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정은 독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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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7-19 06:22 조회 8,442회 댓글 0건본문
김은하 교육학자
“독서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는 게 제일 좋을까요?”
“집에서 책을 읽어주면 저절로 글자 뗀다고 해서 나름 많이 읽어주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니 한글 학습지를 한 아이보다 글자도 못 읽고 받아쓰기도 더 틀리네요. 허무합니다. 읽어준 거 아무 소용없나 봐요.”
“반 아이의 독서를 위해 학부모들과 어떻게 협력하면 좋을까요?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학부모들과 교사들을 만나면 가정에서의 책읽기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받습니다.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가정에서의 책 경험이 아이의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이들의 서로 다른 문식경험과
태도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
아이들을 학교에서야 처음 만나게 되는 학교의 교사와 사서, 사서교사들은 ‘가정에서 아이들이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초기 경험을 알아봐야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얼마나 다르게 읽고 쓰기를 경험하고 학교를 시작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상이한 출발점을 인식하는 것은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제대로 돕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받은 읽고 쓰기 교육은 단순히 맞춤법을 얼마나 알고 오는지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지난 연재에서 설명한 것처럼, 글자를 소리 내어 읽을 줄 아는 능력인 ‘해독(decoding)’과 말과 글의 의미를 이해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능력인 ‘독해(comprehension)’ 사이에는 태평양만한 간극이 있거든요. 한글을 떼었는지, 즉 해독능력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밖에 매우 다양한 능력들이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아이의 독해 및 독서태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한 능력을 경험하는 첫 번째 공간이 바로 가정이지요.
학교에서 본격적인 학습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출발하는 아이들의 상황이 다 다릅니다. 걷는 아이, 달리는 아이, 목적지만 바라보고 성급하게 가려는 아이, 느리게 걷지만 주변을 두런두런 살피며 즐기는 아이, 벌써 지친 기색이 보이는 아이 등 각양각색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걷고 뛰는 아이들 속에, 읽고 쓰기의 걸음마를 이제 막 시작한 아이도 끼어 있습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우리교육, 2012)을 보면 글자를 읽을 수 있으나 내용 이해력이 동학년에 비해 몇 년씩 뒤처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연구자는 이러한 원인의 시작점에 문식경험을 거의 제공하지 못했던 가정이 있음을 지목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와서 겨우 읽기의 걸음을 떼었으나 제 속도대로 도움 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떤 애환을 갖고, 자신을 어떻게 위장하며 지내고 있는지를 상세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어떤 경험을 가졌기에 이렇게 다른 능력과 태도와 동기를 갖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위한 첫 번째 단추가 됩니다.
둘째, 교사나 사서가 아이들의 다양한 문식경험과 태도를 인식하게 되면, 가정과 협력할 때 일방적이고 일률적인 방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학기 초나 방학 전에 아이와 독서에 대한 단기 목표를 세울 때, 그리고 일상의 숙제를 내어줄 때 가정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적절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에게 일률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것, 예를 들어, “집에서 아무 책이나 골라 읽고 한 줄 요약해서 써라 혹은 독후감 한 단락만 써라.”라고 하는 것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쉽지만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 따라, 그림책 읽기,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읽어주기, 누군가 읽어주는 걸 듣기, 쉬운 책 읽기, 좀 더 도전적인 책 읽기 등 적절한 과제가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며 아이의 읽고 쓰기에 대해서 의논할 때, 어떤 영역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지, 어떤 수준의 책들이 적절할지, 어떤 방법으로 읽으면 좋을지를 개별화할 수 있습니다.
셋째, 가정과 협력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주변의 손을 빌려야 할 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적절한 도움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강연에서 학부모를 만나면 독서와 독서교육에 대한 열정이 매우 크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나 학교의 선생님과 사서 선생님들을 만나보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책의 세계를 경험하기 어려운 형편인지 놀라게 됩니다. 제가 글로든 강연으로든 만난 학부모들은 이미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독서교육을 하고 계셨던 분이셨던 거지요. 즉 한정된 분들만 만났더라는 겁니다. 전국의 도시와 농・어・산촌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살지 못하는 가정, 아이와 시간을 함께하기 어려운 형편인 가정, 초기 독서교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가정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 뵈었던 선생님 중 한 분은 아이들이 약 10명인 작은 분교의 교사셨는데, 학교 전체를 통틀어 부모와 사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으며, 아이들이 입학 전에 누군가가 책을 읽어준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아이들의 경우에는 책은커녕 어른과의 언어적인 상호작용 자체가 부족해서 아이의 언어가 유아어에 머물러 있답니다. 아침에 나간 할머니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실 때까지 자매 둘만 집에서 지냈고, 해가 지고 할머니가 오시면 아이들 끼니를 챙기고, 남은 집안일을 하고, TV를 보며 쉬셨고요.
언어적 상호작용만을 보자면, 부모와 1~2명의 자녀로 구성된 현대의 핵가족은 다수의 형제, 자매와 조부모, 사촌들, 친척들과 어울려 살았던 대가족보다는 대화의 상대가 훨씬 한정되어 있습니다. 지역 공동체가 와해되면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동네의 이웃들, 친구들, 어른들도 줄었고요. 그래서 현대의 핵가족이 해체되면 아이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문식활동을 함께하고 자극할 어른과 손윗사람의 숫자가 급격히 줄게 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문식활동을 이해하면, 가정에서 도움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주변의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교사와 사서는 학교의 고학년 자원봉사자들, 학부모 자원봉사자들, 지역의 도서관, 인근의 중・고등・대학교 자원봉사자들에게 좀 더 효과적인 방법들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가정에서 ‘함께 읽기’가
교육적으로 효과적인 이유
읽고 쓰는 능력의 발달에 가족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를 종합해보면, 가정은 크게 세 가지 양식으로 아이의 읽고 쓰기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첫째는 읽고 쓰는 상황에서 아이가 양육자와 상호작용한 것, 둘째는 아이가 스스로 문자에 대해 경험한 것, 셋째는 아이가 양육자의 읽고 쓰는 행위를 관찰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위의 세 가지 양식 중 첫 번째, 즉,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이 아이의 문식 능력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안내하겠습니다.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나 조부모, 형제, 양육 도우미, 친지 등 자신보다 읽고 쓰기 능력이 나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읽고 쓰기를 배웁니다. 이 상호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특정한 형식 없이 이루어지는 읽고 쓰기 활동들이고(informal literacy activities),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활동(teaching literacy)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림책을 함께 쳐다보면서 엄마가 글을 읽어주고 아이가 듣고, 중간 중간 대화하는 활동은 비공식적인 문식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그림책에 나온 글자를 가리키면서 소리 내어 읽는 걸 가르치거나,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두 번째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비공식적인 읽고 쓰기 활동은 어휘력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공식적인 읽고 쓰기 학습은 글자에 대한 지식을 높인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공식적인 읽기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이며 효과가 높은 활동이 ‘함께 읽기(shared reading)’입니다. 이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글을 보는 가운데, 어른이 소리 내어 읽어주고 아이가 듣는 활동입니다. 함께 읽으면서 아이는 글의 내용과 언어적 표현, 그림이나 사진, 표 등의 시각적 표현양식들을 공유하고, 서로 묻고 답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나누기도 하지요. 함께 읽기가 교육적으로 효과적인 이유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책을 읽으면 일상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언어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언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유아들이 읽는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이호백, 재미마주, 2000)를 보면, 매우 짧고 쉬운 문장임에도 “도대체”, “슬그머니”, “망설이다가”, “꾀” 등의 표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책 속의 표현은 말 속의 표현과는 다릅니다. 『들꽃 아이』(임길택 글, 김동성 그림, 길벗어린이, 2008)의 한 부분을 읽어보지요.
“고갯마루에 다다라 사방을 둘러보던 선생님은 마치 신선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발 아래 어슴푸레한 안개에 덮인 숲과 밤하늘이 그때만큼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진 적도 없었고, 빙 둘러서 있는 산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선생님을 반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단락은 도시에서 산촌 마을로 부임한 선생님이 매일 먼 길을 걸어 학교에 오는 보선이네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문장을 살펴보면, 일상의 대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어휘와 문어적인 표현들, 복잡한 문장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경험하는 언어뿐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나누는 대화의 언어 또한 다른 일상의 경우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함이 밝혀졌는데요. 책을 함께 읽을 때, 함께 놀 때, 기억을 회상할 때, 부모와 아이의 대화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1) ,같은 부모라도 책을 함께 읽을 때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이 다른 상황에서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하다고 합니다. 아이들 또한 다른 맥락일 때보다 책을 나누어 읽을 때 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어휘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1) Crain–Thoreson, Dhalin, & Powell, (2001). Parent–child interaction in three conversational contexts: variations in style and strategy.
New Directions for Child and Adolescent Development,. 92, 23–37.
둘째, 책에서는 새로운 단어나 개념이나 사건의 빈도가 높기 때문에, 부모가 책을 함께 읽어주면서 아이에게 그림을 짚어주거나, 다른 말로 정의하거나, 예를 들어주면서 의미 파악을 도와주고, 질문하거나 설명해주는 빈도도 높아집니다. 이때 사용하는 언어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지요.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한 양육자가 아이가 이미 체득한 어휘와 문장구조를 누구보다도 알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화를 나누면서 책을 읽어 주는 방법을 ‘대화 읽기(dialogic reading)’라고 합니다. 16종의 대화 읽기 연구를 종합한 몰(Moll) 등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화 읽기가 책 읽기 효과를 더 높인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만 2~3세) 부모와의 대화가 어휘 획득과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된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만 4~5세) 언어능력이 높아지면 아이는 부모의 자극 없이도 책 내용이나 사건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책 읽다가 중간에 끼어드는 질문이나 설명이 책읽기의 흐름을 방해한다고도 합니다.2)
2) Mol, S.E., Bus, A. G., de Jong, M.T., & Smeets, D.J.H. (2008).
Added value of dialogue parent–child book readings: A meta–analysis. Early Education and Development, 19(1), 7–26.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질문에 답해주고, 설명을 요구하면 보태주는 방식으로요. ‘자극’하기보다 ‘반응’하는 대화를 하는 거지요. 특히 가정은 1 대 다수로 책을 읽어주는 교사와는 달리, 1 대 1로 책을 읽어주기 때문에, 아이가 상상하고 말하고 묻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읽어주되 대화하지 않는 오디오나 컴퓨터 프로그램, 로봇은 양육자와 함께 볼 수는 있겠지만 대신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그림책 중에는 책의 마지막에 내용 확인이나 의미 확장을 위한 질문을 끼워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습을 강조한 전집류에서 그런 질문지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부모가 대화할 때 참고할 사항이지 따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에 답하느라 아이가 읽기를 귀찮아하거나 싫어하게 된다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화’는 ‘퀴즈’나 ‘강의’ 혹은 ‘훈계’와 구분해야 하지요.
셋째, 어린 아이들이 경험하는 가정에서의 함께 읽기는 반복적입니다. 청소년과 성인은 한 책을 보통 한 번 읽고 특별한 경우에 반복하는 반면, 유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다시 읽는 걸 좋아하지요. 까막눈인데도 좋아하는 책은 빽빽한 책장에서도 귀신처럼 찾아내고, 본문을 달달 외우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복적인 읽기로 아이는 새로운 어휘와 지식에 반복적으로 노출됩니다. 어휘와 지식은 반복적으로 그리고 문맥 속에서 노출될 때 더 잘 기억되는데, 유아들의 그림책은 되풀이되는 구절이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문맥적입니다.
가정에서 공식적 글 가르치기와
비공식적 읽어주기의 효과
함께 읽기가 비공식적인 문식활동이라면, 가정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읽고 쓰기는 책뿐 아니라, 문자를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일상에서 이루어집니다. 간판 등의 환경 프린트를 보며 글자를 알려준다거나 플래시 카드, 학습지를 가지고 글씨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주기도 하지요. 특히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 익히기가 가정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상 1학년 1학기에 글자 익히기를 시작하나, 2학기부터는 글자를 아는 것을 가정한 상태에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지요. 학교에서는 한글 해독에 매우 짧은 시간을 부여하고, 한글을 대강 읽고 쓸 줄 아는 아이들의 숫자가 많기에, 많은 부모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한글 떼기 학습지와 한글 방문수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나라를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지요.
세네샬(Sénéchal)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공식적인 글 가르치기와 비공식적 읽어주기 경험이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장기적으로 연구했습니다.3)
3) Sénéchal, M. (2012). Child language and literacy development at home. in Handbook of family literacy. New York: Taylor & Francis. 38–50.
유치원 연령대의 경험이 초등학교 1학년에서, 그리고 4학년에서 독해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했지요. 결과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선 가정에서 아이가 받은 문식경험에 따라 4가지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1)글을 많이 가르쳐주고 읽어주기도 많이 한 집단(‘많이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2)글을 많이 가르쳤으나 읽어주기는 적게 한 집단(‘많이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 (3)글은 적게 가르치고 읽어주기를 많이 한 집단(‘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4)글도 적게 가르치고 읽어주기도 적게 한 집단(‘적게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으로요. 글을 많이 가르쳐주고 많이 읽어준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지속적으로 높은 유창성과 독해력을 보입니다. 반면, 네 번째 집단은 계속 낮은 유창성과 독해능력을 유지하고요. 이 점은 우리가 충분히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바입니다.
재미있는 결과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집단입니다. ‘많이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 집단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에서 이루어진 읽기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반면 ‘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은 유치원, 1학년 때 평균이하의 읽기능력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4학년이 되면 상황이 역전됩니다. ‘많이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 집단의 독해능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평균이하가 되고, ‘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은 독해능력이 이보다 높아져 평균 수준이 됩니다. 읽어주기의 효과는 당장에 나타나지 않고 매우 천천히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책을 별로 읽어주지 않고 학습지로 글자를 뗀 아이는 저학년에서는 읽기에 두각을 나타내지만, 고학년에 올라가면 독해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글자를 특별히 배우지 못했더라도 책을 부모와 함께 많이 읽은 아이는 저학년에서는 읽기능력이 뒤처지더라도 고학년에 되어서는 독해를 능력이 높아져서 평균수준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결과는 부모의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했습니다.
연구자는 이러한 결과가 도출된 이유들을 몇 가지로 유추합니다. 우선 부모와 함께 읽은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자주 그리고 오래도록 경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읽기를 즐겨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부모가 많이 읽어준 아이들 중, 문자 읽기를 본격적으로 가르쳐준 아이들은 읽기 독립의 시기가 좀 더 빨라지기 때문에 초기부터 읽기 능력이 높아집니다. 반면, 많이 읽어주었으나 문자 읽기를 본격적으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독립 독자가 되는 전환기까지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립니다. 글자의 해독에 애를 더 쓰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아이들이 해독을 좀 더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스스로 열정적인 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설명은 이렇습니다. 많이 읽어준 집단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유치원 시기부터 높은 어휘력을 보입니다. 어휘는 두 가지로 크게 나뉘는데, 듣거나 쓰인 문자를 보고 이해하는 단어를 ‘이해 어휘’라 하고, 말하거나 쓸 수 있는 단어를 ‘표현 어휘’라 합니다. 책 읽어주기는 이해 어휘의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걸 아이가 듣기 때문에, 들어서 아는 이해 어휘 수가 아주 많지요. 한국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책읽기 활동은 이해 어휘력과 청각기억을 높인다고 보고합니다.4) ‘많이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의 아이들은 높은 이해 어휘력과 해독능력을 초기부터 활용합니다. 그러나 ‘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의 경우 해독이 자동화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이후에는 어릴 때부터 축적되었던 어휘력이 발현되어 독해력이 급상승하게 된다는 겁니다.
4) 장유경, 최유리, 이근영 (2007). “24개월 영아의 어휘습득, 책읽기 활동과 청각기억 능력의 발달”. 「한국발달심리학회지」, 20(1). 51–65.
이상으로 가정에서 양육자와 아이 간의 상호작용이 아이의 읽기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습니다. 문자를 만나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의 읽기 독립을 수월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단,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아이가 문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알려고 하며, 스스로 읽으려 하거나 쓰려고 할 때 말이지요. 연구에서 밝혀진 바처럼 글자습득 중심으로 글을 배우면 당장은 읽기를 잘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독해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즐겁게 책을 읽어주는 것,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반응에 민감성을 갖고 대화하는 것, 아이가 글자를 알더라도 읽어주기를 그만두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와 즐겁게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은 당장 드러나지 않지만 어휘와 독해, 책에 대한 태도 등에 매우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가정에서 이러한 경험이 많지 않다면 이제라도 시작하면 됩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요.
“독서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는 게 제일 좋을까요?”
“집에서 책을 읽어주면 저절로 글자 뗀다고 해서 나름 많이 읽어주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니 한글 학습지를 한 아이보다 글자도 못 읽고 받아쓰기도 더 틀리네요. 허무합니다. 읽어준 거 아무 소용없나 봐요.”
“반 아이의 독서를 위해 학부모들과 어떻게 협력하면 좋을까요?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학부모들과 교사들을 만나면 가정에서의 책읽기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받습니다.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가정에서의 책 경험이 아이의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이들의 서로 다른 문식경험과
태도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
아이들을 학교에서야 처음 만나게 되는 학교의 교사와 사서, 사서교사들은 ‘가정에서 아이들이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초기 경험을 알아봐야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얼마나 다르게 읽고 쓰기를 경험하고 학교를 시작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상이한 출발점을 인식하는 것은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제대로 돕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받은 읽고 쓰기 교육은 단순히 맞춤법을 얼마나 알고 오는지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지난 연재에서 설명한 것처럼, 글자를 소리 내어 읽을 줄 아는 능력인 ‘해독(decoding)’과 말과 글의 의미를 이해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능력인 ‘독해(comprehension)’ 사이에는 태평양만한 간극이 있거든요. 한글을 떼었는지, 즉 해독능력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밖에 매우 다양한 능력들이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아이의 독해 및 독서태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한 능력을 경험하는 첫 번째 공간이 바로 가정이지요.
학교에서 본격적인 학습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출발하는 아이들의 상황이 다 다릅니다. 걷는 아이, 달리는 아이, 목적지만 바라보고 성급하게 가려는 아이, 느리게 걷지만 주변을 두런두런 살피며 즐기는 아이, 벌써 지친 기색이 보이는 아이 등 각양각색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걷고 뛰는 아이들 속에, 읽고 쓰기의 걸음마를 이제 막 시작한 아이도 끼어 있습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우리교육, 2012)을 보면 글자를 읽을 수 있으나 내용 이해력이 동학년에 비해 몇 년씩 뒤처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연구자는 이러한 원인의 시작점에 문식경험을 거의 제공하지 못했던 가정이 있음을 지목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와서 겨우 읽기의 걸음을 떼었으나 제 속도대로 도움 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떤 애환을 갖고, 자신을 어떻게 위장하며 지내고 있는지를 상세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어떤 경험을 가졌기에 이렇게 다른 능력과 태도와 동기를 갖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위한 첫 번째 단추가 됩니다.
둘째, 교사나 사서가 아이들의 다양한 문식경험과 태도를 인식하게 되면, 가정과 협력할 때 일방적이고 일률적인 방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학기 초나 방학 전에 아이와 독서에 대한 단기 목표를 세울 때, 그리고 일상의 숙제를 내어줄 때 가정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적절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에게 일률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것, 예를 들어, “집에서 아무 책이나 골라 읽고 한 줄 요약해서 써라 혹은 독후감 한 단락만 써라.”라고 하는 것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쉽지만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 따라, 그림책 읽기,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읽어주기, 누군가 읽어주는 걸 듣기, 쉬운 책 읽기, 좀 더 도전적인 책 읽기 등 적절한 과제가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며 아이의 읽고 쓰기에 대해서 의논할 때, 어떤 영역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지, 어떤 수준의 책들이 적절할지, 어떤 방법으로 읽으면 좋을지를 개별화할 수 있습니다.
셋째, 가정과 협력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주변의 손을 빌려야 할 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적절한 도움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강연에서 학부모를 만나면 독서와 독서교육에 대한 열정이 매우 크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나 학교의 선생님과 사서 선생님들을 만나보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책의 세계를 경험하기 어려운 형편인지 놀라게 됩니다. 제가 글로든 강연으로든 만난 학부모들은 이미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독서교육을 하고 계셨던 분이셨던 거지요. 즉 한정된 분들만 만났더라는 겁니다. 전국의 도시와 농・어・산촌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살지 못하는 가정, 아이와 시간을 함께하기 어려운 형편인 가정, 초기 독서교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가정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 뵈었던 선생님 중 한 분은 아이들이 약 10명인 작은 분교의 교사셨는데, 학교 전체를 통틀어 부모와 사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으며, 아이들이 입학 전에 누군가가 책을 읽어준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아이들의 경우에는 책은커녕 어른과의 언어적인 상호작용 자체가 부족해서 아이의 언어가 유아어에 머물러 있답니다. 아침에 나간 할머니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실 때까지 자매 둘만 집에서 지냈고, 해가 지고 할머니가 오시면 아이들 끼니를 챙기고, 남은 집안일을 하고, TV를 보며 쉬셨고요.
언어적 상호작용만을 보자면, 부모와 1~2명의 자녀로 구성된 현대의 핵가족은 다수의 형제, 자매와 조부모, 사촌들, 친척들과 어울려 살았던 대가족보다는 대화의 상대가 훨씬 한정되어 있습니다. 지역 공동체가 와해되면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동네의 이웃들, 친구들, 어른들도 줄었고요. 그래서 현대의 핵가족이 해체되면 아이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문식활동을 함께하고 자극할 어른과 손윗사람의 숫자가 급격히 줄게 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문식활동을 이해하면, 가정에서 도움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주변의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교사와 사서는 학교의 고학년 자원봉사자들, 학부모 자원봉사자들, 지역의 도서관, 인근의 중・고등・대학교 자원봉사자들에게 좀 더 효과적인 방법들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가정에서 ‘함께 읽기’가
교육적으로 효과적인 이유
읽고 쓰는 능력의 발달에 가족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를 종합해보면, 가정은 크게 세 가지 양식으로 아이의 읽고 쓰기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첫째는 읽고 쓰는 상황에서 아이가 양육자와 상호작용한 것, 둘째는 아이가 스스로 문자에 대해 경험한 것, 셋째는 아이가 양육자의 읽고 쓰는 행위를 관찰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위의 세 가지 양식 중 첫 번째, 즉,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이 아이의 문식 능력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안내하겠습니다.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나 조부모, 형제, 양육 도우미, 친지 등 자신보다 읽고 쓰기 능력이 나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읽고 쓰기를 배웁니다. 이 상호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특정한 형식 없이 이루어지는 읽고 쓰기 활동들이고(informal literacy activities),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활동(teaching literacy)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림책을 함께 쳐다보면서 엄마가 글을 읽어주고 아이가 듣고, 중간 중간 대화하는 활동은 비공식적인 문식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그림책에 나온 글자를 가리키면서 소리 내어 읽는 걸 가르치거나,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두 번째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비공식적인 읽고 쓰기 활동은 어휘력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공식적인 읽고 쓰기 학습은 글자에 대한 지식을 높인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공식적인 읽기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이며 효과가 높은 활동이 ‘함께 읽기(shared reading)’입니다. 이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글을 보는 가운데, 어른이 소리 내어 읽어주고 아이가 듣는 활동입니다. 함께 읽으면서 아이는 글의 내용과 언어적 표현, 그림이나 사진, 표 등의 시각적 표현양식들을 공유하고, 서로 묻고 답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나누기도 하지요. 함께 읽기가 교육적으로 효과적인 이유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책을 읽으면 일상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언어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언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유아들이 읽는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이호백, 재미마주, 2000)를 보면, 매우 짧고 쉬운 문장임에도 “도대체”, “슬그머니”, “망설이다가”, “꾀” 등의 표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책 속의 표현은 말 속의 표현과는 다릅니다. 『들꽃 아이』(임길택 글, 김동성 그림, 길벗어린이, 2008)의 한 부분을 읽어보지요.
“고갯마루에 다다라 사방을 둘러보던 선생님은 마치 신선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발 아래 어슴푸레한 안개에 덮인 숲과 밤하늘이 그때만큼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진 적도 없었고, 빙 둘러서 있는 산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선생님을 반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단락은 도시에서 산촌 마을로 부임한 선생님이 매일 먼 길을 걸어 학교에 오는 보선이네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문장을 살펴보면, 일상의 대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어휘와 문어적인 표현들, 복잡한 문장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경험하는 언어뿐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나누는 대화의 언어 또한 다른 일상의 경우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함이 밝혀졌는데요. 책을 함께 읽을 때, 함께 놀 때, 기억을 회상할 때, 부모와 아이의 대화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1) ,같은 부모라도 책을 함께 읽을 때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이 다른 상황에서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하다고 합니다. 아이들 또한 다른 맥락일 때보다 책을 나누어 읽을 때 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어휘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1) Crain–Thoreson, Dhalin, & Powell, (2001). Parent–child interaction in three conversational contexts: variations in style and strategy.
New Directions for Child and Adolescent Development,. 92, 23–37.
둘째, 책에서는 새로운 단어나 개념이나 사건의 빈도가 높기 때문에, 부모가 책을 함께 읽어주면서 아이에게 그림을 짚어주거나, 다른 말로 정의하거나, 예를 들어주면서 의미 파악을 도와주고, 질문하거나 설명해주는 빈도도 높아집니다. 이때 사용하는 언어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지요.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한 양육자가 아이가 이미 체득한 어휘와 문장구조를 누구보다도 알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화를 나누면서 책을 읽어 주는 방법을 ‘대화 읽기(dialogic reading)’라고 합니다. 16종의 대화 읽기 연구를 종합한 몰(Moll) 등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화 읽기가 책 읽기 효과를 더 높인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만 2~3세) 부모와의 대화가 어휘 획득과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된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만 4~5세) 언어능력이 높아지면 아이는 부모의 자극 없이도 책 내용이나 사건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책 읽다가 중간에 끼어드는 질문이나 설명이 책읽기의 흐름을 방해한다고도 합니다.2)
2) Mol, S.E., Bus, A. G., de Jong, M.T., & Smeets, D.J.H. (2008).
Added value of dialogue parent–child book readings: A meta–analysis. Early Education and Development, 19(1), 7–26.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질문에 답해주고, 설명을 요구하면 보태주는 방식으로요. ‘자극’하기보다 ‘반응’하는 대화를 하는 거지요. 특히 가정은 1 대 다수로 책을 읽어주는 교사와는 달리, 1 대 1로 책을 읽어주기 때문에, 아이가 상상하고 말하고 묻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읽어주되 대화하지 않는 오디오나 컴퓨터 프로그램, 로봇은 양육자와 함께 볼 수는 있겠지만 대신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그림책 중에는 책의 마지막에 내용 확인이나 의미 확장을 위한 질문을 끼워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습을 강조한 전집류에서 그런 질문지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부모가 대화할 때 참고할 사항이지 따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에 답하느라 아이가 읽기를 귀찮아하거나 싫어하게 된다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화’는 ‘퀴즈’나 ‘강의’ 혹은 ‘훈계’와 구분해야 하지요.
셋째, 어린 아이들이 경험하는 가정에서의 함께 읽기는 반복적입니다. 청소년과 성인은 한 책을 보통 한 번 읽고 특별한 경우에 반복하는 반면, 유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다시 읽는 걸 좋아하지요. 까막눈인데도 좋아하는 책은 빽빽한 책장에서도 귀신처럼 찾아내고, 본문을 달달 외우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복적인 읽기로 아이는 새로운 어휘와 지식에 반복적으로 노출됩니다. 어휘와 지식은 반복적으로 그리고 문맥 속에서 노출될 때 더 잘 기억되는데, 유아들의 그림책은 되풀이되는 구절이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문맥적입니다.
가정에서 공식적 글 가르치기와
비공식적 읽어주기의 효과
함께 읽기가 비공식적인 문식활동이라면, 가정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읽고 쓰기는 책뿐 아니라, 문자를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일상에서 이루어집니다. 간판 등의 환경 프린트를 보며 글자를 알려준다거나 플래시 카드, 학습지를 가지고 글씨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주기도 하지요. 특히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 익히기가 가정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상 1학년 1학기에 글자 익히기를 시작하나, 2학기부터는 글자를 아는 것을 가정한 상태에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지요. 학교에서는 한글 해독에 매우 짧은 시간을 부여하고, 한글을 대강 읽고 쓸 줄 아는 아이들의 숫자가 많기에, 많은 부모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한글 떼기 학습지와 한글 방문수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나라를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지요.
세네샬(Sénéchal)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공식적인 글 가르치기와 비공식적 읽어주기 경험이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장기적으로 연구했습니다.3)
3) Sénéchal, M. (2012). Child language and literacy development at home. in Handbook of family literacy. New York: Taylor & Francis. 38–50.
유치원 연령대의 경험이 초등학교 1학년에서, 그리고 4학년에서 독해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했지요. 결과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선 가정에서 아이가 받은 문식경험에 따라 4가지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1)글을 많이 가르쳐주고 읽어주기도 많이 한 집단(‘많이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2)글을 많이 가르쳤으나 읽어주기는 적게 한 집단(‘많이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 (3)글은 적게 가르치고 읽어주기를 많이 한 집단(‘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4)글도 적게 가르치고 읽어주기도 적게 한 집단(‘적게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으로요. 글을 많이 가르쳐주고 많이 읽어준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지속적으로 높은 유창성과 독해력을 보입니다. 반면, 네 번째 집단은 계속 낮은 유창성과 독해능력을 유지하고요. 이 점은 우리가 충분히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바입니다.
재미있는 결과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집단입니다. ‘많이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 집단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에서 이루어진 읽기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반면 ‘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은 유치원, 1학년 때 평균이하의 읽기능력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4학년이 되면 상황이 역전됩니다. ‘많이 가르치기–적게 읽어주기’ 집단의 독해능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평균이하가 되고, ‘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은 독해능력이 이보다 높아져 평균 수준이 됩니다. 읽어주기의 효과는 당장에 나타나지 않고 매우 천천히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책을 별로 읽어주지 않고 학습지로 글자를 뗀 아이는 저학년에서는 읽기에 두각을 나타내지만, 고학년에 올라가면 독해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글자를 특별히 배우지 못했더라도 책을 부모와 함께 많이 읽은 아이는 저학년에서는 읽기능력이 뒤처지더라도 고학년에 되어서는 독해를 능력이 높아져서 평균수준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결과는 부모의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했습니다.
연구자는 이러한 결과가 도출된 이유들을 몇 가지로 유추합니다. 우선 부모와 함께 읽은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자주 그리고 오래도록 경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읽기를 즐겨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부모가 많이 읽어준 아이들 중, 문자 읽기를 본격적으로 가르쳐준 아이들은 읽기 독립의 시기가 좀 더 빨라지기 때문에 초기부터 읽기 능력이 높아집니다. 반면, 많이 읽어주었으나 문자 읽기를 본격적으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독립 독자가 되는 전환기까지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립니다. 글자의 해독에 애를 더 쓰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아이들이 해독을 좀 더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스스로 열정적인 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설명은 이렇습니다. 많이 읽어준 집단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유치원 시기부터 높은 어휘력을 보입니다. 어휘는 두 가지로 크게 나뉘는데, 듣거나 쓰인 문자를 보고 이해하는 단어를 ‘이해 어휘’라 하고, 말하거나 쓸 수 있는 단어를 ‘표현 어휘’라 합니다. 책 읽어주기는 이해 어휘의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걸 아이가 듣기 때문에, 들어서 아는 이해 어휘 수가 아주 많지요. 한국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책읽기 활동은 이해 어휘력과 청각기억을 높인다고 보고합니다.4) ‘많이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의 아이들은 높은 이해 어휘력과 해독능력을 초기부터 활용합니다. 그러나 ‘적게 가르치기–많이 읽어주기’ 집단의 경우 해독이 자동화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이후에는 어릴 때부터 축적되었던 어휘력이 발현되어 독해력이 급상승하게 된다는 겁니다.
4) 장유경, 최유리, 이근영 (2007). “24개월 영아의 어휘습득, 책읽기 활동과 청각기억 능력의 발달”. 「한국발달심리학회지」, 20(1). 51–65.
이상으로 가정에서 양육자와 아이 간의 상호작용이 아이의 읽기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습니다. 문자를 만나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의 읽기 독립을 수월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단,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아이가 문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알려고 하며, 스스로 읽으려 하거나 쓰려고 할 때 말이지요. 연구에서 밝혀진 바처럼 글자습득 중심으로 글을 배우면 당장은 읽기를 잘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독해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즐겁게 책을 읽어주는 것,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반응에 민감성을 갖고 대화하는 것, 아이가 글자를 알더라도 읽어주기를 그만두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와 즐겁게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은 당장 드러나지 않지만 어휘와 독해, 책에 대한 태도 등에 매우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가정에서 이러한 경험이 많지 않다면 이제라도 시작하면 됩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