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으로 말 걸기] 의미 있는 대상이 필요한 민혁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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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8-15 09:39 조회 8,902회 댓글 0건본문
고정원 대안학교 말과글 교사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건 본 적도 없다는 민혁이가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으라고 한 수업 시간에도 고집스럽게 책 한 권 올려놓지 않고 엎드려 잠을 자는 녀석이다. 평소 친구들이 만화책을 권해줘도 만화도 책이라며 읽기를 거부하는 지조(?) 있는 아이였다. 그랬던 민혁이가 내 옆에 앉아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같이 보고 있다니… 민혁이는 같은 학교 중학생이라면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힘세고 무서운 아이로 유명한데, 작년에 학교폭력과 무단결석으로 유예되어 친구들은 3학년이지만 올해도 2학년으로 다니고 있다.
옆에서 내가 읽는 책을 같이 보고 있던 민혁이가 표지를 넘겨보았다.
“『암탉, 엄마가 되다』 뭐, 이런 닭 같은 책을 보세요?”
자기가 한 이야기가 뭐가 그리 웃긴지 한참을 웃었다. 그러더니
“개 같은 책은 안보세요?”
하며 또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는 혼자 웃는 것이 민망한지 이 책은 무슨 내용인지 물었다. 그래서 병아리를 길러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병아리? 아! 학교 앞에서 팔던 거. 기르진 않고 가지고 놀아봤죠. 애들이랑 누가 더 빨리 죽이나 내기도 했는 걸요. 초등학교 때 애들이랑 한 봉지 사서 아파트 위에서 떨어트리기도 하고, 그리고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밀면 애들이 어지러워서 막 걷지도 못하고 얼마나 웃긴데요.”
다른 아이들 말대로 잔인하고 나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지는 그 작고 귀여운 병아리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상상만으로도 민혁이 옆에 있기가 싫어졌다. 그러면서 인상을 썼던 모양이다.
“선생님, 뭘 그러세요. 어차피 그것들은 죽는다는데요. 믹서로 갈아 죽이기도 한다는데 그것보다는 낫잖아요.”
차라리 그냥 책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기에는 시간도 없었고, 민혁이 이야기가 너무 폭력적이라 더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암탉, 엄마가 되다』 책장을 넘기며 시골로 내려간 아이가 닭을 기르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사진자료가 많아서 사진만 보고 이야기하기가 좋았다. 민혁이는 흥미롭게 보았다. 그리고 오골계를 먹어본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공은 이렇게 닭을 많이 기르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쉽게 “팔거나 먹지 않았을까?”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기르던 걸 먹어요. 아닐 거예요.”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아이라니… 아까 병아리는 잔인하게 죽였으면서 책 속에 나와 있는 닭들은 불쌍하다는 말일까?
“그거랑 이 닭이랑은 다르죠. 이 닭들은 기르던 거잖아요. 같이 산 시간들이 있는데…”
“다르다!”라는 표현은 민혁이에게 많이 들은 말이었다.
민혁이는 의미 있는 대상과 그렇지 못한 대상을 나누어 놓았다. 그것은 동물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도 ‘우리 아이들’이라는 말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누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무척 잔인하게 굴었다. “전 선생님이랑 몇몇 선생님 말고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아요.”라고 한 것을 보면 다행히(?) 나도 민혁이의 ‘우리’에 들어가 있었다.
왜 이렇게 민혁이는 ‘우리’라는 벽을 쌓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적이 많으면 힘들지 않을까? 그리고 점점 더 지켜야 할 ‘우리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사건에는 항상 민혁이가 개입되어 있었고, 그 결과 내년에도 3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민혁이는 항상 ‘반성의 의지’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큰 징계를 받았다.
“어렸을 때 형이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자꾸 때렸어요. 차라리 날 때리라고 하니까 정말 날 때리더라고요. 그 이후 형은 계속 날 때렸어요. 그래도 형이 우리 토토를 때리는 것보다는 날 때리는 것이 나았어요. 토토를 데리고 가출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토토랑 같이 있으니 좋았어요. 토토는 가족 중에서 저만 따라다녔거든요. 제가 얼마나 잘해줬다고요. 저 어렸을 때 꿈이 수의사였어요. 토토는 정말 귀여웠어요. 얼마나 똑똑했는데요. 말도 다 알아듣고.”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민혁이의 표정이 순진한 어린 아이 같았다. 당장이라도 토토를 데려다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나쁜 것들(부모님)이 토토를 어딘가 보내버렸어요. 그 미친 놈(형)이 제게 계속 시골에서 잡혀 먹었을 거라고 했고요. 애완동물은 키우면 안돼요. 애들 상처받아요.”
그 사건으로 민혁이가 받은 상처는 컸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라고 하는데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내게 수의사가 쓴 책이 있어 꺼내 민혁이에게 내밀었다.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 야한 소설이에요?”
아래 ‘우치동물원 수의사 최종욱의 야생 동물 진료 일기’ 부제를 읽어보도록 했다. 책을 자기 손으로 들춰보지 않는다는 민혁이의 소신(?)을 지켜주고자 책을 펼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 역시 사진이 많이 있어서 이야기 나누기가 좋았다. 어렸을 때 꿈이 수의사여서 그런지 더럽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특히 흥미롭게 들었다. 특히 수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다닐 수 없다는 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자기도 동물원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동물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동물원에서 맹수들과 옥신각신하며 진료하는 민혁이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민혁이 역시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는지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보다는 동물이 나은 것 같아요. 동물들은 우리 애들처럼 사고 안 치잖아요.”
나는 ‘사람이 힘들구나’라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 민혁이는 금세 다시 화가 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생각 없이 오토바이 훔쳐오는 것이나 사소한 말싸움에 나서서 혼내줘야 하는 것, 별 볼일 없는 형이 아직도 형이라고 자기에게 가르치려고 드는 것, 그런 형에게 매일 끌려 다니며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부모님도 모두 짜증난다고 했다. 이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동물은 사람 같지 않아요. 배신 같은 것도 안하구요.”
민혁이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곁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은 아닐까? 태어나서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충분히 안정감을 얻은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에 성공한다는 연구결과를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민혁이는 그런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계속 사람들을 공격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면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민혁이에게 어쩌면 네가 사람들에 대해 기대가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정이 많아서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민혁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책을 보더니 사육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책을 빌려 줄까 하고 물었더니 책 들고 다니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또 웃는다. 가만히 책을 보고 있는 민혁이를 보면서 벌써 맹수들과 어울리며 가족이 되어 있을 어른이 된 민혁이 모습에 생각만 해도 흐뭇해졌다.
동물과 함께 생활한 진짜 있었던 이야기
『암탉, 엄마가 되다』
김혜영 지음|김소희 그림|낮은산|2012
닭과 병아리를 3년 동안 기르면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사진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지은이의 아들의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중학생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닭고기가 되는 닭들의 불쌍한 생활을 알 수 있다.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
최종욱 지음|반비|2012
동물원에 가면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수의사만 있다면 동물원도 가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과 책을 읽다가 당장 동물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동물들을 사랑스럽게 그려놓았다. 그리고 익숙한 동물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제인 구달의 내가 사랑한 침팬지』
제인 구달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 두레아이들|2013
어린이를 위한 제인 구달의 자서전이다. 제인 구달이 아프리카로 직접 들어가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침팬지마다 이름을 붙여서 세심하게 관찰한 기록이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침팬지에 대해, 나아가 같은 영장류인 인간에 대해서도 더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말리와 나』
존 그로건 지음|김서진 그림|황소연 옮김 청림아이|2008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작가가 말리라는 강아지와 함께한 13년을 기록한 책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흥행을 얻었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본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말리는 똑똑하고 희생적인 개가 아니라 멍청하고 사고뭉치 개라서 더 애정이 갔던 것 같다. 개를 키운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주 많이 있다
『듀이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 브렛 위터 지음|배유정 옮김 갤리온|2009
학교에 있으면 일 년에 한 번씩은 길고양이를 주워온다. 도서관에서는 키울 수 없지만 실제로 고양이가 있었다. 마을 도서관 사서가 키운 듀이라는 고양이 이야기이다.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과 사별한 저자가 버려진 새끼 고양이와 만나 서로 아픔을 치유하고 마을에 생기까지 불러일으킨 가슴 따뜻해지는 실화이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이용한 지음|북폴리오|2009
길 가다 고양이만 만나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을 가끔 만난다. 그 아이들과 좋은 책이라고 나름 인정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고양이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같이 마음 아파했고, 아이들은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 간직하기도 했다.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건 본 적도 없다는 민혁이가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으라고 한 수업 시간에도 고집스럽게 책 한 권 올려놓지 않고 엎드려 잠을 자는 녀석이다. 평소 친구들이 만화책을 권해줘도 만화도 책이라며 읽기를 거부하는 지조(?) 있는 아이였다. 그랬던 민혁이가 내 옆에 앉아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같이 보고 있다니… 민혁이는 같은 학교 중학생이라면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힘세고 무서운 아이로 유명한데, 작년에 학교폭력과 무단결석으로 유예되어 친구들은 3학년이지만 올해도 2학년으로 다니고 있다.
옆에서 내가 읽는 책을 같이 보고 있던 민혁이가 표지를 넘겨보았다.
“『암탉, 엄마가 되다』 뭐, 이런 닭 같은 책을 보세요?”
자기가 한 이야기가 뭐가 그리 웃긴지 한참을 웃었다. 그러더니
“개 같은 책은 안보세요?”
하며 또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는 혼자 웃는 것이 민망한지 이 책은 무슨 내용인지 물었다. 그래서 병아리를 길러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병아리? 아! 학교 앞에서 팔던 거. 기르진 않고 가지고 놀아봤죠. 애들이랑 누가 더 빨리 죽이나 내기도 했는 걸요. 초등학교 때 애들이랑 한 봉지 사서 아파트 위에서 떨어트리기도 하고, 그리고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밀면 애들이 어지러워서 막 걷지도 못하고 얼마나 웃긴데요.”
다른 아이들 말대로 잔인하고 나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지는 그 작고 귀여운 병아리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상상만으로도 민혁이 옆에 있기가 싫어졌다. 그러면서 인상을 썼던 모양이다.
“선생님, 뭘 그러세요. 어차피 그것들은 죽는다는데요. 믹서로 갈아 죽이기도 한다는데 그것보다는 낫잖아요.”
차라리 그냥 책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기에는 시간도 없었고, 민혁이 이야기가 너무 폭력적이라 더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암탉, 엄마가 되다』 책장을 넘기며 시골로 내려간 아이가 닭을 기르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사진자료가 많아서 사진만 보고 이야기하기가 좋았다. 민혁이는 흥미롭게 보았다. 그리고 오골계를 먹어본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공은 이렇게 닭을 많이 기르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쉽게 “팔거나 먹지 않았을까?”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기르던 걸 먹어요. 아닐 거예요.”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아이라니… 아까 병아리는 잔인하게 죽였으면서 책 속에 나와 있는 닭들은 불쌍하다는 말일까?
“그거랑 이 닭이랑은 다르죠. 이 닭들은 기르던 거잖아요. 같이 산 시간들이 있는데…”
“다르다!”라는 표현은 민혁이에게 많이 들은 말이었다.
민혁이는 의미 있는 대상과 그렇지 못한 대상을 나누어 놓았다. 그것은 동물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도 ‘우리 아이들’이라는 말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누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무척 잔인하게 굴었다. “전 선생님이랑 몇몇 선생님 말고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아요.”라고 한 것을 보면 다행히(?) 나도 민혁이의 ‘우리’에 들어가 있었다.
왜 이렇게 민혁이는 ‘우리’라는 벽을 쌓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적이 많으면 힘들지 않을까? 그리고 점점 더 지켜야 할 ‘우리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사건에는 항상 민혁이가 개입되어 있었고, 그 결과 내년에도 3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민혁이는 항상 ‘반성의 의지’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큰 징계를 받았다.
“어렸을 때 형이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자꾸 때렸어요. 차라리 날 때리라고 하니까 정말 날 때리더라고요. 그 이후 형은 계속 날 때렸어요. 그래도 형이 우리 토토를 때리는 것보다는 날 때리는 것이 나았어요. 토토를 데리고 가출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토토랑 같이 있으니 좋았어요. 토토는 가족 중에서 저만 따라다녔거든요. 제가 얼마나 잘해줬다고요. 저 어렸을 때 꿈이 수의사였어요. 토토는 정말 귀여웠어요. 얼마나 똑똑했는데요. 말도 다 알아듣고.”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민혁이의 표정이 순진한 어린 아이 같았다. 당장이라도 토토를 데려다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나쁜 것들(부모님)이 토토를 어딘가 보내버렸어요. 그 미친 놈(형)이 제게 계속 시골에서 잡혀 먹었을 거라고 했고요. 애완동물은 키우면 안돼요. 애들 상처받아요.”
그 사건으로 민혁이가 받은 상처는 컸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라고 하는데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내게 수의사가 쓴 책이 있어 꺼내 민혁이에게 내밀었다.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 야한 소설이에요?”
아래 ‘우치동물원 수의사 최종욱의 야생 동물 진료 일기’ 부제를 읽어보도록 했다. 책을 자기 손으로 들춰보지 않는다는 민혁이의 소신(?)을 지켜주고자 책을 펼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 역시 사진이 많이 있어서 이야기 나누기가 좋았다. 어렸을 때 꿈이 수의사여서 그런지 더럽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특히 흥미롭게 들었다. 특히 수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다닐 수 없다는 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자기도 동물원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동물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동물원에서 맹수들과 옥신각신하며 진료하는 민혁이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민혁이 역시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는지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보다는 동물이 나은 것 같아요. 동물들은 우리 애들처럼 사고 안 치잖아요.”
나는 ‘사람이 힘들구나’라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 민혁이는 금세 다시 화가 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생각 없이 오토바이 훔쳐오는 것이나 사소한 말싸움에 나서서 혼내줘야 하는 것, 별 볼일 없는 형이 아직도 형이라고 자기에게 가르치려고 드는 것, 그런 형에게 매일 끌려 다니며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부모님도 모두 짜증난다고 했다. 이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동물은 사람 같지 않아요. 배신 같은 것도 안하구요.”
민혁이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곁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은 아닐까? 태어나서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충분히 안정감을 얻은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에 성공한다는 연구결과를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민혁이는 그런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계속 사람들을 공격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면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민혁이에게 어쩌면 네가 사람들에 대해 기대가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정이 많아서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민혁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책을 보더니 사육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책을 빌려 줄까 하고 물었더니 책 들고 다니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또 웃는다. 가만히 책을 보고 있는 민혁이를 보면서 벌써 맹수들과 어울리며 가족이 되어 있을 어른이 된 민혁이 모습에 생각만 해도 흐뭇해졌다.
동물과 함께 생활한 진짜 있었던 이야기
『암탉, 엄마가 되다』
김혜영 지음|김소희 그림|낮은산|2012
닭과 병아리를 3년 동안 기르면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사진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지은이의 아들의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중학생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닭고기가 되는 닭들의 불쌍한 생활을 알 수 있다.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
최종욱 지음|반비|2012
동물원에 가면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수의사만 있다면 동물원도 가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과 책을 읽다가 당장 동물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동물들을 사랑스럽게 그려놓았다. 그리고 익숙한 동물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제인 구달의 내가 사랑한 침팬지』
제인 구달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 두레아이들|2013
어린이를 위한 제인 구달의 자서전이다. 제인 구달이 아프리카로 직접 들어가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침팬지마다 이름을 붙여서 세심하게 관찰한 기록이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침팬지에 대해, 나아가 같은 영장류인 인간에 대해서도 더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말리와 나』
존 그로건 지음|김서진 그림|황소연 옮김 청림아이|2008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작가가 말리라는 강아지와 함께한 13년을 기록한 책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흥행을 얻었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본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말리는 똑똑하고 희생적인 개가 아니라 멍청하고 사고뭉치 개라서 더 애정이 갔던 것 같다. 개를 키운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주 많이 있다
『듀이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 브렛 위터 지음|배유정 옮김 갤리온|2009
학교에 있으면 일 년에 한 번씩은 길고양이를 주워온다. 도서관에서는 키울 수 없지만 실제로 고양이가 있었다. 마을 도서관 사서가 키운 듀이라는 고양이 이야기이다.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과 사별한 저자가 버려진 새끼 고양이와 만나 서로 아픔을 치유하고 마을에 생기까지 불러일으킨 가슴 따뜻해지는 실화이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이용한 지음|북폴리오|2009
길 가다 고양이만 만나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을 가끔 만난다. 그 아이들과 좋은 책이라고 나름 인정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고양이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같이 마음 아파했고, 아이들은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 간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