관은 어린이 자료실에 책이 많이 비치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책은 약 60권 정도로, 이는 어린이 자료실에 비치된 도서의 0.07% 수 준이다. 2021년 14세 이하 인구 중 장애인 등록 수는 약 6만 명, 즉 해당 연령 인구의 약 1%(국가통계포털)라는 점을 고려할 때 도서관이 세상의 이야기를 고르게 담고 있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 해 보인다. 필자는 우리 학교도서관에서는 장애인이 주인공인 책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 졌다. 살펴보니 약 30권 정도가 비치되어 있었다. 장애 어린이가 도서관의 수많은 책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기에 충분한 장서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책을 떠올려 보자. 여전히 2003년에 출간된 『가방 들어주 는 아이』(고정욱)를 곧바로 떠올린다면 20여 년 동안 동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닐까 싶다. 그 이유 가 아니라면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가 많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적어도 후자 는 아니길 바라 본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종수가 적지만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리고 이 출간의 목적은 비장애 어린이에게 다양한 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닌, 동화를 읽으며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아보는 마틸다처럼 장애 어린이가 자기 이야기를 책에서 경험하고 더 넓 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런 책들이 도서관에 갖춰지고 모든 어린이가 읽을 때, 나와 ‘다른’ 사람들이 책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깨달을 것이다.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그리지 않는 이야기
장애 어린이들은 어떤 책에서 자신을 찾아볼 수 있을까? 주인공이 주체적이며 주변 사람들이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책들은 무엇이 있을까? 그래픽노블 『엘 데포』(시시 벨)는 청각장애인 작가 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이 책은 주인공 시시가 가정과 학교에서 겪는 일들을 속마음과 함께 보여 주 면서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시시는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멀어지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또래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엘 데포』처럼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은 장애 어린이를 그 이야기를 쓴 작가와 만 날 수 있게 하고 공감을 이루게 해 준다. 『스파크』(엘 맥니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열한 살 애디의 이야기로, 주인공은 오래전 ‘다르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여자들을 추모하기 위 해 캠페인을 벌인다. 작가는 이 책을 쓴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다른 책에서 자폐를 다루는 방식이나 표현이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어린이는 자신이 이 야기 속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걸 볼 자격이 있어요.”
장애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림책으로도 살필 수 있다. 『물이 되는 꿈』은 루 시드 폴의 노래 <물이 되는 꿈> 가사에 이수지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이다. 아코디언 북으로 길게 펼칠 수 있는 이 책은 한 어린이가 물속에서 물이 되기도, 꽃이 되기도, 그외 여러 가지가 되기도 하 면서 유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책에 등장하는 어린이는 첫 장에 놓인 휠체어와 떨어져서 물속 에서 역동적으로 헤엄친다. 첨벙첨벙 뛰어다니거나 새가 되어 날아오르기도 한다. 장애인 변호사이 자 작가인 김원영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자신은 휠체어가 없으면 발가벗은 기분이 든다고 한 바 있다. 휠체어 탄 어린이들이 『물이 되는 꿈』을 읽는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물이 되는 꿈’ 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하는 장애가 아닌 가상의 장애를 소재로 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 『원통 안의 소녀』(김초엽)는
장애가 아니었던 것이 환경의 변화로 인해 장애로 여겨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지우는 나노 입자
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투명한 플라스틱 원통에 갇혀 지내는데, 작가는 차별을 느끼고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써 내려간다. 김원영 작가는 “장애란 단지 신체의 기능적(도구적) 역할을
결여한 상태가 아니라, 그 몸을 본 사람들이 ‘비정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할 때 비로소 장애가
된다.”고 했다. 소설에서 ‘원통 안의 소녀’는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자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몬스터 차일드』(이재문)도 가상의 장애 ‘몬스터
차일드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이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를 만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
이다. 가상의 장애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하는 고민과 여정은 장애를 가진 현실의 어린이에게, 마틸다가 느끼던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위안을 줄 수 있다.
#미니 패럴림픽
장애 어린이의 신체활동 감각은 뇌병변장애를 가진 찬우가 짝꿍 용재를 만나면서 함께 성장해 가 는 이야기 『바람을 가르다』(김혜온), 청각장애 어린이가 육상부에서 활약하는 『달리다 보니 결승선』 (데비 월드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끝나면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이 열 리는데,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약 20개 종목에 출전한다. 그중 몇 가지 종목은 학생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필자는 위 책의 독후활동으로 ‘미니 패럴림픽’을 운영했다. 보치아(뇌성마비 장애인이 공을 던져 표적구에 더 가까이 위치시켜 점수를 얻는 경기)는 간단한 준비물만으로 교실에서 즐길 수 있었다. 학생들은 골볼(시각 장애인이 소리 나는 공을 던져 상대 팀 골대에 넣거나 막는 경기)을 통해서 골볼을 새로운 스포츠로 느끼며 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읽기 매체에 변화를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행위가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행위인지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우리 학교에 시각장애인 학생이 없으니 점자책이나 큰글자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학교에 내가 알지 못하는 저시력 장애 어린이가 있을 수 있다. 장애가 겉으로 드러 나지 않는 어린이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책을 읽는 도서관이 물리적 공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 동네 시립 도서관에는 ‘스마트 더책(미디어창비)’ 서가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 더 책’은 종이책과 오디오북을 결합한 책으로 스마트폰으로 종이책의 표지를 스캔하면 책의 내용을 들을 수 있다. 별도의 CD나 재생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아 기존의 오디오북보다 책에 더 접근하기 쉽다. 큰글자책이나 스마트 더책은 기존 도서보다 비싸서 학교도서관에서는 예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고려한 시스템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목적을 갖 고 있다. 필자는 하나의 서비스, 한 권의 변화가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도서관에서는 이를 어떻게 기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책 속에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이 살고 있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책으로, 환 경으로 보여 주면 그게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기념이 아닐까. 아코디언 그림책 『물이 되는 꿈』을 넓게 펼치고,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를 이용자들에게 소개하자. 큰글자책, 점자책, 오디오북 등으로 책을 읽는 세상을 보여 주고, 장애인이 주인공인 수많은 이야기, 그 이야기를 만든 작가와 만나 보자. 휠체어를 탄 소녀가 도서관에 와서 자신의 모습을 닮은 주인공을 발견한다면 도서관 안팎에서 우리는 모두와 연결되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