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거짓말을 하며 신나게 노는 아이와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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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4 18:23 조회 9,107회 댓글 0건본문
피노키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거짓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피노키오에 환호한다. 거짓말하면 코가 늘어나니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어른의 교묘한 가르침 따위가 아이들 마음을 울리는 것은 아닐 게다. 그럼 아이들이 피노키오에 환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른들의 억압에 자신들은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내면을 피노키오가 거침없이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피노키오를 따라가며 ‘대신 겪기의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곤란한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이나 어른 모두의 본성이다. 그래서 억눌리지 않은 본성을 만나는 아이들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현대 어린이문학』을 쓴 우에노 료는 “‘독서의 즐거움’이란 원래 성실한 인간에 대한 한눈팔기의 권유가 아닐까?” 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왜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어른들의 세계로 그토록 서둘러 어린이를 끌어 들이려 하며, 인생에서 ‘한눈파는 즐거움’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어린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이냐며 우리에게 아픈 질문을 던진다. 그의 말처럼 나 역시 책읽기가 한바탕 즐거운 놀이나 낯선 세계로 떠나는 홀가분한 여행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 속 긴장을 풀어 헤치는 한바탕 신나는 놀이는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내면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그런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솔직히 그 동안좋은 책이라 여겨졌던 많은 책들은 지나치게 근엄하고 정중하며 도덕 교과서의 또 다른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들의 본성을 존중(?)하는 발칙하고 유쾌한 그림책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가 나왔다. 작가는 책을 통해 어른과 아이가 함께 거짓말을 하며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살살 꾀고 있다.
이 책은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우리 옛그림인 ‘문자도’를 재구성하였다. ‘문자도’는 글자를 그린 그림으로 주로 한자를 그렸는데 여기서는 사람이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도리를 나타낸 ‘효제문자도’를 소재로 삼고 있다. 아울러 문자도에 그려진 동물들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본래 담고 있는 의미를 살짝 비틀어 놓으며 독자의 흥미와 호기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는 앞뒷면에 그림이 그려진 12폭 병풍의 형태를 띄고 있다. 첫 장을 열면 물음표 형상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데 우산을 받쳐 들고 가는 히치콕이 그려져 있다. 도대체 무얼 말하려는 거지? 궁금하고 당혹스럽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는 여러 번 당혹스런 장면과 마주친다. 다음 장면을 보자. 커다란 주사위를 든 히치콕이 내기를 하자고 한다. 내기 하면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아이들의 본성을 살짝 자극하는 장면이다. 이기면 선물을 준단다. ‘엄펑소니’라는. 그런데 그게 뭘까? 낯선 낱말 앞에서 또 한 번 당혹스럽다.
맛있는 것 먹기를 좋아하는 엄마 잉어와 아이 잉어가 있다. 둘은 연못 밖에서 들리는 맛있는 죽순이 있다는 말에 먹고 싶어 전전긍긍하다가 급기야 엄마 잉어는 병에 걸린다. 그런데 맛있는 죽순이 먹고 싶은 아이는 요술부채를 주워서 죽순을 구하지만 엄마를 주지 않고 저 혼자 먹어 치운다. 아이다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부모가 먹고 싶어 병이 나든 말든 자기 배만 채우는 착한 마음을 ‘효’라고.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무대 뒤에 조그맣게 그려진 피노키오의 코는 이미 손가락 하나만큼 앞으로 나와 있다. ‘말짱 거짓말이거든!’ 그림이 말하고 있다.
형제가 두들겨 맞든 말든 모르는 척하는 착한 마음은 ‘제’다. 어깃장 놓는 동생이 미운 할미새는 무서운 수리새 앞에서 동생을 두고 줄행랑을 친다. 아이들이 자기보다 힘센 자 앞에서 용기를 내는 일은 쉽지 않은 데 평소에 미워하는 동생을 구하기란 더구나 더 어렵다. 이 책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작가가 ‘어린이는 이러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아이들의 솔직한 내면을 그릴 뿐이다. 비상구에 그려진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의 얼굴은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이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제 몸뚱이만 지키는 착한 마음을 ‘충’, 친구가 자기를 믿고 부탁을 하든 말든 쉽게 믿음을 져버리는 착한 마음을 ‘신’이라고 한다. 또 상대방 기분이 좋든 말든 제멋대로 말하는 착한 마음은 ‘예’이며, 남이 억울한 일을 당하든 말든 옳지 않은 일을 모르는 척하는 착한 마음을 ‘의’라 한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힘을 이용해 제 욕심을 챙기는 착한 마음을 ‘염’이라 하고, 남이나 나 때문에 피해를 입든 말든 제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착한 마음은 ‘치’이다. 읽다보면 가슴이 날카로운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아프다. ‘에이~. 이거 순전히 미흡한 어른들 정신 차리라는 소리잖아.’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문자도를 통한 서사가 끝나고 이어지는 장면에는 내기를 걸었던 히치콕은 아이들이 거짓말에 속지 않았으니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물인 ‘엄펑소니’를 피노키오가 꿀꺽했다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그러면서 피노키오 몸을 잘 들여다보면 선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니. 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쪽 눈을 감고 피노키오 그림을 기울여 본다. 어라, 빨간 바코드 같던 무늬가 글씨가 된다. 무슨 뜻인지는 독자 스스로 찾아 볼 몫이다. 선물이니까.『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는 장면 장면마다 그림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서사를 글이 이끌고 있지만, 글에서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를 그림이 보완하고 확충하고 있다.
‘제’를 그린 그림은 이집트 벽화를 끌어 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형의 권위적 모습과 주먹을 꽉 쥔 동생의 모습을 통해 이들형제의 심리적 관계가 어떤지 말하고 있다. 또한 앞 장면에서 나온그림을 다음 장면에 자연스럽게 등장시켜 자칫 단절될 수 있는 그림 서사의 흐름을 연속적으로 이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효’에 등장했던 잉어가 ‘충’을 말하는 장면에서 무릎을 꿇은 용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물수리한테 맞은 동생 할미새는 ‘신’의 이야기에서 붕대를 감은 채 부러진 나뭇가지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형을 향해 무어라 쏘아 붙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져버리는 ‘신’을 그림으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의 흥미를 지속시켜주는 그림이 등장하여 호기심을 끈을 놓치지 않게 하고 있다. 문화그림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오는 여타의 그림책이 대부분 설명식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에 견주어 보면 이 그림책의 그림은 끊임없이 글과 상호작용을 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다.
그린이 박연철은 어느 자리에서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재미있게 놀고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의 이런 고백은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본성에 맞닿아 있다. 작가가 어른이 아닌 아이가 되어 즐겁고 신 나게 노는 자리이니 그가 그린 그림책 역시 아이들에게 신 나고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다만 이 책을 보며 부질없는 걱정을 보탠다면 암호 같은 그림을 지나치게 많이 숨겨 놓아 독해력을 떨어뜨리거나, 그의 발랄한 독창성(?)이 지나치게 기법 중심으로 발휘되어 어린 독자의 호기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대 어린이문학』을 쓴 우에노 료는 “‘독서의 즐거움’이란 원래 성실한 인간에 대한 한눈팔기의 권유가 아닐까?” 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왜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어른들의 세계로 그토록 서둘러 어린이를 끌어 들이려 하며, 인생에서 ‘한눈파는 즐거움’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어린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이냐며 우리에게 아픈 질문을 던진다. 그의 말처럼 나 역시 책읽기가 한바탕 즐거운 놀이나 낯선 세계로 떠나는 홀가분한 여행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 속 긴장을 풀어 헤치는 한바탕 신나는 놀이는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내면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그런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솔직히 그 동안좋은 책이라 여겨졌던 많은 책들은 지나치게 근엄하고 정중하며 도덕 교과서의 또 다른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들의 본성을 존중(?)하는 발칙하고 유쾌한 그림책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가 나왔다. 작가는 책을 통해 어른과 아이가 함께 거짓말을 하며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살살 꾀고 있다.
이 책은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우리 옛그림인 ‘문자도’를 재구성하였다. ‘문자도’는 글자를 그린 그림으로 주로 한자를 그렸는데 여기서는 사람이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도리를 나타낸 ‘효제문자도’를 소재로 삼고 있다. 아울러 문자도에 그려진 동물들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본래 담고 있는 의미를 살짝 비틀어 놓으며 독자의 흥미와 호기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는 앞뒷면에 그림이 그려진 12폭 병풍의 형태를 띄고 있다. 첫 장을 열면 물음표 형상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데 우산을 받쳐 들고 가는 히치콕이 그려져 있다. 도대체 무얼 말하려는 거지? 궁금하고 당혹스럽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는 여러 번 당혹스런 장면과 마주친다. 다음 장면을 보자. 커다란 주사위를 든 히치콕이 내기를 하자고 한다. 내기 하면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아이들의 본성을 살짝 자극하는 장면이다. 이기면 선물을 준단다. ‘엄펑소니’라는. 그런데 그게 뭘까? 낯선 낱말 앞에서 또 한 번 당혹스럽다.
맛있는 것 먹기를 좋아하는 엄마 잉어와 아이 잉어가 있다. 둘은 연못 밖에서 들리는 맛있는 죽순이 있다는 말에 먹고 싶어 전전긍긍하다가 급기야 엄마 잉어는 병에 걸린다. 그런데 맛있는 죽순이 먹고 싶은 아이는 요술부채를 주워서 죽순을 구하지만 엄마를 주지 않고 저 혼자 먹어 치운다. 아이다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부모가 먹고 싶어 병이 나든 말든 자기 배만 채우는 착한 마음을 ‘효’라고.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무대 뒤에 조그맣게 그려진 피노키오의 코는 이미 손가락 하나만큼 앞으로 나와 있다. ‘말짱 거짓말이거든!’ 그림이 말하고 있다.
형제가 두들겨 맞든 말든 모르는 척하는 착한 마음은 ‘제’다. 어깃장 놓는 동생이 미운 할미새는 무서운 수리새 앞에서 동생을 두고 줄행랑을 친다. 아이들이 자기보다 힘센 자 앞에서 용기를 내는 일은 쉽지 않은 데 평소에 미워하는 동생을 구하기란 더구나 더 어렵다. 이 책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작가가 ‘어린이는 이러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아이들의 솔직한 내면을 그릴 뿐이다. 비상구에 그려진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의 얼굴은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이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제 몸뚱이만 지키는 착한 마음을 ‘충’, 친구가 자기를 믿고 부탁을 하든 말든 쉽게 믿음을 져버리는 착한 마음을 ‘신’이라고 한다. 또 상대방 기분이 좋든 말든 제멋대로 말하는 착한 마음은 ‘예’이며, 남이 억울한 일을 당하든 말든 옳지 않은 일을 모르는 척하는 착한 마음을 ‘의’라 한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힘을 이용해 제 욕심을 챙기는 착한 마음을 ‘염’이라 하고, 남이나 나 때문에 피해를 입든 말든 제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착한 마음은 ‘치’이다. 읽다보면 가슴이 날카로운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아프다. ‘에이~. 이거 순전히 미흡한 어른들 정신 차리라는 소리잖아.’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문자도를 통한 서사가 끝나고 이어지는 장면에는 내기를 걸었던 히치콕은 아이들이 거짓말에 속지 않았으니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물인 ‘엄펑소니’를 피노키오가 꿀꺽했다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그러면서 피노키오 몸을 잘 들여다보면 선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니. 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쪽 눈을 감고 피노키오 그림을 기울여 본다. 어라, 빨간 바코드 같던 무늬가 글씨가 된다. 무슨 뜻인지는 독자 스스로 찾아 볼 몫이다. 선물이니까.『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는 장면 장면마다 그림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서사를 글이 이끌고 있지만, 글에서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를 그림이 보완하고 확충하고 있다.
‘제’를 그린 그림은 이집트 벽화를 끌어 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형의 권위적 모습과 주먹을 꽉 쥔 동생의 모습을 통해 이들형제의 심리적 관계가 어떤지 말하고 있다. 또한 앞 장면에서 나온그림을 다음 장면에 자연스럽게 등장시켜 자칫 단절될 수 있는 그림 서사의 흐름을 연속적으로 이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효’에 등장했던 잉어가 ‘충’을 말하는 장면에서 무릎을 꿇은 용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물수리한테 맞은 동생 할미새는 ‘신’의 이야기에서 붕대를 감은 채 부러진 나뭇가지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형을 향해 무어라 쏘아 붙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져버리는 ‘신’을 그림으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의 흥미를 지속시켜주는 그림이 등장하여 호기심을 끈을 놓치지 않게 하고 있다. 문화그림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오는 여타의 그림책이 대부분 설명식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에 견주어 보면 이 그림책의 그림은 끊임없이 글과 상호작용을 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다.
그린이 박연철은 어느 자리에서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재미있게 놀고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의 이런 고백은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본성에 맞닿아 있다. 작가가 어른이 아닌 아이가 되어 즐겁고 신 나게 노는 자리이니 그가 그린 그림책 역시 아이들에게 신 나고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다만 이 책을 보며 부질없는 걱정을 보탠다면 암호 같은 그림을 지나치게 많이 숨겨 놓아 독해력을 떨어뜨리거나, 그의 발랄한 독창성(?)이 지나치게 기법 중심으로 발휘되어 어린 독자의 호기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