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이 읽기 - 시를 아끼는 마음으로 더듬더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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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7 23:48 조회 6,753회 댓글 0건본문
시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시집만 읽으면 놓치는 게 많다. 시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빨리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차분히 묵상할 시간을 따로 챙기지 않은 탓이다. 그런 점에서 시 에세이는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을 짚어주었고 다시 한 번 시를 찬찬히 읽어보라고 격려해준다. 시에 대한 애정을 머금은 눈으로 적어 내린 감성 어린 수필은 또 한 편의 시와 다름없다. 올해도 몇 권의 시 에세이를 찾았다. 시도, 내용도 저마다 달라서 가슴이 촉촉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그 중 연말에 나온 책이 또 마음을 흔든다.
시를 소개 하면서, 시를 망쳐 놓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인터넷처럼 만발했다. (중략) 시에게 미안하고 시인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런 미안한 일을 저질렀으면 일회성으로 끝내고 말일이지 왜 또 책으로 묶고 있단 말인가. 궁색한 변명을 찾아보자면, 시는 오독과 왜곡을 통해서도 자신을 벼려 더 올곧게 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5쪽)
『절하고 싶다』는 「눈물은 왜 짠가」로 잘 알려진 함민복 시인이 한국일보 ‘시로 여는 아침’에 6개월간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국내외 연대를 불문하고 자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된 시들을 그날 분위기에 따라서 골라 소개했다. 길어야 원고지 몇 장안 될 분량에 글마다 말투도 이리저리 바꾼다. 개인사, 세상사를 언급하며 시란 얼마나 힘이 센가, 시인은 얼마나 갸륵한 사람인가 거듭 되뇐다.
시인은 강화도에서 인삼밭을 일구며 소탈하게 산다. 이 책을 보고 정보를 더 찾다 최근 49살 나이에 시를 가르친 동갑내기 제자와 결혼한 사실도 알았다. 주례를 본소설가 김훈은 함민복 시인의 결혼을 두고 문단의 쾌거라고 했단다. 쑥스럽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켜도 된다는 듯이 쓰인 글은 독자의 마음을 말랑말랑 녹인다. 그는 시를 낱낱이 분석한 글보다 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더듬더듬 적은 글이 더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시는 영혼의 외출이다. 맨마음이고 날정신이고 무의식까지 홀딱 다 보여주는 투명 빤스다. (15쪽)
시인은 시를 사랑한다. 시의 힘을 믿는다. 그에게 시는 능동적인 반성과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왜 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묻기도 한다. 시에 부끄러운 마음 오래 비춰보기도 한다. 나는 왜 시를 읽으려 하는가. 내게 시란 무엇인가 물었다. 시인처럼 영혼의 이정표로 삼을 정도는 못 되나 시는 밑줄 그어놓은 한 줄로 내 가슴에 남아 힘을 준다. 일기에 옮겨 적기도 하고 인용도 하면서 불쌍한 것, 아픈 것, 이상한 것 외면하지 말자고 알려준다.
세월이 흐르고 도심처럼 바닷가에도 직선 길이 생겨났다. 곡선의 산을 제왕절개해 꺼내 놓은 직선 길은 편하기는 했으나, 산이 자연스럽게 낳은 길처럼 사람들의 삶을 품지는 못했다. 그 길가에서,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겁에 질린 직선의 나무들이, 생명의 어머니인 둥근 태양과 달을 바라다보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33쪽)
시인은 미안한 것이 많다. 신혼여행차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타며 누군가 우러러보고 있을 하늘을 교만하게 날고 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특히 자연에게 미안하다. 사람의 손에 훼손된 것이 너무 많다. 곡선을 허무는 4대강 사업이 먼저 떠오른다. 없어지는 게 무생물뿐이랴. 가축의 삶이나 사람의 삶이나 무릇 서로 닮았는데 생명을 먹어 생명을 연장하거나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살처분하는 이 땅이 무섭다. 읽자니 땅에 묻힌 짐승들, 차들 쌩쌩 달리는 도로에 심긴 가로수의 울음소리 들리는 것 같아 아찔하다.
시인은 시인을 존경한다. 수일한 묘사나 선명히 떠오르는 그림에 감탄해 무릎을 친다. 당연한 사실을 감동으로 이끄는 능력에 놀란다. 그의 눈에 시인은 악몽 같은 현실, 가위눌림 같은 현실을 눈 부릅뜨고 직시하는 사람이다.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가엾은 사람 곁에 있어주는 길동무다. 그래서 힘들고 괴로운 영혼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자부심도 있지 않을까 싶다. 시인들이 꿈꾸는 세상은 평화롭겠지. 힘들고 아픈 생명도 없겠지. 함 시인은 무슨 꿈을 꿀까.
작금에 절하고 싶은 대상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개가 물 먹는 소리, 구름빛 낮달, 수없이 씨앗을 쏟아낸 수세미……. 그리고 지나간 시간과 지나온 풍경들. 급기야, 내가 더 깊어지거나 세상이 온통 맑아져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그냥 절하고 싶은 오롯한 풍경화 한 점으로 다가왔으면 하고 꿈도 꿔본다. (37쪽)
책 이름은 좋아하는 시 구절을 따서 지었다. 이 책에 이어 며칠 뒤 『꽃봇대』(함민복 지음, 황중한 그림, 대상미디어)가 출간됐다. 전봇대 전깃줄 대신 집과 건물들이 마음속에서나마 꽃줄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꽃봇대로 정했단다. 책을 읽고 글을 쓴데도 자꾸만 살기 강박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게 무슨 소용이냐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 왠지 겸연쩍고 부끄럽다. 말마따나 꿈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속 깊은 생각으로 깨달음을 주는 시인들이 있어 올 겨울은 덜 춥겠다.
시를 소개 하면서, 시를 망쳐 놓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인터넷처럼 만발했다. (중략) 시에게 미안하고 시인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런 미안한 일을 저질렀으면 일회성으로 끝내고 말일이지 왜 또 책으로 묶고 있단 말인가. 궁색한 변명을 찾아보자면, 시는 오독과 왜곡을 통해서도 자신을 벼려 더 올곧게 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5쪽)
『절하고 싶다』는 「눈물은 왜 짠가」로 잘 알려진 함민복 시인이 한국일보 ‘시로 여는 아침’에 6개월간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국내외 연대를 불문하고 자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된 시들을 그날 분위기에 따라서 골라 소개했다. 길어야 원고지 몇 장안 될 분량에 글마다 말투도 이리저리 바꾼다. 개인사, 세상사를 언급하며 시란 얼마나 힘이 센가, 시인은 얼마나 갸륵한 사람인가 거듭 되뇐다.
시인은 강화도에서 인삼밭을 일구며 소탈하게 산다. 이 책을 보고 정보를 더 찾다 최근 49살 나이에 시를 가르친 동갑내기 제자와 결혼한 사실도 알았다. 주례를 본소설가 김훈은 함민복 시인의 결혼을 두고 문단의 쾌거라고 했단다. 쑥스럽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켜도 된다는 듯이 쓰인 글은 독자의 마음을 말랑말랑 녹인다. 그는 시를 낱낱이 분석한 글보다 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더듬더듬 적은 글이 더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시는 영혼의 외출이다. 맨마음이고 날정신이고 무의식까지 홀딱 다 보여주는 투명 빤스다. (15쪽)
시인은 시를 사랑한다. 시의 힘을 믿는다. 그에게 시는 능동적인 반성과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왜 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묻기도 한다. 시에 부끄러운 마음 오래 비춰보기도 한다. 나는 왜 시를 읽으려 하는가. 내게 시란 무엇인가 물었다. 시인처럼 영혼의 이정표로 삼을 정도는 못 되나 시는 밑줄 그어놓은 한 줄로 내 가슴에 남아 힘을 준다. 일기에 옮겨 적기도 하고 인용도 하면서 불쌍한 것, 아픈 것, 이상한 것 외면하지 말자고 알려준다.
세월이 흐르고 도심처럼 바닷가에도 직선 길이 생겨났다. 곡선의 산을 제왕절개해 꺼내 놓은 직선 길은 편하기는 했으나, 산이 자연스럽게 낳은 길처럼 사람들의 삶을 품지는 못했다. 그 길가에서,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겁에 질린 직선의 나무들이, 생명의 어머니인 둥근 태양과 달을 바라다보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33쪽)
시인은 미안한 것이 많다. 신혼여행차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타며 누군가 우러러보고 있을 하늘을 교만하게 날고 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특히 자연에게 미안하다. 사람의 손에 훼손된 것이 너무 많다. 곡선을 허무는 4대강 사업이 먼저 떠오른다. 없어지는 게 무생물뿐이랴. 가축의 삶이나 사람의 삶이나 무릇 서로 닮았는데 생명을 먹어 생명을 연장하거나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살처분하는 이 땅이 무섭다. 읽자니 땅에 묻힌 짐승들, 차들 쌩쌩 달리는 도로에 심긴 가로수의 울음소리 들리는 것 같아 아찔하다.
시인은 시인을 존경한다. 수일한 묘사나 선명히 떠오르는 그림에 감탄해 무릎을 친다. 당연한 사실을 감동으로 이끄는 능력에 놀란다. 그의 눈에 시인은 악몽 같은 현실, 가위눌림 같은 현실을 눈 부릅뜨고 직시하는 사람이다.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가엾은 사람 곁에 있어주는 길동무다. 그래서 힘들고 괴로운 영혼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자부심도 있지 않을까 싶다. 시인들이 꿈꾸는 세상은 평화롭겠지. 힘들고 아픈 생명도 없겠지. 함 시인은 무슨 꿈을 꿀까.
작금에 절하고 싶은 대상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개가 물 먹는 소리, 구름빛 낮달, 수없이 씨앗을 쏟아낸 수세미……. 그리고 지나간 시간과 지나온 풍경들. 급기야, 내가 더 깊어지거나 세상이 온통 맑아져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그냥 절하고 싶은 오롯한 풍경화 한 점으로 다가왔으면 하고 꿈도 꿔본다. (37쪽)
책 이름은 좋아하는 시 구절을 따서 지었다. 이 책에 이어 며칠 뒤 『꽃봇대』(함민복 지음, 황중한 그림, 대상미디어)가 출간됐다. 전봇대 전깃줄 대신 집과 건물들이 마음속에서나마 꽃줄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꽃봇대로 정했단다. 책을 읽고 글을 쓴데도 자꾸만 살기 강박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게 무슨 소용이냐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 왠지 겸연쩍고 부끄럽다. 말마따나 꿈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속 깊은 생각으로 깨달음을 주는 시인들이 있어 올 겨울은 덜 춥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