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육 김은하의 ‘현장에서 만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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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1-05 14:07 조회 8,779회 댓글 0건본문
김해기적의도서관 제공 사진
읽어주는 어른은 아이를 읽어가며 책을 읽는다. 책 읽어주기와 듣기는 매우 역동적인 의미의 상호작용이다.
‘현장에서 만난 질문들’ 연재를 시작하며 2009년 『영국의 독서교육』이라는 부끄러운 책을 하나 쓰
고, 교사, 사서, 학부모 들을 만나러 방방곡곡을 다녔습니
다. 논술학원이 즐비한 대도시의 아파트촌 신설 학교부터 시골 분교, 국립중앙도서관부터 밭에 덩그러니 세워진 작은
도서관까지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눈다고 강연이라는 플래카드를 달았지만, 대도시에서 공부하면서 붙박이 현장
을 한동안 갖지 않고 돌아다닌 저로서는 엄청난 배움의 시
간들이었습니다.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배움을 청해야 할 것 같은 현장을 본 적도 많고,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가
슴 아프던 현장도 혹은 열심히 하고 있다지만 정말 말리고 싶은 현장도 있었습니다.
모두 제가 가진 좁은 식견과 경험치를 넓혀주는 경험과 질문 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에 넘치게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에 넘친다는 것은 능력 밖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써왔다는 뜻입니다. 엄밀한 학자의 입장이라면 모르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에 입 다물고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말해야겠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입장에서는 무엇이라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의논하고 제안하고 답해왔습니다. 학문의 영역에선 계량스푼의 정확성이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당장 아이의 끼니가 더 중요하니까요.
현장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 어떤 연구가 있어왔는지, 어떤 논쟁이 있어왔는지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풀어보려고 합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반복적인 질문들은 “글을 아는데도 읽어달라고 해요.”, “만화만 들고 있어요.”, “전집을 넣어주라는데, 필독도서를 꼭 읽혀야 하나요?”, “편독이 심해요”, “읽기는 좋아하는데 쓰는 걸 어려워해요”, “고전은 꼭 읽어야 하나요?”, “독후활동은 꼭 필요한가요?”. “독서 레벨은 어떻게 아나요?”, “장애 아이를 위한 책 읽기를 알고 싶어요.”,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아이와 책에만 빠져 있는 아이”, “Ebook이나 인터넷 글 읽기는 아이에게 어떤가요?”, “학교와 학교 밖이 협력하는 책 읽기를 모색하고 싶어요.” 등이었습니다. 이런 현장의 가장 가려운 질문에 대한 관련 전문적 연구는 무엇이 있는지, 현장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지 저도 공부해가며 써보려고 합니다.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면, 첫째, 학문의 세계 역시 논쟁적이라는 것. 여러 이론들이 양립하고 입장에 따라 상반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둘째, 적용되는 사회, 사용하는 언어, 교육의 철학이 다른 세계의 학문 성과가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점, 셋째, 연구자의 한계로 관련된 모든 연구물을 다 포괄하지 못할 거라는 점, 그리고 저의 언어적 한계로 한글 및 영어로 쓰여진 연구만 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글자를 다 떼었는데도 자꾸 읽어달라고 해요. 혼자는 안 읽어서 걱정인데, 계속 읽어주어야 하나요?”
강연을 다니면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게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만나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인데,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부모님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유치원생 부모님만 하더라도 읽어주는 것에 마음의 여유가 있는데,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읽기를 독립적으로 하지 않는 것에 조바심이 들고, 어른이 읽어주는 것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더 읽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지요.
오늘은 ‘글자를 안다’는 것과 ‘스스로 글을 이해한다’ 사이의 엄청난 차이, 이 두 가지 능력의 태평양만한 간극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자를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해독(decoding)’이라고 하고, 글자의 뜻을 읽는 능력을 ‘독해(reading comprehension)’라고 합니다. 까막눈인 상태, 즉 문맹(illiteracy)을 벗어나면, 그리고 좀 어려운 해독 능력과 맞춤법을 완성하고 나면, 문자교육에서 손을 놔도 된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글을 읽을 줄 아니, 스스로 읽어라 하고 내버려두는 거지요.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잘 읽어주지 않고, 고학년, 중학생부터는 아예 혼자서만 묵독하도록 둡니다. 그런데, 해독을 할 줄 안다고 해서 글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번 호에서는 왜 아이들이 글자를 알면서도 읽어달라고 하는지, 해독부터 독해까지 어떤 연습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태평양을 건너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즐거울 수 있을지 써보려고 합니다.
글자를 안다고 글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글을 이해하는 데에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비단 글을 막 깨친 1학년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른의 글 읽기에도 해당되는 이야깁니다. 평생 관심둔 적도 없는 분야의 전공서적 하나만 골라 읽어보세요. 혹은 영어로 된 책, 특히 시집을 한번 읽어보세요. 소리내어 읽을 수는 있어도 이해하는 데 애를 써야 할 겁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바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는 최소한 두 가지 활동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는 글자를 읽는 행위, 하나는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입니다. 우선, 글자를 읽는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지요. 씌어 있는 글자가 ‘돌’이든, ‘stone’이든, ‘石’ 혹은 ‘pedra(포르투갈어)’이든 ‘돌’이란 글자는 필연적으로 돌처럼 생겨서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약속을 해서 만들어낸 모양이지요. 언어마다 가지고 있는 이런 임의적인 약속을 아이들은 후천적으로 배우고 익힙니다. 글자를 읽는 것은 암호를 읽는 것과 같고 글자를 쓰는 것은 암호를 규칙대로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글자를 안다’는 것을 해독(decoding)이라고 합니다. 코드를 풀 수 있는 능력이란 뜻이지요.
어릴 적에 동네에서 자식 자랑에 “우리 개똥이는 세 살에 글을 뗀 신동이요.”란 말이 빠지지 않았지요. 우리나라에서 ‘글자 떼기’는 문자교육의 매우 중요한 단계로 여겨져, 초등학교 저학년의 문자교육도 글자를 읽어내는 해독(decoding)과 글자를 쓰는 맞춤법이나 받아쓰기(coding)에 집중합니다. 맞춤법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개념적으로 좀 더 어려운 어휘를 이해하거나 활용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맞춤법이 좀 더 어려운 어휘에 신경을 더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1) 예를 들어, ‘서글프다’, ‘어설프다’
라는 어휘를 설명하거나 활용하는 것보다 ‘닭’, ‘바깥’, ‘밝히다’ 등의 받아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지요.
그러나 글자 떼기 연습이 1학년에만 제한되어 있고 그 이후로는 글을 안다는 것을 전제로 수업이 이루어지다 보니2), 취학 전부터 글자를 떼는 것에 공을 들이게 되고, 초등 1학년 1학기가 넘어서 글자를 술술 읽지 못하면 마음이 매우 조급해집니다.
유창한 읽기는 심봉사 눈 뜨듯 단박에 이뤄지지 않아어떻게 아이들이 글자를 해독하게 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학자 에리Ehri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모르지만 그림처럼 글자를 인식하는 단계에서, 부분적으로 자・모음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단계, 개별 자・모음에 집중하지 않고도 한눈에 글자를 읽어낼 수 있는 단계, 반복적으로 접하는 해독의 규칙을 다른 글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단계로 발달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첫 단계에서는 집에 꽂힌 그림책 제목인 『사과가 쿵』이 눈에 익어 ‘사과’를 그림처럼 통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과자’의 ‘과’과가 ‘ㅅ+ㅏ+ㄱ+ㅗ+ㅏ’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사진, 사랑, 사람의 ‘사’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과’를 잘 읽어내도 ‘사모관대’라는 낯선 단어가 나오면, 단어에서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부분에만 주로 초점을 두게 됩니다. 그러다가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면, 자음과 모음을 분석하지 않고도 ‘사과’란 단어를 한눈에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자주 접하던 단어의 패턴을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여 ‘밝은’의 ‘은’을 ‘ㅏ+ㄹ+ㄱ+ㅇ+ㅡ+ㄴ’의 음가로 읽지 않고, 통으로 인식하여 ‘맑은’, ‘갉은’을 읽을 때도 활용하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은 천천히 음가를 확인하면서 발음하다가 점점 단어를 한눈에 통으로 보고도 발음할 수 있게 됩니다. 유창하게 읽게 되지요. 유창성(fluency)은 글자를 빠르고(rapid) 정확하고(accurate) 표현에 맞게(with expression) 소리내어 읽는 것을 말합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해도 유창성이 완성되려면 시간과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
들을 때와 읽을 때, 이해력 차이와 상관관계
위에서 글을 읽는다는 것에는 최소한 두 가지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임의적인 약속인 글자를 읽어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글자 읽기를 막 시작한 아이들은 글의 해독에 집중을 빼앗겨, 글의 이해에는 애를 덜 쓰게 됩니다. 반면 해독이 자동적으로 되면, 에너지는 글의 이해에 집중됩니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어도 읽어달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유창성이 부족해서, 즉 독해보다는 해독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줄 때, 뭘 하고 있냐고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은 듣고 있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그려낸다고 말합니다.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장면을 그려내고, 사람 얼굴에 대한 묘사를 읽어주면 영상처럼 클로즈업된 얼굴을 상상하며, 음식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맛과 모양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음속에서 그려보는 것은 의미를 적극적으로 구성하도록 해주어 이해를 돕습니다. 해독과 독해에 분산되었던 집중력이, 글을 읽어주면 온전히 이해에만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들을 때의 이해력과 읽을 때의 이해력이 차이가 있는지,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살펴보면3), 저학년일수록 듣기 이해가 읽기 이해보다 더 뛰어나고 그 차이도 심하다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차이가 점점 줄어듭니다. 연구자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상황이 역전되어 읽기를 통한 이해가 듣기보다 높아지는 걸 발견했습니다. 해독이 완전히 자동화되기 위해 초등학교 전 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읽어주면 이해가 더 잘돼요.”라고 하는 아이들의 말은 실제로 이렇게 검증된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등학교 시기, 듣기 이해와 읽기 이해의 상관관계입니다. 들어서 잘 이해하는 아이는 앞으로 읽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읽어달라고 할 때는, 듣고 싶다고 한다면, 읽어주세요. 그리고 글을 잘 못 읽는 1학년에게만 혹은 저학년에게만 책을 읽어줄 게 아니라 초등학교 전 기간에 걸쳐 읽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중학생이라도 유창하게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읽어주기가 여전히 독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량이 많을수록 ‘정신줄’ 놓는다
유창한 읽기는 글자를 안다고 심봉사 눈 뜨듯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요. 에리Ehri는 아이들이 스스로 읽는 책은 이미 소리로 익숙한 말들, 즉 가능한 음성언어의 형식으로 이미 익숙한 단어들로 이루어져야 유창성이 늘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스스로 읽는 책들은 쉬운 어휘로 씌어진, 자신이 음성언어로 만나보았던 어휘로 씌인 책일수록 좋습니다.
해독을 유창하게 하는 4단계를 넘어서면, 글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될 수 있을까요? 해독을 유창하게 할 수 있더라도, 스스로 읽는 책의 어휘가 어렵고 생경하면 또한 이해가 어렵습니다.
“내가 한글의 원리를 가르쳐 주면, 외국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했어요. 한글에 담겨 있는 과학성과 독창성, 그리고 편리함은 어떤 문자와 견줄 바가 아니었거든요.”
정해왕 외 글, 이수진 그림,
『한글 피어나다』, 해와나무. 15.
글자를 잘 아는 2학년 아이여도 ‘과학성’, ‘독창성’, ‘견주다’라는 어휘가 익숙하지 않으면 이 글을 해독할 수는 있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는 어휘가 아니라 일상의 맥락을 넘어서는 추상적인 개념어, 학술적인 언어들이 많이 나오면 이해가 더욱 어렵지요. 3~4학년에서 사회와 과학을 배우기 시작하면 새로운 개념어가 많아지게 되는데, 특정 단어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없거나, 특정 단어가 사용된 사례와 세계를 만나지 못했다면 독해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글을 이해하려면 맥락을 계속 따라가야 하는데, 새로운 어휘나 표현이 많이 나오면 어휘도 맥락도 금방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강연 때 자주하는 실험인데, 다음의 숫자들을 순서대로 읽고 기억해보세요.
283 010 340 734 114 910 392 701 625 820 474 628 301 856 512 031
자, 눈을 감고 외워보세요. 모두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요? 새로운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남지 않고, 정반대로 우리는 ‘정신줄’을 놓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어휘나 개념이 많은 책을 읽으면 많이 남는 것이 아니라, 3~4개도 못 건지고 멍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을 도울 수 있게 시각화를 한다거나 소리를 내본다거나 숫자마다 연상을 해본다거나 하는 인지적 전략을 쓰거든요. 정신줄이 바로 이 인지적 전략(cognitive strategy)이지요. 6~7개 정도를 애를 써서 외우다가 더 외우려고 하면, 읽고는 있지만 잘 외워지지 않지요. 열 개가 넘어가면, 읽고는 있지만 외우려는 시도조차 포기하기 쉽습니다. 더 이상 인지적 전략을 쓰려고도 하지 않는 거지요. 정신줄을 놓는 겁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 너머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
자, 아이들이 도움 없이 혼자 읽는 책에서 새로운 어휘가 한 개 나왔다고 합시다. 새롭게 설명된 단어라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고(예, 육식동물이란 ~이다), 설명되지 않은 새로운 어휘라면(예, 지난 수학 시간에 자랑 ‘컴퍼스’ 가져오라 했지?) 앞뒤 문맥을 살펴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정보가 많은 책이라면 위에서 실험한 대로 금방 인지적인 전략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섯손가락 기법이라고, 한 페이지에 새로운 어휘나 표현에 손가락을 대어보게 한 뒤, 빈도가 0~2개라면 ‘간식책’, 2~3개라면 ‘밥책’, 4~5개라면 ‘보약책’으로 분류하게 합니다. 스스로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간식책을 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고 설명도 보탤 수 있다면 밥책이나 보약책이 좋구요. 위의 연구에서처럼 듣기의 이해력이 읽기의 이해력보다 훨씬 더 높으니까요.
그럼, 유창하게 글자를 자동적으로 인식하고 어휘를 잘 알고 있는 글을 읽으면 아이들이 의미를 잘 구성할 수 있을까요? 아래의 질문을 아이들에게 해보면 재미있는 답을 듣게 됩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읽을 줄 아는 1학년에게 “그럼 3등은 기억할까?” 하고 물으면, “음. 기억해요.”
“4등은?”
“네. 2등이 아니니까 기억해요.”라고 답합니다. 글자 그대로 의미를 파악하는 거지요.
문장의 의미는 아는 단어들의 의미를 다 합친 것과는 다르고,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 너머의 의미를 읽는다는 것이기에 독해는 부단한 확장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아이들이 글자를 아는데도 읽어달라고 하는 이유들을 설명했습니다. 해독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서, 새로운 어휘를 처리하느라, 새로운 표현과 복잡한 문장의 구조 등등으로 이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어른으로부터 모범적인 읽기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글을 내용에 맞게 끊어 읽는 법, 정확하게 발음하는 법, 적절한 억양과 운율로 내용을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실제 책을 읽어줄 때, 녹음기를 틀어 놓는 것과는 다른 활동들이 일어납니다. 읽어주는 사람의 비언어적인 힌트, 읽어주는 억양이나 얼굴 표정, 몸짓 등이 의미를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읽어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의 이해도에 따라 속도를 줄이기도 하고 쉬운 말로 풀어 말하기도 하고, 그림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들으면서 중간에 쑥 끼어들어 말뜻이나 문장의 의미를 묻기도 합니다. 같이 감동과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읽어주기와 듣기는 녹음 테이프 듣기와는 달리 매우 역동적인 의미의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이향근 (2010). 이야기 읽어주기 방법을 활용한 어휘력 향상 방안. 독서연구, 24, 412.
2) 정종성(2012). 초등학교 읽기 교과에서의 읽기전략 분석. 아동교육, 21(2), 283.
3) Diakidoy et al. (2005). The relationship
between listening and reading comprehension of different types of text at increasing grade levels.
Reading Psychology, 26, 55-80.
김은하 고려대학교 교육학과(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영국의 독서교육』을 썼으며, 중앙대, 경희대, 고려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의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UBC)에 머물면서, 독서교육 현장을 누비며 연구 활동 중이다.
읽어주는 어른은 아이를 읽어가며 책을 읽는다. 책 읽어주기와 듣기는 매우 역동적인 의미의 상호작용이다.
‘현장에서 만난 질문들’ 연재를 시작하며 2009년 『영국의 독서교육』이라는 부끄러운 책을 하나 쓰
고, 교사, 사서, 학부모 들을 만나러 방방곡곡을 다녔습니
다. 논술학원이 즐비한 대도시의 아파트촌 신설 학교부터 시골 분교, 국립중앙도서관부터 밭에 덩그러니 세워진 작은
도서관까지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눈다고 강연이라는 플래카드를 달았지만, 대도시에서 공부하면서 붙박이 현장
을 한동안 갖지 않고 돌아다닌 저로서는 엄청난 배움의 시
간들이었습니다.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배움을 청해야 할 것 같은 현장을 본 적도 많고,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가
슴 아프던 현장도 혹은 열심히 하고 있다지만 정말 말리고 싶은 현장도 있었습니다.
모두 제가 가진 좁은 식견과 경험치를 넓혀주는 경험과 질문 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에 넘치게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에 넘친다는 것은 능력 밖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써왔다는 뜻입니다. 엄밀한 학자의 입장이라면 모르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에 입 다물고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말해야겠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입장에서는 무엇이라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의논하고 제안하고 답해왔습니다. 학문의 영역에선 계량스푼의 정확성이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당장 아이의 끼니가 더 중요하니까요.
현장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 어떤 연구가 있어왔는지, 어떤 논쟁이 있어왔는지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풀어보려고 합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반복적인 질문들은 “글을 아는데도 읽어달라고 해요.”, “만화만 들고 있어요.”, “전집을 넣어주라는데, 필독도서를 꼭 읽혀야 하나요?”, “편독이 심해요”, “읽기는 좋아하는데 쓰는 걸 어려워해요”, “고전은 꼭 읽어야 하나요?”, “독후활동은 꼭 필요한가요?”. “독서 레벨은 어떻게 아나요?”, “장애 아이를 위한 책 읽기를 알고 싶어요.”,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아이와 책에만 빠져 있는 아이”, “Ebook이나 인터넷 글 읽기는 아이에게 어떤가요?”, “학교와 학교 밖이 협력하는 책 읽기를 모색하고 싶어요.” 등이었습니다. 이런 현장의 가장 가려운 질문에 대한 관련 전문적 연구는 무엇이 있는지, 현장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지 저도 공부해가며 써보려고 합니다.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면, 첫째, 학문의 세계 역시 논쟁적이라는 것. 여러 이론들이 양립하고 입장에 따라 상반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둘째, 적용되는 사회, 사용하는 언어, 교육의 철학이 다른 세계의 학문 성과가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점, 셋째, 연구자의 한계로 관련된 모든 연구물을 다 포괄하지 못할 거라는 점, 그리고 저의 언어적 한계로 한글 및 영어로 쓰여진 연구만 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글자를 다 떼었는데도 자꾸 읽어달라고 해요. 혼자는 안 읽어서 걱정인데, 계속 읽어주어야 하나요?”
강연을 다니면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게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만나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인데,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부모님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유치원생 부모님만 하더라도 읽어주는 것에 마음의 여유가 있는데,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읽기를 독립적으로 하지 않는 것에 조바심이 들고, 어른이 읽어주는 것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더 읽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지요.
오늘은 ‘글자를 안다’는 것과 ‘스스로 글을 이해한다’ 사이의 엄청난 차이, 이 두 가지 능력의 태평양만한 간극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자를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해독(decoding)’이라고 하고, 글자의 뜻을 읽는 능력을 ‘독해(reading comprehension)’라고 합니다. 까막눈인 상태, 즉 문맹(illiteracy)을 벗어나면, 그리고 좀 어려운 해독 능력과 맞춤법을 완성하고 나면, 문자교육에서 손을 놔도 된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글을 읽을 줄 아니, 스스로 읽어라 하고 내버려두는 거지요.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잘 읽어주지 않고, 고학년, 중학생부터는 아예 혼자서만 묵독하도록 둡니다. 그런데, 해독을 할 줄 안다고 해서 글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번 호에서는 왜 아이들이 글자를 알면서도 읽어달라고 하는지, 해독부터 독해까지 어떤 연습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태평양을 건너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즐거울 수 있을지 써보려고 합니다.
글자를 안다고 글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글을 이해하는 데에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비단 글을 막 깨친 1학년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른의 글 읽기에도 해당되는 이야깁니다. 평생 관심둔 적도 없는 분야의 전공서적 하나만 골라 읽어보세요. 혹은 영어로 된 책, 특히 시집을 한번 읽어보세요. 소리내어 읽을 수는 있어도 이해하는 데 애를 써야 할 겁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바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는 최소한 두 가지 활동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는 글자를 읽는 행위, 하나는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입니다. 우선, 글자를 읽는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지요. 씌어 있는 글자가 ‘돌’이든, ‘stone’이든, ‘石’ 혹은 ‘pedra(포르투갈어)’이든 ‘돌’이란 글자는 필연적으로 돌처럼 생겨서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약속을 해서 만들어낸 모양이지요. 언어마다 가지고 있는 이런 임의적인 약속을 아이들은 후천적으로 배우고 익힙니다. 글자를 읽는 것은 암호를 읽는 것과 같고 글자를 쓰는 것은 암호를 규칙대로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글자를 안다’는 것을 해독(decoding)이라고 합니다. 코드를 풀 수 있는 능력이란 뜻이지요.
어릴 적에 동네에서 자식 자랑에 “우리 개똥이는 세 살에 글을 뗀 신동이요.”란 말이 빠지지 않았지요. 우리나라에서 ‘글자 떼기’는 문자교육의 매우 중요한 단계로 여겨져, 초등학교 저학년의 문자교육도 글자를 읽어내는 해독(decoding)과 글자를 쓰는 맞춤법이나 받아쓰기(coding)에 집중합니다. 맞춤법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개념적으로 좀 더 어려운 어휘를 이해하거나 활용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맞춤법이 좀 더 어려운 어휘에 신경을 더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1) 예를 들어, ‘서글프다’, ‘어설프다’
라는 어휘를 설명하거나 활용하는 것보다 ‘닭’, ‘바깥’, ‘밝히다’ 등의 받아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지요.
그러나 글자 떼기 연습이 1학년에만 제한되어 있고 그 이후로는 글을 안다는 것을 전제로 수업이 이루어지다 보니2), 취학 전부터 글자를 떼는 것에 공을 들이게 되고, 초등 1학년 1학기가 넘어서 글자를 술술 읽지 못하면 마음이 매우 조급해집니다.
유창한 읽기는 심봉사 눈 뜨듯 단박에 이뤄지지 않아어떻게 아이들이 글자를 해독하게 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학자 에리Ehri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모르지만 그림처럼 글자를 인식하는 단계에서, 부분적으로 자・모음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단계, 개별 자・모음에 집중하지 않고도 한눈에 글자를 읽어낼 수 있는 단계, 반복적으로 접하는 해독의 규칙을 다른 글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단계로 발달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첫 단계에서는 집에 꽂힌 그림책 제목인 『사과가 쿵』이 눈에 익어 ‘사과’를 그림처럼 통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과자’의 ‘과’과가 ‘ㅅ+ㅏ+ㄱ+ㅗ+ㅏ’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사진, 사랑, 사람의 ‘사’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과’를 잘 읽어내도 ‘사모관대’라는 낯선 단어가 나오면, 단어에서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부분에만 주로 초점을 두게 됩니다. 그러다가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면, 자음과 모음을 분석하지 않고도 ‘사과’란 단어를 한눈에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자주 접하던 단어의 패턴을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여 ‘밝은’의 ‘은’을 ‘ㅏ+ㄹ+ㄱ+ㅇ+ㅡ+ㄴ’의 음가로 읽지 않고, 통으로 인식하여 ‘맑은’, ‘갉은’을 읽을 때도 활용하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은 천천히 음가를 확인하면서 발음하다가 점점 단어를 한눈에 통으로 보고도 발음할 수 있게 됩니다. 유창하게 읽게 되지요. 유창성(fluency)은 글자를 빠르고(rapid) 정확하고(accurate) 표현에 맞게(with expression) 소리내어 읽는 것을 말합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해도 유창성이 완성되려면 시간과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
들을 때와 읽을 때, 이해력 차이와 상관관계
위에서 글을 읽는다는 것에는 최소한 두 가지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임의적인 약속인 글자를 읽어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글자 읽기를 막 시작한 아이들은 글의 해독에 집중을 빼앗겨, 글의 이해에는 애를 덜 쓰게 됩니다. 반면 해독이 자동적으로 되면, 에너지는 글의 이해에 집중됩니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어도 읽어달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유창성이 부족해서, 즉 독해보다는 해독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줄 때, 뭘 하고 있냐고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은 듣고 있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그려낸다고 말합니다.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장면을 그려내고, 사람 얼굴에 대한 묘사를 읽어주면 영상처럼 클로즈업된 얼굴을 상상하며, 음식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맛과 모양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음속에서 그려보는 것은 의미를 적극적으로 구성하도록 해주어 이해를 돕습니다. 해독과 독해에 분산되었던 집중력이, 글을 읽어주면 온전히 이해에만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들을 때의 이해력과 읽을 때의 이해력이 차이가 있는지,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살펴보면3), 저학년일수록 듣기 이해가 읽기 이해보다 더 뛰어나고 그 차이도 심하다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차이가 점점 줄어듭니다. 연구자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상황이 역전되어 읽기를 통한 이해가 듣기보다 높아지는 걸 발견했습니다. 해독이 완전히 자동화되기 위해 초등학교 전 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읽어주면 이해가 더 잘돼요.”라고 하는 아이들의 말은 실제로 이렇게 검증된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등학교 시기, 듣기 이해와 읽기 이해의 상관관계입니다. 들어서 잘 이해하는 아이는 앞으로 읽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읽어달라고 할 때는, 듣고 싶다고 한다면, 읽어주세요. 그리고 글을 잘 못 읽는 1학년에게만 혹은 저학년에게만 책을 읽어줄 게 아니라 초등학교 전 기간에 걸쳐 읽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중학생이라도 유창하게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읽어주기가 여전히 독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량이 많을수록 ‘정신줄’ 놓는다
유창한 읽기는 글자를 안다고 심봉사 눈 뜨듯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요. 에리Ehri는 아이들이 스스로 읽는 책은 이미 소리로 익숙한 말들, 즉 가능한 음성언어의 형식으로 이미 익숙한 단어들로 이루어져야 유창성이 늘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스스로 읽는 책들은 쉬운 어휘로 씌어진, 자신이 음성언어로 만나보았던 어휘로 씌인 책일수록 좋습니다.
해독을 유창하게 하는 4단계를 넘어서면, 글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될 수 있을까요? 해독을 유창하게 할 수 있더라도, 스스로 읽는 책의 어휘가 어렵고 생경하면 또한 이해가 어렵습니다.
“내가 한글의 원리를 가르쳐 주면, 외국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했어요. 한글에 담겨 있는 과학성과 독창성, 그리고 편리함은 어떤 문자와 견줄 바가 아니었거든요.”
정해왕 외 글, 이수진 그림,
『한글 피어나다』, 해와나무. 15.
글자를 잘 아는 2학년 아이여도 ‘과학성’, ‘독창성’, ‘견주다’라는 어휘가 익숙하지 않으면 이 글을 해독할 수는 있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는 어휘가 아니라 일상의 맥락을 넘어서는 추상적인 개념어, 학술적인 언어들이 많이 나오면 이해가 더욱 어렵지요. 3~4학년에서 사회와 과학을 배우기 시작하면 새로운 개념어가 많아지게 되는데, 특정 단어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없거나, 특정 단어가 사용된 사례와 세계를 만나지 못했다면 독해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글을 이해하려면 맥락을 계속 따라가야 하는데, 새로운 어휘나 표현이 많이 나오면 어휘도 맥락도 금방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강연 때 자주하는 실험인데, 다음의 숫자들을 순서대로 읽고 기억해보세요.
283 010 340 734 114 910 392 701 625 820 474 628 301 856 512 031
자, 눈을 감고 외워보세요. 모두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요? 새로운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남지 않고, 정반대로 우리는 ‘정신줄’을 놓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어휘나 개념이 많은 책을 읽으면 많이 남는 것이 아니라, 3~4개도 못 건지고 멍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을 도울 수 있게 시각화를 한다거나 소리를 내본다거나 숫자마다 연상을 해본다거나 하는 인지적 전략을 쓰거든요. 정신줄이 바로 이 인지적 전략(cognitive strategy)이지요. 6~7개 정도를 애를 써서 외우다가 더 외우려고 하면, 읽고는 있지만 잘 외워지지 않지요. 열 개가 넘어가면, 읽고는 있지만 외우려는 시도조차 포기하기 쉽습니다. 더 이상 인지적 전략을 쓰려고도 하지 않는 거지요. 정신줄을 놓는 겁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 너머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
자, 아이들이 도움 없이 혼자 읽는 책에서 새로운 어휘가 한 개 나왔다고 합시다. 새롭게 설명된 단어라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고(예, 육식동물이란 ~이다), 설명되지 않은 새로운 어휘라면(예, 지난 수학 시간에 자랑 ‘컴퍼스’ 가져오라 했지?) 앞뒤 문맥을 살펴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정보가 많은 책이라면 위에서 실험한 대로 금방 인지적인 전략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섯손가락 기법이라고, 한 페이지에 새로운 어휘나 표현에 손가락을 대어보게 한 뒤, 빈도가 0~2개라면 ‘간식책’, 2~3개라면 ‘밥책’, 4~5개라면 ‘보약책’으로 분류하게 합니다. 스스로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간식책을 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고 설명도 보탤 수 있다면 밥책이나 보약책이 좋구요. 위의 연구에서처럼 듣기의 이해력이 읽기의 이해력보다 훨씬 더 높으니까요.
그럼, 유창하게 글자를 자동적으로 인식하고 어휘를 잘 알고 있는 글을 읽으면 아이들이 의미를 잘 구성할 수 있을까요? 아래의 질문을 아이들에게 해보면 재미있는 답을 듣게 됩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읽을 줄 아는 1학년에게 “그럼 3등은 기억할까?” 하고 물으면, “음. 기억해요.”
“4등은?”
“네. 2등이 아니니까 기억해요.”라고 답합니다. 글자 그대로 의미를 파악하는 거지요.
문장의 의미는 아는 단어들의 의미를 다 합친 것과는 다르고,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 너머의 의미를 읽는다는 것이기에 독해는 부단한 확장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아이들이 글자를 아는데도 읽어달라고 하는 이유들을 설명했습니다. 해독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서, 새로운 어휘를 처리하느라, 새로운 표현과 복잡한 문장의 구조 등등으로 이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어른으로부터 모범적인 읽기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글을 내용에 맞게 끊어 읽는 법, 정확하게 발음하는 법, 적절한 억양과 운율로 내용을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실제 책을 읽어줄 때, 녹음기를 틀어 놓는 것과는 다른 활동들이 일어납니다. 읽어주는 사람의 비언어적인 힌트, 읽어주는 억양이나 얼굴 표정, 몸짓 등이 의미를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읽어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의 이해도에 따라 속도를 줄이기도 하고 쉬운 말로 풀어 말하기도 하고, 그림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들으면서 중간에 쑥 끼어들어 말뜻이나 문장의 의미를 묻기도 합니다. 같이 감동과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읽어주기와 듣기는 녹음 테이프 듣기와는 달리 매우 역동적인 의미의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이향근 (2010). 이야기 읽어주기 방법을 활용한 어휘력 향상 방안. 독서연구, 24, 412.
2) 정종성(2012). 초등학교 읽기 교과에서의 읽기전략 분석. 아동교육, 21(2), 283.
3) Diakidoy et al. (2005). The relationship
between listening and reading comprehension of different types of text at increasing grade levels.
Reading Psychology, 26, 55-80.
김은하 고려대학교 교육학과(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영국의 독서교육』을 썼으며, 중앙대, 경희대, 고려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의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UBC)에 머물면서, 독서교육 현장을 누비며 연구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