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보자기를 펼치듯 유럽을 펼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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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4 18:52 조회 8,308회 댓글 0건본문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 교사나 학부모들의 어린 시절 얘기다. 유럽을 ‘구라파’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고 지역 간 정보를 전달할 매체도 충분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나라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은 ‘구라파’라는 고색창연한 한자식 발음 앞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밑에 따라붙던 ‘불란서’, ‘화란’, ‘서반아’와 같은 말의 정취 또한 모호하긴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의 연원을 찾아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기도 하고 눈 비비며 명화극장 시간을 기다렸다가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흑백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차범근선수가 독일 축구 리그에서 최고라는데, 그런 사실조차 덥석 믿겨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한창 냉전 시대였다. 절반은 ‘소련과 동구권’으로 묶여 언급조차 조심해야 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구라파는 그저 고성의 깊은 안개와 아련한 레이스에 덮여 있었다.
유럽의 신비가 본격적으로 허물어진 것은 냉전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허용된 ‘배낭여행’ 이후일 듯싶다. 어르신들이 동남아 여행을 즐길 때 몇몇 젊은이들은 악착 같이 돈을 모아서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에펠탑이나 콜로세움을 직접 본 사람이 늘어났다고 해서 유럽에 대한 이해가 갑작스레 풍부해진 것은 아니었다. 마침 그 시기는 유럽 전체의 그림이 바뀔 무렵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유고 내전을 비롯해 크고 작은 민족 분쟁이 불붙었으며 분단 독일은 통일되었다. 전체의 변화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부분의 변화가 매우 빨랐다. ‘유럽 공동체’의 결성이라거나 ‘유로화’로 화폐가 일원화되었다는 소식은 ‘대형뉴스’로 접했을 뿐 구체적으로 실감하기 어려웠다. 유럽은 커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작아지기도 해서 ‘벨라루스’, ‘몰도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처럼 독립에 성공한 수많은 나라들의 이름은 유럽을 더욱 난해한 지역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유럽은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이해의 대상이다. 적국과 우방국을 가르는 냉전체제의 사고방식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수 없다. 저마다 고유의 모습으로 분화와 연합을 거듭한 유럽은 숨겨져 있던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여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지역인 동구권 국가들의 성장은 다음 세대 최대의 이슈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어린이들도 장차유럽의 여러 얼굴과 본격적으로 마주치게 될 텐데 정작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나 학부모들은 달라진 유럽 공동체를 잘 모른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안녕 유럽』은 반가운 책이다. 어린이 손에 들려주기 전에 일단 책을 구입한 어른의 손에서 적잖이 오래 머물듯 싶다. 대개의 어린이책과 달리 어른들이 모르는 지식 정보가 한 줄 걸러 빼곡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둔 나라는 한 꼭지로 묶었다지만, 그래도 스물여덟 꼭지에 39개국을 다루었으니 ‘신판 유럽 사전’이라 할 만하다. 예를 들자면, 국내외 어떤 어린이책에서도 발트3국의 문화를 이렇게 자세히 다룬 책을 보지 못했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를 통칭하는 발트3국은 ‘잊혀졌던 유럽의 관문’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앞으로 유럽의 국가 지형이 또 어떤 변모를 거듭할 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유럽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정교한 내용을 담고 있는 어린이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 책의 참다운 진가는 엄선된 정보를 충분히 표현해내는 구성에 있다. 두 면으로 구성된 한 꼭지가 왼편은 꼴라주 형식의 그림으로, 오른편은 친절하고 독창적인 소개 글로 채워져 있다. 오른편 상단에는 해당 국가의 이름을 그 나라 말로 적었고 하단에는 학교 사회과부도의 명칭을 썼다. ‘수오미(Suomi)-핀란드, 스베리게(Sverige)-스웨덴’처럼 현지어를 살려 쓴 것이다. 풀어쓴 글에서도 해당 국가의 독자적인 전통을 존중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흔히 알려진 대외적인 정보와 이미지만을 조합하여 수월하게 쓴 책이 아니다. 그 나라 사람의 입장에 서서 꼭 알리고 싶을 만한 이야기라면 그것이 역사 속에 가려진 억울한 사연이든, 안타까운 변화든, 소박한 문화적 성취든 빼놓지 않고 다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쏠쏠하다. 온천수를 동력으로 쓰는 나라인 아이슬란드가 2040년 이후 석유와 석탄을 전혀 쓰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거나 아일랜드를 지속적으로 수탈하던 영국이 1997년에야 그에 대해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다른 어린이책에서 보기 힘들다. 인물에 대한 소개의 폭도 넓은 편이다. 구태의연한 국가별 위인을 나열하지 않고 현대적 이슈나 어린이의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영국의 인물로 해리포터가 나오거나 이층버스에 탄 비틀즈가 손을 흔드는 장면이 그 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알바니아 출신이라거나 화가 샤갈의 고향이 벨라루스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방대한 정보량에 감탄하게 되는데 정작 편집은 전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꼴라주 기법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시원시원하게 강조할 것과 작더라도 꼭 표현해야 할 것의 비중을 현명하게 결정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페이지마다 숨은 그림 단서가 많아서 글이 많지 않아도 볼 것이 가득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수십 장이나 계속 되는 비슷한 면구성이 마지막으로 가다보면 얼핏 지루하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마지막 나라까지 다 살펴보자면 참을성이 필요하다. 물론 하루에 휘리릭 다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독자의 집중력을 배려할 필요는 있었다고 본다. 꼴라주라는 형식을 유지하면서 간간이 색다른 변주를 주는 페이지가 있었더라면 끝까지 읽는 맛을 놓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유럽 공동체의 일원인 폴란드의 작가다. 이미 『파란 막대 파란 상자』, 『생각』과 같은 실험적인 작품으로 예술성을 널리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안녕 유럽』에서 색동 보자기처럼 조각조각 다른 빛깔의 국가가 더불어 차린 한집 살림을 상냥하고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소개해주고 있다. 보자기를 펼치듯 이 책을 펼치고 이보나의 안내에 따라가다 보면 유럽의 감춰진 면모에 깊숙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유럽의 신비가 본격적으로 허물어진 것은 냉전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허용된 ‘배낭여행’ 이후일 듯싶다. 어르신들이 동남아 여행을 즐길 때 몇몇 젊은이들은 악착 같이 돈을 모아서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에펠탑이나 콜로세움을 직접 본 사람이 늘어났다고 해서 유럽에 대한 이해가 갑작스레 풍부해진 것은 아니었다. 마침 그 시기는 유럽 전체의 그림이 바뀔 무렵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유고 내전을 비롯해 크고 작은 민족 분쟁이 불붙었으며 분단 독일은 통일되었다. 전체의 변화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부분의 변화가 매우 빨랐다. ‘유럽 공동체’의 결성이라거나 ‘유로화’로 화폐가 일원화되었다는 소식은 ‘대형뉴스’로 접했을 뿐 구체적으로 실감하기 어려웠다. 유럽은 커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작아지기도 해서 ‘벨라루스’, ‘몰도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처럼 독립에 성공한 수많은 나라들의 이름은 유럽을 더욱 난해한 지역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유럽은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이해의 대상이다. 적국과 우방국을 가르는 냉전체제의 사고방식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수 없다. 저마다 고유의 모습으로 분화와 연합을 거듭한 유럽은 숨겨져 있던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여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지역인 동구권 국가들의 성장은 다음 세대 최대의 이슈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어린이들도 장차유럽의 여러 얼굴과 본격적으로 마주치게 될 텐데 정작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나 학부모들은 달라진 유럽 공동체를 잘 모른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안녕 유럽』은 반가운 책이다. 어린이 손에 들려주기 전에 일단 책을 구입한 어른의 손에서 적잖이 오래 머물듯 싶다. 대개의 어린이책과 달리 어른들이 모르는 지식 정보가 한 줄 걸러 빼곡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둔 나라는 한 꼭지로 묶었다지만, 그래도 스물여덟 꼭지에 39개국을 다루었으니 ‘신판 유럽 사전’이라 할 만하다. 예를 들자면, 국내외 어떤 어린이책에서도 발트3국의 문화를 이렇게 자세히 다룬 책을 보지 못했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를 통칭하는 발트3국은 ‘잊혀졌던 유럽의 관문’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앞으로 유럽의 국가 지형이 또 어떤 변모를 거듭할 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유럽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정교한 내용을 담고 있는 어린이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 책의 참다운 진가는 엄선된 정보를 충분히 표현해내는 구성에 있다. 두 면으로 구성된 한 꼭지가 왼편은 꼴라주 형식의 그림으로, 오른편은 친절하고 독창적인 소개 글로 채워져 있다. 오른편 상단에는 해당 국가의 이름을 그 나라 말로 적었고 하단에는 학교 사회과부도의 명칭을 썼다. ‘수오미(Suomi)-핀란드, 스베리게(Sverige)-스웨덴’처럼 현지어를 살려 쓴 것이다. 풀어쓴 글에서도 해당 국가의 독자적인 전통을 존중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흔히 알려진 대외적인 정보와 이미지만을 조합하여 수월하게 쓴 책이 아니다. 그 나라 사람의 입장에 서서 꼭 알리고 싶을 만한 이야기라면 그것이 역사 속에 가려진 억울한 사연이든, 안타까운 변화든, 소박한 문화적 성취든 빼놓지 않고 다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쏠쏠하다. 온천수를 동력으로 쓰는 나라인 아이슬란드가 2040년 이후 석유와 석탄을 전혀 쓰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거나 아일랜드를 지속적으로 수탈하던 영국이 1997년에야 그에 대해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다른 어린이책에서 보기 힘들다. 인물에 대한 소개의 폭도 넓은 편이다. 구태의연한 국가별 위인을 나열하지 않고 현대적 이슈나 어린이의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영국의 인물로 해리포터가 나오거나 이층버스에 탄 비틀즈가 손을 흔드는 장면이 그 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알바니아 출신이라거나 화가 샤갈의 고향이 벨라루스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방대한 정보량에 감탄하게 되는데 정작 편집은 전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꼴라주 기법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시원시원하게 강조할 것과 작더라도 꼭 표현해야 할 것의 비중을 현명하게 결정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페이지마다 숨은 그림 단서가 많아서 글이 많지 않아도 볼 것이 가득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수십 장이나 계속 되는 비슷한 면구성이 마지막으로 가다보면 얼핏 지루하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마지막 나라까지 다 살펴보자면 참을성이 필요하다. 물론 하루에 휘리릭 다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독자의 집중력을 배려할 필요는 있었다고 본다. 꼴라주라는 형식을 유지하면서 간간이 색다른 변주를 주는 페이지가 있었더라면 끝까지 읽는 맛을 놓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유럽 공동체의 일원인 폴란드의 작가다. 이미 『파란 막대 파란 상자』, 『생각』과 같은 실험적인 작품으로 예술성을 널리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안녕 유럽』에서 색동 보자기처럼 조각조각 다른 빛깔의 국가가 더불어 차린 한집 살림을 상냥하고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소개해주고 있다. 보자기를 펼치듯 이 책을 펼치고 이보나의 안내에 따라가다 보면 유럽의 감춰진 면모에 깊숙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