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삶과 예술이 어우러진 곳, 문래동 창작촌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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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4 23:14 조회 8,238회 댓글 0건본문
문래동 공장지대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작업을 한다는 얘기는 다른 책을 통해 접한 적이 있었다. 쇠 자르는 소리가 요란한 공장 지대와 예술과의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문래동 창작촌은 내가 사는 곳에서 버스로 두세 정거장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철공단지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반갑게도 복길네 식당에 커다란 꽃과 식당 아줌마를 소재로 한 사진 작업이 눈에 들어왔지만 철공소 문에 그려진 낙서 같은 벽화 작품 몇몇을 제외하면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걸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낡고 때 묻은 공장들만 즐비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철공소들은 물론 식당도, 가게마저 모두 문을 닫아 한적하기만 했다. 책에서 본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책에 나왔던 새한철강의 벽화가 보이고 문래동 창작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LAB39’ 간판이 보였다. 계단부터 실험적인 벽화가 보이고 전시회와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어 과연 예술가의 작업실다운 인상을 풍겼다. 역시 인기척은 없었고 화장실에 붙어 있는 ‘작업중’이란 문구가 미소를 머금게 했다.
옥상엔 폐기물로 만든 문래동 로봇과 각종 조각 작품들이 폐품처럼 여기저기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귀퉁이에 자라는 빨간 방울토마토와 푸릇푸릇한 채소들이 황폐한 느낌을 다소 누그러뜨려주고 있었다. 아무 행사도 없는 조용한 일요일이어서 책에서 묘사됐던 예술과 노동의 소리와 냄새가 뒤섞인 역동적인 모습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다음엔 인터넷으로 전시나 공연을 확인하고 예술 작업이 있는 날 다시 한 번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문래동은 전통적으로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였다. 1980년대 이후 제조업의 쇠퇴로 경기도와 수도권으로 철재상들이 이동하면서 철재종합상가의 2, 3층이 비게 되고 장기간 방치되면서 저렴한 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이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편하고, 예술가들이 모여 있으니 교류하기 쉽고, 철공소 아저씨들의 장인 정신에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매력 때문에 2000년대 초 몇몇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2006년 10여개의 작업실이 생겨나고, 2010년에는 약 80여개로 늘어나면서 2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도심 속 예술 창작촌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들은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추구한다. 몇 십 년이 된 낡은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에게 예술 교육을 시키고, 저녁이 되어 문 닫은 철공소 앞에서 음악회를 열어 지역에 예술적 색채를 더하는 것에서부터, 철공소 주인들과 이웃이 되어 술자리와 등산모임을 하는 직접적인 교류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역 사회와 만난다.
이 지역 예술가들은 서로 교류하며 새롭고 실험적인 작업들을 함께 해 나가고 있다. 철재상가 옥상에 있던 쓰레기를 모아 조형물을 만들고, 용산참사 현장에서 가져온 도시가스 배관을 재조립한 작업, 반대 의미의 단어를 나열한 벽화 작업들이 문래동창작촌의 사랑방격인 ‘LAB39’ 옥상에서 이루어졌다.
문래동 창작촌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자율부엌이 있고, 누구나 자고 갈 수 있는 자율침대가 있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작업 공간과 빨래와 샤워를 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다. 문래동의 예술은 젊고 진보적이어서 해외의 진보적인 사회 인사나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데, 그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 이용하는 곳도 이런 공용 공간이다. 산업 활동과 예술 활동이 한 지역에서 공존하고, 예술가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문래동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문래동의 이런 예술 활동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주목을 받게 되면서 서울시는 문래 창작촌을 지원해 주기 위한 아트팩토리를 조성하겠다고 하는 한 편, 경제 논리에 의한 ‘재개발’을 추진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뒤에는 아파트 단지, 옆에는 첨단 고층 건물이 서 있고 땅값이 나날이 오르면서 이 공장 단지와 예술촌은 섬처럼 위태롭게 남아 있다.
쾌적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몇이나 있을까?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먹고 살 걱정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수 년 동안 힘들게 예술을 공부한 젊은이들이 갈 곳은 입시학원 밖에 없다. 문래동 창작촌은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적인 미래의 초상을 보여준다. 문래동 창작촌에서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가난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참된 예술을 만들어 낸다.
홍대에 자리 잡았던 젊은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치솟아 문래동과 상수동으로 이동했는데 그곳마저 임대료가 올랐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보았다. 삶과 예술이 어우러진 이곳이 경제 논리에 의해 재개발되거나 홍대 앞처럼 변질된다면 과연 우리 예술의 미래는 어느 곳에 안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철공단지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반갑게도 복길네 식당에 커다란 꽃과 식당 아줌마를 소재로 한 사진 작업이 눈에 들어왔지만 철공소 문에 그려진 낙서 같은 벽화 작품 몇몇을 제외하면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걸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낡고 때 묻은 공장들만 즐비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철공소들은 물론 식당도, 가게마저 모두 문을 닫아 한적하기만 했다. 책에서 본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책에 나왔던 새한철강의 벽화가 보이고 문래동 창작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LAB39’ 간판이 보였다. 계단부터 실험적인 벽화가 보이고 전시회와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어 과연 예술가의 작업실다운 인상을 풍겼다. 역시 인기척은 없었고 화장실에 붙어 있는 ‘작업중’이란 문구가 미소를 머금게 했다.
옥상엔 폐기물로 만든 문래동 로봇과 각종 조각 작품들이 폐품처럼 여기저기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귀퉁이에 자라는 빨간 방울토마토와 푸릇푸릇한 채소들이 황폐한 느낌을 다소 누그러뜨려주고 있었다. 아무 행사도 없는 조용한 일요일이어서 책에서 묘사됐던 예술과 노동의 소리와 냄새가 뒤섞인 역동적인 모습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다음엔 인터넷으로 전시나 공연을 확인하고 예술 작업이 있는 날 다시 한 번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문래동은 전통적으로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였다. 1980년대 이후 제조업의 쇠퇴로 경기도와 수도권으로 철재상들이 이동하면서 철재종합상가의 2, 3층이 비게 되고 장기간 방치되면서 저렴한 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이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편하고, 예술가들이 모여 있으니 교류하기 쉽고, 철공소 아저씨들의 장인 정신에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매력 때문에 2000년대 초 몇몇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2006년 10여개의 작업실이 생겨나고, 2010년에는 약 80여개로 늘어나면서 2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도심 속 예술 창작촌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들은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추구한다. 몇 십 년이 된 낡은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에게 예술 교육을 시키고, 저녁이 되어 문 닫은 철공소 앞에서 음악회를 열어 지역에 예술적 색채를 더하는 것에서부터, 철공소 주인들과 이웃이 되어 술자리와 등산모임을 하는 직접적인 교류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역 사회와 만난다.
이 지역 예술가들은 서로 교류하며 새롭고 실험적인 작업들을 함께 해 나가고 있다. 철재상가 옥상에 있던 쓰레기를 모아 조형물을 만들고, 용산참사 현장에서 가져온 도시가스 배관을 재조립한 작업, 반대 의미의 단어를 나열한 벽화 작업들이 문래동창작촌의 사랑방격인 ‘LAB39’ 옥상에서 이루어졌다.
문래동 창작촌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자율부엌이 있고, 누구나 자고 갈 수 있는 자율침대가 있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작업 공간과 빨래와 샤워를 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다. 문래동의 예술은 젊고 진보적이어서 해외의 진보적인 사회 인사나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데, 그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 이용하는 곳도 이런 공용 공간이다. 산업 활동과 예술 활동이 한 지역에서 공존하고, 예술가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문래동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문래동의 이런 예술 활동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주목을 받게 되면서 서울시는 문래 창작촌을 지원해 주기 위한 아트팩토리를 조성하겠다고 하는 한 편, 경제 논리에 의한 ‘재개발’을 추진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뒤에는 아파트 단지, 옆에는 첨단 고층 건물이 서 있고 땅값이 나날이 오르면서 이 공장 단지와 예술촌은 섬처럼 위태롭게 남아 있다.
쾌적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몇이나 있을까?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먹고 살 걱정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수 년 동안 힘들게 예술을 공부한 젊은이들이 갈 곳은 입시학원 밖에 없다. 문래동 창작촌은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적인 미래의 초상을 보여준다. 문래동 창작촌에서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가난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참된 예술을 만들어 낸다.
홍대에 자리 잡았던 젊은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치솟아 문래동과 상수동으로 이동했는데 그곳마저 임대료가 올랐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보았다. 삶과 예술이 어우러진 이곳이 경제 논리에 의해 재개발되거나 홍대 앞처럼 변질된다면 과연 우리 예술의 미래는 어느 곳에 안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