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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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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13:56 조회 6,6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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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은 모른다. 내가 쓰는 글은 생활글이다. 나는 현장 노동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생활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활글은 무엇인가, 생활글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 왜 일하는 사람들은 시나 소설보다 생활글을 써야 할까.

생활글이란
먼저 생활글이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적는 것이다. 문학을 좇는 사람 가운데 겉멋만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있는 그대로만 글을 쓰냐 하고 반문하겠지만 사실대로 쓰는 것이야 말로 문학의 근본정신이다. 스티븐 킹과 조정래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정말 뭐든지 써도 좋다. 단,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스티븐 킹)

“모든 비인간적 불의에 저항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옹호해야 하는 작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조정래)그런데 스티븐 킹이나 조정래 선생이 쓴 글은 소설아니냐, 그건 지어내는 것이 아니냐, 하고 반박할 사람이 있겠다. 그렇다. 그분들이 쓴 글은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조차도 사실에 근거해서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생활글을 써야 한다는 내 이야기는 ‘문학’이라고 하는 시나 소설을 아예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쓰고 싶으면 써라. 하지만 일은 하면서 써라. 왜? 노동자가 일하지 않고 글만 쓸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절대’는 아니지만 ‘거의’ 쓸 수 없다. 시와 소설은 ‘예술’에 속하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없다. 타고난 예술가가 아니라도 쓸 수 있겠지. 나는 시나 소설도 연습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언제 연습할 시간이 있을까. 더구나 우리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가정을 외면하고 그럴 수 있을까. 미국의 노동자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 잭런던처럼 인생을 소설 쓰는 데 걸면 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로또 당첨되는 것만큼 힘이 들지 않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설가가 쓴 소설을 읽으면 된다. 하지만 잘 골라야 한다.

소설은 길고 짜임새가 있어 배우기 힘들다는 것을금방 공감할지 모른다. 시는 그래도 짧으니까 연습할만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시를 써서 유명한 사람들 이름을 기억해 보자. 대충 기억나는 사람들은 고은, 안도현, 도종환,김용택, 정호승, 이런 사람들이다(나는 이들이 쓴 시보다 김남주, 서정홍, 송경동, 백무산, 백창우 같은 사람들이 쓴 시가 더 좋지만 이런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이런 사람들 말고 이름이 떠오르는 시인이 있을까? 몇 없다. 박찬호, 김연아를 보고 야구와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려고 하는 것하고 별반 차이가 없다. 돈 버는 시인 많다고? 아, 쓰잘 데 없이 말장난하는 시를 시라고 써서 돈 버는 사람들은 아예 제쳐놨다. 그런 사람들이 쓰는 시를 써서 먹고살겠다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들, 곧 ‘노동자’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노동자가 자본가 되겠다는 것하고 별반 차이가 없다.

왜 생활글을 써야하나
다시 ‘일하는 사람’이 생활글을 써야 하는 까닭으로 돌아오자. 우선 글이 짧다. 시나 소설은 연습해도 힘들지만 생활글은 몇 번 써 보면 된다. 안 된다고? 한 번도 쓰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가만히 돌아보라.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쓰다가 포기했지, 완성해 본 글이 몇 편인지(완성한 글을 남한테 보여주고 고쳐 본 뒤에야 ‘글 한 편 썼다’고 한다).

둘째, 일하는 사람은 억울한 일들이 많아서 남한테 하소연할 게 많다. 알리고 싶은 게 많다는 것이다. 나는 시내버스 운전을 하면서 너무 억울한 일들이 많았다. 억울한 일들이 많아서 남한테 하소연한다는 이야기는 모든 걸 포함한다. 진실을 알리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알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내 삶, 곧 보편적인 노동자의 삶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생활글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자기를 드러내어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는지 알리고, 우리끼리 서로 공유하고 연대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남한테 하소연하는 것이다. 먹물들이 관념으로 쓴 글을 보고 세뇌당하지 말고 우리가 쓴 글로 서로 이해하고, 먹물들을 세뇌시켜야 한다.

생활글은 어떻게 쓰나
첫째,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말투로 써야 한다. 우리가 늘 쓰는 말, 사투리나 은어, 욕지거리 같은 말 그대로 써라. 글은 고상해야 한다고 지방 말 쓰는 사람이 서울말로 쓰지 마시라. 둘째, 쉬운 우리말로 써야 한다. 조정래 선생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있게 한 모국어의 자식들이다”라고 했다. 요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무식한 사람들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논리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셋째, 흉내 내지 말아야 한다. 글은 그것을 쓴 사람의 감정과 사상과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남의 글을 흉내내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처음 배울 때는 물론 흉내를 내기도 하겠지만 자기 생각을 나타낸 글을 써야 한다. 넷째, 거짓 없는 글을 써야 한다. 거짓말은 글을 잘쓰려는 욕심에서 생긴다. 다섯째, 비판할 때는 보기를 들면서 정확한 근거를 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괜한 거부감만 일으키기 쉽다.

다섯째, 가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아무리 정직하고 거짓 없고 재미있는 글이라도 그 글이 남한테 감동을 주고 도움을 줄 만한 가치가 있어야 좋은 글이라고 할수 있다.
생활글을 잘 쓰는 지름길은 없다. 옛날에 누가 프로기사 조남철 선생한테 바둑을 잘 둘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 조남철 선생이 ‘그런 방법이 있다면 내가 알고 싶다’고 했다. 바둑은 그저 많이 둬보는 수밖에 없다고. 글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쓰고 고쳐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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