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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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9 22:22 조회 6,027회 댓글 0건본문
‘대학이 이런 거야?’는 미국 책이지만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프랑스의 대형 서
점 Fnac(프낙)에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처럼 대형 체인점이면서 책 이외에
전자제품 등도 함께 파는 대중적인 곳이다. 그러니까 ‘전문성’이 있는 서점이 아니라
는 뜻이다. 나는 프랑스에 갈 때마다 서점 나들이에 어린이 청소년 전문서점이나 전
문 도서관 외에 평범하디 평범한 이 서점에 꼭 들르는데 이 서점의 서가에는 ‘판매자
가 반한 책’이라는 하트 표시가 달린 작은 P.O.P가 간간이 놓여있다. 우리나라 서점의
경쟁적인 광고판들과는 달리 빨간색 하트표시가 아니면 눈에 잘 띄지 않을 이 안내판
들은 주로 스테디셀러에 붙어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Y a-t-il une vie
apres le bac?’이라는 제목이었다. 거칠게 옮겨보자면 ‘바깔로레아 이후의 인생은?’
정도가 되는 이 제목에서 내가 읽은 것은 ‘인생’보다는 ‘대학입시’라는 코드였다. 바
람의아이들을 시작하고, 청소년 소설을 준비하면서 숱하게 들은 걱정이 바로 대학입
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시 때문에 청소년 문학으로는 출판이 성공할 수 없다
는 말들로 사람들은 무모하게 출판에 뛰어든 나를 걱정해주었다. 시장에 대해서는 완
전한 무지 상태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나는 바로 그 대학입시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읽
을 만한 문학이 꼭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현실이 반영된 이야기, 진짜 인생이 언제 시작되는지 모르는 채로 더듬거릴 여유조차
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며 학원이며 독서실에 갇혀있는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
을 줄 이야기책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제목은 그런 나의 눈길
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서점에 선 채로 책을 좀 살펴보았다. 낡아 보이는 모양새하며 직감적으로 아주 잘 나가는 책은
아닐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게다가 내가 신뢰하는 편집자가 만든 책이었고 1991년에 출판
된 책이었다.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지 20년 만에 나온 것이고, 내 눈에 띈 것은 그로부터 10여년이
또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중적인 서점의 판매자가 빨간색 하트를 달아놓았다는 사
실이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일단 사서 읽어보기로 했다. 파리라는 내게는 매우 심드렁한 도시의
낯선 호텔방에 박혀서 나는 그 책을 읽었다. 공부를 썩 잘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둘이 어느 대학
에 가야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 책을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은 막 고등학생이 된 우리
딸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적어도 이런 정도는 탐색하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금세 대학생이 되었고, 이야기는 각각 문과와 이과를
선택한 절친한 이 아이들이 필연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을 외치며 공부랑은 담 쌓고 놀려고만 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나는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고3을 견디고 나면 인생에서 못할 일이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술
집과 옷집뿐인 학교주변에서 갑자기 대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차오르는 것은 분노
와 슬픔 뿐이다. 학교도 학원도 선생님도 부모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라고만 하지 대학생활에 대해서 얘기해주지
않는다. 청소년 소설이라도 아이들에게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 간 아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을
까? 딱 그런 생각이었다. 이 책을 번역출간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러고도 책이 나오기까지 쉽지 않았다. 미국 출판사는 반
드시 에이전시를 거쳐야한다는 걸 모르고 오랫동안 교신을 시도했으며 에이전시에 의뢰하고 나서도 일은 간단하지 않
았다. 어려운 길을 돌아 돌아서 이 책이 나온 지 꼭 5년째다. 지금처럼 수능 시험을 얼마 앞두고 펴냈었으니까.
청소년 소설의 새바람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반올림 시리즈의 몇몇 청소년 소설들에 대
해서 ‘멀쩡한 어른들이 불량한 척’ 한다는 독특한 견해를 보여주었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딸
은 이 작품이 바람의아이들 책 중에 가장 낫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대부분의 독자들
에게 이 작품은 사랑받기 보다는 잊힌 책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기회 있
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곤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잘 안 읽힌다거나 좀 어렵다는 것이
었다.
물론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에 펴낸 존 그린의 『종이도시』같은 작품도
인기가 있는 편이니까.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아마존에 들어가서 이 작품의 판매지수
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판매상황도 알아보지 않고 번역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숫자가 떴다. Amazon Bestsellers Rank: #8,464,370 in Books 이런 수치를 어
떻게 해석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판의 운명과는 영판 다른 것만은 틀림없다. 가끔, 나한테
이제까지 낸 책 중에서 어떤 책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뜻 대답이 잘 안 나온
다. 그런데 사실 내게는 특별히 어떤 책이 더 좋다는 생각보다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책들
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이렇게 ‘편집자의 수작’과 같은 꼭지가 반가운 것이다!
점 Fnac(프낙)에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처럼 대형 체인점이면서 책 이외에
전자제품 등도 함께 파는 대중적인 곳이다. 그러니까 ‘전문성’이 있는 서점이 아니라
는 뜻이다. 나는 프랑스에 갈 때마다 서점 나들이에 어린이 청소년 전문서점이나 전
문 도서관 외에 평범하디 평범한 이 서점에 꼭 들르는데 이 서점의 서가에는 ‘판매자
가 반한 책’이라는 하트 표시가 달린 작은 P.O.P가 간간이 놓여있다. 우리나라 서점의
경쟁적인 광고판들과는 달리 빨간색 하트표시가 아니면 눈에 잘 띄지 않을 이 안내판
들은 주로 스테디셀러에 붙어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Y a-t-il une vie
apres le bac?’이라는 제목이었다. 거칠게 옮겨보자면 ‘바깔로레아 이후의 인생은?’
정도가 되는 이 제목에서 내가 읽은 것은 ‘인생’보다는 ‘대학입시’라는 코드였다. 바
람의아이들을 시작하고, 청소년 소설을 준비하면서 숱하게 들은 걱정이 바로 대학입
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시 때문에 청소년 문학으로는 출판이 성공할 수 없다
는 말들로 사람들은 무모하게 출판에 뛰어든 나를 걱정해주었다. 시장에 대해서는 완
전한 무지 상태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나는 바로 그 대학입시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읽
을 만한 문학이 꼭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현실이 반영된 이야기, 진짜 인생이 언제 시작되는지 모르는 채로 더듬거릴 여유조차
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며 학원이며 독서실에 갇혀있는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
을 줄 이야기책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제목은 그런 나의 눈길
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서점에 선 채로 책을 좀 살펴보았다. 낡아 보이는 모양새하며 직감적으로 아주 잘 나가는 책은
아닐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게다가 내가 신뢰하는 편집자가 만든 책이었고 1991년에 출판
된 책이었다.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지 20년 만에 나온 것이고, 내 눈에 띈 것은 그로부터 10여년이
또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중적인 서점의 판매자가 빨간색 하트를 달아놓았다는 사
실이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일단 사서 읽어보기로 했다. 파리라는 내게는 매우 심드렁한 도시의
낯선 호텔방에 박혀서 나는 그 책을 읽었다. 공부를 썩 잘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둘이 어느 대학
에 가야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 책을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은 막 고등학생이 된 우리
딸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적어도 이런 정도는 탐색하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금세 대학생이 되었고, 이야기는 각각 문과와 이과를
선택한 절친한 이 아이들이 필연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을 외치며 공부랑은 담 쌓고 놀려고만 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나는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고3을 견디고 나면 인생에서 못할 일이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술
집과 옷집뿐인 학교주변에서 갑자기 대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차오르는 것은 분노
와 슬픔 뿐이다. 학교도 학원도 선생님도 부모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라고만 하지 대학생활에 대해서 얘기해주지
않는다. 청소년 소설이라도 아이들에게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 간 아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을
까? 딱 그런 생각이었다. 이 책을 번역출간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러고도 책이 나오기까지 쉽지 않았다. 미국 출판사는 반
드시 에이전시를 거쳐야한다는 걸 모르고 오랫동안 교신을 시도했으며 에이전시에 의뢰하고 나서도 일은 간단하지 않
았다. 어려운 길을 돌아 돌아서 이 책이 나온 지 꼭 5년째다. 지금처럼 수능 시험을 얼마 앞두고 펴냈었으니까.
청소년 소설의 새바람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반올림 시리즈의 몇몇 청소년 소설들에 대
해서 ‘멀쩡한 어른들이 불량한 척’ 한다는 독특한 견해를 보여주었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딸
은 이 작품이 바람의아이들 책 중에 가장 낫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대부분의 독자들
에게 이 작품은 사랑받기 보다는 잊힌 책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기회 있
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곤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잘 안 읽힌다거나 좀 어렵다는 것이
었다.
물론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에 펴낸 존 그린의 『종이도시』같은 작품도
인기가 있는 편이니까.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아마존에 들어가서 이 작품의 판매지수
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판매상황도 알아보지 않고 번역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숫자가 떴다. Amazon Bestsellers Rank: #8,464,370 in Books 이런 수치를 어
떻게 해석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판의 운명과는 영판 다른 것만은 틀림없다. 가끔, 나한테
이제까지 낸 책 중에서 어떤 책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뜻 대답이 잘 안 나온
다. 그런데 사실 내게는 특별히 어떤 책이 더 좋다는 생각보다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책들
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이렇게 ‘편집자의 수작’과 같은 꼭지가 반가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