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오늘의 청소년책 북토크] 우리 일상을 닮은 힐링 소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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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12-05 10:10 조회 1,161회 댓글 0건본문
우리 일상을 닮은
힐링 소설의 세계
고정원, 김윤나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박가영 서울 동명여고 2학년
2022년 출판계는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해’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만큼 호응이 컸다는 것일 텐데요. 후속으로 『불편한 편의점 2』가 나오면서 도서관에서도 꾸준히 높은 대출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린 『불편한 편의점』과 같은 소설을 대중 소설, 따듯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 그러니까 ‘힐링 소설’이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힐링 소설의 정의를 명확히 내리긴 어렵지만 ‘일상 공간에서의 치유를 그린 소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영의 추천을 받아 힐링 소설을 함께 읽었습니다. 바로 『달팽이 식당』입니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이야기들
김윤나 오가와 이토는 『츠바키 문구점』, 『라이온의 간식』 등 상처를 극복하는 인물의 성장담을 꾸준히 써 온 작가인데요. 오늘 이야기 나눌 『달팽이 식당』의 줄거리부터 살펴볼까요?
박가영 이 책의 주인공 25살 링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 선고를 받고 무일푼으로 본가에 돌아갑니다. 링고에게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요리 레시피가 있었고, 그녀는 집의 창고를 빌려 작은 식당을 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산골짜기 조용한 마을에 달팽이 식당을 엽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목소리를 잃은 링고는 꿋꿋이 식당을 운영하고, 사람들은 점차 그녀의 요리를 좋아하게 됩니다. 링고의 엄마를 비롯해 식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서로의 삶에 스미면서 링고는 점점 성숙해져요. 특히 할머니와 링고의 어머니, 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 소설 그리고 힐링 소설, 요리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고정원 저는 가영 학생이 이 책을 추천해서 읽었어요. 연극영화과를 희망해서인지 인물 분석도 가능한 책 같다고 했었죠. 이 책을 왜 힐링 소설이라고 여겼는지 궁금해요.
박가영 연기학원에서 희곡 말고 소설도 읽어 보라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을 추천받았고, 그래서 이 책을 읽었어요. 처음에는 마음 편해지는 힐링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말을 보고 조금 충격 받긴 했어요. 링고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라는 사연(소설 후반부에 숨은 사연이 나옴)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어요. 하지만 음식 묘사가 정말 생생해서 몰입할 수 있었고 읽는 내내 배가 고파 고생을 했어요. (웃음)
고정원 『달팽이 식당』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누구였나요?
김윤나 순애보적인 구마 씨나 엄마의 첫사랑이 인상적이었어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성향을 가진 인물이 아닐까요?
고정원 처음 이 책의 초반부를 읽으며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윤나 저도 <리틀 포레스트>를 봤는데, 소설 속 주인공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잖아요. 안식을 위해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정원 책을 읽으면서 힐링 받았던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박가영 작가 특유의 문체나 요리에 대한 묘사가 좋았어요. 그리고 식당에 왔던 손님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십 대 학생 커플 이야기는 풋풋했고요. 후식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마스카포네 티라미수를 손님에게 건네는 장면에선 진짜 군침이 돌 정도였어요. 소설 초반에 상복을 입고 다니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던 할머니가 우아하게 만찬을 즐기는 장면에선 놀라웠어요. 특유의 연륜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어요.
김윤나 일 년 내내 까만 상복을 입고 다니는 소설 속 할머니는 지방 유지의 첩이었죠. 하지만 달팽이 식당을 다녀간 후 할머니는 상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외출해요. 할머니는 소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화사한 분위기의 인물로 거듭나는 입체적인 캐릭터예요.
고정원 저에겐 같은 작가가 쓴 『츠바키 문구점』이 더 힐링이었어요. 가영이가 음식을 좋아하는 것처럼 저는 편지를 좋아하거든요. 그 책은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이야기인데요. 주인공이 쓴 편지가 책 뒷장에 나오는데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힐링이 되더라고요. 작가는 사람들이 어떤 맥락에서 힐링을 얻는지 영민하게 알고 쓰는 것 같아요.
김윤나 삶에서 힐링을 받는 포인트는 독자마다 다를 것 같아요. 『달팽이 식당』처럼 요리 소재를 서사에 녹여낸 『카모메 식당』(무레 요코)도 힐링을 주는 이야기이지요.
고정원 음식을 좋아하는 청소년에게는 『달팽이 식당』과 『카모메 식당』을, 저처럼 편지를 좋아하는 청소년에게는 『츠바키 문구점』을 추천할 수 있겠네요.
박가영 저도 편지 쓰는 거 좋아해서 그 책을 한번쯤 읽어 보고 싶네요.
이해할 순 없지만 바라보게 되는 장면들
김윤나 소설에서 유독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있었죠.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애지중지 키웠던 반려 돼지 엘메스를 잡아서 엄마의 결혼식 요리를 준비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엘메스는 링고의 어머니부터 집에서 대대로 키운 동물이고요.
고정원 이 작가의 에세이집 『양식당 오가와』를 읽다 보면, 엘메스의 요리 장면이 조금 이해가 가요. 엘메스를 요리하는 장면이 생생하고 세밀해서 불편했는데, 어쩌면 작가가 음식(식문화) 묘사에 진심이겠다는 짐작이 들더라고요. 티벳 등에서는 의식을 치를 때 동물을 먹음으로써 생을 같이한다고 여긴다고도 하죠. 그 나라에선 신성한 문화이기도 하고요.
김윤나 그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워요. 산비둘기를 먹는 것도 조금은 엽기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연극을 공부하는 가영 학생이 『달팽이 식당』의 인물 분석을 했다고 들었는데, 궁금하네요.
박가영 우선 링고는 꿈을 찾아서 간 곳에서 여러 시련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왔잖아요. 진취적인 성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에게 당당히 가게를 열고 싶다고 말하고 가게를 차리는 모습에서 누구보다 내면에 단단한 무언가를 가진 인물이라는 예감이 들었거든요. 링고가 가게를 열기까지 많은 것을 도와준 구마 씨는 이해는 되지만 답답한 면이 많은 인물로 느껴졌어요. 링고의 엄마는 정신세계가 독특한 사람 같아요. 첫사랑에 대한 어린 마음과 상처, 딸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있을 것 같고요. 어쩌면 돼지를 키운 것은 딸이 떠난 것에 대한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고정원 왜 돼지였을까요?
박가영 저도 친구들과 왜 돼지인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결국은 먹기 위해 키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으로 이어졌어요.
고정원 『달팽이 식당』의 배경 묘사도 눈여겨볼 만할 것 같아요. 시골 혹은 자연에 대한 묘사가 뛰어났거든요. 깜깜한 장소에 대한 묘사도 눈에 그려질 듯 생생했던 것 같아요.
박가영 맞아요. 저는 이 책을 추천한다면 초반에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꾹 참고 버터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소설 후반에 나오는 연출들이 신선하거든요. 특유의 정감 어린 문장이 명징해서 평소에 책을 안 읽는 저도 한번 읽기 시작하니까 금방 완독했어요. 책을 잘 안 읽는 친구도 한번쯤 도전해서 읽어 볼 만한 책이에요.
익숙한 공간, 문턱 낮은 소설의 '가능성'
김윤나 이번 기회를 통해 힐링 소설을 분석하는 마음으로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 봤어요. 힐링 소설이 사람들에게 도대체 왜 인기가 있을지 예전부터 궁금했거든요.
박가영 어떤 책들을 읽으셨나요?
김윤나 박영란 작가의 『게스트하우스 Q』, 『편의점 가는 기분』, 김혜연 작가의 『우연한 빵집』, 박현숙 작가의 『구미호 식당』을 읽었어요. 힐링 소설의 성공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편의점, 빵집, 식당이 소재로 등장하더라고요. 이 책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를 짓는 과정의 문턱’이 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공간을 정하면 그 공간에 계속해서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만들어 내고, 그 인물을 통해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고정원 네 소설 모두 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이 비슷해요. 짧고도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취향이 맞닿는 부분이 누구나 하나쯤 있을 것 같아요.
김윤나 힐링 소설이 대부분 ‘공간’을 주 매개로 하잖아요. 편의점, 식당 혹은 빵집 같은 공간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니까요. 손님들의 사연들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독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사건을 만날 수 있기에 지루함 없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힐링물들을 읽으면서 제가 발견한 나름의 공식은 첫째, 주인공의 사연에 중점을 둔다는 것 둘째, 오히려 주인공을 평범하게 그린 후 손님들 각자의 사연에 비중을 더 두어 서사를 운용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면 『달팽이 식당』이 주인공의 사연에 무게를 뒀다면, 『우연한 빵집』은 빵집에 얽힌 사연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무게를 두어 이야기를 풀어낸 것처럼요.
고정원 얼마 전에 읽었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윤정은)도 요즘 인기 있는 힐링 소설이에요. 윤나 샘이 말한 대로 ‘힐링 소설의 공식’에 딱 맞아떨어지는 구성을 갖고 있죠.
김윤나 제가 읽은 힐링물 중에선 『우연한 빵집』(김혜연)이 가장 좋았어요. 이 책은 세월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사랑하는, 혹은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애도하는 하루를 그려내고 있어요. 우연처럼 빵집으로 모여든 다섯 사람은 서로 보이지 않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데, 작가가 담담하게 그려낸 위로의 방식이 마음에 닿았어요.
고정원 저도 그 책을 읽었는데,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팠어요. 『불편한 편의점』(김호연)도 추천 힐링물로 괜찮아요. 최근에는 『불편한 편의점 2』가 나와 호응을 얻고 있죠.
박가영 불편한 편의점에서 ‘불편함’이란 어떤 불편을 뜻하는 걸까요?
고정원 책의 등장인물들은 사회 취약계층이에요. 취업에 실패해서 낙담한 소진, 장사가 어려워 고심 중인 최사장,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고등학생 민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역시나 따뜻하게 그려내요. 시대가 변해도 휴머니티는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애를 진지하게 그려낼수록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김윤나 점점 잊히는 휴머니티를 복원하는 일에 좀더 무게를 두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많네요. 최근 출간되는 힐링 소설에 진정성이 더해지면 국내 힐링 소설의 문학성이 더 높아질 거라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입체적인 캐릭터들도 많아지면 좋겠어요. 가영이가 해 온 것처럼, 소설 속 캐릭터 분석도 더욱 다양하게 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고정원 한 장르로서 문학적 방향이 잘 잡히면 좋겠다 싶어요. 힐링 소설은 읽기의 진입 장벽이 낮아서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보거든요.
김윤나 마지막으로 최근 청소년들이 느끼는 ‘힐링 코드’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박가영 예전에 저희 반에서 노후에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조사를 한 적 있어요. 친구들 대부분이 시골로 내려가서 반려자와 단둘이 농사를 짓거나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소소하고 한적한 장소에 대한 이상향을 갖고 있는 듯해요.
고정원 진짜 의외네요. 요즘 청소년들이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어요. 일찍 준비하는 마음으로, 겨울 방학에 읽을 힐링 소설을 추천해 볼까요?
박가영 판타지소설인 『아로와 완전한 세계』(김혜진)를 추천해요. 한 소녀가 도서관에서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라는 책을 펼친 후에 책 속 세계에 존재하는 열두 나라를 위해 책을 읽는 임무를 맡게 돼요. 소녀는 책 속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해결해 가면서 그 세계를 일으켜 세우는데, 자신도 차츰 성장해 가요. 『청소부가 된 어린 왕자』(박이철)도 추천해요. 『어린 왕자』를 바탕으로 한 책인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지한 물음을 던져요. 만화로 표현한 장면도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어요.
김윤나 읽어 봐야겠네요. 재작년 즈음부터 익숙한 캐릭터를 내세운 힐링 에세이들 출간이 잦았죠. 예를 들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곰돌이 푸)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 같은 책들이요. 이런 책들도 힐링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고정원 백영옥 소설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도 보태어 봅니다.
김윤나 책제목에 ‘편의점’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익숙한데, 새로운 공간들도 많이 생겨나겠죠? 좀더 다양한 장소와 공간, 진정성이 담긴 힐링 소설이 나오기를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