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삶을 만나다 -평안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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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0:50 조회 6,092회 댓글 0건본문
아직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라 처음 뵙는 분들은 출판사에서 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어떤 책을 펴냈냐고 물어본다. 이때마다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다. 만들면서 유독 애정이 담긴 책을 말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이나마 잘 팔리는
책들을 말해야 하나 순간 갈등하게 된다. 얼마 안 되는 책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짧은 순간이지만 책마다 얽힌 사연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란 말처럼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소중한 것처럼 많이 팔리고 적게 팔리고를 떠나
나에게는 초창기에 만든 책들이 소중하다. 그래서 판매량이 급격하게 떨어져, 절판
과 재판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 이런 책들은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에 재판을 찍
게 된다. 언젠가는 독자들이 알아줄 거라는 생각에…. 그리곤 창고에 쌓여있는 이
책들을 바라보면 미안함을 느낀다.
이 책들 중 출간 초기에는 어느 정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철수와영희라
는 출판사가 초창기라 마케팅 부족으로 과소평가된 두 종의 책이 있다. 2007년 2
월과 6월에 출간된 『소심한 김대리 직딩일기』와 하종강의 중년일기라는 부제를 단
『철들지 않는다는 것』이란 책이다. 공교롭게도 두 책 모두 일기라는 타이틀을 가지
고 세상에 선을 보였다. 지금 이 책들을 출간했다면 지금까지의 판매량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의 판매가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정말로 다시 독자들에게 권하
고 싶은 책들이다.
직장인 김대리의 삶을 만나다
수많은 경제, 경영서 들이 성공한 직장인들의 처세술을 담고 있는 것에 비해 『소심한 김대리 직딩일기』는 직장인의 애환과 슬픔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 장밋빛 직장 생활의 환상을 깰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회사는 어차피 이기적이니 절대로 오지 않을 안정을 위해 목매달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회사에 고립된 개인이 고되고 비루한 일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각박한 회사 생활 속에서도 주변 동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97년 직장인 만화로 호평을 받았던 『천하무적 홍대리』의 작가 홍윤표 선생님이 참여해 만화삽화를 그려주셨기에 이 책은 홍대리와 김대리의 만남이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분야를 경제, 경영으로 했고 독자 대상을 당시 성공을 꿈꾸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경제 위기 속에 다들 주변을 돌아보기보다 혼자만의 생존도 급급한 상황에서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을 여지가 컸다. 이미 생존 게임에 들어간 직장인들에게 이 책은 한가하고 패배한 사람의 목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예비 취업생들과 청소년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어차피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출세의 사다리는 노력한다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성공과 행복이라는 기준을 바꾸어야만 패배자로 남지 않을 수 있다. 청소년들과 예비 취업생들에게 선배 직장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콘셉트를 잡았다면 훨씬 주목받았을 책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중학교 3학년 이상에게 강추한다.
노동운동가 하종강의 삶을 만나다
『철들지 않는다는 것』은 한 해에 300회 이상 노동운동 강의를 다니는 하종강 선생님의 산문집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진보 활동가의 투쟁의 목소리가 아닌 잔잔하고 따뜻한 사생활에 대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운동가가 머리에 뿔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이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멀쩡한 말을 망아지로 만드는 세상’에 편입되기 싫어하는 철들지 않는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6월 민주항쟁 20주기를 기념해 출판사에서 출간한 사회과학 분야의 첫 책이다. 지금의 철수와영희가 사회과학으로 출판의 방향을 잡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은 출간 이후 두 가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동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좀 더 많이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독자들로부터는 생각보다 책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문학적으로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책이 너무 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이 책은 하종강 선생님의 노동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담은 평론집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한 에세이다. 초기에 이 책을 보신 분은 “운동하면서 사랑하며 사는 일을 하나로 녹여낸, 가슴 저미게 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평했다.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편이냐고 묻는 현실 속에서 인간에 대한 하 선생님의 따뜻한 글쓰기가 주목받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저자가 글 속에 세운 안테나는 보수와 진보가 아닌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기 때문이다. 판매만 염두에 두었다면 책 내용은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점이 하종강 선생님 글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책 역시 다양한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중학교 3학년 이상에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