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데아 [사서교사의 문해력 코칭 수업] 읽기 자료 선택으로 수업 첫걸음 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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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4-01 11:43 조회 1,334회 댓글 0건본문
읽기 자료 선택으로
수업 첫걸음 떼기
허민영 전주 우림중 사서교사
지난겨울, 보름 동안 이스탄불에 다녀왔습니다. 이스탄불은 해협을 가운데 두고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이 걸쳐 있는 묘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경이로운 해변 경치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스탄불은 동로마 제국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국가의 수도였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중 메이든 타워에 얽힌 전설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점쟁이로부터 딸이 뱀에게 물려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비잔틴 황제는 뱀이 절대 갈 수 없는 높은 절벽에 탑을 세웁니다. 그리고 필요한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탑에 올리는 방법으로 딸을 지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구니 안에 뱀이 들어가고 결국 딸은 뱀에게 몰려 죽습니다. 이 비극에서 ‘운명은 벗어날 수 없다’라는 튀르키예 속담이 탄생합니다. 이야기를 듣자 문득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선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저는 도서관을 선택하겠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잠겨 세상과 담을 쌓아도 끈질기게 저에게 왔으면 하는 존재, 그것이 도서관이면 꽤 살 만할 것 같습니다. 4월호에서는 문해력 수업을 시작하는 시간, 즉 ‘여는 시간’에 추천하는 교육활동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문해력 수업을 실천하길 원하지만 시작이 막연해 갈팡질팡 중인 선생님들에게 단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문해력 수준 진단하기
교육평가는 평가 시기에 따라 진단평가, 형성평가, 총괄평가로 분류됩니다. 진단평가는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의 학습 과제에 대한 준비도를 알아보는 평가입니다. 교사는 진단평가를 통해 알게 된 학생의 수준과 특성으로 목표 도달에 효과적인 교수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문해력 수업 역시 읽기 자료를 선택하기 위해서 학생의 문해력 수준을 알 수 있는 진단평가가 필요합니다. 진단평가 방법은 다양하나 문해력 수업에서는 구조화된 과제를 통한 진단평가를 추천하며 이때 참고하면 좋을 세 가지 자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EBS 문해력 진단 검사
‘EBS 문해력 진단 검사(primary.ebs.co.kr/course/literacy)’를 통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학년별 수준에 맞춤한 검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검사를 마치면 사이트에서 문해력 수준과 추천 ERI 지수1)를 알려 주는데 이 ERI 지수에 따라 어휘, 쓰기, 독해, 배경지식, 디지털 독해 영역에서 수준에 맞는 학습 과정을 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추천받은 학습 과정은 EBS 교재와 연결할 수 있어서 일대일 맞춤형 학습에 유용합니다. 하지만 검사는 수능 비문학 영역처럼 긴 지문 하나에 문제 세 개가 제시되는 유형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며 검사 시간이 길고 지문이 어려운 편입니다.
둘째, 어휘정보처리연구소 독서력 검사
‘주식회사 낱말 어휘정보처리연구소 홈페이지(natmal.com)’는 사전, 독서, 낱말퍼즐, 영어, 문장검사 다섯 가지 영역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특히 독서 카테고리에서 LQ 독서력 검사2)를 통해 독서력을 검사할 수 있습니다. 검사 방식은 하나의 지문에 딸린 하나의 문제를 푸는 것으로 EBS 문해력 진단 검사보다 수월합니다. 검사 결과로 알려 주는 LQ 지수로 학생의 독서능력 수준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독서능력 수준에 적합한 난이도의 도서를 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만 원의 검사 응시료가 필요하며, 목록에 나온 도서의 출간일이 오래되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1) ERI는 ‘EBS Reading Index’의 줄임말로 아이들이 읽는 글의 난이도를 단어, 문장, 배경지식에 따라 등급화하여 정량화하고, 독해 전문가들이 정성평가를 통해 최종 보정한 수치를 말한다. EBS 전국 문해력 전문가와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이 공동으로 개발한 지수이다(출처: EBS 공식 홈페이지).
2) LQ는 라틴어로 독서라는 의미를 가진 ‘Lectio’와 지수라는 의미를 가진 ‘Quotient’가 결합한 것으로 ‘독서지수’를 의미한다. LQ는 개인의 독서능력을 뜻하는 동시에, 도서의 경우에는 도서의 가독성(난해도)을 나타내는 도서지수이기도 하다(출처: 어휘정보처리연구소 홈페이지).
셋째, 네이버 국어 퀴즈
네이버 검색창에 ‘국어 퀴즈’라고 검색하면 사자성어, 맞춤법, 순우리말, 속담, 외래어, 신조어에 해당하는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특히 맞춤법 문제는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의 맞춤법을 확인하기에 탁월합니다. 예를 들어, ‘널브러진 서류를’이라는 말 뒤에 올 동사도 ‘지르밟다’가 맞는지 ‘즈려밟다’가 맞는지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를 제시합니다. 선택이 끝나면 정답과 동시에 네이버 국어사전으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지르밟다’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으로 인해 ‘즈려밟다’로 잘못 쓰이고 있으며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라는 뜻은 ‘지르밟다’가 올바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긴 글을 읽어야 하는 EBS 문해력 진단 테스트와 LQ 독서력 검사와 비교해 짧은 글로 학생 수준을 파악할 수 있지만 검사 결과의 정확도와 정밀도는 떨어집니다. 네이버 국어 퀴즈는 문해력 수업 시작이나 중간에 활용하면 수업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추천하는 문해력 수업 진단 평가 방법은 검사지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평소 여러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문해력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찾아내고 학생 수준 진단에 적합한 문제들은 스크랩합니다. 이것을 조직적으로 편집하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검사지가 탄생합니다. 교사는 학생을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연속적으로 마주합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해 만나는 학생 수준을 고려해 검사지를 유연하게 편집한다면 적절한 형성평가로 연계할 수 있습니다.
문해력 수업 읽기 자료 선택하기
글을 읽는 것은 인간의 두뇌 활동을 자극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문해력 수업 읽기 자료는 책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기사, 인터뷰, 평론 심지어 약의 효능과 복용법이 쓰인 글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읽기 자료를 모두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 흥미에 따른 읽기 자료의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첫 번째 읽기 자료는 항상 책을 선택합니다. 학창 시절 완독 경험은 읽기 자신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많은 글 중에서 책의 형식을 갖춘 글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학교도서관은 정보가 많아지고 난잡해지는 세상에서 지식의 체계와 정보의 진위에 강한 책 형식의 글을 학생에게 꾸준히 노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까요?
첫째, 교사의 책 선택
문해력 수업을 위한 책 선택 질문은 명료합니다. ‘교사가 읽고 재미있었는가?’ 재미있는 읽기 자료를 고르면 즐거운 수업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사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 학생에게 재미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 재미라는 기준을 만족했다면 다음으로 이야기의 어휘를 살핍니다. 진단평가에서 파악한 학생 수준을 기준으로 어려운 단어가 아주 많거나 적게 쓰이는 책을 제외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어의 쓰임과 문장의 구성도 살피는데, 이때 번역서들이 많이 탈락합니다. 재미와 어휘라는 단순한 기준에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수업에 앞서 교사가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현인에게 칭송받는 책이라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직접 읽은 후 읽기 자료로 선택해야 합니다.
둘째, 학생의 책 선택
모든 학생이 같은 책을 읽는 풍경은 교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모두가 한목소리로 같은 문장을 읽거나 한 학생이 큰 목소리로 읽으면 다른 학생은 조용히 눈으로 따라 읽는 방식입니다. 모두가 특정 부분을 읽어야 할 수 있는 수업 활동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읽기 방법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작년 3월, 지면을 통해 소개한 문해력 수업 역시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책을 읽으며 때때로 학생의 길 잃은 시선을 볼 때면 마음이 출렁였습니다. 평균에 일괄적으로 맞춘 읽기 자료는 이해력이 부족한 학생의 학습 동기와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기에 저는 학생이 책을 선택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북매치 전략 활용하기
『수업에 바로 써먹는 문해력 도구』(전보라)에 소개된 ‘북매치(Book match)’ 전략을 활용하면 학생의 자율적인 책 선택을 도울 수 있습니다. 북매치는 책 선택에 책의 분량(Book length), 언어의 난이도(Ordinary language), 구조(Organization), 배경지식(Knowledge prior to book), 다룰 만한 텍스트(Manageable text), 장르(Appeal to genre), 주제적합성(Topic appropriatieness), 연결(Connection), 높은 흥미(High interest) 9가지 항목3)을 살피는 전략입니다. 상황에 따라 9가지 항목에서 몇 가지 기준을 삭제하고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북매치 전략 활용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학생에게 활동 내용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이때 다양한 예시를 언급하며 즉각적인 이해를 돕습니다.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 신간 카테고리에서 읽을 책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설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9가지 항목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 혹은 책과 관련한 키워드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머리말, 추천사, 책날개, 목차, 작가 소개 등을 살피는 것으로 가능하며 학생에게 이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합니다. 교사는 다음과 같이 북매치 전략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선택한 책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선생님은 5가지 기준에 따라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 책을 골랐습니다. 책의 분량 300페이지는 선생님에게 적당하고 아무 페이지를 펼쳐서 나온 ‘적어도 나는 더 이상 나의 삶을 방치하지는 않고 있었다.’ 역시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아 눈부신 세상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줄 수 있었으면’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선생님을 위로했던 책들을 즐겁게 읽었던 경험이 떠올랐으며 최근 백수린 작가를 행사에서 만났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책은 북매치 5가지 항목에 부합한 책입니다."
활동에 관한 모든 설명을 마치면 학생이 직접 서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도록 합니다. 책을 고르면 책 정보와 선정 이유를 글로 쓰게 하여 자기 생각을 정리하도록 돕습니다. 짧게라도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꽤 많은 학생이 자신의 책을 고른 이유를 잊습니다. 이제 옆자리 친구 혹은 모둠과 책을 고른 이유를 주고받을 시간입니다. 이때 다른 학생이 고른 책 중 가장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자신이 고른 도서를 묻는 문항 아래 적도록 합니다. 이제 개인이 고른 책을 읽고 특정 문단을 골라 단어 퀴즈를 출제하는 방식으로 문해력 수업과 연계합니다. 이때 학생이 출제한 문제는 다른 반 혹은 후년도 수업 예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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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자료 선택은 문해력 수업의 첫 단추
앞서 소개한 문해력 진단평가는 교사의 선택에 도움을 주며 북매치 전략은 학생의 선택에 도움을 줍니다. 읽기 자료 선택은 문해력 수업의 첫 단추입니다. 잘 꿴 첫 단추가 문해력 수업의 순항으로 이어지는 과정, 궁금하지 않으세요? 해변의 잔모래가 발을 감싸 안는 봄날의 해변처럼 따뜻한 만족감을 느낄 것이라 확신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자가 누워 있다.’라는 튀르키예 속담이 있습니다. 문해력 수업을 망설이는 선생님에게 이 속담을 바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