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데아 [천천히 스미는 독서교육] 교실 속 몰입독서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2-15 10:16 조회 2,055회 댓글 0건본문
교실 속 몰입독서 이야기
신현주 서울중원초 교사
교실에 함께 모여서 집중해서 책을 읽는 ‘몰입독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하 던 때, 코로나19로 학교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과 몰입독서를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비대면 수업을 위한 온라인 몰입독서를 독서동아리 아이들과 먼저 진행 해 보기로 했다.
온라인 몰입독서 시작
8시 정각이 되자 아이들이 모두 들어왔다. 서로 아는 아이도 처음 만나는 아이도 있어서, 5분 정도 돌아가면서 자신의 학년과 이름을 이야기했다. 이어서 각자 읽을 책 표지를 보여 준 뒤 몰입독서를 시작했다. 쑥스러워서 비디오를 꺼 놓는 아이도 있었고, 화면 너머로 거실에 누워서 책을 읽는 가족도 있었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지만 함께 있는 느낌이 들면 좋을 것 같아서 화면에 책 읽는 모습이 보이도록 비디오 각도를 맞춰 달라고 부탁했다(강요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1시간 동안 몰입 독서를 진행했다. 끝난 후에는 읽은 책이 어땠는지 간단히 말하고 헤어졌다. 『망나 니 공주처럼』을 읽었던 2학년 태이는 처음에는 약간 따분했는데 책 내용이 점점 갈수록 재밌어졌다고 했고, 『마법의 빨간 립스틱』을 고른 예준이는 주인공 미아가 장난꾸러기 같다며 웃었다.
온라인 몰입독서의 경우 내가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 이 책을 읽는 모습을 관찰할 수 없어서 몰입독서에 참여한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었다. 참여했던 아이들 모두 한 달에 1∼2회 정도라면 참여하고 싶다고 대답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몰입독서 시간이 조금 늘어나면 좋겠다고 했다.
교실 속 몰입독서 시작
온라인 몰입 독서를 해보니, 만약 비대면 수업이 지속된다면 이렇게라도 진행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드디어 개학날이 다가왔고 나는 4학년 담임을 맡 았다. 3월에는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번갈아 가며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이 들이 등교하는 요일에 맞춰 교실에서 몰입독서를 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첫 번째 단계: ‘우리 반 책장’ 만들기
몰입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이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을 준 비하는 일이다. 간혹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 반 책장’을 마련했다. 아이들마다 읽기 수준이나 취향이 다르기에 얇은 책부터 두 꺼운 책까지 다양하게 준비하고, 한 권 읽으면 다음 편도 읽고 싶도록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나 ‘헌터걸’과 같은 시리즈를 두었다. 앞부분에 인물이나 배경 설명 이 길어서 지루함을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서 사건이 바로 시작하는 로알드 달의 『멋진 여우 씨』, 『아북거, 아북거』, 『창문닦이 삼총사』 등의 책을 모아 두었다. 그 옆에 그림책과 그래픽 노블, 만화, 시집도 함께 놓았다. 아이들은 여기서 원하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단계: 교육과정과 연계한 ‘몰입독서’ 시간 마련하기
몰입독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재구성이 필요했다. 마침 4학년 1학 기 국어 교과서에 ‘독서’ 단원이 있다. 읽기는 ‘읽기’로 배우기에 ‘독서 단원에서 실 제로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몰입독 서’를 국어 시간에 넣었다.
세 번째 단계: 몰입독서 진행하기
교실에서 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서 몰입독서를 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관찰 했다. 보통 첫 10분 동안, 아이들은 긴장을 해서인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20분 정도가 지나면 짧은 글로 이루어진 책을 골랐던 아이들이 책장으로 가서 책 을 바꿔 오고, 화장실에 간다고 손을 드는 아이가 보인다. 책 읽기를 지루해하는 아이는 옆 친구들을 슬쩍 쳐다보거나, 허공을 보다가, 연습장에 낙서를 한다.
나는 다 읽은 아이들에게 다른 책을 권해 주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몰입독서에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거다. 친구와 떠드 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세요.”,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자리에 앉으세요.”라는 지시 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 읽었니? 무슨 내용이야?”라는 식의 평가 나 확인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 지고, 아이들의 관심은 내가 말을 거는 아이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단지 책을 읽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고 믿고 지지하고 기다려 주는 것 이 나의 일이다.
아이들이 고른 책을 보며 그 아이의 취향과 요즘 관심사, 읽기의 수준을 혼자 짐작한다. 읽기가 어려워서 자꾸 똑같은 장면만 보는 아이를 보며 ‘오디오북을 들 으면서 책을 읽게 할까?’ 고민하고, 맘에 드는 책이 없다며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 고는 ‘다음에는 책을 갖다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고르는 장소가 좁 아 보이는가 싶으면 책장 위치를 바꿔 봤다.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있느라 불편해 보이는 아이를 보며 ‘교실 한쪽에 부드러운 러그를 깔고 아이가 앉아서 편히 읽게 해볼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고 다시 책에 폭 빠진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1∼2교시를 블록타임으로 묶어서 80분간 몰입독서를 했다. 이 시간 후에는 ‘독서’ 단원과 연계해서 각자 끝까지 읽은 책 한 권의 내용을 간추리는 수업을 진행했다.
교실 속 몰입독서를 마치며
첫 몰입독서를 마치고 아이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들아, 몰입독서 해보니 어땠어?”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 되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읽으니까 좋아요.”
“진짜 조용해요.”
“선생님, 다음 장면 궁금한데 빌려가서 집에서 읽어도 돼요?”
3월의 봄날, 이제 막 몰입독서의 씨앗을 뿌렸다. 꾸준히 물을 주고, 가꾸다 보면 언젠가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푹 빠져 읽는 날, 그 기억이 좋아서 다 시 책을 펼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작은 희 망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