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글쓰기가 없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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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3 21:45 조회 6,615회 댓글 0건본문
나는 지난 2008년부터 올해까지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교양과목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강의는 한 주에 두 시간씩 한 학기에 열다섯 번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빼면 실제로 강의하는 것은 열세 번이다. 한 번 강의하는 시간은 중간에 휴식하는 10분을 빼면 100분 정도이다. 그러니 열세 번을 꼬박 출석하는 학생들은 1,300분 동안 글쓰기를 공부하는 셈이다. 시간으로 치면 20시간이 조금 넘는다. 3년 전 봄에 첫 강의를 시작하면서 ‘그렇게 짧은 기간에 글쓰기를 온전하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한 학기를 마치고 나니 ‘학생들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학기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글쓰기가 인간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고 이렇게 묻는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글쓰기를 해본 학생 손들어 봐요.” 한 반 50여 명 가운데 손을 드는 학생은 서너 명도 안 된다. 나는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 제 나라 말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시간이 거의 없다니…….’
제 나라 말로 글쓰기 가르치는 학교 교육은 거의 없고
나는 국어교사로 일하다 정년으로 퇴직한 친구들, 지금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사실이 그런지 확인해 보았다. 대답은 한결같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럼 국어시간에 정작 무엇을 가르친다는 말인가? 일기도 편지도 써보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라니 우리나라 교육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가?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국어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근자에 퇴직한 한 분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주입식 위주로 되어 있는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워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국어 시간의 일부를 떼어 글쓰기를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계획을 곧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이튿날 학생들의 어머니 몇 사람이 교무실로 그를 찾아오더니 대뜸 이렇게 따져 물었다. “선생님, 지금 무얼 하시겠다는 겁니까? 국어 시간에 글쓰기를 가르치시다니요? 수능 점수를 몇 점이라도 더 올려야 하는 마당에 글쓰기에 시간을 낭비하면 되나요?”
그는 어이가 없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명문대학’에 가겠다는 소수의 학생들만이 논술 공부를 하는 정도이지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대다수가 사지선다형 위주의 입시 공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 학부모들이 글쓰기를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기는 것을 나무랄 일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글 제대로 쓰고 말 바로 하고 싶은 성인들은 아주 많고
나는 학기가 시작되면 첫 번째 강의 시간에 ‘나는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문제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풀게 한다. 시험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의 현재 실력을 정확히 알고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글맞춤법(표준어 규정, 문장부호, 외래어 표기법)과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법 등 100문제 가운데 85점 이상을 맞춰야 우리말을 ‘잘 아는 편’에 든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글쓰기 공부를 한 학생들은 한 학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늘어난다. 어휘 구사, 정확한 문장 쓰기, 짜임새 있는 문단 구성, 사람과 자연을 창의적인 시각으로 보기,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같은 면에서 전문가의 수준에 오를 수는 없지만 제 나라 글을 큰 흠 없이 쓸 수는 있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여론조사 기관이 우리나라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젊은이들을 상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응답(36퍼센트)은 ‘우리말로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주로 들어가는 대기업 사원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지난봄에 ‘문화의 바다로’라는 인문학 총서 다섯 권을 내면서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라는 책을 거기에 포함시켰다. 책이 나온 지 얼마 뒤 서울에 있는 ‘성인 교양학교’에서 그 책을 주제로 두 시간 동안 강의를 해달라는 청탁이 왔다. 강의실에 가서 보니 20대 대학생, 30·40대 직장인과 자유업 종사자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묻고 학생들이 대답하는 식으로 강의를 하면서 확인한 것은 글을 제대로 쓰고 말을 바로 하고 싶은 욕구가 아주 크다는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우리나라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믿는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말과 글을 올곧게 가르쳐야 창의력과 사고력이 깊고 넓어진다. 요즘 시대의 대세가 되어 있는 영어 교육은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하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려면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자주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학기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글쓰기가 인간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고 이렇게 묻는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글쓰기를 해본 학생 손들어 봐요.” 한 반 50여 명 가운데 손을 드는 학생은 서너 명도 안 된다. 나는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 제 나라 말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시간이 거의 없다니…….’
제 나라 말로 글쓰기 가르치는 학교 교육은 거의 없고
나는 국어교사로 일하다 정년으로 퇴직한 친구들, 지금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사실이 그런지 확인해 보았다. 대답은 한결같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럼 국어시간에 정작 무엇을 가르친다는 말인가? 일기도 편지도 써보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라니 우리나라 교육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가?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국어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근자에 퇴직한 한 분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주입식 위주로 되어 있는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워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국어 시간의 일부를 떼어 글쓰기를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계획을 곧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이튿날 학생들의 어머니 몇 사람이 교무실로 그를 찾아오더니 대뜸 이렇게 따져 물었다. “선생님, 지금 무얼 하시겠다는 겁니까? 국어 시간에 글쓰기를 가르치시다니요? 수능 점수를 몇 점이라도 더 올려야 하는 마당에 글쓰기에 시간을 낭비하면 되나요?”
그는 어이가 없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명문대학’에 가겠다는 소수의 학생들만이 논술 공부를 하는 정도이지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대다수가 사지선다형 위주의 입시 공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 학부모들이 글쓰기를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기는 것을 나무랄 일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글 제대로 쓰고 말 바로 하고 싶은 성인들은 아주 많고
나는 학기가 시작되면 첫 번째 강의 시간에 ‘나는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문제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풀게 한다. 시험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의 현재 실력을 정확히 알고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글맞춤법(표준어 규정, 문장부호, 외래어 표기법)과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법 등 100문제 가운데 85점 이상을 맞춰야 우리말을 ‘잘 아는 편’에 든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글쓰기 공부를 한 학생들은 한 학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늘어난다. 어휘 구사, 정확한 문장 쓰기, 짜임새 있는 문단 구성, 사람과 자연을 창의적인 시각으로 보기,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같은 면에서 전문가의 수준에 오를 수는 없지만 제 나라 글을 큰 흠 없이 쓸 수는 있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여론조사 기관이 우리나라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젊은이들을 상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응답(36퍼센트)은 ‘우리말로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주로 들어가는 대기업 사원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지난봄에 ‘문화의 바다로’라는 인문학 총서 다섯 권을 내면서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라는 책을 거기에 포함시켰다. 책이 나온 지 얼마 뒤 서울에 있는 ‘성인 교양학교’에서 그 책을 주제로 두 시간 동안 강의를 해달라는 청탁이 왔다. 강의실에 가서 보니 20대 대학생, 30·40대 직장인과 자유업 종사자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묻고 학생들이 대답하는 식으로 강의를 하면서 확인한 것은 글을 제대로 쓰고 말을 바로 하고 싶은 욕구가 아주 크다는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우리나라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믿는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말과 글을 올곧게 가르쳐야 창의력과 사고력이 깊고 넓어진다. 요즘 시대의 대세가 되어 있는 영어 교육은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하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려면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자주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