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간신히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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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9 19:44 조회 6,883회 댓글 0건본문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은 제목 그대로 늘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껴가 있는 ‘전통 공예’를 이어가고 있는 무형문화재 12인의 이야기다.
열두 가지 내용을 세 가지씩 묶고 생활의 기본 요건인 의衣, 식食, 주住 그리고 가佳에 고루 갈라놓았다. 표지를 넘기면 쪽물 들인 직물이 모노톤의 사진으로 하늘거리고, 단정하면서도 발랄한 어조로 일상과 여행에서 만난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필자의 글이 사진에 곁들여 이어진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지만,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여행기와 서정적으로 풀어낸 수필의 여운이 함께 묻어나는 글들이어서 접근이 어렵지는 않은 편이다.
부끄럽게도 장인들이 관련한 분야의 명명법조차 낯설었다. 한산모시짜기나 염색장, 침선장, 옹기장, 사기장, 나전장 등은 그래도 짐작이 갔으나 나주반장, 소목장, 염장, 나전장, 백동연죽장, 낙죽장도장, 배첩장 등은 필자의 질문으로 풀어낸 장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가령 염장의 경우 시체를 염습하는 사람도, 염전이나 소금에 절여 저장하는 것도, 음식의 간을 맞추는 소금과 간장 같은 양념을 통틀어 염장이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발 ‘염簾’자를 써서 ‘발장’ 즉, 발을 만드는 사람이다. 낙죽장도는 대나무로 만든 칼집과 칼자루에, 불에 달군인두로 글을 새겨 넣어 장식한 칼로 이를 만들어내는 장인이다. 명칭도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전통공예를 장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어른이 혹은 동네 분들이 하던 일을 어깨너머로 곁눈질하면 친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장인의 삶이 명예와 재물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노다지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누구나 기꺼이 하고 싶어 하는 블루오션은 아니기 때문에 자식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려는 장인들도 많다. 시장 갈 때 한 번씩 모시 일하는 아주머니를 거들어주다가 그 분의 제안으로 후계자가 된 방연옥 선생도, 교수님께서 어렵게 얻어다 준 쪽씨를 받아들고 염색일을 시작한 정관채 선생도, 그리고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바늘과 실로 규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40여 년간 해온 침선장 구혜자 선생님도 인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장인의 길을 만났다.
이분들의 작업에는 ‘기다림’이 있다. 대나무는 방향에 따라 대 마디 길이에 차이가 있기에 추운 겨울, 채취할때 마디에 동서남북 표시를 한다는 염장 조대용 선생님. 호랑이 기운을 가져야 만들어진다는 경인도는 1년에 6번, 사인검은 12년에 한 번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홀아이 날, 호랑이 시가 되는 그날의 기운을 받아 만든다는 말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밀가루 또는 보리쌀을 물에 침전시킨 다음 썩혀서 풀을 얻는 배첩장 홍종진 선생의 전수교육관 마당에는 수십 개가 넘는 풀독이 있다 한다. 썩은 것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을 때까지 10년 동안 반복한다고 한다.
정성을 쏟는다고 쉽게 이루어질 리도 없다. 모시옷감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모시째기’라 하여 모시원료인 태모시를 이로 가늘게 쪼개야 하는데, 입술과 형에서 피가 터질 만큼 고통스러운 이 작업을 이틀 동안 해야 모시 한 필 분량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맥이 끊긴 쪽염색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물에 녹지 않는 쪽의 색소 인디컴을 수용성의 물질로 바꾸어야 하는데, 쉽게 발효하기 위해 넣는 하얀 가루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정조 임금의 사당인 화령전 문짝을 만들다가 오른손 두 손가락을 잃어 좌절했던 김순기 선생은 손으로 잡는 연장마다 미끄러지지 않게 고무줄을 잔뜩 감아 일하기 시작했다.
현대식, 서구식으로 바뀐 사회는 이들을 또 한번 주변인으로 몰아냈다. 김장철만 되면 정신없이 바빴던 옹기공장들의 장인은 이제는 편리한 플라스틱 용기와 김칫독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한복은 명절 때만 입는 특별한 옷이 되어버렸으며, 걸인에게 밥을 내주어 문간에서 먹일망정 꼭 상을 받쳐 주었던 소반 문화는 응접실 문화에 가려져 버렸다.
그러나 장인들은 자신과 사회를, 그리고 그러한 시대를 온몸으로 넘어섰다. 나무 다루는 사람의 마음이 다 그렇듯 좋은 나무를 얻기 위한 욕심과 노력은 이분도 마찬가지이다. 금방 벤 나무는 틀어져 버리기 때문에 3년 이상 비바람을 맞히며 자연건조해 성질이 죽은 것이라야 작업에 들어갈 수 있고 형태를 유지한단다. 좋은 느티목이 있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 샀다가 집을 차압당하기도 했다는 나주반장 김춘식 선생은 좋은 나무가 있다고 하면 호랑이 눈썹을 빼서라도 사야한다고 한다. 그러한 열정에 창조적 계승에 대한 고민이 없을까. 나주반장 선생은 하지훈 교수가 전반적인 디자인을 한 다음 레이저로 문양을 낸 철판을 보내오면 그 철판을 상반으로 소반을 완성했다. 침선장은 영화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의 의상 제작에 참여해 영정조 시기의 화려하면서도 심플한 과도기적인 한복의 모습을 재현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고등학교 미술교사이기도 한 쪽염색 장인 정관채 선생은 천연염색을 가르칠 때 공방과 학교 미술실을 오가며 수업을 한다. 그저 옛것이었기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소통은 일방통행이나 짝사랑일 수 없다. 그것은 ‘몰라봐주어 너무나 미안했던 그 아름다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열두 가지 내용을 세 가지씩 묶고 생활의 기본 요건인 의衣, 식食, 주住 그리고 가佳에 고루 갈라놓았다. 표지를 넘기면 쪽물 들인 직물이 모노톤의 사진으로 하늘거리고, 단정하면서도 발랄한 어조로 일상과 여행에서 만난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필자의 글이 사진에 곁들여 이어진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지만,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여행기와 서정적으로 풀어낸 수필의 여운이 함께 묻어나는 글들이어서 접근이 어렵지는 않은 편이다.
부끄럽게도 장인들이 관련한 분야의 명명법조차 낯설었다. 한산모시짜기나 염색장, 침선장, 옹기장, 사기장, 나전장 등은 그래도 짐작이 갔으나 나주반장, 소목장, 염장, 나전장, 백동연죽장, 낙죽장도장, 배첩장 등은 필자의 질문으로 풀어낸 장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가령 염장의 경우 시체를 염습하는 사람도, 염전이나 소금에 절여 저장하는 것도, 음식의 간을 맞추는 소금과 간장 같은 양념을 통틀어 염장이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발 ‘염簾’자를 써서 ‘발장’ 즉, 발을 만드는 사람이다. 낙죽장도는 대나무로 만든 칼집과 칼자루에, 불에 달군인두로 글을 새겨 넣어 장식한 칼로 이를 만들어내는 장인이다. 명칭도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전통공예를 장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어른이 혹은 동네 분들이 하던 일을 어깨너머로 곁눈질하면 친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장인의 삶이 명예와 재물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노다지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누구나 기꺼이 하고 싶어 하는 블루오션은 아니기 때문에 자식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려는 장인들도 많다. 시장 갈 때 한 번씩 모시 일하는 아주머니를 거들어주다가 그 분의 제안으로 후계자가 된 방연옥 선생도, 교수님께서 어렵게 얻어다 준 쪽씨를 받아들고 염색일을 시작한 정관채 선생도, 그리고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바늘과 실로 규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40여 년간 해온 침선장 구혜자 선생님도 인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장인의 길을 만났다.
이분들의 작업에는 ‘기다림’이 있다. 대나무는 방향에 따라 대 마디 길이에 차이가 있기에 추운 겨울, 채취할때 마디에 동서남북 표시를 한다는 염장 조대용 선생님. 호랑이 기운을 가져야 만들어진다는 경인도는 1년에 6번, 사인검은 12년에 한 번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홀아이 날, 호랑이 시가 되는 그날의 기운을 받아 만든다는 말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밀가루 또는 보리쌀을 물에 침전시킨 다음 썩혀서 풀을 얻는 배첩장 홍종진 선생의 전수교육관 마당에는 수십 개가 넘는 풀독이 있다 한다. 썩은 것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을 때까지 10년 동안 반복한다고 한다.
정성을 쏟는다고 쉽게 이루어질 리도 없다. 모시옷감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모시째기’라 하여 모시원료인 태모시를 이로 가늘게 쪼개야 하는데, 입술과 형에서 피가 터질 만큼 고통스러운 이 작업을 이틀 동안 해야 모시 한 필 분량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맥이 끊긴 쪽염색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물에 녹지 않는 쪽의 색소 인디컴을 수용성의 물질로 바꾸어야 하는데, 쉽게 발효하기 위해 넣는 하얀 가루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정조 임금의 사당인 화령전 문짝을 만들다가 오른손 두 손가락을 잃어 좌절했던 김순기 선생은 손으로 잡는 연장마다 미끄러지지 않게 고무줄을 잔뜩 감아 일하기 시작했다.
현대식, 서구식으로 바뀐 사회는 이들을 또 한번 주변인으로 몰아냈다. 김장철만 되면 정신없이 바빴던 옹기공장들의 장인은 이제는 편리한 플라스틱 용기와 김칫독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한복은 명절 때만 입는 특별한 옷이 되어버렸으며, 걸인에게 밥을 내주어 문간에서 먹일망정 꼭 상을 받쳐 주었던 소반 문화는 응접실 문화에 가려져 버렸다.
그러나 장인들은 자신과 사회를, 그리고 그러한 시대를 온몸으로 넘어섰다. 나무 다루는 사람의 마음이 다 그렇듯 좋은 나무를 얻기 위한 욕심과 노력은 이분도 마찬가지이다. 금방 벤 나무는 틀어져 버리기 때문에 3년 이상 비바람을 맞히며 자연건조해 성질이 죽은 것이라야 작업에 들어갈 수 있고 형태를 유지한단다. 좋은 느티목이 있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 샀다가 집을 차압당하기도 했다는 나주반장 김춘식 선생은 좋은 나무가 있다고 하면 호랑이 눈썹을 빼서라도 사야한다고 한다. 그러한 열정에 창조적 계승에 대한 고민이 없을까. 나주반장 선생은 하지훈 교수가 전반적인 디자인을 한 다음 레이저로 문양을 낸 철판을 보내오면 그 철판을 상반으로 소반을 완성했다. 침선장은 영화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의 의상 제작에 참여해 영정조 시기의 화려하면서도 심플한 과도기적인 한복의 모습을 재현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고등학교 미술교사이기도 한 쪽염색 장인 정관채 선생은 천연염색을 가르칠 때 공방과 학교 미술실을 오가며 수업을 한다. 그저 옛것이었기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소통은 일방통행이나 짝사랑일 수 없다. 그것은 ‘몰라봐주어 너무나 미안했던 그 아름다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