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만 있기엔 아까운
책들을 소개합니다
고정원, 김윤나, 최지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청소년자료실 서가에는 빛바랜 책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아마도 개관할 때부터
쭉 책장을 지켰던 책들일 것이다. 그중에는 함께 이야기 나눠 볼 만한 주제의 책들도 있고, 펼치자마자 빠져들게 만드는 책들도 있다. 하지만 바랜 표지 때문에,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는 이유로, 무엇보다 절판되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선택되지
않는 책들이기도 하다.
숨은 책들이 안타까웠다. 책표지만 리커버한 버전으로 나온다면, 책제목을 살짝만 다르게 바꾼다면 충분히 눈길을 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청소년자료실 서가 구석구석 숨어 있던 책들을 직접 꺼내어 보기로 했다. 비록 낡은 표지일지라도 이야기가 주는 힘만큼은 변함이 없다. 이번 호를 통해 이 책들의 진가를 알리고, 우리 도서관의 서가뿐만 아니라 여러 도서관 서가 속에서 답답했을 책들에
게도 해방의 시간을 주고자 한다.
『불균형』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이경옥 옮김|우리교육
한발로 서기 위해 버티다가 균형감각을 잃으면 다시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팔이 흔들리고 콩콩콩 뛰기도
한다. 그러다가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 겨우 균형을 잡거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나’는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더 이상 친구 만들기를 포기해 버린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사라’에게 도움을 요청한 뒤로 둘은 친구가 된다. 사실 사라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넘어진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전한다.
『붉은 지하철』 끌로딘느 갈레아 지음|조현실 옮김|창비
열다섯 살 스리즈는 엄마 아빠의 이혼 이후 4년째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다닌다. 혼자 지하철을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스리즈는 객실 안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는 취미가
생긴다. 스리즈는 지하철 승객 모두가 매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노숙자들에게 무감각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스리즈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스리즈는 곧 비극이 일어날 것을 예상한다. 작가는 도움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지나치게 무감각해진 건 아닐지 돌이켜보게 한다.
『도서관에서 생긴 일』 귀뒬 지음|신선영 옮김|문학동네
기욤에게는 밤마다 환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기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를 쫓아간 곳은 도서관. 소녀 이다는 사실 여든 넷의 할머니로, 맞은편 건물에 사는 할머니의 소녀 시절 환영이다. 기욤은 책 읽기를
싫어했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다를 위해 마법의 책을 찾기 위한 모험을 나선다. 둘의 여정을 쫓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린 왕자』 등 환상적인 이야기들과 마주할 수 있다. 책표지와 다르게(?)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가득 펼쳐지니 주저 말고 읽어 보길 권한다.
『아빠는 아프리카로 간 게 아니었다』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이은주 옮김|시공주니어
책 정리하는 일을 기대하고 청소년자료실에 자원봉사 왔던 한 학생이 선택한 책. 그에 따르면 책을 읽고 소개문을 만들라는
요청에 ‘얇아서’ 고른 책이 이 책이었다. 열세 살 유하니는 장의사 일을 하는 엄마와 지낸다. 어느 날, 노래를 잘 부르고 좋아하던 아빠가 사라진다. 유하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빠를 그리워한다. 전쟁으로 아빠를 여읜 말리아와 유하니는
아픔을 나누며 서로 의지한다. 유하니는 자신이 생각한 만큼 아빠가 멋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지만 곁을 지켜 주는 친구와
상처를 보듬어 주는 가족의 힘으로 성장해 간다.
『크뤽케』 페터 헤르틀링 지음|유혜자 옮김|사계절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주인공 토마스와 외다리 사내 크뤽케의 인간애를 그려 낸 소설이다. 전쟁에서 아빠를 잃은 토마스는 기차에서 엄마를 놓쳐 혼자가 되고 만다. 그러다 만난 크뤽케는 서른셋 장교 출신으로, 군인이 된 후 전쟁에서 다리가 잘리고 말았다. 토마스는 엄마를 찾기 위해 그와 함께 독일행 화물 기차에 오른다.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계속 잊히고 있는 요즘, 전쟁 주제 소설이 다시 재출간되지 않으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전쟁문학’을 영영 못 읽을지 모른다. 전쟁으로 혼자가 된 사람들, 그 안에서 일어난 수많은 연대를 우리는 잊지 않고 문학으로 만나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쓰여 있다.
『깡마른 마야』 코슈카 지음|이정주 옮김|시공사
자식의 죽음으로 한 가정이 무너지고 회복되는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 주는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거식증에 걸린 둘째
딸, 마야이다. 첫째의 죽음으로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마야는 살기 위해 가출을 시도해 줄리아 아줌마의 가게에서
머문다. 열여섯이지만 140센치미터의 키에 27킬로그램의 체중을 가진 마야.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마침내 사람에게서 치유받으며 마야는 부모의 사과를 받고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무척 짧아서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주제만큼은 묵직한 소설이다.
『위험한 하늘』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 지음|이수련 옮김|사계절
주인공 버크는 친구 튠과 낚시에서 돌아오던 길에 죽은 조지 아저씨를 발견한다. 둘의 신고로 보안관은 수사를 시작하지만,
범인 후보 중 한 명으로 친구 튠이 지목된다. 튠에 대한 소문이 나쁘게 번져 학교에서 우등생이던 튠은 학점 0점을 받고 마을 사람들도 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만 튠은 마을을 떠나고 버크는 튠에게 편지를 쓴다. 우매한 대중심리와 집단 이기주의의 냉혹한 현실을 담은 작품으로, 진실에 다가서는 용기와 친구에 대한 믿음을 보여 주는 버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지금 읽어야 할 책이다.
『유리병 편지』 클라우스 코르돈 지음|강명순 옮김|비룡소
2017년 절판된 책으로 작품의 배경에 공감이 갈지도 모른다. 통일 전 독일을 배경으로, 동독과 서독의 소년 소녀가 유리병
편지로 우연히 만나 소통하는 과정을 그린다. 리카와 마체는 편지를 주고받다가 들키고 부모들은 교제를 반대하며 화를 낸다. 하지만 갈등의 고투 끝에 이들은 “너희들 넷이 오늘 한 일이 진정한 평화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아직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유효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분단국가 아이들의
우정 이야기’를 다룬 청소년문학이 탄생하지 못하는 것일까.
『깨어서 꾸는 꿈』 킷 피어슨 지음|이주희 옮김|개암나무
‘핑계 삼아’ 실컷 울 수 있게 해 주는 책을 소개해 달라는 여중생에게 추천한 책. 제법 많은 청소년이 이 책을 빌려 갔는데, 못
사서 아쉽다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이 품절됐다는 걸 알았다. 품절·절판된 책은 도서관에서 더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첫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꿈과 현실을 오가는 이야기지만 때론 책이 표현하는 현실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고 냉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읽다 보면 마음 아프지만 현실과 마주할 용기를 다져 가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을 사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