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1년, 책의 중흥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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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4 22:31 조회 5,991회 댓글 0건본문
“책 가운데 참된 맛 있어 / 실컷 먹으니 진귀한 요리보다 낫네 / 거기서 수많은 책을 벗 삼아 한평생을 보내는 즐거움이란 무궁무진하구나.”
퇴계 선생이 『도산잡영』에서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해 노래한 대목이다. 책 가운데 참된 맛이 있다는 선생의 혜안도 빛나지만 수많은 책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하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진다. 누구나 공감하듯이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너른 창이며,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세상 모든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곤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남긴 교훈
해마다 “최대 불황”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출판계에서 올해 가장 큰 수확은 인문서의 약진이 아닐까 싶다. 자기계발서가 지난 10년 동안 서점가 맹주 노릇을 했지만 여기저기서 서서히 몰락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5월 출간된 이래 60만 부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면서 인문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처럼 유독 한국 사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연유는 무엇일까.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라는 개념에 둔감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정의’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공정 사회를 목 놓아 주장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공정한 룰을 적용하지 않는 리더십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문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식 생산의 토대가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은 내내 안타깝다. 간혹 존 롤즈의 『정의론』이 회자되기는 했지만 한국적 정황에 입각한 정의 혹은 공정의 개념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할지에 대한 진중한 담론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이 60만 부가 팔렸고, 숱한 명사들이 이 책을 읽었노라 고백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학문의 영역은 물론이거니와 출판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과 출판은 학문을 추동하는 원천적인 힘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출판계는 학문을 추동할 힘은 고사하고 스스로의 앞길도 헤쳐 나가지 못하며 신음하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전방위적인 지식의 지도를 그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이 가진 위의威儀를 한껏 드러내는 길이다. 자기계발서가 시들해지고 인문서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은 터져 올랐을지 모르지만, 우리 출판계는 지금 신생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낙망할 이유는 없다. 지금도 누군가는 지식의 지도를 그리며 르네상스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인권, 빈곤의 문제에 천 착한한국 출판계
그렇다고 한국 출판계가 2010년 영영 맥없이 주저앉아있지만은 않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남긴 자서전은 질곡 많은 한국 역사에서도 진실 혹은 진정성의 힘을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대중 자서전』은 닳고 닳은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쏟아내 자서전 류와는 확연히 다른 한국형 자서전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함께 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곧 대한민국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외국 인물들의 자서전에만 의존하던 자서전 출판의 새로운 지형도를 이 기회를 통해 확립하는 것이 출판계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역할인 것이다.
한편 2010년 한국 출판계는 인권과 하우스 푸어, 빈곤의 문제에 천착하면서 출판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금벼리는 한 해이기도 했다. 국제적인 신임을 자랑하던 인권위원회에 어울리지 않는 수장을 앉힘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지 우리는 실시간으로 그 현장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좋은 반면교사가 없을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퇴보하고 있다. 이런 때에 인권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면서 책이 가진 본래적 사명을 감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우스 푸어와 빈곤의 문제는 또 어떤가. 고층 아파트 밑으로 판자집이 자리 잡고 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관심은 고사하고 제발 빠른 시간내에 사려져주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빈곤의 문제는 이제 내남 없는 일인데도, 나만 안락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한강만을 조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기에 깨어 있는 몇몇 출판사들이 인권과 주거를 비롯한 빈곤의 문제를 화두로 던진 것은 박수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역시 과제는 지금부터다.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과 후속 대안들을 모색하는 것이 출판계가 짊어질 과제인 것이다.
2011년 새롭게 독자앞에 설책을 기대하다
2010년 한국 출판계는 불황의 늪을 지나면서도 나름 의미있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제아무리 한탕주의와 대박 신화가 횡행해도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은 온전한 출판 정신을 되뇌고 있으며, 텍스트가 주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얽힌 실타래와도 같은 우리 사회를 풀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는 오로지 책이다. 책은 아드리아네의 실과 같아서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미궁을 빠져나갈 새로운 출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0년을 분투한 책과 출판계가 2011년 어떤 모습으로 독자 앞에 설지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자 한다.
퇴계 선생이 『도산잡영』에서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해 노래한 대목이다. 책 가운데 참된 맛이 있다는 선생의 혜안도 빛나지만 수많은 책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하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진다. 누구나 공감하듯이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너른 창이며,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세상 모든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곤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남긴 교훈
해마다 “최대 불황”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출판계에서 올해 가장 큰 수확은 인문서의 약진이 아닐까 싶다. 자기계발서가 지난 10년 동안 서점가 맹주 노릇을 했지만 여기저기서 서서히 몰락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5월 출간된 이래 60만 부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면서 인문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처럼 유독 한국 사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연유는 무엇일까.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라는 개념에 둔감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정의’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공정 사회를 목 놓아 주장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공정한 룰을 적용하지 않는 리더십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문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식 생산의 토대가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은 내내 안타깝다. 간혹 존 롤즈의 『정의론』이 회자되기는 했지만 한국적 정황에 입각한 정의 혹은 공정의 개념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할지에 대한 진중한 담론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책이 60만 부가 팔렸고, 숱한 명사들이 이 책을 읽었노라 고백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학문의 영역은 물론이거니와 출판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과 출판은 학문을 추동하는 원천적인 힘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출판계는 학문을 추동할 힘은 고사하고 스스로의 앞길도 헤쳐 나가지 못하며 신음하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전방위적인 지식의 지도를 그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이 가진 위의威儀를 한껏 드러내는 길이다. 자기계발서가 시들해지고 인문서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은 터져 올랐을지 모르지만, 우리 출판계는 지금 신생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낙망할 이유는 없다. 지금도 누군가는 지식의 지도를 그리며 르네상스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인권, 빈곤의 문제에 천 착한한국 출판계
그렇다고 한국 출판계가 2010년 영영 맥없이 주저앉아있지만은 않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남긴 자서전은 질곡 많은 한국 역사에서도 진실 혹은 진정성의 힘을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대중 자서전』은 닳고 닳은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쏟아내 자서전 류와는 확연히 다른 한국형 자서전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함께 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곧 대한민국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외국 인물들의 자서전에만 의존하던 자서전 출판의 새로운 지형도를 이 기회를 통해 확립하는 것이 출판계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역할인 것이다.
한편 2010년 한국 출판계는 인권과 하우스 푸어, 빈곤의 문제에 천착하면서 출판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금벼리는 한 해이기도 했다. 국제적인 신임을 자랑하던 인권위원회에 어울리지 않는 수장을 앉힘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지 우리는 실시간으로 그 현장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좋은 반면교사가 없을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퇴보하고 있다. 이런 때에 인권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면서 책이 가진 본래적 사명을 감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우스 푸어와 빈곤의 문제는 또 어떤가. 고층 아파트 밑으로 판자집이 자리 잡고 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관심은 고사하고 제발 빠른 시간내에 사려져주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빈곤의 문제는 이제 내남 없는 일인데도, 나만 안락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한강만을 조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기에 깨어 있는 몇몇 출판사들이 인권과 주거를 비롯한 빈곤의 문제를 화두로 던진 것은 박수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역시 과제는 지금부터다.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과 후속 대안들을 모색하는 것이 출판계가 짊어질 과제인 것이다.
2011년 새롭게 독자앞에 설책을 기대하다
2010년 한국 출판계는 불황의 늪을 지나면서도 나름 의미있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제아무리 한탕주의와 대박 신화가 횡행해도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은 온전한 출판 정신을 되뇌고 있으며, 텍스트가 주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얽힌 실타래와도 같은 우리 사회를 풀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는 오로지 책이다. 책은 아드리아네의 실과 같아서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미궁을 빠져나갈 새로운 출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0년을 분투한 책과 출판계가 2011년 어떤 모습으로 독자 앞에 설지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