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어느 폴란드 소녀의 1980년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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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8:12 조회 8,229회 댓글 0건본문
1980년대,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그 시절을 겪지 못한 학생들이라면 교과서에서 본 몇 줄의 글이 알고 있는 80년대의 전부일 테고,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라면 88올림픽이나 민주화운동 같은 기억들을 끄집어 낼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시간, 다른 나라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지금을 살고 있는 세계인들은 1980년대를 무엇으로,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여기, 1980년대 폴란드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 출간되었다. 폴란드는 현재의 우리에게 심리적으로나 거리적으로도 낯선 나라 중의 하나다. 그저 유럽 어딘가에 있는 나라, 그래서 ‘유럽’ 하면 떠오르는 배낭여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겠으나 알고 보면 폴란드와 우리나라는 서로 닮은 점이 아주 많다. 폴란드는 1939년 나치독일과 소련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서부는 나치독일에, 동부는 소련에 분할점령이 되었다가 1945년에 해방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6.25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통치를 받은 것과 비슷한 모습인 것이다. 이후 1947년 총선에서 노동자당의 압승으로 공산당 정부가 들어섰지만 어려운 경제사정 등의 이유로 노동자 파업투쟁이 일어났고, 1981년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자유노조운동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같은 시대, 제5공화국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결국 폴란드는 1990년 바웬사를 첫 민선대통령으로 배출하면서 민주화를 정착시켰고 우리나라 역시 민주화를 쟁취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이뤄냈다. 『마르지 1984-1987』는 그 당시, 억압세력에 저항하던 80년대, 평범한 폴란드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가진 나라, 공산주의가 무너져가던 때를 드물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였으므로.
『마르지 1984-1987』는 작가 마르제나 소바의 자전적인 만화로, 어린 시절 자신의 삶을 통해 80년대 폴란드, 나아가 동구권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설이 길었던 탓에 지루하고 딱딱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만화라는 장르적 이점 덕분인지, 어느새 다 읽었나싶을 정도로 오히려 술술 읽힌다. ‘잉어의 날’로 불리는 폴란드의 낯설고 독특한 풍습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르지’라는 주인공 여자아이와 주변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으로 녹아든다. 생김새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지만 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흥미롭고, 낯설게 다가오는 그들만의 문화가 재미있다.
물건이 들어오는 날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몇몇 등장하는데 모두들 배급표를 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고, 때문에 하나라도 더 사려면 온 가족이 출동을 해야 한다. 아빠와 마르지는 설탕을 사기 위해, 엄마는 고기를 사기 위해 서로 엇갈린 줄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물건을 산다. 언젠가 혼자 오렌지를 사러갔던 날, 마르지는 새치기를 한 아줌마 때문에 눈앞에서 마지막 오렌지를 빼앗기고 울면서 집에 돌아온다. 엄마가 가서 대신 따져주기는 했지만 배급표가 있어도 이렇게 자신의 차례 전에 물건이 다 팔려버리면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모두 낯선 광경이지만 우리나라 바로 옆, 마지막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을 생각해보면 익숙하기도 한 모습들이다.
1980년, 폴란드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과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만화 속 아이의 눈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장군이 텔레비전에 나와 폴란드는 전쟁상태에 돌입했다고 선언하고, 원전 사고 이후 사람들은 마르지와 또래 친구들을 체르노빌 세대라고 부른다. 겁이 나고 궁금하지만 어른들 중 누구도 아이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마르지나 친구들은 어른들의 어깨 너머로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알음알음 추측을 해본다. 아이들 역시 폴란드의 국민으로서 알 권리가 있는데 말이다.
책은 분명 80년대 폴란드에서 일어난 일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왜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30여 년 전 폴란드에서 지나갔던 탱크가 지금 이집트나 리비아에도 지나가고 있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일이 일본에서 반복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라고들 하고,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지만 어째서일까. 당시의 가혹한 일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르지의 유년기를 읽으면서도 현재를 함께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만화와 함께한 까닭인지, 책은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혀 내려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그리 가볍게 웃고 넘길 만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일까, 그림의 채색도 화려하거나 밝은 색보다는 조금 무겁고 차분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공산주의 시대의 생활이 궁금하지만 어렵고 지루한 책을 보고 싶지는 않은 학생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공산주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보다는 한 꼬마 숙녀의 성장기에 더 가깝지만, 당시 모습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하다.
여기, 1980년대 폴란드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 출간되었다. 폴란드는 현재의 우리에게 심리적으로나 거리적으로도 낯선 나라 중의 하나다. 그저 유럽 어딘가에 있는 나라, 그래서 ‘유럽’ 하면 떠오르는 배낭여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겠으나 알고 보면 폴란드와 우리나라는 서로 닮은 점이 아주 많다. 폴란드는 1939년 나치독일과 소련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서부는 나치독일에, 동부는 소련에 분할점령이 되었다가 1945년에 해방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6.25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통치를 받은 것과 비슷한 모습인 것이다. 이후 1947년 총선에서 노동자당의 압승으로 공산당 정부가 들어섰지만 어려운 경제사정 등의 이유로 노동자 파업투쟁이 일어났고, 1981년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자유노조운동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같은 시대, 제5공화국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결국 폴란드는 1990년 바웬사를 첫 민선대통령으로 배출하면서 민주화를 정착시켰고 우리나라 역시 민주화를 쟁취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이뤄냈다. 『마르지 1984-1987』는 그 당시, 억압세력에 저항하던 80년대, 평범한 폴란드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가진 나라, 공산주의가 무너져가던 때를 드물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였으므로.
『마르지 1984-1987』는 작가 마르제나 소바의 자전적인 만화로, 어린 시절 자신의 삶을 통해 80년대 폴란드, 나아가 동구권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설이 길었던 탓에 지루하고 딱딱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만화라는 장르적 이점 덕분인지, 어느새 다 읽었나싶을 정도로 오히려 술술 읽힌다. ‘잉어의 날’로 불리는 폴란드의 낯설고 독특한 풍습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르지’라는 주인공 여자아이와 주변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으로 녹아든다. 생김새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지만 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흥미롭고, 낯설게 다가오는 그들만의 문화가 재미있다.
물건이 들어오는 날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몇몇 등장하는데 모두들 배급표를 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고, 때문에 하나라도 더 사려면 온 가족이 출동을 해야 한다. 아빠와 마르지는 설탕을 사기 위해, 엄마는 고기를 사기 위해 서로 엇갈린 줄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물건을 산다. 언젠가 혼자 오렌지를 사러갔던 날, 마르지는 새치기를 한 아줌마 때문에 눈앞에서 마지막 오렌지를 빼앗기고 울면서 집에 돌아온다. 엄마가 가서 대신 따져주기는 했지만 배급표가 있어도 이렇게 자신의 차례 전에 물건이 다 팔려버리면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모두 낯선 광경이지만 우리나라 바로 옆, 마지막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을 생각해보면 익숙하기도 한 모습들이다.
1980년, 폴란드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과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만화 속 아이의 눈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장군이 텔레비전에 나와 폴란드는 전쟁상태에 돌입했다고 선언하고, 원전 사고 이후 사람들은 마르지와 또래 친구들을 체르노빌 세대라고 부른다. 겁이 나고 궁금하지만 어른들 중 누구도 아이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마르지나 친구들은 어른들의 어깨 너머로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알음알음 추측을 해본다. 아이들 역시 폴란드의 국민으로서 알 권리가 있는데 말이다.
책은 분명 80년대 폴란드에서 일어난 일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왜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30여 년 전 폴란드에서 지나갔던 탱크가 지금 이집트나 리비아에도 지나가고 있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일이 일본에서 반복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라고들 하고,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지만 어째서일까. 당시의 가혹한 일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르지의 유년기를 읽으면서도 현재를 함께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만화와 함께한 까닭인지, 책은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혀 내려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그리 가볍게 웃고 넘길 만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일까, 그림의 채색도 화려하거나 밝은 색보다는 조금 무겁고 차분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공산주의 시대의 생활이 궁금하지만 어렵고 지루한 책을 보고 싶지는 않은 학생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공산주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보다는 한 꼬마 숙녀의 성장기에 더 가깝지만, 당시 모습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