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깊게 읽기 -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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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7:15 조회 6,418회 댓글 0건본문
올여름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 위치한 선사박물관에 갔었다. 한 달 내내 의무로 들어야 하는 지루한 연수 과정 중에 유일한 야외수업이라 그저 달뜬 마음으로 나선 곳이었다. 프랑스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애벌레처럼 생긴 건물 안에 자리한 전시실 입구에는 유인원 여덟명이 눈길을 잡아 끌고 있었다. 과거 인류의 진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밀랍 모형이었다. 여덟 개의 모형들은 키, 털, 몸에 두른 가죽, 손에 들고 있는 도구의 모습까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모습이 확연히 다른 유인원들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 살고 있는 자연 환경에 따라 먹는 음식이 다르니 신체적 조건이 차이를 보인다는 설명이 마침 귀에 들어왔다.
『내가 이렇게 생긴 건 이유가 있어요』. 다소 억울하다는 듯, 당돌하게 말하는 제목이 달린 이 책은 한울림어린이에서 나온 기획 시리즈 ‘동물에게 배워요’ 세 번째 그림책이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 『큰 손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도서관 아이』 등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쓰는 채인선작가가 글 작업을 맡았다.
앞서 나온 두 권의 시리즈도 같은 저자가 글을 썼는데, 책 제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어른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위험이 닥쳐도 걱정할 것 없어요』. 앞선 책들의 제목은 자신감이 느껴진다. 이 두그림책은 동물(곤충, 새 등을 포함하지만 크게 동물이라 하자)들이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즉 앞선 두 책이 동물들이 살아가는 과정, 위험속에서 대처해 나가는 ‘삶의 모습’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은 ‘생긴 모습’ 그 자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러니 태어날 때부터 이 모습인 자신의 생긴 모습을 넌 왜 그렇게 생겼냐고 묻는 상대에게 ‘내가 이렇게 생긴 건 이유가 있어요’라고 할 수밖에.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유아부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글의 짜임이다. 우선 각 동물의 가장 큰 특징을 간단히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뒤 특징이 어떻게 유용한지 입말체로 풀어 놓는다. 사실 관찰하는 입장에서 관찰 대상의 특징을 설명하려 하면 글은 딱딱한 설명조가 되어버리기 쉬운데, 저자는 되도록 우리말을 살려 묘사하듯 설명을 넣었다. 여기 ‘호랑이 줄무늬’를 소개한 글의 일부를 예시로 살펴보자.
호랑이는 줄무늬 때문에 남의 눈에 잘 띌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호랑이는 풀이 우거진 숲에서 사는데, 풀숲에 있으면 가는 세로 줄무늬가 비죽비죽 솟은 풀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모습을 잘 감출 수 있답니다.
이 책의 사실적인 그림을 두 번째 장점으로 꼽아본다. 세밀화로 소개되거나 사진이 들어 있는 도감류에 비하면 동물 생김새를 소개하는 측면에서 그림이 다소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은 다양한 생김새를 소개하되 그들의 특징이 자연과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사진이나 혹은 사진처럼 세세한 그림보다는 사실적이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림 표현이 어린 독자들에게는 편안히 다가가게 마련이다. 더불어 특징에 맞는 동물들의 동작 표현으로 글과 그림이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줘 글로 표현된 사실을 간접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효과를 안겨준다.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흐르고 있는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세 번째 장점이다. 소개된 동물을 객관적인 관찰의 존재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 자연 속에서 어울려 사는 방법을 아는 그들의 생김새를 설명하면서 우리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닫고 서로 보호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나치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하늘다람쥐는 이렇게 낙하산 놀이를 하느라 땅에는 거의 내려오지 않고 일생의 대부분을 나무 위에서 보낸답니다. 숲의 나무를 베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죠?
마지막 쪽을 펼치면 서로 다른 모습의 아이들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고 서 있다. 지금껏 ‘다른’ 모습을 ‘틀린’ 모습으로 여겨 서로를 따돌리고 구별 짓는 인간의 모습을 저자는 자연의 동물들을 통해 스스로 되돌아보도록 잔잔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자 우리가 동식물 자연을 관찰하고 배우는 이유라 할 것이다.
박물관에 복원된 유인원들의 모습은 역시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것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만 앞선 것으로 우기고 있는 우리들 인간들은 결국 자연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모습 자체를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한 때에 적절히 잘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