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아프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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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4 20:16 조회 9,034회 댓글 0건본문
2009년 1월 20일 새벽. 5층 망루에 올랐던 용산철거민 다섯 명이 경찰 과잉 진압에 의한 화재로 숨을 거두는 참사가 발생했다. 철거민 윤용현 씨는 10년 넘게 운영하던 한식당을 철거당한 후 달동네의 10평 남짓한 집에 옮겨 살다 망루에서 변을 당했다. 한대성 씨는 고향 강원도를 떠나 수원 신동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철거 예정지역인 신동을 지켜내려 철거민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용산철거민과 연대하다 변을 당했다. 그가 지켜내려던 신동 마을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5년째 용산에서 삼호 복집을 운영하던 양희성 씨의 꿈은 두 아들과 일식당을 경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일식당을 꾸리기 위해 일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두 아들의 꿈은 불타버린 망루와 함께 사라졌다. 26년 동안 용산에서 장사를 하던 이상림 씨는 아들 충연, 며느리 장영신 씨와 함께 레아 호프를 열었다. 내 집처럼 마음을 쏟으며 가꾸던 레아호프 옥탑에서 아들 내외와 오손도순 살던 그이도 망루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아버지 이상림 씨를 참사로 잃은 용산 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 씨는 망루에서 뛰어내리다 큰 부상을 입고 구속 수감 중에 있다.
멀쩡한 건물을 부숴 고층 건물을 짓고 폭리를 취하려 짧게는 5년, 길게는 26년 간 그곳에 삶터를 일구며 살아 온 이들을 무조건내 는 부당함이 재개발의 실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용산참사 현장의 겉만 보았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사회 심층의 병리 현상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들을 위한 개발이 지닌 부조리가 가져온 사회문제로 용산참사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 내면화하지 못한 탓이다.
『내가 살던 용산』은 시대의 아픔을 생생한 현장감을 되살려 그린르포 형식 만화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등 여섯 명의 만화가가 유가족에게 들은 일상의 삶을 입말 그대로 살리고 그림으로 재현했다. 9개월간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바탕삼아 여섯 작가가 힘을 다해 만들어낸, 이 현실감 넘치는 시각적 이미지는 참사 현장의 실상을 모르던 이들에게 유가족이 지닌 아픔과 재개발이 지닌 허구성을 자신의 아픔으로 체화해 내면화할 수 있게 만든다. 독자들은 만화를 통해 망루에 올랐던 이들이 움켜쥐려던 소박한 꿈의 실체와 진실을 생생하고 실감나게 접하게 된다. 다섯 유가족이야기 모두가 울림이 크지만 특히 노점상을 하는 부모님과 천막에서 생활하다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 상현군의 사연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두 번의 철거로 천막에서 생활하던 상현군이 “겨울은 항상 추웠지만 좁은 냉동실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추웠던 천막에서의 나날들이 오히려 그립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콧날이 시큰거리게 만든다.
학교 간 사이 용역이 집을 부수자 엄마는 전화를 걸어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오라하고 벽이 다 무너진 집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계신 부모를 남겨두고 친구 집에 간 상현이 돌아누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림이 살려 낼 수 있는 극한의 리얼리티다. 방과 후 부모몰래 핏자 배달을 해서 받은 첫 월급을 아버지 손에 건넸을 때 대견해하던 부모님의 행복한 모습, 장맛비에 천막이 무너져 책이 젖자화를 내며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 한겨울 물이 얼어 친구집에서 씻고 갔던 불편함까지도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절의 그리움으로 토로해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상현아 아버지는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정직한 게 죄라면 우리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근데... 상현아,상에는 지금 우리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우리가 서로 돕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니... ”
그렇게 한 소년의 아버지는 망루에 올랐고 불에 타 숨졌다. 아버지가 폭도 테러리스트로 매도되어 삼백 쉰다섯 날이 지나서야 시신을 땅에 누인 후, 일 년 사이에 주름살이 부쩍 늘어 난 어머니 얼굴을 보며 상현은 생각한다.
“다시 겨울이 찾아옵니다.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바라던게 너무 컸던 걸까요? 우리는... 아빠와 엄마와 나는...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년의 바람이 과연 너무 큰 것이었을까? 희망의 집인 망루를 부순 용역과 특공대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은 무죄인데 삶터를 지켜내려 파란 집 망루에 오른 이들은 유죄인 것일까? 『내가 살던 용산』을 읽으며 독자스스로 자문해 보기 바란다. 학습을 위한 지식만화와 교양만화,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코믹스 만화는 넘쳐나는 반면, 우리 삶과 밀착된 논픽션 르포 만화는 빈약하다. 다큐 만화가 최호철이 야학교재용으로 만들었던 10쪽짜리 「전태일의 생애」와 「을지로 순환선」이 겨우 눈길을 끌 뿐이다. 『내가 살던 용산』을 시발점으로 아프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을 생생한 기록으로 보여주는 르포만화가 활성화 될 것을 기대해본다.
이상하게도 용산참사 현장에 갈 때마다 혹독하게 춥고 진눈깨비가 내렸던 기억이 있다. 차가운 그곳을 되돌아 나올 때면 늘 발걸음이 무거웠다. 돌아와 누울 따뜻한 방 한 칸이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이제 다섯 명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간 그 자리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새 건물이 지어지면 끔찍했던 용산참사나 재개발이라는 괴물에게 희망을 저당 잡히고 소중한 가장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사람들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질 것이다. 세상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 있다. 용산 참사 현장도 잊혀선 안 된다. 그런 용산을 기억하는 재생 장치로 르포 만화 『내가 살던 용산』이 출간된 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멀쩡한 건물을 부숴 고층 건물을 짓고 폭리를 취하려 짧게는 5년, 길게는 26년 간 그곳에 삶터를 일구며 살아 온 이들을 무조건내 는 부당함이 재개발의 실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용산참사 현장의 겉만 보았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사회 심층의 병리 현상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들을 위한 개발이 지닌 부조리가 가져온 사회문제로 용산참사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 내면화하지 못한 탓이다.
『내가 살던 용산』은 시대의 아픔을 생생한 현장감을 되살려 그린르포 형식 만화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등 여섯 명의 만화가가 유가족에게 들은 일상의 삶을 입말 그대로 살리고 그림으로 재현했다. 9개월간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바탕삼아 여섯 작가가 힘을 다해 만들어낸, 이 현실감 넘치는 시각적 이미지는 참사 현장의 실상을 모르던 이들에게 유가족이 지닌 아픔과 재개발이 지닌 허구성을 자신의 아픔으로 체화해 내면화할 수 있게 만든다. 독자들은 만화를 통해 망루에 올랐던 이들이 움켜쥐려던 소박한 꿈의 실체와 진실을 생생하고 실감나게 접하게 된다. 다섯 유가족이야기 모두가 울림이 크지만 특히 노점상을 하는 부모님과 천막에서 생활하다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 상현군의 사연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두 번의 철거로 천막에서 생활하던 상현군이 “겨울은 항상 추웠지만 좁은 냉동실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추웠던 천막에서의 나날들이 오히려 그립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콧날이 시큰거리게 만든다.
학교 간 사이 용역이 집을 부수자 엄마는 전화를 걸어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오라하고 벽이 다 무너진 집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계신 부모를 남겨두고 친구 집에 간 상현이 돌아누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림이 살려 낼 수 있는 극한의 리얼리티다. 방과 후 부모몰래 핏자 배달을 해서 받은 첫 월급을 아버지 손에 건넸을 때 대견해하던 부모님의 행복한 모습, 장맛비에 천막이 무너져 책이 젖자화를 내며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 한겨울 물이 얼어 친구집에서 씻고 갔던 불편함까지도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절의 그리움으로 토로해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상현아 아버지는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정직한 게 죄라면 우리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근데... 상현아,상에는 지금 우리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우리가 서로 돕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니... ”
그렇게 한 소년의 아버지는 망루에 올랐고 불에 타 숨졌다. 아버지가 폭도 테러리스트로 매도되어 삼백 쉰다섯 날이 지나서야 시신을 땅에 누인 후, 일 년 사이에 주름살이 부쩍 늘어 난 어머니 얼굴을 보며 상현은 생각한다.
“다시 겨울이 찾아옵니다.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바라던게 너무 컸던 걸까요? 우리는... 아빠와 엄마와 나는...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년의 바람이 과연 너무 큰 것이었을까? 희망의 집인 망루를 부순 용역과 특공대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은 무죄인데 삶터를 지켜내려 파란 집 망루에 오른 이들은 유죄인 것일까? 『내가 살던 용산』을 읽으며 독자스스로 자문해 보기 바란다. 학습을 위한 지식만화와 교양만화,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코믹스 만화는 넘쳐나는 반면, 우리 삶과 밀착된 논픽션 르포 만화는 빈약하다. 다큐 만화가 최호철이 야학교재용으로 만들었던 10쪽짜리 「전태일의 생애」와 「을지로 순환선」이 겨우 눈길을 끌 뿐이다. 『내가 살던 용산』을 시발점으로 아프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을 생생한 기록으로 보여주는 르포만화가 활성화 될 것을 기대해본다.
이상하게도 용산참사 현장에 갈 때마다 혹독하게 춥고 진눈깨비가 내렸던 기억이 있다. 차가운 그곳을 되돌아 나올 때면 늘 발걸음이 무거웠다. 돌아와 누울 따뜻한 방 한 칸이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이제 다섯 명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간 그 자리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새 건물이 지어지면 끔찍했던 용산참사나 재개발이라는 괴물에게 희망을 저당 잡히고 소중한 가장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사람들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질 것이다. 세상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 있다. 용산 참사 현장도 잊혀선 안 된다. 그런 용산을 기억하는 재생 장치로 르포 만화 『내가 살던 용산』이 출간된 데 안도의 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