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아이들, 선생님과 학부모가 함께 꿈꾸는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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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4 15:36 조회 9,166회 댓글 0건본문
아이들, 학부모, 선생님 모두의 쉼터
겨울 방학을 이틀 앞둔 날, 화정초등학교 도서실을 찾아갔을 때, 가장 먼저 학부모들을 만났다. 어머니들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책더미여사(책과 더불어 미래를 여는 사람들)’라는 독서토론회를 조직하고,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일을 꾸준히 해 왔다. 더하여 1, 2학년 학생들에게 토요일에 시간을 내어 ‘책 읽어 주기’를 해왔다. 오늘은 한 해 동안 해 온 독서회와 책 읽어 주기 활동을 담은 문집을 만드는 날이다.
그렇게 들어선 도서실을 둘러보니 책꽂이마다 놓인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빛깔이 도서실을 휘감고 있다. 이 화분들은 모두 교실에서 죽어가던 것을 가져와 살려낸 거란다. 이런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도서실이 곧 아늑한 쉼터라 할 만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하나둘 도서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곧 방학이라 대출은 안 된다는 말에 실망하며 돌아서는 아이, 동무와 함께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서 뭔가 열심히 얘기하는 아이, 낯선손님 둘레를 따라다니는 아이, 모두가 사랑스럽다.
화정초등학교 도서실은 1999년에 문을 열었다. 교실 세 칸짜리 도서실은 당시 다른 학교에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것이라, 주변 학교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때는 학부모들이 앞장서 봉사하여 전산화 작업까지 제대로 갖춰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도서실이 되었다고 한다. 열한 해 동안 그렇게 이어온 도서실은 장서 2만 7천여 권을 헤아리는데, 책꽂이가 모자라 도서관 바닥에도 책이 놓여 있다. 이런 탓에 해마다 3월이면 학급문고로 150~200권씩 내보내기도 한다. 또 학부모 독서토론회뿐만 아니라 도서실 한쪽에는 선생님들을 위한 서가를 마련해서 자연스레 선생님들이 모여 책을 고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서가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책을 가까이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런 도서실을 챙기는 일은 김나영 사서 선생님 몫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 주는 일을 즐겨하는 선생님은 이곳에서 일한 지 올해로 7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 가운데 누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 오죽하면 김 선생님이 추천해 주는 책을 가져가려고 학부모들이 도서실에서 와서 기다리는 일까지 있단다. 새 책이 들어오면 김나영 선생님은 먼저 학년별로 나눈다. 연령, 학습 수준에 맞게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 하는데, 철저하게 아이들 수준에 맞게 하려고 애쓴다. 흔히 어른들은 학년이 올라가면 일정 수준의 책을 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두께가 얇은 그림책도 높은 학년 아이들에게 적절한 책이 있고, 그걸 섬세하게 구분해서 제자리를 잡아주는 일이 바로 사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적립하는 ‘책사랑 도토리 통장’
도서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니, ‘도토리 통장’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지난 해 5월부터 ‘책사랑 도토리 통장’이라는 독서 통장을 만들었는데, 한마디로 은행 통장과 아주 비슷하다. 통장에는 책을 빌린 날짜와 책 이름을 기록하고, 제때 반납하면 더하기 1점, 연체되면 마이너스 1점을 받는다. 아이들은 마치 ‘급수 올리기’ 하듯 통장 점수 쌓기에 매달리고 점수가 높은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산다. 그래서 앞 다투어 달려오는 아이들 덕분에 도서실 문턱이 닳을 지경이다. 한 해에 한 번,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점수와 학급문고 대출 건수,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독서록 점수를 합산하여 ‘다독상’을 준다. 독서 통장이 좋은 점은 또 있다. 아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독서 습관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자료가 쌓이면 독서 지도에 쓸모가 있겠다 싶어서 그런지 다른 학교에서도 문의 전화가 제법 걸려 온다.
‘ 비정규직’ 사서 선생님의 꿈
김 선생님은 ‘비정규직’ 사서 선생님이다. 사서가 하는 일이 서가 정리와 도서 대출, 반납뿐이라고 생각하는 ‘편견’ 탓에 힘들다. 아직도 교장 선생님이 도서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예산 집행이나 도서관 운영 등 많은 것이 흔들린다고 한다. 해마다 도서관 담당교사도 바뀌고, 그래서 제대로 도서실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김 선생님은 독서 지도를 체계를 갖추어 하고 싶고, 독서치료, 미술치료 등도 학교도서관 안에서 해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수업 권한이 없어서 꿈만 꾸고 있을 뿐이다.
광주에는 김 선생님처럼 ‘공공근로’로 학교 도서실에서 사서 일을 하는 분들이 많다. 이들은 ‘비정규직 사서 연구회’를 만들어 지역별로, 또는 선후배끼리 모여서 방과 후 활동을 하며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김나영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서가 한쪽에 쌓여 있는 폐기 대상 책1,700여 권도 선생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에서는 장서가 학교의 재산이라며 폐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장서가 많으면 그만큼 폐기 도서가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야 도서실에 새 책이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1학년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김선생님은 아이들과 눈높이가 맞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도서실로 스며든 개구쟁이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장난을 건다. 그렇게 도서실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아이들이 몰래 숨겨 놓은 만화책을 찾아내 다른 곳에 숨기거나 하면서 책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이끈다.
서가 책장 맨 위에 꽂힌 책을 꺼내겠다며 굳이 책장을 밟고 올라가려고 하는 아이가 있다. 위험하다고 해도 막무가내, 김 선생님은 달려가서 얘기한다. “선생님은 너희들 도우미야. 이런 거 꺼내주는 게 선생님 일이야.”
도서실에 오는 아이를 눈여겨보았다가 꼭 맞다 싶은 책을 골라 건넨다. “선생님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어떻게 알아요?” 하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들, 그 아이가 고맙다며 제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어 줄 때 선생님은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싹 풀린다고 한다. 김 선생님과 화정초등학교 아이들이 도서실에서 마음껏 행복하게 지내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