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읽고 쓰는 공감의 도서관] 마음, 환기가 필요한 순간 : 북 콘서트 '나의 마음 해방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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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6-05 14:01 조회 1,537회 댓글 0건본문
마음, 환기가 필요한 순간
북 콘서트 '나의 마음 해방 일기'
김보란 인천남중 사서교사
입을 꾹 다문 청소년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잘 모르겠어요.”를 거쳐 “저도 모른다고요.”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끝내 보여 주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땐 나의 물음이 그저 다그침으로 비칠까 전전긍긍하곤 한다. 그다지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물어보았던 질문이란 “지금 네 마음은 어떠니? 어떤 감정이 들어?” 차라리 교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면 그 학생과 다음 기회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문제는 학생들의 말대로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마음이 무겁게 쌓이다가 결국 ‘출구를 찾지 못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학교와 교실 내의 관계 단절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상황이 심각하던 초기에는 비대면 수업이 많았고 이에 따라 모둠활동 제한, 쉬는 시간마다 개인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하면서 학생들의 고립이 가속화되었다. 어쩌면 청소년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를 타개하고자 마음을 주제로 한 도서관 프로그램 ‘북 콘서트(나의 마음 해방일기)’를 공유한다.
부정의 감정을 회피하는 청소년들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인성과 배려를 주제로 한 ‘마음 알기’ 수업을 한 적 있다. 『아홉살 마음 사전』(박성우)을 활용하여 ‘마음 단어’의 뜻을 알아보고, 마음 단어와 어울리는 상황을 연결하는 수업이었다. 책에 나오는 마음 단어를 카드로 만들어서 게임을 하며 학생들의 흥미를 일으키고, 마음 단어의 의미를 책과 사전에서 찾아 쓰도록 했다. 그리고 마음 단어가 쓰였던 자신의 경험과 상황을 떠올려 보게 했다. 수업 당시, 즐겁게 참여하던 아이들이 부정적인 마음 단어에서는 때때로 답을 회피하거나 머뭇거렸다. 마치 부정적인 마음과 감정은 자기 것이면 안 되는 것처럼 부끄러워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다.
부정의 마음은 정말 나쁜 것일까? 마음은 칼로 자르듯 긍정과 부정으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고, 부정적인 마음이 온 하루를 지배할 때도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부정적인 마음을 갖는다. 긍정의 경험과 효과는 짧은데 반해, 부정적인 마음은 오래 지속된다. 부정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 즉 적절한 마음의 환기는 청소년들에게도 필요하다. 마음 환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여유가 생기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적 공감이 가능해진다.
나의 '마음 알아차림'이 필요한 이유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북 콘서트를 기획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전년도에 했던 것을 다시 하자니 아쉽고, 새로운 것을 하자니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시선을 학교와 도서관 밖으로 돌려 본다. 독서와 관련한 프로그램 혹은 수업의 아이디어를 회자되는 문화 키워드와 연결해 본다. 2022학년도에 운영한 북 콘서트의 아이디어는 음악과 드라마에서 시작되었다. 점심시간 학생들이 신청한 음악이 복도를 가득 메우곤 한다. 복도를 거닐던 중 일주일에 서너 번은 신청곡으로 선정된 아이유의 노래 중 유독 싱그러운 노랫말이 귀에 들어왔다. 짝사랑하는 이의 시선과 감정이 듬뿍 담긴 아이유의 노래 <마음>을 들으며 음악이 울려 퍼지는 3학년 교실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쓴 채 스마트폰 속에 푹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노래가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할까? 하루 중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삶에 대한 해답을 찾는, 어른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접한 것은 화제의 ‘구씨’ 때문도, ‘경기도민의 설움’이란 공감 포인트 때문도 아니었다. “내성적인 사람은 그냥 내성적일 수 있게 편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나?”라는 대사가 담긴 장면을 본 후였다. 자신의 성향을 내성적이라고 당당하게 판단하고, 타인이 이를 존중하기를 바라는 등장인물이 멋있었다. 우리는 흔히 사회생활을 하며 다소 미숙한 내향형과 적극적인 외향형으로 성격의 이미지를 이분법적으로 나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은 부정적인 것으로, 기쁘고 행복한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나눠 버린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려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호르몬과 성장의 변화로 감정이 복잡해지는 청소년에게는 ‘마음 알아차림의 경험’이 더욱 필요하다.
마음 해방 일기가 있는 북콘서트 기획
북 콘서트는 1학기 말, 전교생을 대상으로 계획했다. 전년도와 동일하게 체험 중심 활동으로 구성하되, ‘마음’을 주제로 했다. 기획의 절차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노래, 드라마 등 마음을 주제로 한 미디어 소개
동영상 프로그램에는 미디어 소개, 교사 에세이, 만년필 사용방법을 담았다. 프로그램 참여를 북돋고 흥미를 높일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미디어를 선정했다. ‘마음’은 눈으로 보이는 실체가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주제다. 이러한 주제에 친근하게 접근하려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의 ‘마음 온도’와 맞닿을 수 있는 콘텐츠를 찾기 위해선 각종 미디어를 꼼꼼히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활용한 미디어는 노래와 드라마다. 필자는 다음의 두 곡을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담은 미디어’로 소개했다.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아이유의 <마음>과 답답하게 갇힌 세상을 깨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은 빈지노의 <Break>가 그것이다. 노래가사의 일부를 소개함으로써 누구에게나 다양한 마음이 존재함을 안내했다. 우리의 마음은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으로 명확히 나눌 수 없으며, 좋고 나쁨으로 마음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노래와 함께 전달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일부 영상을 활용했다. 현재 자기 마음의 상황을 살펴보고, 자신이 ‘해방되고 싶은 마음’을 찾아보는 과정과 해결방안을 영상과 함께 안내했다. 자신이 현재 겪는 답답한 마음의 원인을 찾아, 이를 일지로 쓰고 서로 공유하는 드라마 속 ‘해방클럽’은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다른 이의 마음으로 확장되는 ‘공감’의 순기능을 보여 준다. 우리가 가진 마음의 문제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가 원인일 수도 있다.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2. 교사의 마음을 영상으로 보여 주는 '나도 그랬어'
부모님 다음으로 청소년들이 가장 자주 만나는 어른은 누구일까? 선생님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들의 마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도 그랬어’라는 꼭지를 마련했다. 선생님 두 분의 마음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동영상을 촬영하여 안내 영상에 담았다. 선생님 한 분은 자신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당시에 해방되고 싶었던 마음 이야기를, 다른 한 분은 어른이 된 지금 해방되고 싶은 마음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려운 문제는 예문을 보고 따라 풀어야 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체험활동에 있어 선생님의 예시는 좋은 보기가 된다. 답답하고 힘든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먼저 해방된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년도 북 콘서트 이후에도 꾸준히 만년필을 쓰는 학생들이 있어, 이번 프로그램에도 만년필을 활용한 글쓰기 활동을 넣었다. 만년필 사용방법은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1교시 안내 영상에 함께 넣었다.
3. 체험활동: 에세이와 그림일기 쓰기
2교시에는 학교에서 제작한 에세이 및 그림일기 활동지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체험활동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마음 털어놓기 연습과 생각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했다. 마음 해방을 위한 세 가지 단계를 제시하고, 에세이를 쓸 수 있도록 준비 과정을 도왔다.
활동지로 글쓰기 준비를 마친 학생들은 지도교사에게 에세이 및 그림일기 용지와 봉투를 받는다. 용지와 봉투는 디자인 플랫폼을 통해 제작했으며, 앞면에는 에세이 양식을, 뒷면에는 그림일기 양식을 담았다. 소중한 마음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봉투도 따로 마련했다. 봉투 겉면에는 학생들이 활동에 참여한 후기와 소감을 쓸 수 있도록 설문 양식을 QR코드로 넣었다. 혹시 에세이 쓰기에 두려움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일기를 쓰는 것처럼 글쓰기를 시작해 보라는 용기를 불어넣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필자는 활동지를 통해 알아본 자신의 ‘마음 3단계(확인-원인-해결방안)’를 에세이 활동지에 옮겨 쓰며 마음의 이해와 환기를 유도했다. 중심 단어를 바탕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활동지 하단에는 마음 해시태그를 넣었다. 다른 한쪽 면에는 자신의 마음 날씨를 적고 마음 상태를 짧은 글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대다수 학생들은 에세이와 그림일기를 모두 작성했으며, 활동이 다소 버거운 학생들은 마음일기만이라도 작성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4. 북 콘서트 이후: "힘들었던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어요"
이전에는 독서프로그램의 결과를 주로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을 통해 파악하곤 했다. 북 콘서트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 중점 독서프로그램인 만큼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온라인 설문 양식으로 만족도 및 후기를 조사했다. 에세이 봉투에 설문 양식을 QR코드로 담아, 체험활동이 끝난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도교사 및 담임교사에게 안내했다.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참여한 356명 대다수 학생들이 크게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갖는 마음의 문제는 대체로 가정환경, 학업 및 진로, 친구 및 이성친구와의 관계에서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만족의 이유로는 감정에 대한 해소, 고민에 대한 자기 공감과 이해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만족도 조사는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를 파악하고, 부족한 점을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더불어 교직원 회의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프로그램 운영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독서프로그램은 사서교사 혼자가 아닌 학교 구성원 모두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주지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해방 일기를 쓰며 새긴 '마음의 창'
아이들의 에세이는 깊게 읽지 않았다. 봉투에 쓰인 약속대로(“다른 누군가는 볼 수 없는”)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여 주는 역할은 당사자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해방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과 부딪히곤 한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상처를 입고, 마음을 환기할 방법을 몰라 스스로를 방치하기도 한다. 덮어놓은 마음을 다시 열어 해방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창문, 북 콘서트는 그 창문의 위치를 알려 주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