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사회적 지지와 연대로 바라보는 문화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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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3:25 조회 6,240회 댓글 0건본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최근 다섯 달 동안 네 명의 학생이 목숨을 끊어 추도식이 열렸다. 교수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전망 부재의 불안한 현실 속, 힘든 예술인의 길을 묵묵히 걷다가 죽음의 유혹을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를 학생들의 고뇌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한겨레신문10월 8일자) 『88만원 세대』를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의 현실과 울분을 담아내어 반향을 일으킨 우석훈 씨가 경제대장정 시리즈의 아홉 번째 테마로 잡은 것은 ‘문화경제학’이다. 제목에서는 ‘문화가 지닌 직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이야기해 줄 것 같은 인상을 받지만, 오히려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문화의 하부구조를 자세한 도면으로 그려주며, 화려해 보이는 유람선의 승선과 항로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은 문화의 줄기나 이파리 대신 보이지 않는 뿌리를 보라고 말하고 있다. ‘돈’을 중심으로 보는 경제학자의 눈이나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소비자의 눈이 아니라 “돈과 가치 혹은 사회가 가져야 할 덕목들을 어떻게 연결할것인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통계나 도표, 수치가 책 곳곳에서 인용되지만 그것은 대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거나 우리의 막연한 고정관념이 그려낸 문화의 허약체질지수를 보여준다.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들의 수출로 인한 수입은 어떻게 배분될까? 드라마 <가을동화>의 성공 이후 방송국들은 이전까지 소홀했던 ‘판권’을 명시화하고 독점하게 되었다. 문화콘텐츠는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다. 작품의 기여도에 따라 수익을 분배하지만, 이것은 물리적으로 정확히 환산하기 곤란하다. 더욱이 편당 지급되는 급여는 일정한 수준을 담보한다 하더라도, 일 년 동안 참여할 수 있는 횟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정당한 보상인가를 판가름할 수 없다. ‘열정’은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일에 바치는 애정과 관심, 노력의 총합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종종 이러한 문화인들의 순수한 열정을 착취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본원상품은 전체 시장 추세를 이끄는 상품으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는 원천상품을 말한다. 영화의 극장 관람객, 드라마의 본방 시청률, 잡지의 오프라인 간행물, 음악의 음반인데 이런 상품의 판매가 줄어들면 파생상품을 늘려도 시장의 규모는 줄어든다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본말을 전도시킨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금액을 쏟아부어 오페라 하우스를 짓는다면서 그 안의 국립단원을 해고시킨다든가, 도서관을 리모델링을 하느라 책을 더 구입하지 못하고, 사서를 자르거나 줄이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국제경기의 성공은 나름 의미 있을지 모르나 스포츠의 본원상품은 바로 일반인 체육이나 사회인 체육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한국 문화 정책의 지배자들이 그것을 국수주의나 수출중심주의와 결합시켜 ‘문화 산업’이나 ‘콘텐츠’처럼 계량화하고 신자유주의적 발상으로 점철한 것을 꼬집는다. 문화를 재생산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팽창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은 재미가 목적인 유람선을 수송선이나 군함처럼 쓰려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인디가수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장에서 저자는 문화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라니나 포획된 고래에게는 물어볼 수가 없는데, 문화산업 현장의 사람들에게는 뭐가 문제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물어볼 수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물어봐도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고 더 답답해질 뿐이지만.”
미술계를 제외하고 텔레비전과 텍스트, 영화와 연극, 음악과 스포츠 등 전방위적으로 다루어지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처참한 현실을 보며 비슷한 회한을 느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지원계획” 같은 정책적 제안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대개 요지부동의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해결방법은 결국 ‘문화’를 하나의 커다란 생태계로 바라다보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은 문화계에서의 고용규모를 두 배로 늘림으로써 전체 규모를 키우고 내부 다양성을 키우자는 것이다. 또한 국가와 시장이 아닌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주체들이 탄생되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통해 지키고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단정적이고 명쾌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는 저항감이 없지 않지만, 꼼꼼한 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무엇보다 적절한 시의성을 담보해내며 논지를 이끌어가는 저자의 필치에 탄복하며 공분公憤하게 된다. 내용을 집약하고 있는 ‘책을 펴내며’와 ‘프롤로그’가 상대적으로 본문보다 다소 어려웠다. 또 각절 말미의 QR코드도 흥미로운 접근방식이긴 하나 별도의 수고로움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태권의 일러스트, 문화계 인사들과의 인터뷰 등 협업이 돋보이는 코너들이 새삼스런 의미로 다가온다. 앞으로 이어질 농업, 과학기술 그리고 정당과 언론에서 이러한 주제의식이 어떻게 발전할지 주목해야겠다.
이 책은 문화의 줄기나 이파리 대신 보이지 않는 뿌리를 보라고 말하고 있다. ‘돈’을 중심으로 보는 경제학자의 눈이나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소비자의 눈이 아니라 “돈과 가치 혹은 사회가 가져야 할 덕목들을 어떻게 연결할것인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통계나 도표, 수치가 책 곳곳에서 인용되지만 그것은 대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거나 우리의 막연한 고정관념이 그려낸 문화의 허약체질지수를 보여준다.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들의 수출로 인한 수입은 어떻게 배분될까? 드라마 <가을동화>의 성공 이후 방송국들은 이전까지 소홀했던 ‘판권’을 명시화하고 독점하게 되었다. 문화콘텐츠는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다. 작품의 기여도에 따라 수익을 분배하지만, 이것은 물리적으로 정확히 환산하기 곤란하다. 더욱이 편당 지급되는 급여는 일정한 수준을 담보한다 하더라도, 일 년 동안 참여할 수 있는 횟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정당한 보상인가를 판가름할 수 없다. ‘열정’은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일에 바치는 애정과 관심, 노력의 총합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종종 이러한 문화인들의 순수한 열정을 착취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본원상품은 전체 시장 추세를 이끄는 상품으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는 원천상품을 말한다. 영화의 극장 관람객, 드라마의 본방 시청률, 잡지의 오프라인 간행물, 음악의 음반인데 이런 상품의 판매가 줄어들면 파생상품을 늘려도 시장의 규모는 줄어든다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본말을 전도시킨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금액을 쏟아부어 오페라 하우스를 짓는다면서 그 안의 국립단원을 해고시킨다든가, 도서관을 리모델링을 하느라 책을 더 구입하지 못하고, 사서를 자르거나 줄이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국제경기의 성공은 나름 의미 있을지 모르나 스포츠의 본원상품은 바로 일반인 체육이나 사회인 체육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한국 문화 정책의 지배자들이 그것을 국수주의나 수출중심주의와 결합시켜 ‘문화 산업’이나 ‘콘텐츠’처럼 계량화하고 신자유주의적 발상으로 점철한 것을 꼬집는다. 문화를 재생산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팽창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은 재미가 목적인 유람선을 수송선이나 군함처럼 쓰려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인디가수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장에서 저자는 문화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라니나 포획된 고래에게는 물어볼 수가 없는데, 문화산업 현장의 사람들에게는 뭐가 문제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물어볼 수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물어봐도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고 더 답답해질 뿐이지만.”
미술계를 제외하고 텔레비전과 텍스트, 영화와 연극, 음악과 스포츠 등 전방위적으로 다루어지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처참한 현실을 보며 비슷한 회한을 느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지원계획” 같은 정책적 제안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대개 요지부동의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해결방법은 결국 ‘문화’를 하나의 커다란 생태계로 바라다보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은 문화계에서의 고용규모를 두 배로 늘림으로써 전체 규모를 키우고 내부 다양성을 키우자는 것이다. 또한 국가와 시장이 아닌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주체들이 탄생되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통해 지키고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단정적이고 명쾌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는 저항감이 없지 않지만, 꼼꼼한 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무엇보다 적절한 시의성을 담보해내며 논지를 이끌어가는 저자의 필치에 탄복하며 공분公憤하게 된다. 내용을 집약하고 있는 ‘책을 펴내며’와 ‘프롤로그’가 상대적으로 본문보다 다소 어려웠다. 또 각절 말미의 QR코드도 흥미로운 접근방식이긴 하나 별도의 수고로움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태권의 일러스트, 문화계 인사들과의 인터뷰 등 협업이 돋보이는 코너들이 새삼스런 의미로 다가온다. 앞으로 이어질 농업, 과학기술 그리고 정당과 언론에서 이러한 주제의식이 어떻게 발전할지 주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