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족 세우기를 통한 교실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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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6-08 14:21 조회 7,471회 댓글 1건본문
1학년 1반을 맡은 작년 한 해 나는 이전의 서너 해를 합한 것보다 많은 사건, 사고를 겪었다. 예닐곱 명의 말썽꾸러기들이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들의 혼을 빼놔서 모든 선생님들이 진도 나가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 수업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잦은 법이었다. 5월이 되자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갔다가 돌려주지 않는 아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남학생 서너 명이 여학생들에게 거리낌없이 성추행을 하기도 했다.
나는 교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설문조사를 해야만 했다. 성추행과 물건 가져가는 행동을 진정시키고 한숨 돌리던 6월 말, 마침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야만 할 큰 사고가 터졌다. 아이들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하고 폭력을 휘두른 두 명의 남학생 때문이었다. 결국 이들은 ‘강제 전학’ 징계를 받고 말았다.
나는 여름방학 내내 그들을 끝까지 품지 못하고 떠나보내고 만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칭찬수업’으로 방송에 나오기도 했던 김상복 선생님의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 선생님은 도덕수업 수행평가로 ‘부모님 칭찬일기’를 내게 한 후, 부모님을 초청하여 자녀의 칭찬일기를 들려드리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는 무릎을 쳤다. 학교에서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이들, 소위 학교부적응 학생들은 예외 없이 부모와의 불화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칭찬일기 수업으로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교실에서도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학기 시작과 함께 ‘칭찬일기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창의인성부의 학급특색사업지원비가 있어서 학급별로 50만원을 사용할 수 있었다. 교사의 열정과 행사를 치르기에 충분한 예산까지 확보되었으니 일은 반쯤 성사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반 아이들에게 김상복 선생님의 방송 동영상을 보여준 후 내가 말했다.
“얘들아, 우리 반도 칭찬일기를 20회 쓴 후에 ‘부모님 초청의 날’에 발표할 계획이다.”
여기저기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부적응 학생들은 죄다 부모님을 칭찬하는 일에 경기를 일으킬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어긋난 관계 맺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끌고 나갔다. 당근은 ‘행사 당일 단합대회도 하고 영화감상도 하며 맛있는 저녁도 사준다’는 것이었고, 채찍은 ‘칭찬일기를 제대로 안 쓴 사람은 방과 후에 한 시간씩 독서하고 간다’는 협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반은 겨울방학을 일주일 앞둔 날 행사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들을 초청한 날은 영하 11도의 추운 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운동장에서 단합대회를 하고 멀티미디어실에서 영화를 보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학교 앞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등을 시켜 먹었다. 아이들이 서너 명씩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았다.’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웃으며 밥과 찌개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불경스럽게도 성경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저녁 식사는 내게 ‘함께 밥 먹는 일’의 위대함과 즐거움을 깊이 체험하게 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아이들보다 일찍 학교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동짓날이었다. 학교로 들어선 순간 운동장 너머로 평생 잊지 못할 하늘의 풍경을 보게 되었다. 여섯 시 반이 넘었으니 해가 넘어간 후였다. 운동장 옆 공구상가 건물 위의 하늘은 푸르스름함으로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운동장 건너편 학원 건물 너머의 하늘은 검붉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겨울 저녁 고즈넉하고 검붉고 푸르스름한 하늘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 하늘을 찍어 카메라에 담았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우주에서 푸른 별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던 신비한 풍경이었다.
부모님들의 관심과 성원은 기대보다 훨씬 컸다. 33명 중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생업 때문에 못 오신 가정을 뺀 28명의 가정에서 30여 명의 부모님들이 행사에 참석해주셨다. 영어교과 교실에 모인 60여 명의 학생과 부모님들은 벽을 등지고 가운데를 향해 빙 둘러앉았다. 학년 초부터 수업 태도가 좋지 않기로 소문났던 우리 반 아이들의 그날 수업 태도는 완벽할 정도로 훌륭했다. 옆에 앉아 있는 부모님과 120여 개의 눈이 마주보고 있는 자리 배치 덕분이었을 터였다.
일찍 오신 부모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10여 분 정도 상영했다. 동영상 상영이 끝나자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리를 채워주셨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준비한 첫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1학년 1반 담임, 마이콜 선생님, 손병일입니다.”
마이콜이라는 별명을 들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마이콜이라는 별명은 10년 전 별명이었는데, 10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그 별명을 올해 저희 반 아이들이 부활시켜주었습니다. 다미였나요?”
다미를 보니 그렇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 행사를 1학기 5월쯤에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다면 모든 아이들이 ‘아, 저 친구 뒤에는 저렇게 든든하고 소중한 가족이 있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폭대위’를 여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전학을 가는 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7월에 열렸던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알고 있던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아들을 볼 때는 ‘항상 뭔가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반면에 딸은 언제나 ‘지금 이대로 충분한 존재’로 보게 되고요. 오늘 오신 부모님들은 어떠신가요? 내 아이를 ‘항상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아니면 ‘지금 이대로 충분한 존재’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오늘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에, 내 아이를 ‘지금 이대로 충분한 존재’로 느끼고 가신다면 정말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남자 1조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가 끝날 때마다 큰 격려의 박수를 아낌없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이들이 자신이 했던 칭찬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또한 부모님들께서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를 내 아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자리 배치를 모둠별로 앉게 했다. 평소 내 아이가 누구와 친한지 궁금해 했을 부모님들의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기 위함이었다. 회장이었던 현우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칭찬일기와 소감문 등을 발표했다.
“나는 친구들을 칭찬하는 것보다 부모님 칭찬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처음엔 정말 오글거렸지만 점점 나아졌다. 나는 남자인 아빠에게 칭찬하는 것이 더 쉽고 편했다. 아빠가 배드민턴 등 운동을 하고 오실 때 칭찬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칭찬일기 덕분에 아빠와 예전보다 대화가 더 많아지고 화목해진 것 같다.”
현우의 발표와 함께 부모님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다음엔 반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유한이가 부모님 성함으로 지은 6행시를 발표했다. 6행시를 발표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부모님들과 아이들은 모든 발표를 귀담아들으며 아낌없는 웃음과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행사는 그렇게 시종일관 화기애애하면서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나는 조별로 발표가 끝날 때마다 내가 아들, 딸과 겪었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들을 전해드렸다. 다행히 그즈음 『부모가 비우면 아이는 채워진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어 부모님들에게 들려드릴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작정하고 벼르던 이야기들을 부모님들에게 진심을 담아 전했다. 아들이 특목고 입학 후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을 때 ‘존재 자체로 사랑하기’를 기억하고 격려의 문자를 보내주었던 일, 딸이 스스로 공부하여 평균 10점을 올렸던 일, 아버지로부터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아들의 상처를 녹여주기 위해 매일 칭찬해주고 안아주려고 노력했던 일 등을 말씀드렸다.
8시 50분 즈음에 아이들의 발표가 모두 끝났다. 부모님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주셨다. 사실 처음 해보는 행사였기 때문에 준비하면서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 발표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진행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아이들의 칭찬일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순서를 정하고 멘트를 작성했다. 그 모든 고생들이 한 시간여 동안 부모님들과 느꼈던 공감과 진심 어린 박수로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담그고 누웠다. 가슴속에서 뿌듯한 희열이 솟아올라왔다. 그것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교육 현장에서 내가 힘써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발견했다는 희열이었다. 그날 밤 많은 부모님들이 감사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감동적이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게 됐어요.’ ‘그동안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해왔음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책 『스위치』의 ‘해결중심모델’에 따르면, ‘밝은 점’을 찾는 것이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고 한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갈수록 학교가 어두운 문제로 넘쳐날지라도,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 사례를 찾아 확산시켜나갈 때 그것이 해결중심모델로 우뚝 서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해마다 5월에 ‘부모님 초청의 날’ 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교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설문조사를 해야만 했다. 성추행과 물건 가져가는 행동을 진정시키고 한숨 돌리던 6월 말, 마침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야만 할 큰 사고가 터졌다. 아이들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하고 폭력을 휘두른 두 명의 남학생 때문이었다. 결국 이들은 ‘강제 전학’ 징계를 받고 말았다.
나는 여름방학 내내 그들을 끝까지 품지 못하고 떠나보내고 만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칭찬수업’으로 방송에 나오기도 했던 김상복 선생님의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 선생님은 도덕수업 수행평가로 ‘부모님 칭찬일기’를 내게 한 후, 부모님을 초청하여 자녀의 칭찬일기를 들려드리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는 무릎을 쳤다. 학교에서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이들, 소위 학교부적응 학생들은 예외 없이 부모와의 불화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칭찬일기 수업으로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교실에서도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학기 시작과 함께 ‘칭찬일기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창의인성부의 학급특색사업지원비가 있어서 학급별로 50만원을 사용할 수 있었다. 교사의 열정과 행사를 치르기에 충분한 예산까지 확보되었으니 일은 반쯤 성사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반 아이들에게 김상복 선생님의 방송 동영상을 보여준 후 내가 말했다.
“얘들아, 우리 반도 칭찬일기를 20회 쓴 후에 ‘부모님 초청의 날’에 발표할 계획이다.”
여기저기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부적응 학생들은 죄다 부모님을 칭찬하는 일에 경기를 일으킬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어긋난 관계 맺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끌고 나갔다. 당근은 ‘행사 당일 단합대회도 하고 영화감상도 하며 맛있는 저녁도 사준다’는 것이었고, 채찍은 ‘칭찬일기를 제대로 안 쓴 사람은 방과 후에 한 시간씩 독서하고 간다’는 협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반은 겨울방학을 일주일 앞둔 날 행사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들을 초청한 날은 영하 11도의 추운 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운동장에서 단합대회를 하고 멀티미디어실에서 영화를 보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학교 앞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등을 시켜 먹었다. 아이들이 서너 명씩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았다.’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웃으며 밥과 찌개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불경스럽게도 성경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저녁 식사는 내게 ‘함께 밥 먹는 일’의 위대함과 즐거움을 깊이 체험하게 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아이들보다 일찍 학교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동짓날이었다. 학교로 들어선 순간 운동장 너머로 평생 잊지 못할 하늘의 풍경을 보게 되었다. 여섯 시 반이 넘었으니 해가 넘어간 후였다. 운동장 옆 공구상가 건물 위의 하늘은 푸르스름함으로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운동장 건너편 학원 건물 너머의 하늘은 검붉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겨울 저녁 고즈넉하고 검붉고 푸르스름한 하늘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 하늘을 찍어 카메라에 담았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우주에서 푸른 별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던 신비한 풍경이었다.
부모님들의 관심과 성원은 기대보다 훨씬 컸다. 33명 중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생업 때문에 못 오신 가정을 뺀 28명의 가정에서 30여 명의 부모님들이 행사에 참석해주셨다. 영어교과 교실에 모인 60여 명의 학생과 부모님들은 벽을 등지고 가운데를 향해 빙 둘러앉았다. 학년 초부터 수업 태도가 좋지 않기로 소문났던 우리 반 아이들의 그날 수업 태도는 완벽할 정도로 훌륭했다. 옆에 앉아 있는 부모님과 120여 개의 눈이 마주보고 있는 자리 배치 덕분이었을 터였다.
일찍 오신 부모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10여 분 정도 상영했다. 동영상 상영이 끝나자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리를 채워주셨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준비한 첫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1학년 1반 담임, 마이콜 선생님, 손병일입니다.”
마이콜이라는 별명을 들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마이콜이라는 별명은 10년 전 별명이었는데, 10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그 별명을 올해 저희 반 아이들이 부활시켜주었습니다. 다미였나요?”
다미를 보니 그렇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 행사를 1학기 5월쯤에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다면 모든 아이들이 ‘아, 저 친구 뒤에는 저렇게 든든하고 소중한 가족이 있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폭대위’를 여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전학을 가는 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7월에 열렸던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알고 있던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아들을 볼 때는 ‘항상 뭔가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반면에 딸은 언제나 ‘지금 이대로 충분한 존재’로 보게 되고요. 오늘 오신 부모님들은 어떠신가요? 내 아이를 ‘항상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아니면 ‘지금 이대로 충분한 존재’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오늘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에, 내 아이를 ‘지금 이대로 충분한 존재’로 느끼고 가신다면 정말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남자 1조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가 끝날 때마다 큰 격려의 박수를 아낌없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이들이 자신이 했던 칭찬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또한 부모님들께서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를 내 아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자리 배치를 모둠별로 앉게 했다. 평소 내 아이가 누구와 친한지 궁금해 했을 부모님들의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기 위함이었다. 회장이었던 현우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칭찬일기와 소감문 등을 발표했다.
“나는 친구들을 칭찬하는 것보다 부모님 칭찬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처음엔 정말 오글거렸지만 점점 나아졌다. 나는 남자인 아빠에게 칭찬하는 것이 더 쉽고 편했다. 아빠가 배드민턴 등 운동을 하고 오실 때 칭찬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칭찬일기 덕분에 아빠와 예전보다 대화가 더 많아지고 화목해진 것 같다.”
현우의 발표와 함께 부모님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다음엔 반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유한이가 부모님 성함으로 지은 6행시를 발표했다. 6행시를 발표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부모님들과 아이들은 모든 발표를 귀담아들으며 아낌없는 웃음과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행사는 그렇게 시종일관 화기애애하면서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나는 조별로 발표가 끝날 때마다 내가 아들, 딸과 겪었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들을 전해드렸다. 다행히 그즈음 『부모가 비우면 아이는 채워진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어 부모님들에게 들려드릴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작정하고 벼르던 이야기들을 부모님들에게 진심을 담아 전했다. 아들이 특목고 입학 후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을 때 ‘존재 자체로 사랑하기’를 기억하고 격려의 문자를 보내주었던 일, 딸이 스스로 공부하여 평균 10점을 올렸던 일, 아버지로부터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아들의 상처를 녹여주기 위해 매일 칭찬해주고 안아주려고 노력했던 일 등을 말씀드렸다.
8시 50분 즈음에 아이들의 발표가 모두 끝났다. 부모님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주셨다. 사실 처음 해보는 행사였기 때문에 준비하면서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 발표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진행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아이들의 칭찬일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순서를 정하고 멘트를 작성했다. 그 모든 고생들이 한 시간여 동안 부모님들과 느꼈던 공감과 진심 어린 박수로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담그고 누웠다. 가슴속에서 뿌듯한 희열이 솟아올라왔다. 그것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교육 현장에서 내가 힘써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발견했다는 희열이었다. 그날 밤 많은 부모님들이 감사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감동적이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게 됐어요.’ ‘그동안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해왔음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책 『스위치』의 ‘해결중심모델’에 따르면, ‘밝은 점’을 찾는 것이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고 한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갈수록 학교가 어두운 문제로 넘쳐날지라도,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 사례를 찾아 확산시켜나갈 때 그것이 해결중심모델로 우뚝 서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해마다 5월에 ‘부모님 초청의 날’ 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