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데아 [색다른 모두의 그림책 교실] 누구나 배움의 과정은 같다 속도가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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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10-04 14:57 조회 1,197회 댓글 0건본문
누구나
배움의 과정은 같다
속도가 다를 뿐
김민지, 권경은, 김진경, 오주영, 이다요솔, 이미화, 이복음, 정미숙, 주소영, 주효림, 최수임 지그재그 특수교사 모임
특수학급은 그야말로 ‘다인다색(多人多色)’이다. 발화가 어려운 학생부터 인지적 손상이 없는 학생까지. 다양한 장애 유형과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모여 있다. 어떤 학생의 개별적 학습 목표는 ‘받침 있는 단어 읽기’이고, 또 다른 학생은 ‘사회문제를 철학적 이론에 근거해 토론하기’다. 더구나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서 학생들마다 배우는 교과도 모두 달라졌다. 고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선택 중심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활용해 학급 교육과정을 만드는 과정은 자갈밭에서 자갈로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전한 고민 속에서 내가 찾아낸 하나의 방법은 그림책을 이용한 교육과정 재구성이다. 그림책을 활용하는 이유는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 해석의 여지가 많아 다양한 수준과 학년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그림책을 읽고도 누군가는 그림을 보며 글자를 연결하고 어휘를 배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글과 그림에 숨은 의미를 해석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이 글에는 비장애인 고교 성취기준을 활용한 특수학급의 교육과정 사례와 다양한 그림책 수업을 통해 교육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특수교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굴러온 그림책이 '있을 자리'를 만들기까지
“선생님, 이 그림책은 누가 보는 거예요?” 교직 생활 1년 차, 학급에 배송된 그림책을 보고 한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그림책에 대해 잘 모르고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터라 “학생들이 글이 많은 동화책은 읽기 어려워서 그림책으로 독서교육을 하려고요.” 하고 가볍게 얘기했다. 그렇게 그림책이 수업에 들어왔다. 교육과정 외에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이 생긴다면 그림책을 이용해 1∼2차시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교육과정과 긴밀하게 연결하지 못하니 그림책은 수업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 뿐이었다. 학생들도 그림책은 너무 쉽고 어린아이들이 보는 책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올해, 수업에 그림책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었다. 해당 학년군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분석해 학생들에게 교육할 내용을 선정하고, 수업 도구로 그림책을 활용했다. 기존에 필자가 실천한 그림책 수업은 ‘함께 읽기 > 뜯어 읽기 > 독후 활동’이었다. 내가 가르칠 내용에 적합한 그림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 개개인의 요구와 수준에 맞춰 유익한 수업을 했지만, 일회성에 가까웠다. 그러다 그림책을 염두에 두고 성취기준을 들여다보자 그림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그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책 자체에만 집중했던 미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그림책을 문학의 한 장르로서 교육과정과 연결했다. ‘한국 문학 분류하기’를 목표로 그림책의 겉표지부터 내용까지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뜯어 보고,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그림책을 이해하는 수업을 계획했다.
1차시~2차시: 그림책의 정보를 파악하고 겉표지 만들기
1차시에는 그림책 겉표지에서 중요한 정보들을 찾는 방법을 익혔다. 이 배움을 활용해서 2차시에서 그림책 관련 정보들을 담아 겉표지를 직접 만들어 보는 활동을 했다. 그림책과 관련된 정보를 익숙하게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질문이나 활동지를 제공하고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 했다. 특수교육에서는 반복 학습을 통해 내용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아야 하므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물론 학생들의 개별 학습 수준과 장애 특성도 고려해서 같은 활동이라도 다른 학습지를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촘촘하게 활동을 만들고 함께하다 보면 아이들의 배움에 빠트린 것은 없는지 파악하기 쉽다. 이렇게 그림책은 문학작품으로 그리고 배움의 도구로 우리 교실 한편을 자리했다.
3차시: 한국 문학 이해하기
한국의 ‘사상’이나 ‘정서'라는 단어를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했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내 마음속의 이 ‘당연히’라는 생각을 지우고도 싶었다. 대다수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고등학교, 그것도 대학 진학을 위해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만 하는 인문계고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장애 학생도 단어들의 의미를 알았으면 했다. 다른 비장애 학생들도 배우는 것이니 우리 반에서도 아이들 수준에 맞게 가르치면 된다. 학년도 다르고 학습 수준도 천차만별인 특수학급에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수업을 하자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할 것도 없다.
아이들의 어휘 수준에 맞게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만들고 학생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한국에서 사상과 관련하여 허용되는 것과 외국에서 허용되는 것, 다른 점을 다양하게 나눠 보는 것으로 학생들이 해당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차이점을 학생들이 직접 말하도록 하되, 다른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해당 내용이 포함된 그림책, 인터넷 이미지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보여 주었다. ‘한국 문학’의 독창성을 학습하기 위해 학생들이 생각하는 외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말하게 하고, 교사가 부족한 개념과 의미를 보완해 주었다. “피부색이 달라요.”라고 대답하는 학생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고, 피부색은 생김새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음을 칠판에 정리해서 알려 주었다. 덧붙여 한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피부색과 외국에서 볼 수 있는 피부색이 다르므로, 한국 문학에서는 주로 황인종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최근 국내에 이주민 가족이 늘면서 다양한 인종을 소재로 한 한국 문학이 많다는 것을 언급하며,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뭘 그렇게까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배움에 ‘굳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배워서 남 줄 것도 아니고 장애 학생도 스스로 충분히 지식을 써먹을 기회들이 있다. 배운 것을 경험 속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특수교사와 우리 사회의 역할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장애 학생도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힘이 자란다.
4차시: 자신이 이해한 것을 설명하기
학생들이 미리 선택해서 구입한 그림책을 모아 두고, ‘한국 문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결정하는 활동을 했다.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이전 수업에서 명확히 한국 문학을 이해하는 학생과 여전히 오리무중인 학생을 한 팀으로 구성했다. 팀 안에서 한국 문학을 이해하는 학생을 또래 교수(또래로 하여금 다른 아동의 학습과 참여를 촉진하게 하는 학습 전략)가 되도록 구성하여 이해하는 학생은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른 학생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은 다른 학생의 설명과 교사의 지원을 받아 한국 문학을 반복하여 학습하고 목표에 도달하도록 수업을 계획했다. 실제 계획은 4차시였으나,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익히는 시간도 필요했다.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몇몇 학생은 한국 문학의 정의에 맞게 책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었고, 몇몇 학생들은 친구의 기준에 따라 책을 골라냈다. 잘못된 책을 골랐을 때는 다른 친구에게 설명을 듣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며 “한국 문학이 아니다.”라고 소리 내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경험도 했다. 통합학급에서는 그저 어렵고 난해했던 단어 또는 문장을 직접 소리 내어 본 것이다. 그 의미는 모르더라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하는 말을 똑같이 해 봄으로써 소속감 비슷한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고등학생이 된 것 같은 성취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이 조금씩 자라면 사회라는 더 큰 바다로 나아갈 용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속도로 배우는 아이들에게 항상 같은 목표를 향해 전진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더 빨리 달리는 옆 친구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고, 내 앞에 놓인 길을 잘 따라와 주면 그만이다. 비장애 학생이든 장애 학생이든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은 똑같다. 단지 그 속도가 다를 뿐이다.
'특수한' 방법이 아니라 '다양한' 교수 방법
대부분의 첫 읽기 경험은 수동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책을 활용한 수업의 동기유발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독후 ‘느낌’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고, 책에 호기심이 생길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과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학생의 연령과 해당 학년을 고려해야 한다. 통합학급에 있는 다른 친구처럼 두꺼운 책을 읽고 싶은 심정을 십분 헤아려 주면서도, 학생 스스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자연스럽게 권하는 교사의 센스가 필요하다. 우리 반 학생들은 이 수업을 하는 동안 그림책 20권가량을 뒤적이며 살펴봤다. 책을 읽는 수업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뒤적이며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찾아냈다. 표지의 그림을 본문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이런 내용이었네!” 하면서 친구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느 고등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나는 단순히 책이 공부의 도구가 되는 수업을 하는 것보다 책을 활용해 배움을 얻는 방법을 찾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특수교육의 길도 그런 것 같다. ‘쉬운 내용’이 아니라 ‘모두에게 유의미한 배움’을 위해 계속 고민하는 길. ‘특수’한 방법으로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수 방법’을 개척하는 길. 다인다색(多人多色)이라 어려울 수 있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교수법을 남들보다 더 많이 시도하고 경험할 수 있다. 굴러온 그림책이 박힌 교육 내용을 빼내지 않고 자리를 만들어서 함께한 수업처럼, 굴러온 것 같은 특수교육이 있음으로써 더 즐겁고 유익한 배움의 자리를 함께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