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올드서울’을 꼼꼼하게 스케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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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7 22:54 조회 7,059회 댓글 0건본문
서울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도시가 되었다. 거대한 빌딩군이 어디든 눈에 띈다. 그러한 가운데 600년 역사도시, 고도의 모습은 스러져가고, 우리의 삶의 자취도 뭉개져 간다. 이런 서울의 변화를 개발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겠으나 역사와 추억이 사라지는 걸 아쉬워하는 이들 또한 많을 것이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이런 안타까움을 스케치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 이장희는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이미 두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랫동안 살아온 서울에 주목한다. “새로 지어진 고층건물들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던 옛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 서울의 시간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찰칵’ 카메라 한 방에 그 장소와 시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고 여기고 가볍게 떠나는 게 대세인 요즘, 며칠은 족히 걸렸을 그의 정성어린 스케치는 감탄과 더불어 사물을 애정으로 보는 방법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저자가 가 본 서울은 대체로 사대문안 옛 한양, 그야말로 오리지널 서울이다. 그리고 긴 시간 공들여 스케치한 것은 경복궁, 숭례문과 같은 조선 시대 대표 건축물들은 물론 명동, 정동, 혜화동 등지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이다. 역사 교사인 나도 미처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역사 유적지가 이리도 서울에 많다니! 어디 그뿐이랴, 도시의 뒷골목들, 나무들, 그리고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곁들어지며 서울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첨단과 현대적인 것으로 치장한 도시가 아니라 옛것과 세월이 스며있는 도시로 말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엽서처럼 예쁜 스케치가 펼쳐지고 연필 손글씨로 설명이 붙어 있다. 친근하고 재미있는 설명에다 저자의 뛰어난 관찰력과 애정도 느껴진다.
경복궁 근정전 난간의 십이지신 가운데 양羊조각 그림에는 “이런 외계인 같은 새침함이라니”라고 쓰여 있어 피식 웃음이 나오고 “이런 서수들의 피규어는 왜 나오지 않는 걸까, 모두 수집할 용의가 있는데”라는 대목에선 그 아이디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 자신도 이렇게 말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서울과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그간 서울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자가 돌아본 서울은 너무도 아쉬움이 많다.
“서울에는 도처에 수많은 표지석이 산재해 있다. (중략) 서울은 거대한 존재감의 무덤이랄까, 그러면서 정작 우리는 또 삽을 든다. 일단 부수고 개발하고 대신 표지석을 남긴다. 토지는 새 건물로, 존재하던 옛 건물은 표지석으로 이토록 허탈하고 쉬운 변신이 또 있을까?”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저자는 서울의 변화를 꿈꾼다. “먼저 고층빌딩들은 한강변으로 몰아 놓는다. 고층건물군의 스카이라인은 홍콩처럼 강 건너편에서 근사한 야경을 선사해줄 것이다. 그 다음 서울 성곽과 사대문, 사소문을 모두 복원하고, 그 안에 기와의 물결이 출렁이게 만든다. (중략) 한옥들 사이로 여유로운 보행공간을 확보하고 대중교통은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물론 녹지공간도 가득한 성곽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서울 성곽 안은 파리 성곽도시보다 더욱 확실한 역사도시가 되는 것이다.” 사유재산권과 자동차가 그 무엇보다도 신성시되는 이 땅에서 불가능한 꿈일까?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꾸어봄직한 유쾌한 상상이 아닐까?
저자와 고즈넉한 서울 기행을 즐겼음에도 이 책은 한두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그림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글씨가 조금 작은 듯싶어 처음 보기에 답답한 느낌이 있다. 둘째, 전반부가 역사적 장소에 대한 설명과 저자의 감상이 충실하게 서술되었다면 후반부로 가면서 다소 글도 간략해지며 책의 밀도(?)가 떨어지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청소년보다는 어른 독자에게 좀 더 와 닿는 책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역사적 장소에 대한 경외와 추억은 아무래도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어른들이 더 하지 않겠나 싶어서이다. 그러나 한편 아파트가 유일한 건축물인줄 알고 살 수도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고 아름답고 오래된 서울의 건축물들을 알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서울의 변화 모습에 새삼 눈뜨게 하는 책으로 추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유서 깊은 도시가 어디 서울뿐이겠는가? 부산, 전주는 물론 이 나라 전체가 역사 박물관일진데 이 책처럼 스케치로 지역을 남기는 시도가 계속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이런 안타까움을 스케치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 이장희는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이미 두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랫동안 살아온 서울에 주목한다. “새로 지어진 고층건물들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던 옛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 서울의 시간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찰칵’ 카메라 한 방에 그 장소와 시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고 여기고 가볍게 떠나는 게 대세인 요즘, 며칠은 족히 걸렸을 그의 정성어린 스케치는 감탄과 더불어 사물을 애정으로 보는 방법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저자가 가 본 서울은 대체로 사대문안 옛 한양, 그야말로 오리지널 서울이다. 그리고 긴 시간 공들여 스케치한 것은 경복궁, 숭례문과 같은 조선 시대 대표 건축물들은 물론 명동, 정동, 혜화동 등지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들이다. 역사 교사인 나도 미처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역사 유적지가 이리도 서울에 많다니! 어디 그뿐이랴, 도시의 뒷골목들, 나무들, 그리고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곁들어지며 서울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첨단과 현대적인 것으로 치장한 도시가 아니라 옛것과 세월이 스며있는 도시로 말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엽서처럼 예쁜 스케치가 펼쳐지고 연필 손글씨로 설명이 붙어 있다. 친근하고 재미있는 설명에다 저자의 뛰어난 관찰력과 애정도 느껴진다.
경복궁 근정전 난간의 십이지신 가운데 양羊조각 그림에는 “이런 외계인 같은 새침함이라니”라고 쓰여 있어 피식 웃음이 나오고 “이런 서수들의 피규어는 왜 나오지 않는 걸까, 모두 수집할 용의가 있는데”라는 대목에선 그 아이디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 자신도 이렇게 말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서울과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그간 서울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자가 돌아본 서울은 너무도 아쉬움이 많다.
“서울에는 도처에 수많은 표지석이 산재해 있다. (중략) 서울은 거대한 존재감의 무덤이랄까, 그러면서 정작 우리는 또 삽을 든다. 일단 부수고 개발하고 대신 표지석을 남긴다. 토지는 새 건물로, 존재하던 옛 건물은 표지석으로 이토록 허탈하고 쉬운 변신이 또 있을까?”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저자는 서울의 변화를 꿈꾼다. “먼저 고층빌딩들은 한강변으로 몰아 놓는다. 고층건물군의 스카이라인은 홍콩처럼 강 건너편에서 근사한 야경을 선사해줄 것이다. 그 다음 서울 성곽과 사대문, 사소문을 모두 복원하고, 그 안에 기와의 물결이 출렁이게 만든다. (중략) 한옥들 사이로 여유로운 보행공간을 확보하고 대중교통은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물론 녹지공간도 가득한 성곽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서울 성곽 안은 파리 성곽도시보다 더욱 확실한 역사도시가 되는 것이다.” 사유재산권과 자동차가 그 무엇보다도 신성시되는 이 땅에서 불가능한 꿈일까?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꾸어봄직한 유쾌한 상상이 아닐까?
저자와 고즈넉한 서울 기행을 즐겼음에도 이 책은 한두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그림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글씨가 조금 작은 듯싶어 처음 보기에 답답한 느낌이 있다. 둘째, 전반부가 역사적 장소에 대한 설명과 저자의 감상이 충실하게 서술되었다면 후반부로 가면서 다소 글도 간략해지며 책의 밀도(?)가 떨어지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청소년보다는 어른 독자에게 좀 더 와 닿는 책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역사적 장소에 대한 경외와 추억은 아무래도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어른들이 더 하지 않겠나 싶어서이다. 그러나 한편 아파트가 유일한 건축물인줄 알고 살 수도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고 아름답고 오래된 서울의 건축물들을 알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서울의 변화 모습에 새삼 눈뜨게 하는 책으로 추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유서 깊은 도시가 어디 서울뿐이겠는가? 부산, 전주는 물론 이 나라 전체가 역사 박물관일진데 이 책처럼 스케치로 지역을 남기는 시도가 계속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