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유년의 샘, 그리움과 아픔의 저 멀고 깊은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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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5 18:47 조회 6,553회 댓글 0건본문
지난 연말 한가한 시간에 자서전을 써보고 싶은 강한 열망이 솟구친 적이 있다. 글쓰기가 내면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어린 시절 ‘나’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온갖 정서로 뒤섞인 유년의 기억을 정리하고 구체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았고, 더불어 유년의 정서적 충격과 만나는 것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 글들을 언젠가 쓰게 된다면 진솔한 ‘나’를 만나기 위한 장치로 마음의 거리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전 소설에 타자화된 시점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던 적이 있다.
이런 연유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역량 있는 중견작가들의 자전소설을 한꺼번에 본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그들이 어떤 성장기를 거쳐 자아와 세계관을 형성했으며 그것들이 그들의 인생과 작품에 어떤 빛깔로 투영되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반부 몇 작품을 제외하곤 기대하던 것과 달라 청소년에게 권장해도 좋은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어찌됐든 삶을 차분히 관조할 수 있는 연륜이 붙은 중견작가들도 지난 삶을 반추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것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내 마음이 그러했듯 작가들도 자기 삶을 타자화하여 드러낸 작품이 많았다. 이동하는 어린 시절 자신을 ‘그’로 표현했으며 김채원은 ‘여자’로 지칭했다. 김인숙은 실체가 잘드러나지 않는 관찰자로만 등장시키기도 했다. 박완서의 작품이 말해주듯 지난 삶을 반추하는 과정은 외양으로 빛나는 삶의 눈부심이 아니라 그리움과 아픔, 때로는 회한으로 얼룩진 삶의 그림자를 밟아 나가는 행위와 유사하기에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언젠가 읽었던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유년은 강렬한 감각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기억 속에 나 또한 당숙집에서 소꿉장난하다 만난 푸른 솔이끼와 부드러운 흙냄새를 아주 뚜렷이 기억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그 장소를 찾아보려 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흙벽을 그늘이 덮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나 솜이불에 코를 댄 것 같은 아늑함의 기억들이 지금껏 생생하다. 이런 감각적 기억은 이동하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고향마을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온통 감나무와 연관된다. 골목마다 감꽃이 하얗게 떨어지던 모습, 풋감을 주워 소금물에 우려먹던 일, 가을볕에 감들이 선연한 보석같이 장엄하게 익어가던 황홀한 영상이 그리움과 아늑함으로 각인되어 어느 날 고향을 떠난 순간 작가는 스스로를 언제나 집 없이 떠돌며 길 위에서 살아온 고달픈 유랑민의 신세였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향에 대한 애절함은 윤후명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이 태어난 강릉 바닷가에 어머니 유골의 일부를 몰래 빼내 뿌려주는 행위를 통해 ‘흐릿하지만 뚜렷하게 고향은 어머니’임을 고백한다. 모래처럼 허물어지고 파도처럼 씻겨나 간다 해도 마치 어둠 속에 의연한 방파제같이 삶을 지탱해준 어머니의 존재가 바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고향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오빠와 언니, 동생 같은 혈족에 대한 느낌은 개인의 생애에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에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혈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자주 아픈 상처를 동반한다. 그 상처들은 성인이 되어도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 과거와 현재의 의미에 새삼 매달리게 될 때가 있다.
늘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했건만 그많은 노력이 실상은 나에게로 집중되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홀히 하고 결국에는 소원해져 버린 많은 관계에 대해 반성하게 될 때도 많다. 늘 현재만이 존재한다지만 과거가 진짜 과거인지 현재가 현재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살다보면 이러한 생각을 피해가기 어렵지만 순화되지 못하고 쏟아져 나오는 예민한 작가 특유의 주관적 정서가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느낌은 그리 반갑지 않다. 이 책을 청소년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좋은지 난감하다. 좋은 책 한 권이라도 더 읽혀야 되는 처지에서 보면 이 책은 조금 쉽게 만들어진 책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작품의 완성도가 들쭉날쭉하고 자전소설이라고 하지만 ‘자전’에 강세가 있는지 ‘소설’에 강세가 있는지 기준을 찾기도 힘들었다.
예전에 도서관 담당교사 모임에서 청소년 권장도서를 고르는 과정에서 청소년에게 읽힐 만한 성장소설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때 제기되었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성장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자기 경험을 토대로 삼다 보니 문학소녀(소년) 특유의 감성과 관련된 경험이 일반적인 공감을 얻기 어려워 요즘 청소년에게 딱히 읽히고 싶은 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고민은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되었다.
이런 연유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역량 있는 중견작가들의 자전소설을 한꺼번에 본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그들이 어떤 성장기를 거쳐 자아와 세계관을 형성했으며 그것들이 그들의 인생과 작품에 어떤 빛깔로 투영되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반부 몇 작품을 제외하곤 기대하던 것과 달라 청소년에게 권장해도 좋은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어찌됐든 삶을 차분히 관조할 수 있는 연륜이 붙은 중견작가들도 지난 삶을 반추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것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내 마음이 그러했듯 작가들도 자기 삶을 타자화하여 드러낸 작품이 많았다. 이동하는 어린 시절 자신을 ‘그’로 표현했으며 김채원은 ‘여자’로 지칭했다. 김인숙은 실체가 잘드러나지 않는 관찰자로만 등장시키기도 했다. 박완서의 작품이 말해주듯 지난 삶을 반추하는 과정은 외양으로 빛나는 삶의 눈부심이 아니라 그리움과 아픔, 때로는 회한으로 얼룩진 삶의 그림자를 밟아 나가는 행위와 유사하기에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언젠가 읽었던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유년은 강렬한 감각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기억 속에 나 또한 당숙집에서 소꿉장난하다 만난 푸른 솔이끼와 부드러운 흙냄새를 아주 뚜렷이 기억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그 장소를 찾아보려 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흙벽을 그늘이 덮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나 솜이불에 코를 댄 것 같은 아늑함의 기억들이 지금껏 생생하다. 이런 감각적 기억은 이동하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고향마을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온통 감나무와 연관된다. 골목마다 감꽃이 하얗게 떨어지던 모습, 풋감을 주워 소금물에 우려먹던 일, 가을볕에 감들이 선연한 보석같이 장엄하게 익어가던 황홀한 영상이 그리움과 아늑함으로 각인되어 어느 날 고향을 떠난 순간 작가는 스스로를 언제나 집 없이 떠돌며 길 위에서 살아온 고달픈 유랑민의 신세였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향에 대한 애절함은 윤후명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이 태어난 강릉 바닷가에 어머니 유골의 일부를 몰래 빼내 뿌려주는 행위를 통해 ‘흐릿하지만 뚜렷하게 고향은 어머니’임을 고백한다. 모래처럼 허물어지고 파도처럼 씻겨나 간다 해도 마치 어둠 속에 의연한 방파제같이 삶을 지탱해준 어머니의 존재가 바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고향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오빠와 언니, 동생 같은 혈족에 대한 느낌은 개인의 생애에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에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혈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자주 아픈 상처를 동반한다. 그 상처들은 성인이 되어도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 과거와 현재의 의미에 새삼 매달리게 될 때가 있다.
늘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했건만 그많은 노력이 실상은 나에게로 집중되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홀히 하고 결국에는 소원해져 버린 많은 관계에 대해 반성하게 될 때도 많다. 늘 현재만이 존재한다지만 과거가 진짜 과거인지 현재가 현재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살다보면 이러한 생각을 피해가기 어렵지만 순화되지 못하고 쏟아져 나오는 예민한 작가 특유의 주관적 정서가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느낌은 그리 반갑지 않다. 이 책을 청소년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좋은지 난감하다. 좋은 책 한 권이라도 더 읽혀야 되는 처지에서 보면 이 책은 조금 쉽게 만들어진 책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작품의 완성도가 들쭉날쭉하고 자전소설이라고 하지만 ‘자전’에 강세가 있는지 ‘소설’에 강세가 있는지 기준을 찾기도 힘들었다.
예전에 도서관 담당교사 모임에서 청소년 권장도서를 고르는 과정에서 청소년에게 읽힐 만한 성장소설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때 제기되었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성장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자기 경험을 토대로 삼다 보니 문학소녀(소년) 특유의 감성과 관련된 경험이 일반적인 공감을 얻기 어려워 요즘 청소년에게 딱히 읽히고 싶은 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고민은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