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나 위로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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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8:06 조회 7,908회 댓글 0건본문
직접 만난다 한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생각도 일치하지 않을 과거 속 사람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통해서 만날 때에는 서로의 인생에 끼어들어 말도 건네고 영향도 받는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 연관되어 있고 공감하지 못할 만큼 외따로 떨어져 차단된 인생이란 결국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군가를 인생의 벗이라 칭하기는 이래저래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저를 벗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나누었으나 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가 좋아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데 어느 날 삶에 위기라도 찾아오면 없느니만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친구의 아픔이 내 삶을 조금 더 나아보이게 하기도 하고, 그의 기쁨이 내 삶을 비루하게 보이게도 하기에 남의 인생을 자신의 것처럼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론 인생이 허망하고 사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 내가 사는 세상이 유독 각박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이리 오래된 글들에 녹아있는 고민들을 접하면 조금의 위로가 된다.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진 책의 첫 부분의 문장들이 신선하다. 케케묵은 이야기일 것이라는 편견으로 가득 차있던 내가 어렵지 않게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와 너무 맞닿아 있어서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쁘지요?”라고 묻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13쪽) 마음으로 즐겨서 책 읽고 공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21쪽)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는 고집 센 사람이 한둘씩 박혀 있기 마련이다.(29쪽) 누군가와 인생의 어느 시간을 보내는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40쪽)
방 안에 고상히 앉아 독서만 하며 굶는 것 보다, 남이 비천하게 여기고 힘들더라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아우 둘과 소반을 만드는 일을 하였던, 조선시대 학자 심대윤. “크고 작기를 가릴 것 없이 스스로 갖은 힘을 다해 먹고 산다는 점에서 모든 일은 똑같다.”(19쪽) 이백년 전 명문가 후손이 남긴 글인데, 오늘날 나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박혀있는 귀천의식의 잔재를 반성하게 한다. 내 아이가 몸이 힘든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탐탁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건강을 걱정해서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정조, 순조 때의 문사인 심노숭은 후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의 부모님의 병상일지, 장례의 기록, 언행기를 자세하게 남겼다. 사소한 것들도 놓치지 않고 어찌나 구체적으로 기록했는지 부모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것이 전통이었던 과거에도 특별한 일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그와 내가 어찌 다르겠냐는 생각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그 소상한 기록을 마무리지어야 했을 때 그의 심정이 얼마나 허망하였을까 느껴진다. 그의 말대로 기록이 후세에까지 남겨져, 이백년 후 나와 같은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는 있지만, 정말 그것만이 목적이었을까.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의 말씀과 행동, 그분들이 병들어가는 과정, 돌아가실 때 그 마지막 모습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절절히 기억하고 싶었던 한 아들의 마음을 자연스레 이해한다.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40쪽, 연암 박지원이 친구 경보에게 보낸 편지 중) 옛 선인들은 벗과의 인연에 이렇게 탄복하였다. 하늘 아래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수많은 인연들 중에 친구로 맺어진 것에 감사하였고 감동하였다. 그러면서도 “주고받는 대화가 구차하게 같거나 행하는 일이 구차하게 맞아떨어진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과 벗하고, 백 세대 뒤의 사람을 미혹시키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라며 진정한 친구의 의미에 대하여 경각심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을 열고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계기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힘든 과정을 거친 뒤에야 주변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소중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행운을 만난 선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백 년 전 살다 간 선인들의 기록이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고전이 주는 꼬장꼬장한 이미지를 벗어나, 나와 내 친구들을 그대로 옛날에 옮겨놓은 것 같은 편안함 때문이다. 삶에 치여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만 주게 되는 예민한 때가 있다. 천 년 전 옛 사람과 벗하며 위로를 주고받기에 좋은 통로가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
나는 저를 벗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나누었으나 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가 좋아 오랜 시간을 함께 했는데 어느 날 삶에 위기라도 찾아오면 없느니만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친구의 아픔이 내 삶을 조금 더 나아보이게 하기도 하고, 그의 기쁨이 내 삶을 비루하게 보이게도 하기에 남의 인생을 자신의 것처럼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론 인생이 허망하고 사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 내가 사는 세상이 유독 각박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이리 오래된 글들에 녹아있는 고민들을 접하면 조금의 위로가 된다.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진 책의 첫 부분의 문장들이 신선하다. 케케묵은 이야기일 것이라는 편견으로 가득 차있던 내가 어렵지 않게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와 너무 맞닿아 있어서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쁘지요?”라고 묻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13쪽) 마음으로 즐겨서 책 읽고 공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21쪽)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는 고집 센 사람이 한둘씩 박혀 있기 마련이다.(29쪽) 누군가와 인생의 어느 시간을 보내는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40쪽)
방 안에 고상히 앉아 독서만 하며 굶는 것 보다, 남이 비천하게 여기고 힘들더라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아우 둘과 소반을 만드는 일을 하였던, 조선시대 학자 심대윤. “크고 작기를 가릴 것 없이 스스로 갖은 힘을 다해 먹고 산다는 점에서 모든 일은 똑같다.”(19쪽) 이백년 전 명문가 후손이 남긴 글인데, 오늘날 나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박혀있는 귀천의식의 잔재를 반성하게 한다. 내 아이가 몸이 힘든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탐탁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건강을 걱정해서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정조, 순조 때의 문사인 심노숭은 후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의 부모님의 병상일지, 장례의 기록, 언행기를 자세하게 남겼다. 사소한 것들도 놓치지 않고 어찌나 구체적으로 기록했는지 부모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것이 전통이었던 과거에도 특별한 일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그와 내가 어찌 다르겠냐는 생각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그 소상한 기록을 마무리지어야 했을 때 그의 심정이 얼마나 허망하였을까 느껴진다. 그의 말대로 기록이 후세에까지 남겨져, 이백년 후 나와 같은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는 있지만, 정말 그것만이 목적이었을까.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의 말씀과 행동, 그분들이 병들어가는 과정, 돌아가실 때 그 마지막 모습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절절히 기억하고 싶었던 한 아들의 마음을 자연스레 이해한다.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40쪽, 연암 박지원이 친구 경보에게 보낸 편지 중) 옛 선인들은 벗과의 인연에 이렇게 탄복하였다. 하늘 아래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수많은 인연들 중에 친구로 맺어진 것에 감사하였고 감동하였다. 그러면서도 “주고받는 대화가 구차하게 같거나 행하는 일이 구차하게 맞아떨어진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과 벗하고, 백 세대 뒤의 사람을 미혹시키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라며 진정한 친구의 의미에 대하여 경각심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인생을 살면서 마음을 열고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계기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힘든 과정을 거친 뒤에야 주변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소중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행운을 만난 선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백 년 전 살다 간 선인들의 기록이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고전이 주는 꼬장꼬장한 이미지를 벗어나, 나와 내 친구들을 그대로 옛날에 옮겨놓은 것 같은 편안함 때문이다. 삶에 치여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만 주게 되는 예민한 때가 있다. 천 년 전 옛 사람과 벗하며 위로를 주고받기에 좋은 통로가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