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서평 _ 교사의 눈 - 새로운 위인전, 하지만 뭔가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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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7 22:51 조회 7,611회 댓글 0건본문
나는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위인전을 추천해준 적이 거의 없다. 위인전이 가진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비범한 어린 시절과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인간성 그리고 위대한 업적까지…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흠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위인들은 다른 세상에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외계인처럼 보인다. 이런 위인들을 본받으라고 쓴 책이 바로 위인전이다. 그러니 위인전을 읽는 독자들은 위인들의 위대한 업적에 경탄하지만 스스로 세상을 바꾸는 주인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좀 더 인간적이고 단점도 많은 위인은 왜 없는 걸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시도는 새롭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위인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위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들의 인간적인 한계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업적도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위해 애쓴 결과물들 중심으로 서술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딱딱한 형식의 위인전이 아니라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글이 전개되어서 편하게 읽힌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또한 요즘 세대 청소년의 취향을 의식했는지 중간 중간 만화도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기존 위인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한 책이 참신하다는 느낌보다 무언가 부족한 부분이 느껴진다. 그것은 왜일까?
청소년들이 제 삶을 돌아보고 생각 할 여지를 남겼더라면
첫 번째 이유는 이 책이 너무 친절하다는 점 때문에 생겼다. 아빠가 딸에게 설명해주는 방식은 친근하지만 너무나 자세하고 친절하다. 그러니 이 책 속의 딸은 책 속의 인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판단하지도 못하고 이야기들을 통해 성장과 성찰의 경험을 가지지도 못한다. 그저 아빠의 생각과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으로만 그려져 있다. 오히려 아빠의 이야기 속에서 청소년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하는 책이 그리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 수동적인 청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단점이 아닐까? 사실 우리가 그려야 할 청소년의 모습은 단순히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을 이해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의심하고 그 속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청소년의 모습을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진정 무리일까?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만화 때문에 생겨난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만화는 독자에게 보통 앞에 나온 내용을 정리해주는 쉼표의 기능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화는 앞에 이야기된 부분들을 지나치게 희화해서 보여준다. 게다가 그 희화된 장면 중에 보이는 폭력적인 묘사는 이 책이 평화를 주제로 한 책이 맞는지 의심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인권과 평화의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함께 생각할 여지를 남겨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먼 나라 인물도 좋지만 우리 주변 사람들도 담았더라면
마지막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다. 이 책의 등장하는 사람들은 야누시 코르차크와 간디를 제외하면 모두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물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를 제외하고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냐고 말하면 뭐라 할 말은 없다. 게다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 노벨상 수상자들이 소개된 것도 이 책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란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간디나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아버지 야누시 코르차크와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만 할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왜 가장 가까이에서 한국 사회의 인권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외되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우리 청소년들도 스스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수 있으려면 노벨평화상을 받은 먼 나라의 인물들 이야기보다 작지만 꾸준한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주변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먼저 만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괜한 트집일까?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산 위대한 위인을 선보이는 위인전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꾸는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위인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시도가 새롭지만 여전히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앞으로 나올 더 좋은 위인 이야기 책에 대한 갈망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