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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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7-06 13:41 조회 7,681회 댓글 0건본문
교실 안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담임교사가 생각을 해봐도, 반 학생들이 아무리 따져봐도 현묵이가 담임교사에게 욕지거리를, 그것도 큰소리로 내뱉을 이유가 없었다.
“내일은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날이다. 고등학생들이니까 잘하겠지만 모두 9시까지 김포공항으로 늦지 말고 모이기 바란다. 괜히 들뜬 마음에 장난하며 오다가 다치지 말고 건강한 몸과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 만나자.”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말을 하는 담임교사를 향해서 현묵이는 아주 험한 욕지거리를 했던 것이다. 평소에 엄하기로 소문난 담임교사였지만 상황이 화를 내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 생각하여 현묵이의 상담을 나에게 의뢰했다.
그래서 이 열일곱 청춘은…
나는 아무 말없이 현묵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현묵이는 여전히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내 앞에서 손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입안이 말라서 힘들어하는 현묵이에게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타서 주었다. 유자차의 달콤함 덕분인지 현묵이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나는 담임교사가 했던 말을 글로 쓴 뒤 현묵이 앞으로 내밀었다. 현묵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나는 현묵이에게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였다. 현묵이는 첫 문장을 다 읽지 못하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현묵이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닮았어요. 닮아서 그랬어요.”
현묵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현묵이에게 휴지를 건네다가 잠시 멈추고 현묵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아닌 어린아이의 눈이었다. 그것도 무서움과 죄스러움으로 떨고 있는 눈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우리 아빠랑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화가 났어요.”
“누구에게 화가 났니?”
“저에게요. 저에게 화가 났어요.”
사연은 이랬다. 현묵이의 아버지는 현묵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집을 나가셨다. 현묵이는 어머니와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오해였다. 현묵이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서 지방으로 빚쟁이들을 피해 숨었던 것이다. 집안 살림이 조금 여유가 생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현묵이는 자신이 오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3년은 너무나 아픈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빚을 갚느라 온갖 고생을 다 해야 했고, 현묵이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마구 문제를 일으키면서 어머니에게도 함부로 대하며 지냈다. 살림이 좀 나아졌지만 아버지는 지방에서 계속 일을 하고 계셔서 서울에 올 수 없었다. 그래서 주말에 현묵이와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아버지가 전화로 제안하셨고 현묵이도 3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원망의 소리도 하고 싶었고, 그동안 아버지를 오해했고 그 때문에 엄마 가슴 아프게 한 것을 말하면서 용서도 빌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그래. 우리 아들, 내일 아빠랑 여행 가는 날이네. 이젠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 잘하겠지만 차 조심하고 와. 다치지 말고. 내일 아침 9시에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만나자.”
전화로 아버지가 건넨 그 말, 담임교사가 학급에서 전달한 말과 너무도 비슷한 그 말이 아버지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서울로 오시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제 미워한다고 말하고 싶어도, 이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대상인 아버지가 없었던 것이다. 저 열일곱 청춘은 그래서,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험한 말을 담임교사에게 해댔던 것이다. 얼굴은 물론 말투와 말하는 내용까지 닮은 담임교사를 보자 아버지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한 자신이 너무도 미워서 욕을 해댔던 것이다. 그 아픔이, 그 미움이 너무 커서 주변 상황도,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채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것인 동시에 아직도 아버지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름답게 이별한다는 것은…
나는 담임교사에게 상담실로 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현묵이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담임교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냐하면 그 담임교사도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험이 있는 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담임교사에게 현묵이 아버지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현묵이에게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앞에 있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보라고 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현묵이가 갑자기 의자에서 내려와서 두 손을 모아 빌면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잘못했어요.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담임교사가 현묵이에게 괜찮다고 말을 해도 현묵이는 고갯짓을 하며 계속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했다.
“아빠,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빠 미워했어요.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맨날 아빠는 개새끼라고 했어요. 아빠는 힘들게 계시는 데 제가 아빠 미워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한참을 가슴 치던 현묵이가 말했다.
“아빠, 저 만나러 오다가 돌아가셨어요. 저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 아빠!”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던 담임교사가 현묵이를 껴안았다. 그리고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아빠는 현묵이 때문에 사고 당한 게 아니야.”
계속해서 도리질을 하는 현묵이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이 반복적으로 오갔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것이 같은 말로 들리지 않고 점점 깊어가는 사랑의 소리로 들렸고, 현묵이의 아픔을 걷어내는 작업으로 보였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난 후 나는 현묵이에게 말했다.
“현묵아.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널 보고 계시다면 말이야. 지금 마음이 어떠실까?”
현묵이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같은 내용의 질문을 담임교사에게 했다.
“선생님.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 현묵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실까요?”
“무척 마음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자식을 잘 돌보지 못해서 미안한데 죽어서까지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신이 미워지고 원망스럽고, 그리고 현묵이가 가엾어서 슬퍼하고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선생님. 저도 현묵이 아버지 마음이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방금 그 말씀을 현묵이에게 아버지가 하듯이 들려줄 수 있으세요?”
담임교사는 현묵이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현묵아. 아버지가 미안하다. 현묵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아버지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구나. 정말 미안하다. 우리 현묵이 가엾어서 어쩌니?”
조금은 차분해진 표정으로 다시 진한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는 현묵이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현묵아. 현묵이가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아니면 신나고 즐겁게 살아야 할까?”
현묵이가 담임교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현묵이를 보고 눈물이 담겨있는 담임교사의 눈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조용히 현묵이에게 말했다.
“고맙다. 내 마음을 잘 받아줘서 고맙다, 현묵아.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지만 그동안 네 마음속에서는 아버지와 이별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오늘부터 아버지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을 연습했으면 좋겠다. 아름답게 이별한다는 것은 말이야, 서로를 자유롭게 해준다는 뜻이란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현묵이는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서로에게 배려해준다는 뜻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현묵이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김정현 작가가 쓴 『아버지』였다.
“이번에 수학여행 가서 시간 날 때 이 책 한번 읽어보렴. 아버지께서 지방에 내려가 있는 시간 동안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는지 잘 느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삼 년 간 아버지와 헤어졌던 시간에 나누지 못한 정을 책을 통해 경험하게 될 수도 있고 말이야.”
상담이 끝났다고 말하자 담임교사가 씽긋 웃더니 현묵이에게 뒤로 돌라고 했다. 현묵이가 어리둥절하며 뒤로 돌자 담임교사는 현묵이의 등짝을 때렸다. 현묵이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정현묵, 이건 아까 교실에서 나를 놀라게 한 벌이야. 내가 아까 화난 것은 보상받아야잖아! 그리고 이건 우리 집에 있는 우리 아들에게도 내가 내리는 벌이야!”
현묵이는 웃었다. 아마 담임교사가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으면 현묵이는 교실에서 험한 말을 한 것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지냈을 것이다. 그래서 담임교사가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고, 현묵이도 이를 이해한 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담임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말 잘 들어. 너 왜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뭐냐? 이놈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도 몰라? 학교 아빠는 아버지가 아니냐? 넌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알았어?”
순간, 나는 담임교사가 나보다 더 뛰어난 상담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담임교사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묵이를 사랑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다. 담임교사의 그 말은 돌아가신 현묵이 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물인 동시에 현묵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씨앗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강요하는 담임교사와 망설이고 있는 현묵이를 바라보면서 그날 상담은 그렇게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문경보 문청소년교육상담연구소 소장. 전 대광고 상담실장
“내일은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날이다. 고등학생들이니까 잘하겠지만 모두 9시까지 김포공항으로 늦지 말고 모이기 바란다. 괜히 들뜬 마음에 장난하며 오다가 다치지 말고 건강한 몸과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 만나자.”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말을 하는 담임교사를 향해서 현묵이는 아주 험한 욕지거리를 했던 것이다. 평소에 엄하기로 소문난 담임교사였지만 상황이 화를 내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 생각하여 현묵이의 상담을 나에게 의뢰했다.
그래서 이 열일곱 청춘은…
나는 아무 말없이 현묵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현묵이는 여전히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내 앞에서 손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입안이 말라서 힘들어하는 현묵이에게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타서 주었다. 유자차의 달콤함 덕분인지 현묵이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나는 담임교사가 했던 말을 글로 쓴 뒤 현묵이 앞으로 내밀었다. 현묵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나는 현묵이에게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였다. 현묵이는 첫 문장을 다 읽지 못하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현묵이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닮았어요. 닮아서 그랬어요.”
현묵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현묵이에게 휴지를 건네다가 잠시 멈추고 현묵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아닌 어린아이의 눈이었다. 그것도 무서움과 죄스러움으로 떨고 있는 눈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우리 아빠랑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화가 났어요.”
“누구에게 화가 났니?”
“저에게요. 저에게 화가 났어요.”
사연은 이랬다. 현묵이의 아버지는 현묵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집을 나가셨다. 현묵이는 어머니와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오해였다. 현묵이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서 지방으로 빚쟁이들을 피해 숨었던 것이다. 집안 살림이 조금 여유가 생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현묵이는 자신이 오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3년은 너무나 아픈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빚을 갚느라 온갖 고생을 다 해야 했고, 현묵이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마구 문제를 일으키면서 어머니에게도 함부로 대하며 지냈다. 살림이 좀 나아졌지만 아버지는 지방에서 계속 일을 하고 계셔서 서울에 올 수 없었다. 그래서 주말에 현묵이와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아버지가 전화로 제안하셨고 현묵이도 3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원망의 소리도 하고 싶었고, 그동안 아버지를 오해했고 그 때문에 엄마 가슴 아프게 한 것을 말하면서 용서도 빌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그래. 우리 아들, 내일 아빠랑 여행 가는 날이네. 이젠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 잘하겠지만 차 조심하고 와. 다치지 말고. 내일 아침 9시에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만나자.”
전화로 아버지가 건넨 그 말, 담임교사가 학급에서 전달한 말과 너무도 비슷한 그 말이 아버지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서울로 오시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제 미워한다고 말하고 싶어도, 이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대상인 아버지가 없었던 것이다. 저 열일곱 청춘은 그래서,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험한 말을 담임교사에게 해댔던 것이다. 얼굴은 물론 말투와 말하는 내용까지 닮은 담임교사를 보자 아버지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한 자신이 너무도 미워서 욕을 해댔던 것이다. 그 아픔이, 그 미움이 너무 커서 주변 상황도,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채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것인 동시에 아직도 아버지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름답게 이별한다는 것은…
나는 담임교사에게 상담실로 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현묵이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담임교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냐하면 그 담임교사도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험이 있는 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담임교사에게 현묵이 아버지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현묵이에게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앞에 있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보라고 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현묵이가 갑자기 의자에서 내려와서 두 손을 모아 빌면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잘못했어요.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담임교사가 현묵이에게 괜찮다고 말을 해도 현묵이는 고갯짓을 하며 계속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했다.
“아빠,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빠 미워했어요.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맨날 아빠는 개새끼라고 했어요. 아빠는 힘들게 계시는 데 제가 아빠 미워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한참을 가슴 치던 현묵이가 말했다.
“아빠, 저 만나러 오다가 돌아가셨어요. 저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 아빠!”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던 담임교사가 현묵이를 껴안았다. 그리고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아빠는 현묵이 때문에 사고 당한 게 아니야.”
계속해서 도리질을 하는 현묵이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이 반복적으로 오갔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것이 같은 말로 들리지 않고 점점 깊어가는 사랑의 소리로 들렸고, 현묵이의 아픔을 걷어내는 작업으로 보였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난 후 나는 현묵이에게 말했다.
“현묵아.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널 보고 계시다면 말이야. 지금 마음이 어떠실까?”
현묵이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같은 내용의 질문을 담임교사에게 했다.
“선생님.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 현묵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실까요?”
“무척 마음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자식을 잘 돌보지 못해서 미안한데 죽어서까지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신이 미워지고 원망스럽고, 그리고 현묵이가 가엾어서 슬퍼하고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선생님. 저도 현묵이 아버지 마음이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방금 그 말씀을 현묵이에게 아버지가 하듯이 들려줄 수 있으세요?”
담임교사는 현묵이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현묵아. 아버지가 미안하다. 현묵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아버지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구나. 정말 미안하다. 우리 현묵이 가엾어서 어쩌니?”
조금은 차분해진 표정으로 다시 진한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는 현묵이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현묵아. 현묵이가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아니면 신나고 즐겁게 살아야 할까?”
현묵이가 담임교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현묵이를 보고 눈물이 담겨있는 담임교사의 눈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조용히 현묵이에게 말했다.
“고맙다. 내 마음을 잘 받아줘서 고맙다, 현묵아.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지만 그동안 네 마음속에서는 아버지와 이별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오늘부터 아버지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을 연습했으면 좋겠다. 아름답게 이별한다는 것은 말이야, 서로를 자유롭게 해준다는 뜻이란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현묵이는 이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서로에게 배려해준다는 뜻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현묵이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김정현 작가가 쓴 『아버지』였다.
“이번에 수학여행 가서 시간 날 때 이 책 한번 읽어보렴. 아버지께서 지방에 내려가 있는 시간 동안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는지 잘 느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삼 년 간 아버지와 헤어졌던 시간에 나누지 못한 정을 책을 통해 경험하게 될 수도 있고 말이야.”
상담이 끝났다고 말하자 담임교사가 씽긋 웃더니 현묵이에게 뒤로 돌라고 했다. 현묵이가 어리둥절하며 뒤로 돌자 담임교사는 현묵이의 등짝을 때렸다. 현묵이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정현묵, 이건 아까 교실에서 나를 놀라게 한 벌이야. 내가 아까 화난 것은 보상받아야잖아! 그리고 이건 우리 집에 있는 우리 아들에게도 내가 내리는 벌이야!”
현묵이는 웃었다. 아마 담임교사가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으면 현묵이는 교실에서 험한 말을 한 것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지냈을 것이다. 그래서 담임교사가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고, 현묵이도 이를 이해한 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담임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말 잘 들어. 너 왜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뭐냐? 이놈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도 몰라? 학교 아빠는 아버지가 아니냐? 넌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알았어?”
순간, 나는 담임교사가 나보다 더 뛰어난 상담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담임교사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묵이를 사랑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다. 담임교사의 그 말은 돌아가신 현묵이 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물인 동시에 현묵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씨앗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강요하는 담임교사와 망설이고 있는 현묵이를 바라보면서 그날 상담은 그렇게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문경보 문청소년교육상담연구소 소장. 전 대광고 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