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육 김은하의 ‘현장에서 만난 질문들’ 4]아이가 편독을 해요… - 아이들 편독, 누구의 어떤‘치우침’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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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0 21:16 조회 9,074회 댓글 0건본문
“공주 책만 계속 들고 와서 읽어 달라고 해요.”
“창작 문학을 좀 읽었으면 하는데, 과학 책만 들여다봐요.”
“동화나 소설류만 읽고, 정보 책은 싫어해요. 5학년부터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니, 역사 공부가 즐겁도록 읽혀보려고 하는데 영 관심이 없네요.”
“아이가 판타지에 빠져서 다른 종류의 책을 읽기 싫어해요.”
“저와 아이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으면 편독이 될까봐 걱정이 되요. 그래서 전집을 선호하게 됩니다.”
학부모님들로부터 주로 받는 걱정들입니다. 아이가 한 장르 혹은 한 주제의 책만 읽으려고 한다, 속칭 편독이 걱정이라는 거지요. 언젠가부터 ‘편독’이라는 용어가 독서교육계의 전문적인 용어인 듯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편독偏讀이라는 말은 편식, 편견, 편파 등에 쓰이는 치우칠 ‘편(偏)’을 써서, 한 방면에 치우치게 읽는다는 뜻입니다. 소리는 같지만 두루 미친 편(徧)을 써서 편독徧讀이라 하면, ‘여러 방면의 책을 두루 읽는다’는 반대의 뜻이 됩니다. 일상어에서는 앞의 편독偏讀을 더 자주 쓰지요. 이번 호에서는 편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편독, 무엇에 대한 치우침인가?
유독 한국에서 편독에 대한 염려가 많아서, 여러 차례 맘을 먹고 국내외 연구물들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편독을 문제시하는 학술 연구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우선, 편독에 해당하는 학술적인 용어 자체가 독서교육계에 없습니다. 편독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나쁜 영향을 준다는 믿음이 전문적인 지식인 듯 널리 퍼져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 놓은 자료 또한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선호하며 주로 읽는 장르나 주제에 대한 연구는 있어도 그러한 행위 자체가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는 이론은 찾기 어렵다는 거지요.
어쩌면, 편독을 걱정하는 질문 자체를 다시 질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편독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무엇을 문제화하는 것이고 어떤 가정을 내포하고 있을까요? 편독에 대한 문제화가 특히 한국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면, 이는 우리 독서문화와 교육의 어떤 특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역설적으로 질문을 분석하면서 실마리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첫째, 편독이 무엇에 대한 치우침인가를 물을 수 있습니다. 보통 글의 장르에 대한 치우침, 예를 들면, 이야기 장르, 추리소설, 만화 등 한두 가지 장르를 주로 읽는 것을 일컫습니다. 때로는 글의 주제에 대한 치우침, 즉 공룡에 대한 책, 벌레에 대한 책, 역사와 관련된 책만 주로 읽는 문제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치우침의 반대, 즉 골고루 읽는다는 것은 어떤 장르와 주제까지 범위를 넓혀야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다양한 책을 읽는가를 측정하는 것으로 ‘읽기의 폭reading breadth’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독서교육계에서 아직 잘 정리된 용어가 아니지만 500회 이상 타 학술논문에 인용된 유명 논문에서 이용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읽기 동기가 읽기의 양과 읽기 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였지요.1) 연구자들은 읽기의 장르가 다양하면 읽기의 폭이 넓은 것으로, 다양하지 못하면 읽기 폭이 좁은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지난 한 주 동안 읽은 책의 종류와 제목을 적도록 했습니다. 연구의 결과, 자주 읽고 다양하게 읽은 아이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적인 읽기 동기가 높은 아이들, 즉 스스로 잘 읽는 독자라고 생각하는 경우, 어려운 책도 읽고 싶다는 도전감이 높은 경우, 알고 싶은 호기심이 많고, 읽고 있는 이야기와 인물들에 열중하는 경우에 읽기의 양이 많고 폭도 넓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외적인 읽기 동기가 높은 아이들, 즉 독서가 중요하다고 해서,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성적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려고, 혹은 숙제 등의 약속을 지키려고 읽는 경향이 있는 아이들은 이후 읽기의 양과 폭이 의미 있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적 동기’가 읽기의 폭과 양을 좌우한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새롭게 밝혀낸 부분은 이렇습니다. 과거의 읽기 양과 폭 그리고 읽기의 내적 동기, 이 두 가지 요인 중, 현재와 미래의 독서 폭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읽기의 내적 동기라는 겁니다. 아이가 그 전에 얼마나 자주 다양하게 읽었느냐보다 얼마나 내적인 동기를 가지고 읽어왔냐가 앞으로의 읽기의 폭에 훨씬 더 강한 예측력을 가진다는 거지요.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렇게 결론 짓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읽고 다양하게 읽다보니 동기가 높아진 게 아니라, 거꾸로 아이들이 동기가 높아지면, 특히 내적인 동기가 높아지면 읽기의 양과 폭이 증가한다고요. 다양한 책을 읽은 동기가 외적인 동기 때문이었다면, 앞으로 다양한 장르과 주제의 책 읽기를 할 거라고 예측하기 어렵답니다. 미국의 연구라서 우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다양한 책을 넣어주는 것보다 읽기의 내적 동기가 읽기의 폭과 양에 영향을 더 미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제시한다고 또는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는다고 저절로 이후에도 그렇게 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거지요. 과거에 그렇지 못했어도 읽기에 대한 내적 동기가 높아지면 읽기의 양이 높아지고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결론 짓습니다.
또 이 연구의 결과 못지않게 제 시선을 끄는 점은 연구자들이 읽기의 폭을 설정할 때 포괄하는 장르와 주제가 우리의 통념보다 훨씬 넓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책뿐 아니라, 만화, 잡지, 신문, 추리물, 스포츠물, 모험담, 자연 책을 제시하고 있어요. 한국의 독서 현장에서 편독의 범위를 걱정하는 질문에는 만화나 추리물, 모험담, 스포츠물, 잡지를 두루두루 읽지 않는다는 걱정이 별로 없습니다. 이보다는 과학책, 역사책, 철학책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정보 책(non–fiction)을 읽지 않는 걱정은 들어봤어도 서한집이나 시집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물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은 많아도 여행기, 지도책, 화집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독서문화에서 두루두루 읽기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학교의 주요 교과와 관련된 주제와 그런 교과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장르를 가능한 한 번씩 읽어두는 의미로 좁혀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편독에 대한 걱정에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독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스며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독서, 필요조건인가 충분조건인가
둘째, 조금 다른 의미에서 편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반드시 교과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편식이 아이들의 성장에 문제가 되듯이, 몇 가지 장르에 치우친 독서는 아이의 지적, 정서적, 도덕적 성장에 문제가 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글의 장르와 주제가 영양소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운동의 종류나 음악의 종류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인가를 되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글의 장르나 주제를 영양소에 비유해보지요. 단백질은 쇠고기를 통해서도 두부를 통해서도 먹을 수 있지만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에 빠지지 말아야 할 영양소이지요. 아이뿐 아니라 성인들도 생존과 건강을 위해 많든 적든 필수 영양소를 챙겨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편독을 편식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인 몇 가지 중요한 장르와 주제의 글이 정해져 있고, 이를 읽는 것은 기본이며 부족은 문제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골고루 읽는 것은 인간 삶의 필요조건이고 몇 가지에 집중된 독서는 결핍입니다.
반면, 책의 장르와 주제를 운동이나 음악의 종류에 비유한다면 조금 느슨해집니다. 운동이든 독서든 인간의 생활에 모두 다 필요합니다. 운동이 인간의 성장과 생존과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독서를 하는 것은 인간의 성장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몇 가지 영양소가 인간의 성장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처럼, 몇 가지 종류의 운동을 하는 게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즐길 수 있고, 몸에 맞고, 여건이 되고, 필요한 종류의 운동을 골라 하면 되지요. 축구를 위주로 운동하는 것은 단백질만 주로 먹는 것과는 달리 성장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이런저런 음악을 듣게 되지만 내가 주로 듣는 것이 가요라고 한들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거지요. 클래식만 듣는다고 힙합을 주로 즐긴다고 큰 결핍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댄스음악을 주로 들었는데, 크니 가요가 좋아졌고, 더 나이드니 전통가요나 클래식도 맛이 있더라. 글을 운동이나 음악의 종류에 비유하면 두루 읽는 것은 인간의 삶에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즉 두루 읽지 않는 것은 결핍이 아닙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비유 가운데 어떤 비유가 독서에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앞의 비유, 즉 편식의 비유가 현재 한국의 독서문화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효과적인 ‘마케팅 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죠. 두루 읽지 못하면 영양소가 결핍되고 발달이 지체되는 것처럼요. 그러나 저는 첫 번째 비유가 적절한지에 대해서 의심스럽습니다.
어린이들은 이야기, 특히 전래동화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나, 초등학교 중학년에 접어들면서 장르에 대한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좋아하는 장르의 독서가 성별에 따라 다시 좁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양상을 띕니다. 초등학생 시기에는 다양한 장르에 대한 탐색의 시기를 갖고, 성장하면서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주제와 장르를 좀 더 깊이 있게 읽어가는 것이지요. 과연 성인 독자들은 얼마나 폭넓게 골고루 읽고 있나요? 직업적으로 다양한 책을 접해야 하는 사서 직을 제외한다면, 최근까지 읽은 책들 가운데, 소설, 자연과학, 물리학, 수학, 역사, 지리, 사회, 문화, 철학, 시집, 에세이, 미술, 음악, 무용에 관한 책이 골고루 들어 있나요? 정보 책, 이야기책, 만화, 신문, 잡지 등 다양한 장르가 골고루 들어가 있나요? 직업적, 개인적 관심사에 따라서 몇 가지 주제나 장르를 집중해서 읽는 대부분의 성인들은 건강하지 않은 독서를 하고 있는 걸까요? 자연과학이나 수학에 대한 책을 잡지 않은 지 한참이 된 저는 결핍된 독서를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편식에 비유하여 편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동시에’ ‘골고루’ 읽지 않으면 문제라는, 소위 ‘불안 마케팅’의 슬로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 편독은 잘못된 독서교육 탓 아닐까
셋째, 여가나 취미로서의 읽기의 경우에, 즉 즐거움을 위한 독서(reading for pleasure)는 자신이 선호하는 몇 가지 장르나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읽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들의 지적이고 정서적이고 심미적인 배움(reading for learning)을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읽기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글의 양식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화두에 대해서 어떻게 인류가 묻고 답해 왔는지 처음부터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조금씩 배워간 후에야 공부나 직업세계, 소통과 사회생활, 취미나 교양을 위해 몇 가지 장르와 주제로 책을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다양한 장르의 책을 경험하면 좋은 이유가 바로 이 세 번째 주장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주장에서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가능한가입니다. 아이에게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을 주고 읽으라 하면 가능할까요?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역사책을 주거나 과학책을 주면 맛을 느끼며 즐겁게 읽을 수 있을까요? ‘공 다룰 줄 알고 달릴 줄 아니, 농구 코트에 데려다주면 농구하겠지’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를 읽고, 나아가 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문을 열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몇 가지 장르에 편중된 아이들의 ‘독서’는 어쩌면 몇 가지만 읽어주고 가르치고 소개해온 ‘독서교육’이 문제인 건 아닐까요?
서구에서도 아이들이 다양한 장르의 정보 글(non–fiction)에 입문하는 데 적절한 도움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미시간 대학 듀크Duke 교수의 연구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을 관찰한 ‘하루에 3.6분’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2)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이야기책에 비해서 정보 책을 다루는 비중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정보 책의 다양한 장르를 알려주는 기회도 별로 없었고, 학급문고에도 이야기책은 많아도 정보 책은 적었다고 합니다. 또한 가르치고 있는 교과의 주제와 관련된 정보 책을 거의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연구자는 첫째, 아이들에게 완성도 높은 정보 책을 안내하고, 둘째, 가르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주고 추천하며, 셋째, 학급문고의 정보 책들을 주제별로 찾기 쉽도록 잘 정리하자고 제안합니다.
독서교육 전문가이자 독서교육 프로그램 ‘리딩 파워Reading Power’의 고안자인 아드리엔 기어Adrienne Gear는 아이들이 생활세계에서 만나는 정보 글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교사들은 수업에서 이들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3) 기어는 다양한 장르의 정보 글을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정보 글도 소리 내어 읽어주기.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주로 이야기를 읽어줍니다만 위의 다양한 정보 글도 소리 내어 읽어주면 좋습니다. 정보 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흥미로운 일부분만 떼어 읽어도 의미 파악에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읽어주기 좋지요.
둘째, 정보 글을 쓴 저자에 대한 수업을 진행해보기.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책을 쓴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정보 책에 반드시 필요한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자료의 도움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교사나 사서가 소개해도 좋고, 아이들이 직접 조사해서 발표하도록 해도 좋습니다.
셋째, 정보 책의 양식과 구조에 대한 미니 수업하기. 정보 글의 서술 방식을 크게 나누어보면, ① 무엇(예: 국가, 동물, 종교)에 대한 사실을 정리해서 묘사하는 글, ② 무언가를 만들거나 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가르쳐주는 글(예: 요리책, 설명서), ③ 무언가가 어떻게 혹은 왜 일어났는지, 만들어졌는지,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예: 자석의 원리) ④ 특정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논설문(예: 사교육에 대한 찬반) ⑤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연대기적 서술이나 주요 사건을 강조한 전기로 나누어집니다. 각각의 장르의 특징을 알려주고, 대표하는 책들을 소개해줍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권의 정보 책을 무작위로 나누어주고 글의 형식대로 분류하게 해보아도 좋습니다. 또한 정보 글에 쓰이는 다양한 시각적 기호들, 사진과 그림, 캡션 달기, 도표, 비교, 박스, 플로우 차트, 용어해설, 그래프, 찾아보기, 제목과 소제목, 지도, 차례, 마인드맵 등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직접 이러한 기호들을 찾아보면서, 어떤 정보가 어떤 기호에 담기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어떤 캡션이나 제목이 적절한지 이야기해보거나 직접 만들어봐도 좋겠지요.
편독을 편식에 빗대는 것은 지나친 우려
지난 호에서 설명한 주제에 대한 흥미(topic interests)와 상황적인 흥미(situational interests)가 기억나시는지요. 반복하자면, 주제에 대한 흥미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개인이 장기적으로 가지고 있는 흥미입니다. 즐거움으로서의 읽기는 이런 주제에 대한 흥미에 따라 읽기의 주제가 좁고 깊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흥미를 이용해서 교사와 사서가 읽기의 폭을 넓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하는 주제를 다룬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곤충에 관심이 높은 아이는 곤충 도감뿐 아니라 파브르의 전기, 곤충이 주인공이 된 소설, 곤충 세밀화집, 지역별 곤충 분포지도 등을 소개해줄 수 있겠지요. 아이돌 가수가 꿈인 아이에게는 가요의 역사에 대한 책, 노래책, 가수들의 자전, 가수들이 추천한 책,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반면, 상황적인 흥미는 글의 내용이나 구성, 독서 전후 활동의 참신성과 재미 때문에 단기적으로 갖게 되는 흥미입니다. 배움을 위한 글 읽기를 할 때, 교사와 사서가 상황적인 흥미를 만들어내면 읽기의 효과가 높아집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나 주제이지만 상황적 흥미가 높아지면 읽고 싶어지는 동기를 높여 읽기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교사와 사서의 협력으로 교과에서 배우는 주제에 대한 책을 안내하는 것, 장르별로 완성도 높은 책을 수서하는 것, 읽어주는 것, 작가에 대해서 안내해주는 것, 책과 아이들의 경험과 관점을 연결 짓는 것, 책을 의미 있는 문맥 속에서 소개하는 일은 아이들의 상황적인 흥미를 높여 다양한 글 읽기를 가능하게 하겠지요. 몇 가지 장르와 주제에 대한 집중적인 책 읽기를 편식의 비유처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흥미에 바탕을 둔 즐거움으로서의 독서는 ‘평생 독자’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목록과 책만 주고 읽으라고 방임한다면, 다양한 장르에서 그 장르가 담을 수 있는 멋진 글로 안내할 교육 기회를 놓아 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학교에 사서가 존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기도 합니다.
1) Wigfield, A. & Guthrie, J.T. (1997) Relations of children's motivation for reading to the amount and breadth or their reading.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89(3), 420–432.
2) Duke, M.K. (2000) 3.6 minutes per day: The scarcity of informational
texts in first grade, Reading Research Quarterly, 35(2), 202–224.
3) Gear, A. (2008) Nonfiction Reading Power: Teaching students how to think while they read all kinds of information. Portland, Maine: Stenhouse Publishers
“창작 문학을 좀 읽었으면 하는데, 과학 책만 들여다봐요.”
“동화나 소설류만 읽고, 정보 책은 싫어해요. 5학년부터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니, 역사 공부가 즐겁도록 읽혀보려고 하는데 영 관심이 없네요.”
“아이가 판타지에 빠져서 다른 종류의 책을 읽기 싫어해요.”
“저와 아이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으면 편독이 될까봐 걱정이 되요. 그래서 전집을 선호하게 됩니다.”
학부모님들로부터 주로 받는 걱정들입니다. 아이가 한 장르 혹은 한 주제의 책만 읽으려고 한다, 속칭 편독이 걱정이라는 거지요. 언젠가부터 ‘편독’이라는 용어가 독서교육계의 전문적인 용어인 듯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편독偏讀이라는 말은 편식, 편견, 편파 등에 쓰이는 치우칠 ‘편(偏)’을 써서, 한 방면에 치우치게 읽는다는 뜻입니다. 소리는 같지만 두루 미친 편(徧)을 써서 편독徧讀이라 하면, ‘여러 방면의 책을 두루 읽는다’는 반대의 뜻이 됩니다. 일상어에서는 앞의 편독偏讀을 더 자주 쓰지요. 이번 호에서는 편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편독, 무엇에 대한 치우침인가?
유독 한국에서 편독에 대한 염려가 많아서, 여러 차례 맘을 먹고 국내외 연구물들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편독을 문제시하는 학술 연구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우선, 편독에 해당하는 학술적인 용어 자체가 독서교육계에 없습니다. 편독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나쁜 영향을 준다는 믿음이 전문적인 지식인 듯 널리 퍼져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 놓은 자료 또한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선호하며 주로 읽는 장르나 주제에 대한 연구는 있어도 그러한 행위 자체가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는 이론은 찾기 어렵다는 거지요.
어쩌면, 편독을 걱정하는 질문 자체를 다시 질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편독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무엇을 문제화하는 것이고 어떤 가정을 내포하고 있을까요? 편독에 대한 문제화가 특히 한국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면, 이는 우리 독서문화와 교육의 어떤 특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역설적으로 질문을 분석하면서 실마리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첫째, 편독이 무엇에 대한 치우침인가를 물을 수 있습니다. 보통 글의 장르에 대한 치우침, 예를 들면, 이야기 장르, 추리소설, 만화 등 한두 가지 장르를 주로 읽는 것을 일컫습니다. 때로는 글의 주제에 대한 치우침, 즉 공룡에 대한 책, 벌레에 대한 책, 역사와 관련된 책만 주로 읽는 문제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치우침의 반대, 즉 골고루 읽는다는 것은 어떤 장르와 주제까지 범위를 넓혀야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다양한 책을 읽는가를 측정하는 것으로 ‘읽기의 폭reading breadth’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독서교육계에서 아직 잘 정리된 용어가 아니지만 500회 이상 타 학술논문에 인용된 유명 논문에서 이용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읽기 동기가 읽기의 양과 읽기 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였지요.1) 연구자들은 읽기의 장르가 다양하면 읽기의 폭이 넓은 것으로, 다양하지 못하면 읽기 폭이 좁은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지난 한 주 동안 읽은 책의 종류와 제목을 적도록 했습니다. 연구의 결과, 자주 읽고 다양하게 읽은 아이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적인 읽기 동기가 높은 아이들, 즉 스스로 잘 읽는 독자라고 생각하는 경우, 어려운 책도 읽고 싶다는 도전감이 높은 경우, 알고 싶은 호기심이 많고, 읽고 있는 이야기와 인물들에 열중하는 경우에 읽기의 양이 많고 폭도 넓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외적인 읽기 동기가 높은 아이들, 즉 독서가 중요하다고 해서,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성적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려고, 혹은 숙제 등의 약속을 지키려고 읽는 경향이 있는 아이들은 이후 읽기의 양과 폭이 의미 있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적 동기’가 읽기의 폭과 양을 좌우한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새롭게 밝혀낸 부분은 이렇습니다. 과거의 읽기 양과 폭 그리고 읽기의 내적 동기, 이 두 가지 요인 중, 현재와 미래의 독서 폭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읽기의 내적 동기라는 겁니다. 아이가 그 전에 얼마나 자주 다양하게 읽었느냐보다 얼마나 내적인 동기를 가지고 읽어왔냐가 앞으로의 읽기의 폭에 훨씬 더 강한 예측력을 가진다는 거지요.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렇게 결론 짓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읽고 다양하게 읽다보니 동기가 높아진 게 아니라, 거꾸로 아이들이 동기가 높아지면, 특히 내적인 동기가 높아지면 읽기의 양과 폭이 증가한다고요. 다양한 책을 읽은 동기가 외적인 동기 때문이었다면, 앞으로 다양한 장르과 주제의 책 읽기를 할 거라고 예측하기 어렵답니다. 미국의 연구라서 우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다양한 책을 넣어주는 것보다 읽기의 내적 동기가 읽기의 폭과 양에 영향을 더 미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제시한다고 또는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는다고 저절로 이후에도 그렇게 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거지요. 과거에 그렇지 못했어도 읽기에 대한 내적 동기가 높아지면 읽기의 양이 높아지고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결론 짓습니다.
또 이 연구의 결과 못지않게 제 시선을 끄는 점은 연구자들이 읽기의 폭을 설정할 때 포괄하는 장르와 주제가 우리의 통념보다 훨씬 넓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책뿐 아니라, 만화, 잡지, 신문, 추리물, 스포츠물, 모험담, 자연 책을 제시하고 있어요. 한국의 독서 현장에서 편독의 범위를 걱정하는 질문에는 만화나 추리물, 모험담, 스포츠물, 잡지를 두루두루 읽지 않는다는 걱정이 별로 없습니다. 이보다는 과학책, 역사책, 철학책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정보 책(non–fiction)을 읽지 않는 걱정은 들어봤어도 서한집이나 시집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물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은 많아도 여행기, 지도책, 화집을 읽지 않는다는 걱정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독서문화에서 두루두루 읽기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학교의 주요 교과와 관련된 주제와 그런 교과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장르를 가능한 한 번씩 읽어두는 의미로 좁혀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편독에 대한 걱정에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독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스며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독서, 필요조건인가 충분조건인가
둘째, 조금 다른 의미에서 편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반드시 교과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편식이 아이들의 성장에 문제가 되듯이, 몇 가지 장르에 치우친 독서는 아이의 지적, 정서적, 도덕적 성장에 문제가 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글의 장르와 주제가 영양소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운동의 종류나 음악의 종류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인가를 되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글의 장르나 주제를 영양소에 비유해보지요. 단백질은 쇠고기를 통해서도 두부를 통해서도 먹을 수 있지만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에 빠지지 말아야 할 영양소이지요. 아이뿐 아니라 성인들도 생존과 건강을 위해 많든 적든 필수 영양소를 챙겨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편독을 편식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인 몇 가지 중요한 장르와 주제의 글이 정해져 있고, 이를 읽는 것은 기본이며 부족은 문제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골고루 읽는 것은 인간 삶의 필요조건이고 몇 가지에 집중된 독서는 결핍입니다.
반면, 책의 장르와 주제를 운동이나 음악의 종류에 비유한다면 조금 느슨해집니다. 운동이든 독서든 인간의 생활에 모두 다 필요합니다. 운동이 인간의 성장과 생존과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독서를 하는 것은 인간의 성장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몇 가지 영양소가 인간의 성장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처럼, 몇 가지 종류의 운동을 하는 게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즐길 수 있고, 몸에 맞고, 여건이 되고, 필요한 종류의 운동을 골라 하면 되지요. 축구를 위주로 운동하는 것은 단백질만 주로 먹는 것과는 달리 성장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이런저런 음악을 듣게 되지만 내가 주로 듣는 것이 가요라고 한들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거지요. 클래식만 듣는다고 힙합을 주로 즐긴다고 큰 결핍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댄스음악을 주로 들었는데, 크니 가요가 좋아졌고, 더 나이드니 전통가요나 클래식도 맛이 있더라. 글을 운동이나 음악의 종류에 비유하면 두루 읽는 것은 인간의 삶에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즉 두루 읽지 않는 것은 결핍이 아닙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비유 가운데 어떤 비유가 독서에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앞의 비유, 즉 편식의 비유가 현재 한국의 독서문화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효과적인 ‘마케팅 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죠. 두루 읽지 못하면 영양소가 결핍되고 발달이 지체되는 것처럼요. 그러나 저는 첫 번째 비유가 적절한지에 대해서 의심스럽습니다.
어린이들은 이야기, 특히 전래동화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나, 초등학교 중학년에 접어들면서 장르에 대한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좋아하는 장르의 독서가 성별에 따라 다시 좁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양상을 띕니다. 초등학생 시기에는 다양한 장르에 대한 탐색의 시기를 갖고, 성장하면서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주제와 장르를 좀 더 깊이 있게 읽어가는 것이지요. 과연 성인 독자들은 얼마나 폭넓게 골고루 읽고 있나요? 직업적으로 다양한 책을 접해야 하는 사서 직을 제외한다면, 최근까지 읽은 책들 가운데, 소설, 자연과학, 물리학, 수학, 역사, 지리, 사회, 문화, 철학, 시집, 에세이, 미술, 음악, 무용에 관한 책이 골고루 들어 있나요? 정보 책, 이야기책, 만화, 신문, 잡지 등 다양한 장르가 골고루 들어가 있나요? 직업적, 개인적 관심사에 따라서 몇 가지 주제나 장르를 집중해서 읽는 대부분의 성인들은 건강하지 않은 독서를 하고 있는 걸까요? 자연과학이나 수학에 대한 책을 잡지 않은 지 한참이 된 저는 결핍된 독서를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편식에 비유하여 편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동시에’ ‘골고루’ 읽지 않으면 문제라는, 소위 ‘불안 마케팅’의 슬로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 편독은 잘못된 독서교육 탓 아닐까
셋째, 여가나 취미로서의 읽기의 경우에, 즉 즐거움을 위한 독서(reading for pleasure)는 자신이 선호하는 몇 가지 장르나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읽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들의 지적이고 정서적이고 심미적인 배움(reading for learning)을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읽기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글의 양식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화두에 대해서 어떻게 인류가 묻고 답해 왔는지 처음부터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조금씩 배워간 후에야 공부나 직업세계, 소통과 사회생활, 취미나 교양을 위해 몇 가지 장르와 주제로 책을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다양한 장르의 책을 경험하면 좋은 이유가 바로 이 세 번째 주장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주장에서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가능한가입니다. 아이에게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을 주고 읽으라 하면 가능할까요?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역사책을 주거나 과학책을 주면 맛을 느끼며 즐겁게 읽을 수 있을까요? ‘공 다룰 줄 알고 달릴 줄 아니, 농구 코트에 데려다주면 농구하겠지’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를 읽고, 나아가 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문을 열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몇 가지 장르에 편중된 아이들의 ‘독서’는 어쩌면 몇 가지만 읽어주고 가르치고 소개해온 ‘독서교육’이 문제인 건 아닐까요?
서구에서도 아이들이 다양한 장르의 정보 글(non–fiction)에 입문하는 데 적절한 도움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미시간 대학 듀크Duke 교수의 연구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을 관찰한 ‘하루에 3.6분’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2)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이야기책에 비해서 정보 책을 다루는 비중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정보 책의 다양한 장르를 알려주는 기회도 별로 없었고, 학급문고에도 이야기책은 많아도 정보 책은 적었다고 합니다. 또한 가르치고 있는 교과의 주제와 관련된 정보 책을 거의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연구자는 첫째, 아이들에게 완성도 높은 정보 책을 안내하고, 둘째, 가르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주고 추천하며, 셋째, 학급문고의 정보 책들을 주제별로 찾기 쉽도록 잘 정리하자고 제안합니다.
독서교육 전문가이자 독서교육 프로그램 ‘리딩 파워Reading Power’의 고안자인 아드리엔 기어Adrienne Gear는 아이들이 생활세계에서 만나는 정보 글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교사들은 수업에서 이들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3) 기어는 다양한 장르의 정보 글을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정보 글도 소리 내어 읽어주기.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주로 이야기를 읽어줍니다만 위의 다양한 정보 글도 소리 내어 읽어주면 좋습니다. 정보 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흥미로운 일부분만 떼어 읽어도 의미 파악에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읽어주기 좋지요.
둘째, 정보 글을 쓴 저자에 대한 수업을 진행해보기.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책을 쓴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정보 책에 반드시 필요한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자료의 도움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교사나 사서가 소개해도 좋고, 아이들이 직접 조사해서 발표하도록 해도 좋습니다.
셋째, 정보 책의 양식과 구조에 대한 미니 수업하기. 정보 글의 서술 방식을 크게 나누어보면, ① 무엇(예: 국가, 동물, 종교)에 대한 사실을 정리해서 묘사하는 글, ② 무언가를 만들거나 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가르쳐주는 글(예: 요리책, 설명서), ③ 무언가가 어떻게 혹은 왜 일어났는지, 만들어졌는지,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예: 자석의 원리) ④ 특정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논설문(예: 사교육에 대한 찬반) ⑤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연대기적 서술이나 주요 사건을 강조한 전기로 나누어집니다. 각각의 장르의 특징을 알려주고, 대표하는 책들을 소개해줍니다. 아이들에게 여러 권의 정보 책을 무작위로 나누어주고 글의 형식대로 분류하게 해보아도 좋습니다. 또한 정보 글에 쓰이는 다양한 시각적 기호들, 사진과 그림, 캡션 달기, 도표, 비교, 박스, 플로우 차트, 용어해설, 그래프, 찾아보기, 제목과 소제목, 지도, 차례, 마인드맵 등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직접 이러한 기호들을 찾아보면서, 어떤 정보가 어떤 기호에 담기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어떤 캡션이나 제목이 적절한지 이야기해보거나 직접 만들어봐도 좋겠지요.
편독을 편식에 빗대는 것은 지나친 우려
지난 호에서 설명한 주제에 대한 흥미(topic interests)와 상황적인 흥미(situational interests)가 기억나시는지요. 반복하자면, 주제에 대한 흥미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개인이 장기적으로 가지고 있는 흥미입니다. 즐거움으로서의 읽기는 이런 주제에 대한 흥미에 따라 읽기의 주제가 좁고 깊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흥미를 이용해서 교사와 사서가 읽기의 폭을 넓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하는 주제를 다룬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곤충에 관심이 높은 아이는 곤충 도감뿐 아니라 파브르의 전기, 곤충이 주인공이 된 소설, 곤충 세밀화집, 지역별 곤충 분포지도 등을 소개해줄 수 있겠지요. 아이돌 가수가 꿈인 아이에게는 가요의 역사에 대한 책, 노래책, 가수들의 자전, 가수들이 추천한 책,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반면, 상황적인 흥미는 글의 내용이나 구성, 독서 전후 활동의 참신성과 재미 때문에 단기적으로 갖게 되는 흥미입니다. 배움을 위한 글 읽기를 할 때, 교사와 사서가 상황적인 흥미를 만들어내면 읽기의 효과가 높아집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나 주제이지만 상황적 흥미가 높아지면 읽고 싶어지는 동기를 높여 읽기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교사와 사서의 협력으로 교과에서 배우는 주제에 대한 책을 안내하는 것, 장르별로 완성도 높은 책을 수서하는 것, 읽어주는 것, 작가에 대해서 안내해주는 것, 책과 아이들의 경험과 관점을 연결 짓는 것, 책을 의미 있는 문맥 속에서 소개하는 일은 아이들의 상황적인 흥미를 높여 다양한 글 읽기를 가능하게 하겠지요. 몇 가지 장르와 주제에 대한 집중적인 책 읽기를 편식의 비유처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적인 흥미에 바탕을 둔 즐거움으로서의 독서는 ‘평생 독자’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목록과 책만 주고 읽으라고 방임한다면, 다양한 장르에서 그 장르가 담을 수 있는 멋진 글로 안내할 교육 기회를 놓아 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학교에 사서가 존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기도 합니다.
1) Wigfield, A. & Guthrie, J.T. (1997) Relations of children's motivation for reading to the amount and breadth or their reading.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89(3), 420–432.
2) Duke, M.K. (2000) 3.6 minutes per day: The scarcity of informational
texts in first grade, Reading Research Quarterly, 35(2), 202–224.
3) Gear, A. (2008) Nonfiction Reading Power: Teaching students how to think while they read all kinds of information. Portland, Maine: Stenhouse Publis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