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김은하의 ‘현장에서 만난 질문들’ 3]전집을 넣어 주라던데, 필독도서를 읽혀야 한다는데… - 책 선택, 그 귀중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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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4:56 조회 8,974회 댓글 0건본문
아이들 스스로 책 고를 기회,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창작, 전래, 명작, 위인, 철학, 자연관찰, 수학동화, 원리과학, 역사, 한자, 영어 등등 시기별로 읽혀야 한다는 전집이 정말 많은데요. 유명한 육아 사이트나 카페, 심지어 홈쇼핑에서까지 아이의 발달에 맞추어 전집을 읽어두는 게 필수라던데, 그렇게 읽는 게 좋은 건가요? 아이들이 크면서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분야의 책들이 정해져 있는 건가요?”
“아이들에게 읽고 싶은 책 골라와 봐라 하면 우르르 몇 가지 종류의 책으로만 몰려가요. 제가 보기에 영 아니올시다 싶은 책들만 골라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교장 선생님도 부탁하셔서 여러 단체의 추천목록들을 참고해서 목록을 만들어요. 그런데 목록에 있는 책들에 대해 아이들 반응이 썩 좋지 않아요. 어떤 책들을 정하면 좋을까요?”
첫 질문은 학부모들로부터, 두 번째 질문은 선생님들이나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듣게 됩니다.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맞는 책들을 어른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면 좋을까를 고민한다는 공통점이 두 질문에 있습니다. 동시에, 이 두 질문은 아이들이 읽을 책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정하는 것이라는 가정이 숨어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좋은 책인가에 대한 고민, 아이들에게 어떻게 좋은 책을 읽게 할까 하는 고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고민의 결론이 어른들이 좋은 책을 다 골라주는 것으로 귀결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삼시 세 끼 영양가 있는 급식만 먹인 후, 자취하라고 독립시키면 스스로 균형 있는 먹거리를 꾸릴 수 있을까요? 나의 성장과 생활을 위해 어떤 영양소가 필요한지, 어디서 어떻게 장을 보는지, 어떤 재료와 도구로 요리를 하는지 배워야지요. 어떻게 하는지 안 가르쳐주고, 요리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 적도 없고, 연습하는 걸 지켜봐주지도 않고 내버려두면,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십상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까요?”라고요. 이번 호에서는 아이들의 책 선택이 왜 중요하며, 스스로 책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마련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책 선택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고 이에 바탕을 둔 실천적인 팁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전집 읽기, 한국 아이들의 독특한 독서경험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8년 출판통계에 따르면, 아동도서의 단행본 출판은 4,590억원 정도인데 비해, 전집 출판은 시장규모가 1조 정도에서 3조까지로, 단행본 시장의 2배에서 6배에 가깝다고 추정됩니다.1) 추정치는 정확한 재계산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나라 가정에서 전집을 읽는 비율은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 아이들만 갖는 독특한 독서 경험 중하나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택배 박스로 배달된 책을 시리즈별로 읽는다는 거지요. 전집을 주로 읽은 아이들은 자기 책을 자기가 골라서 사 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 또한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모델이 되거나,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아이에게 가르쳐주거나, 아이가 책을 고르는 과정을 옆에서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에서 독서가 강조되고 특히 유아기 가정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예전보다 부모님들의 부담감이 커졌습니다. 전집은 단행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고, 연령별로 단계별로 읽을 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빠지는 분야 없이 골고루 구성되어 있으며, 일일이 고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책 구입에 신경이 덜 쓰인다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또한 학교 학습과 비슷한 영역의 책들로 구비되어 학습 효과가 높을 것 같고, 관리 교사 제도가 있는 경우도 있어서 아이의 독서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부모님들이 선호합니다. 전집을 출판하는 대형 출판사는 큰 자금과 인력을 바탕으로, 작은 출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비용과 준비기간을 가지고 좋은 시리즈물을 번역하거나 창작하여 출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전집은 다수의 책을 한 질로 구성하여 한꺼번에만 판매되기 때문에, 전집에 수록된 낱권을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1–2권의 책이 마음에 들어도 따로 살 수 없고, 몇 십만 원을 주고 몇 십 권짜리 세트를 사야만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번역되어 전집으로 출판된 대부분의 외국 책들은 본국에서 낱권으로 살 수 있고, 아이들은 대부분 낱권으로 구입합니다. 묶어 파는 것은 낱권을 따로 주문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거지요. 모든 아이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포괄하여 책을 구입하는 학교나 도서관 혹은 매니아를 위한 편의 제공일 뿐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에릭 칼Eric Carle의 그림책들로, 원래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책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전집의 일부로 묶여 그의 독특한 콜라주와 색채, 책의 형식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들을 낱권으로는 만나볼 길이 없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쉬운 설명과 방대한 사진, 창의적인 편집 디자인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어린이용 논픽션인 도링 킨더슬리Dorling Kindersley 출판사의 비주얼 박물관Visual Museum도 전집으로만 묶어 팝니다. 그래서 ‘발레’ 편을 소장하고 싶으면, ‘무기’와 ‘전쟁’ 편을 포함한 몇 십 권을 같이 사야 합니다. 한국은 이런 책들을 각 권으로 소장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지요.
루소와 프뢰벨이 무덤에서 뛰쳐나와 가슴 칠 일
우리나라 전집 출판사가 낱권 판매를 하지 않는 이유로 상업적인 이해 외에 교육적인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의 머릿속에 책은 가구나 가전제품처럼 부모님이 큰돈을 써서 들여놓는 것이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서 하나씩 골라 사는 것, 용돈을 받아 사는 것,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골라가며 읽는 것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도서정가제의 파괴와 전집 구입으로 동네에서 서점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이 집 근처에서 쉽게 자기가 읽을 책을 직접 선택할 기회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집 읽기가 우리나라 아이들의 독서문화에 주고 있는 더 큰 문제는 자녀의 나이에 따라 읽어야 할 읽기 영역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다독을 위해서는 전집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은연중에 전파하고 있다는 겁니다. 24개월부터는 자연관찰 전집을, 36개월부터는 전래동화를, 60개월부터는 역사와 위인을, 이런 식의 독서 단계가 마치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조기부터 많은 책을 읽히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 책을 많이 구비할 필요가 있으므로 전집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만연합니다. 전집 읽기 붐을 일으킨 한 유명 사이트는 유아기에 집중적인 독서 몰입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간증’이 될 수는 있어도 모든 아이들에게 보편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아용 출판사 이름으로도 쓰이는 페스탈로치와 루소와 프뢰벨이 들으면 무덤을 박차고 나와 가슴을 칠 주장입니다. 독서 교육계에서, 더 광범위한 교육학 내에서도 위의 주장들을 지지할 만한 단 한 편의 학술논문도 없다고 단언합니다.2)
전집을 살 때는 출판사의 책 목록을 부모가 선택합니다만, 단행본으로 책을 구입할 때도 부모가 아이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대다수가 어떻게 책을 찾는지 어떻게 고르는지를 배우지 못한 채로 학교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와서도 책 선택의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롭게 골라 읽으라고 하여 책 선택의 폭이 무한히 넓어지거나, 학년별 필독도서 목록 등으로 지나치게 좁아집니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추천도서의 경우 과연 선생님들도 다 읽고 추천하는 걸까 싶은 목록들도 있습니다. 더 커서도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중학생이 되기 전에 읽어야 할’ ‘교과서에 나오는~’ ‘OO대학교 추천도서’ 목록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선택에 기대든, 부모가 골라준 낱권을 읽든, 학교의 필독도서를 읽든, 아이들은 목록을 읽는 사람이 됩니다. 어릴 때 책에 붙인 스티커가 체크리스트로 바뀌었을 뿐이지요. 세상에 어떤 종류의 책들이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택할지 알려주고, 책을 골라보는 연습 기회를 주고, 그 선택으로 읽은 책이 자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나눌 수 있는 교육적인 경험 없이요.
책 선택은 읽기 동기를 높인다
책 선택은 왜 중요할까요? 많은 학자들로부터 폭넓은 동의를 받고 있는 주장은 책을 자유롭게 선택하면 읽고 싶어지는 내적 동기를 높이고, 읽기를 지속하게 만들며, 독서의 즐거움을 높여주고, 독서에 대한 주인의식과 자율성을 높인다고 합니다.3) 읽기 동기와 몰입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거쓰리John T. Guthrie는 아이들의 읽기 동기와 몰입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로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책을 읽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선택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독해 가능성readability이고, 다른 하나는 흥미interestingness입니다. 지난 연재(9월호) 글에서 썼듯이, 아이들은 해독과 독해가 가능한 책, 즉 소리 내어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유창하게 읽어내며,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고릅니다.
책의 선택에 관여하는 흥미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흥미personal interests’ 혹은 ‘주제에 대한 흥미topic interests’라고 합니다. 이는 개인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가져온 흥미로 아이들마다 다르고 장기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여러 연구들에서 개인적인 흥미는 아이들의 독해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읽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주제의 글을 읽을 때 자신의 수준보다 2–3 레벨 정도 좀 더 어려워도 감히 읽어보려고 한답니다. 새로운 단어나 어려운 문장 구조를 접하더라도 다른 주제의 책이었다면 포기했을 만한 글을 읽어내려 한다는 거지요.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으면, 우주에 관련된 논픽션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골라보도록 하면 읽기에 대한 동기와 독해력이 높아지는 식이지요.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흥미가 높으면 배경지식도 더 많이 갖게 되고, 다시 이는 주제에 대해서 더 읽고 알고 싶어지는 동기를 높이는 선순환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독서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 책을 고르게 할 때는 혹은 추천할 때는 아이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아이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수준의 글이 읽기에 편하고 도전적인지, 이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은 무엇인지 말이지요.
모든 아이들이 모든 주제에 대해서 높은 관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주제에 대해서만 선택을 국한하면,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지지요. 이때 두 번째 종류의 흥미인 ‘상황적인 흥미situational interests’가 높아지면 아이들의 책 선택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이 참신해서, 글이나 그림이 흥미롭게 전개되어서, 읽기 전 혹은 읽고 난 후의 활동이 재미있어서 단기적으로 갖게 되는 흥미입니다. 예를 들어서, 참신한 시각으로 구성된 책, 문체와 그림, 사진, 디자인이 돋보이는 책은 평소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서도 흥미를 일으킵니다. 또한 선생님이 글을 쓴 작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여 설명을 해주었더니 평소에 읽지 않았을 만한 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든지,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식물도감인데 조별로 식물 찾기 놀이를 하니 아이들이 열심히 뒤적거리더라 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상황적인 흥미는 어떤 글이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교사와 사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양한 좋은 책을 수서하는 것, 서가를 주제별로 눈에 띄게 꾸미는 것, 책을 흥미롭게 안내하는 것, 책과 아이들의 경험과 관점을 연결 짓는 것, 책을 의미 있는 문맥 속에서 소개하는 일은 아이들의 상황적인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작업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4) 책을 선택할 수 있었던 아이들은 주어진 책을 읽었던 아이들보다 훨씬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정보를 찾았습니다. 책을 덜 뒤적이며, 훨씬 더 계획적으로 불필요한 정보를 뛰어넘고, 주요 용어를 단서로 삼아 필요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주제에 대한 흥미와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 좀 더 효과적인 독해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아이들이 찾아낸 정보를 시험지의 답처럼 적게 했을 때보다 게시판에 꾸미게 했을 때, 더 높은 읽기 동기와 독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험보다는 게시판 꾸미기가 더 높은 상황적인 흥미를 끌어낸 것으로 연구자들은 해석합니다.
선택하도록 돕자, 찍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아이들에게 마음껏 책을 골라보라고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읽기 목적에 맞고 읽기에 적합한 수준으로 책을 고르지 못합니다. 특히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아이들, 읽기에 대한 효능감이 낮아 자신이 잘 읽지 못한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힘든데요.5) 이들은 친구나 선생님에게 선택을 위임하거나, 마지막까지 선택을 유보하다가 급하게 아무거나 결정을 하거나, 읽었던 책을 다시 고르는 안전한 선택을 합니다. 선택은 선택지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즉 선택을 할 책들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조금은 알아야 ‘고르는’ 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 되어서 오디션을 하는데 처음 본 신인배우들, 이병원, 송종기, 문고리의 이름만 보여주면, 우리는 누가 연기를 잘하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각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보지 못한 채, 이름의 인상을 보고 가늠할 따름입니다. 감으로 촉으로 찍는 겁니다. 반면에 그들의 연기를 몇 장면 볼 수 있다면, 이들의 연기를 봐왔던 누군가가 이들을 소개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들 가운데 내가 원하는 영화를 위해 누가 적절한지 선택할 수가 있지요. 즉 선택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선택은 정보에 바탕을 둔 선택informed choice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의 저자와 제목만 열거해주면서, 이 가운데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선택하기보다는 찍도록 만듭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많은 권장도서 목록, 심지어 필독도서 목록이 서지사항 중 저자와 제목, 출판사만을 주욱 나열하는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아이들이 찍지 않고 선택하게 하려면 각 책들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정보가 같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추천도서 목록을 만든다면, 저자에 대한 안내, 책의 장르, 내용, 표지, 페이지 수, 난이도, 추천의 이유, 추천의 대상이 서술되어야 합니다. 추천도서를 직접 보여주는 것, 일부를 읽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추천도서 목록은 읽어야 하는 책을 알려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미 있는 책 선택을 도와주기 위해 만드는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아이들이 정보에 바탕을 둔 책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실천적인 팁들이 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경험한 책의 세계는 교사나 사서만큼 넓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와 책의 형태에 대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너무 많은 선택지는 선택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일정한 한도 내에서 선택하게 하는 것도 연습에 도움이 됩니다. 학교 도서관이 발달된 나라에서는 15분 정도 미니 수업mini lesson으로 한 장르에 대해서 특징이나 표현 양식, 대표작, 서가의 위치 등을 알려주고, 20-30분 동안 아이들에게 그 장르에서 책을 구경하고 골라서 읽어보게 합니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장르의 픽션과 논픽션에 대한 정보를 아이들이 알게 되고, 이후에 책을 선택할 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지요. 예를 들어, 여행기나 추리소설, 만화 등을 각각 미니 수업으로 구성해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정보가 없어 잘 고르지 못했던 장르, 장르는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대표작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국어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시나 소설류 말고, 사진책, 잡지, 신문, 다양한 주제의 논픽션 등은 사서교사가 수업으로 구성할 수 있는 분야이지요.
사서 선생님이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몇몇 연구자들은 선생님이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어떻게 선택하고 있는지 자세히 풀어 이야기하여 아이들에게 모델이 되는 방법도 제안합니다.6) 예를 들어, “작가 OO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다른 책을 읽어보려고 했다. 그래서 도서관 사이트에서 책을 찾아보고 온라인으로 서평도 읽어보았다. 서점에서 몇 페이지 읽어보았더니 어렵지 않았고 글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학기말이라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서 독서에 짧은 토막 시간밖에 할애할 수 없었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방학 때 시간이 나면 본격적으로 읽으려고 미뤄두고, 좀 더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다른 책을 골랐다.” 이런 선생님의 이야기는 선택의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도록 하고, 정리된 사항을 포스터로 만들어 학급이나 도서관에 붙여 놓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내가 읽을 수 있겠는지? 훑어보았을 때 흥미롭게 느껴지는지? 내가 좋아하는 주제인지? 첫 장을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었는지? 어려운 단어들이 너무 많은지? 지금보다는 나중에 읽는 게 나을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지? 좋아하는 시리즈의 책인지? 나의 기분은 어떤지?’를 고려할 수 있겠지요. 기준은 ‘학년’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읽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공부, 직업, 시험, 호기심, 휴식, 놀이, 시간 보내기, 기분 전환, 취미에 도움되기, 삶에 대한 반성 등 다양한 상황마다 다양한 독서의 목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자율적인 책 선택을 돕는 좀 더 체계화한 프로그램으로 ‘BOOKMATCH’가 있는데, 아이들이 책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7) 책의 길이가 맞는가?(Book Length),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나?(Ordinary Language), 책의 크기나 단어 수, 챕터의 길이 등 구조는 적절한가?(Organization),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있나?(Knowledge to Prior to Book), 이해할 수 있는 글인가?(Manageble Text), 장르가 흥미로운가?(Appeal to Genre), 적합한 주제인가?(Topic Appropriate), 연관 지을 수 있는가?(Connection), 흥미가 있는가?(High–Interest)를 살펴보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도서관의 정보탐색 수업은 아이들에게 자료를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최근 사서교사들이 있는 학교에서 도서관 자료 찾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교육하고 있고, 교과–사서 협력수업을 통해서도 원하는 자료를 도서관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찾는 법을 가르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보 탐색과 더불어, 탐색된 정보를 자신의 글이나 작업에 인용할 때 표절하지 않는 방법, 인용에 대한 출처를 밝히는 방법, 저작권에 대한 교육은 정보를 다루는 사서교사가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독립적인 독자가 되는 첫 단추이지요. 그것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배우고 연습하고 시행착오도 거쳐야 만들어지는 능력입니다. 그래야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누군가 읽을 책을 지정해주지 않더라도 평생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독자가 됩니다. 저는 교육의 측면에서 학교에 사서 선생님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1) 유정규, “한국 아동 전집의 출판 동향”, 「아동 전집 출판 현황과 쟁점, 2009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심포지엄 자료집」,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 17쪽. 강기준 19쪽 재인용.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의 2009년, 2010년 심포지엄은 한국 아동의 독서 경험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이제껏 본격적으로 분석되지 않았던 어린이 전집 출판을 분석한 매우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전집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확산되는지, 전집 구성 및 마케팅의 방식은 어떠한지, 전집의 영역과 분야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내용 및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를 분석해 놓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료집을 참조 바랍니다
2) 오히려 전집 읽기가 읽기 능력이나 동기, 태도, 그 밖의 요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읽기 경험이거든요. 독서 레벨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레벨 중심의 독서에 갇혔을 때 일어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가 최근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한 대안 찾기를 모색 중입니다.
3) Johnson, D. & Blair, A. (2003) The importance and use of student self-selected literature to reading engagement in an elementary reading Curriculum. Reading Horizons. 43(3), 19
4) Reynolds, P.L. & Symons, S. (2001) Motivational variables and children's text search.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93. 14-22.
5) Schraw, G., Flowerday, T. & Lehman, S. (2001). Increasing situational interesting the classroom,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13(3). 211-224.
6) Szymusiak, K., Sibberson, F. & Koch, L. (2008). Beyond Leveled Books. Portland: Stenhouse Publishers.
7) Wutz, J.A. & Wedwick, L.(2005). BOOKMATCH: Scaffolding book selection for independent reading. The Reading Teacher. 59. 16-32.
“창작, 전래, 명작, 위인, 철학, 자연관찰, 수학동화, 원리과학, 역사, 한자, 영어 등등 시기별로 읽혀야 한다는 전집이 정말 많은데요. 유명한 육아 사이트나 카페, 심지어 홈쇼핑에서까지 아이의 발달에 맞추어 전집을 읽어두는 게 필수라던데, 그렇게 읽는 게 좋은 건가요? 아이들이 크면서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분야의 책들이 정해져 있는 건가요?”
“아이들에게 읽고 싶은 책 골라와 봐라 하면 우르르 몇 가지 종류의 책으로만 몰려가요. 제가 보기에 영 아니올시다 싶은 책들만 골라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교장 선생님도 부탁하셔서 여러 단체의 추천목록들을 참고해서 목록을 만들어요. 그런데 목록에 있는 책들에 대해 아이들 반응이 썩 좋지 않아요. 어떤 책들을 정하면 좋을까요?”
첫 질문은 학부모들로부터, 두 번째 질문은 선생님들이나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듣게 됩니다.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맞는 책들을 어른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면 좋을까를 고민한다는 공통점이 두 질문에 있습니다. 동시에, 이 두 질문은 아이들이 읽을 책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정하는 것이라는 가정이 숨어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좋은 책인가에 대한 고민, 아이들에게 어떻게 좋은 책을 읽게 할까 하는 고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고민의 결론이 어른들이 좋은 책을 다 골라주는 것으로 귀결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삼시 세 끼 영양가 있는 급식만 먹인 후, 자취하라고 독립시키면 스스로 균형 있는 먹거리를 꾸릴 수 있을까요? 나의 성장과 생활을 위해 어떤 영양소가 필요한지, 어디서 어떻게 장을 보는지, 어떤 재료와 도구로 요리를 하는지 배워야지요. 어떻게 하는지 안 가르쳐주고, 요리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 적도 없고, 연습하는 걸 지켜봐주지도 않고 내버려두면,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십상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까요?”라고요. 이번 호에서는 아이들의 책 선택이 왜 중요하며, 스스로 책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마련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책 선택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고 이에 바탕을 둔 실천적인 팁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전집 읽기, 한국 아이들의 독특한 독서경험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8년 출판통계에 따르면, 아동도서의 단행본 출판은 4,590억원 정도인데 비해, 전집 출판은 시장규모가 1조 정도에서 3조까지로, 단행본 시장의 2배에서 6배에 가깝다고 추정됩니다.1) 추정치는 정확한 재계산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나라 가정에서 전집을 읽는 비율은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 아이들만 갖는 독특한 독서 경험 중하나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택배 박스로 배달된 책을 시리즈별로 읽는다는 거지요. 전집을 주로 읽은 아이들은 자기 책을 자기가 골라서 사 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 또한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모델이 되거나,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아이에게 가르쳐주거나, 아이가 책을 고르는 과정을 옆에서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에서 독서가 강조되고 특히 유아기 가정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예전보다 부모님들의 부담감이 커졌습니다. 전집은 단행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고, 연령별로 단계별로 읽을 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빠지는 분야 없이 골고루 구성되어 있으며, 일일이 고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책 구입에 신경이 덜 쓰인다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또한 학교 학습과 비슷한 영역의 책들로 구비되어 학습 효과가 높을 것 같고, 관리 교사 제도가 있는 경우도 있어서 아이의 독서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부모님들이 선호합니다. 전집을 출판하는 대형 출판사는 큰 자금과 인력을 바탕으로, 작은 출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비용과 준비기간을 가지고 좋은 시리즈물을 번역하거나 창작하여 출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전집은 다수의 책을 한 질로 구성하여 한꺼번에만 판매되기 때문에, 전집에 수록된 낱권을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1–2권의 책이 마음에 들어도 따로 살 수 없고, 몇 십만 원을 주고 몇 십 권짜리 세트를 사야만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번역되어 전집으로 출판된 대부분의 외국 책들은 본국에서 낱권으로 살 수 있고, 아이들은 대부분 낱권으로 구입합니다. 묶어 파는 것은 낱권을 따로 주문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거지요. 모든 아이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포괄하여 책을 구입하는 학교나 도서관 혹은 매니아를 위한 편의 제공일 뿐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에릭 칼Eric Carle의 그림책들로, 원래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책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전집의 일부로 묶여 그의 독특한 콜라주와 색채, 책의 형식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들을 낱권으로는 만나볼 길이 없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쉬운 설명과 방대한 사진, 창의적인 편집 디자인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어린이용 논픽션인 도링 킨더슬리Dorling Kindersley 출판사의 비주얼 박물관Visual Museum도 전집으로만 묶어 팝니다. 그래서 ‘발레’ 편을 소장하고 싶으면, ‘무기’와 ‘전쟁’ 편을 포함한 몇 십 권을 같이 사야 합니다. 한국은 이런 책들을 각 권으로 소장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지요.
루소와 프뢰벨이 무덤에서 뛰쳐나와 가슴 칠 일
우리나라 전집 출판사가 낱권 판매를 하지 않는 이유로 상업적인 이해 외에 교육적인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의 머릿속에 책은 가구나 가전제품처럼 부모님이 큰돈을 써서 들여놓는 것이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서 하나씩 골라 사는 것, 용돈을 받아 사는 것,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골라가며 읽는 것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도서정가제의 파괴와 전집 구입으로 동네에서 서점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이 집 근처에서 쉽게 자기가 읽을 책을 직접 선택할 기회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집 읽기가 우리나라 아이들의 독서문화에 주고 있는 더 큰 문제는 자녀의 나이에 따라 읽어야 할 읽기 영역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다독을 위해서는 전집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은연중에 전파하고 있다는 겁니다. 24개월부터는 자연관찰 전집을, 36개월부터는 전래동화를, 60개월부터는 역사와 위인을, 이런 식의 독서 단계가 마치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조기부터 많은 책을 읽히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 책을 많이 구비할 필요가 있으므로 전집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만연합니다. 전집 읽기 붐을 일으킨 한 유명 사이트는 유아기에 집중적인 독서 몰입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간증’이 될 수는 있어도 모든 아이들에게 보편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아용 출판사 이름으로도 쓰이는 페스탈로치와 루소와 프뢰벨이 들으면 무덤을 박차고 나와 가슴을 칠 주장입니다. 독서 교육계에서, 더 광범위한 교육학 내에서도 위의 주장들을 지지할 만한 단 한 편의 학술논문도 없다고 단언합니다.2)
전집을 살 때는 출판사의 책 목록을 부모가 선택합니다만, 단행본으로 책을 구입할 때도 부모가 아이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대다수가 어떻게 책을 찾는지 어떻게 고르는지를 배우지 못한 채로 학교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와서도 책 선택의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롭게 골라 읽으라고 하여 책 선택의 폭이 무한히 넓어지거나, 학년별 필독도서 목록 등으로 지나치게 좁아집니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추천도서의 경우 과연 선생님들도 다 읽고 추천하는 걸까 싶은 목록들도 있습니다. 더 커서도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중학생이 되기 전에 읽어야 할’ ‘교과서에 나오는~’ ‘OO대학교 추천도서’ 목록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선택에 기대든, 부모가 골라준 낱권을 읽든, 학교의 필독도서를 읽든, 아이들은 목록을 읽는 사람이 됩니다. 어릴 때 책에 붙인 스티커가 체크리스트로 바뀌었을 뿐이지요. 세상에 어떤 종류의 책들이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택할지 알려주고, 책을 골라보는 연습 기회를 주고, 그 선택으로 읽은 책이 자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나눌 수 있는 교육적인 경험 없이요.
책 선택은 읽기 동기를 높인다
책 선택은 왜 중요할까요? 많은 학자들로부터 폭넓은 동의를 받고 있는 주장은 책을 자유롭게 선택하면 읽고 싶어지는 내적 동기를 높이고, 읽기를 지속하게 만들며, 독서의 즐거움을 높여주고, 독서에 대한 주인의식과 자율성을 높인다고 합니다.3) 읽기 동기와 몰입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거쓰리John T. Guthrie는 아이들의 읽기 동기와 몰입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로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책을 읽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선택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독해 가능성readability이고, 다른 하나는 흥미interestingness입니다. 지난 연재(9월호) 글에서 썼듯이, 아이들은 해독과 독해가 가능한 책, 즉 소리 내어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유창하게 읽어내며,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고릅니다.
책의 선택에 관여하는 흥미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흥미personal interests’ 혹은 ‘주제에 대한 흥미topic interests’라고 합니다. 이는 개인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가져온 흥미로 아이들마다 다르고 장기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여러 연구들에서 개인적인 흥미는 아이들의 독해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읽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주제의 글을 읽을 때 자신의 수준보다 2–3 레벨 정도 좀 더 어려워도 감히 읽어보려고 한답니다. 새로운 단어나 어려운 문장 구조를 접하더라도 다른 주제의 책이었다면 포기했을 만한 글을 읽어내려 한다는 거지요.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으면, 우주에 관련된 논픽션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골라보도록 하면 읽기에 대한 동기와 독해력이 높아지는 식이지요.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흥미가 높으면 배경지식도 더 많이 갖게 되고, 다시 이는 주제에 대해서 더 읽고 알고 싶어지는 동기를 높이는 선순환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독서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 책을 고르게 할 때는 혹은 추천할 때는 아이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아이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수준의 글이 읽기에 편하고 도전적인지, 이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은 무엇인지 말이지요.
모든 아이들이 모든 주제에 대해서 높은 관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주제에 대해서만 선택을 국한하면,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지지요. 이때 두 번째 종류의 흥미인 ‘상황적인 흥미situational interests’가 높아지면 아이들의 책 선택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이 참신해서, 글이나 그림이 흥미롭게 전개되어서, 읽기 전 혹은 읽고 난 후의 활동이 재미있어서 단기적으로 갖게 되는 흥미입니다. 예를 들어서, 참신한 시각으로 구성된 책, 문체와 그림, 사진, 디자인이 돋보이는 책은 평소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서도 흥미를 일으킵니다. 또한 선생님이 글을 쓴 작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여 설명을 해주었더니 평소에 읽지 않았을 만한 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든지,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식물도감인데 조별로 식물 찾기 놀이를 하니 아이들이 열심히 뒤적거리더라 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상황적인 흥미는 어떤 글이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교사와 사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양한 좋은 책을 수서하는 것, 서가를 주제별로 눈에 띄게 꾸미는 것, 책을 흥미롭게 안내하는 것, 책과 아이들의 경험과 관점을 연결 짓는 것, 책을 의미 있는 문맥 속에서 소개하는 일은 아이들의 상황적인 흥미를 높일 수 있는 작업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4) 책을 선택할 수 있었던 아이들은 주어진 책을 읽었던 아이들보다 훨씬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정보를 찾았습니다. 책을 덜 뒤적이며, 훨씬 더 계획적으로 불필요한 정보를 뛰어넘고, 주요 용어를 단서로 삼아 필요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주제에 대한 흥미와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 좀 더 효과적인 독해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아이들이 찾아낸 정보를 시험지의 답처럼 적게 했을 때보다 게시판에 꾸미게 했을 때, 더 높은 읽기 동기와 독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험보다는 게시판 꾸미기가 더 높은 상황적인 흥미를 끌어낸 것으로 연구자들은 해석합니다.
선택하도록 돕자, 찍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아이들에게 마음껏 책을 골라보라고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읽기 목적에 맞고 읽기에 적합한 수준으로 책을 고르지 못합니다. 특히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아이들, 읽기에 대한 효능감이 낮아 자신이 잘 읽지 못한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힘든데요.5) 이들은 친구나 선생님에게 선택을 위임하거나, 마지막까지 선택을 유보하다가 급하게 아무거나 결정을 하거나, 읽었던 책을 다시 고르는 안전한 선택을 합니다. 선택은 선택지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즉 선택을 할 책들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조금은 알아야 ‘고르는’ 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 되어서 오디션을 하는데 처음 본 신인배우들, 이병원, 송종기, 문고리의 이름만 보여주면, 우리는 누가 연기를 잘하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각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보지 못한 채, 이름의 인상을 보고 가늠할 따름입니다. 감으로 촉으로 찍는 겁니다. 반면에 그들의 연기를 몇 장면 볼 수 있다면, 이들의 연기를 봐왔던 누군가가 이들을 소개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들 가운데 내가 원하는 영화를 위해 누가 적절한지 선택할 수가 있지요. 즉 선택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선택은 정보에 바탕을 둔 선택informed choice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의 저자와 제목만 열거해주면서, 이 가운데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선택하기보다는 찍도록 만듭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많은 권장도서 목록, 심지어 필독도서 목록이 서지사항 중 저자와 제목, 출판사만을 주욱 나열하는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아이들이 찍지 않고 선택하게 하려면 각 책들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정보가 같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추천도서 목록을 만든다면, 저자에 대한 안내, 책의 장르, 내용, 표지, 페이지 수, 난이도, 추천의 이유, 추천의 대상이 서술되어야 합니다. 추천도서를 직접 보여주는 것, 일부를 읽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추천도서 목록은 읽어야 하는 책을 알려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미 있는 책 선택을 도와주기 위해 만드는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아이들이 정보에 바탕을 둔 책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실천적인 팁들이 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경험한 책의 세계는 교사나 사서만큼 넓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와 책의 형태에 대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너무 많은 선택지는 선택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일정한 한도 내에서 선택하게 하는 것도 연습에 도움이 됩니다. 학교 도서관이 발달된 나라에서는 15분 정도 미니 수업mini lesson으로 한 장르에 대해서 특징이나 표현 양식, 대표작, 서가의 위치 등을 알려주고, 20-30분 동안 아이들에게 그 장르에서 책을 구경하고 골라서 읽어보게 합니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장르의 픽션과 논픽션에 대한 정보를 아이들이 알게 되고, 이후에 책을 선택할 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지요. 예를 들어, 여행기나 추리소설, 만화 등을 각각 미니 수업으로 구성해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정보가 없어 잘 고르지 못했던 장르, 장르는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대표작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국어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시나 소설류 말고, 사진책, 잡지, 신문, 다양한 주제의 논픽션 등은 사서교사가 수업으로 구성할 수 있는 분야이지요.
사서 선생님이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몇몇 연구자들은 선생님이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어떻게 선택하고 있는지 자세히 풀어 이야기하여 아이들에게 모델이 되는 방법도 제안합니다.6) 예를 들어, “작가 OO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다른 책을 읽어보려고 했다. 그래서 도서관 사이트에서 책을 찾아보고 온라인으로 서평도 읽어보았다. 서점에서 몇 페이지 읽어보았더니 어렵지 않았고 글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학기말이라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서 독서에 짧은 토막 시간밖에 할애할 수 없었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방학 때 시간이 나면 본격적으로 읽으려고 미뤄두고, 좀 더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다른 책을 골랐다.” 이런 선생님의 이야기는 선택의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도록 하고, 정리된 사항을 포스터로 만들어 학급이나 도서관에 붙여 놓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내가 읽을 수 있겠는지? 훑어보았을 때 흥미롭게 느껴지는지? 내가 좋아하는 주제인지? 첫 장을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었는지? 어려운 단어들이 너무 많은지? 지금보다는 나중에 읽는 게 나을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지? 좋아하는 시리즈의 책인지? 나의 기분은 어떤지?’를 고려할 수 있겠지요. 기준은 ‘학년’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읽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공부, 직업, 시험, 호기심, 휴식, 놀이, 시간 보내기, 기분 전환, 취미에 도움되기, 삶에 대한 반성 등 다양한 상황마다 다양한 독서의 목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자율적인 책 선택을 돕는 좀 더 체계화한 프로그램으로 ‘BOOKMATCH’가 있는데, 아이들이 책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7) 책의 길이가 맞는가?(Book Length),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나?(Ordinary Language), 책의 크기나 단어 수, 챕터의 길이 등 구조는 적절한가?(Organization),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있나?(Knowledge to Prior to Book), 이해할 수 있는 글인가?(Manageble Text), 장르가 흥미로운가?(Appeal to Genre), 적합한 주제인가?(Topic Appropriate), 연관 지을 수 있는가?(Connection), 흥미가 있는가?(High–Interest)를 살펴보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도서관의 정보탐색 수업은 아이들에게 자료를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최근 사서교사들이 있는 학교에서 도서관 자료 찾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교육하고 있고, 교과–사서 협력수업을 통해서도 원하는 자료를 도서관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찾는 법을 가르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보 탐색과 더불어, 탐색된 정보를 자신의 글이나 작업에 인용할 때 표절하지 않는 방법, 인용에 대한 출처를 밝히는 방법, 저작권에 대한 교육은 정보를 다루는 사서교사가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독립적인 독자가 되는 첫 단추이지요. 그것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배우고 연습하고 시행착오도 거쳐야 만들어지는 능력입니다. 그래야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누군가 읽을 책을 지정해주지 않더라도 평생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독자가 됩니다. 저는 교육의 측면에서 학교에 사서 선생님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1) 유정규, “한국 아동 전집의 출판 동향”, 「아동 전집 출판 현황과 쟁점, 2009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심포지엄 자료집」,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 17쪽. 강기준 19쪽 재인용.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의 2009년, 2010년 심포지엄은 한국 아동의 독서 경험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이제껏 본격적으로 분석되지 않았던 어린이 전집 출판을 분석한 매우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전집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확산되는지, 전집 구성 및 마케팅의 방식은 어떠한지, 전집의 영역과 분야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내용 및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를 분석해 놓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료집을 참조 바랍니다
2) 오히려 전집 읽기가 읽기 능력이나 동기, 태도, 그 밖의 요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읽기 경험이거든요. 독서 레벨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레벨 중심의 독서에 갇혔을 때 일어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가 최근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한 대안 찾기를 모색 중입니다.
3) Johnson, D. & Blair, A. (2003) The importance and use of student self-selected literature to reading engagement in an elementary reading Curriculum. Reading Horizons. 43(3), 19
4) Reynolds, P.L. & Symons, S. (2001) Motivational variables and children's text search.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93. 14-22.
5) Schraw, G., Flowerday, T. & Lehman, S. (2001). Increasing situational interesting the classroom,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13(3). 211-224.
6) Szymusiak, K., Sibberson, F. & Koch, L. (2008). Beyond Leveled Books. Portland: Stenhouse Publishers.
7) Wutz, J.A. & Wedwick, L.(2005). BOOKMATCH: Scaffolding book selection for independent reading. The Reading Teacher. 59.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