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내가 갈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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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21:40 조회 6,211회 댓글 0건본문
이 책 『초록 눈 코끼리』를 읽자니 이현주의 동화 ‘곰과 참새’가 생각난다. 동물원의 곰은 팔자가 상팔자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사람들이 때 맞추어 먹을 걸 가져다 주고 곰 우리 밖으로는 언제나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곰은 자기가 잘나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참새 한 마리가 곰이 먹다 남은 먹이통 위에 내려앉는다. 곰은 거드름을 피우며 배가 고프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비롭게도 남은 먹이를 먹도록 허락하면서 먹을 것을 스스로 찾아먹어야 하는 참새를 가여워 한다. 그런 곰에게 참새는 우리 밖의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말한다. “울이 없는 대신 우리에게는 푸른 하늘이 있답니다.”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참새를 보고 곰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별 싱거운 참새 다 보겠네.” 했을까 아니면 “나는? 나도 나 살던 숲으로 가고 싶다.” 하며 자기 안에 자기도 모르게 숨어 있던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고향으로 가려고 우리를 부수고 나왔을까? 참새는 먹이를 스스로 구해야 하는 수고를 하더라도 자유를 자랑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길들여진 동물들은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자기 본성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다독이고 눌리어 오직 사람들의 호기심과 편의를 위해 산다. 동물원에 갇힌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지도 모른다. 아니 알았다 해도 현실에 체념하고 순응해 버렸을 수도 있겠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기억들을 다 잘라내고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삶을 강요받고 있다. 다른 길이 틀린 길은 아닐 텐데 그 길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간혹 이게 아닌데 하고 깨달아도 다른 길로 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문제 의식을 접고 그냥 안주하는 그 모습도 우리는 서로 닮았다.
보통 코끼리는 육백여 일 만에 태어난다는데 이 동화의 주인공 초록 눈 코끼리는 천일 만에 태어난 천일둥이 코끼리다. 그것도 동물원에서. 백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이 선택받은 코끼리가 범벅이다. 어미는 범벅을 세상에 내어놓고 스러졌다. 코끼리 범벅은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 요구하는 코끼리 공연의 무엇이든 잘한다. 자신의 능력에 한껏 우쭐대는 범벅이는 코끼리계의 슈퍼스타다. 동물원 슈퍼스타로 안주하여 거만하게 살던 범벅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환희를 만나고 자신의 남다른 초록빛 눈을 확인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범벅이는 선명한 꿈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만나게 된다. 초록 눈이라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꿈을 통해 알게 된다. 자신이 백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길잡이임을 깨닫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 범벅은 초록 눈 길잡이 코끼리 본연의 모습을 찾아서 과감히 동물원을 나선다. 위험한 많은 순간들을 딛고 기어이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이 동화는 21세기 지구 문제와 오늘 우리의 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범벅이와 같은 날 태어났다는 환희는 열세 살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용기가 닮았다. 학교에는 안 다닐 거냐는 아빠의 질문에 환희는 학교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주지도,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도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야무지고 분명하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처음부터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애들이야. 모든 사람들이 같은 길로만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그냥 그 애들과 다른 길로 갈래. 아빠, ‘다른 길’이 ‘틀린 길’은 아니잖아?” _83쪽 인간들이란 참!세상에서 가장 선택받은 존재라 여기고 제일 현명한 척 힘센 척 오만하지만 사실 가장 겁 많고 나약해서 비굴한 것이 인간들…… 세상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특권이 있다고 느끼는지 지금도 눈앞의 이익에 인간의 편의대로 자연에 무지한 힘을 휘두른다.
우리 조상들은 농경문화를 일구며 모든 존재들은 동등하게 대지를 공유해야 한다고 여겼다. 일방적으로 죽이는 것도 없고 주검도 없는, 서로가 서로를 살리고 한없이 자연을 섬기며 살아왔다. 우리는 그 삶을 되살려 지금 자연이 보내오는 경고 메시지에 답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옛날부터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아기장수를 기다려 왔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누군가 나서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해
주고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제는 밖에서 기다리기보다 자기 안의 울림에 귀 기울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이끄는 아기장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초록 눈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가 초록 눈이 되어 자기 삶을 이끌자고 말하고 싶다.
어느 날 참새 한 마리가 곰이 먹다 남은 먹이통 위에 내려앉는다. 곰은 거드름을 피우며 배가 고프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비롭게도 남은 먹이를 먹도록 허락하면서 먹을 것을 스스로 찾아먹어야 하는 참새를 가여워 한다. 그런 곰에게 참새는 우리 밖의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말한다. “울이 없는 대신 우리에게는 푸른 하늘이 있답니다.”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참새를 보고 곰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별 싱거운 참새 다 보겠네.” 했을까 아니면 “나는? 나도 나 살던 숲으로 가고 싶다.” 하며 자기 안에 자기도 모르게 숨어 있던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고향으로 가려고 우리를 부수고 나왔을까? 참새는 먹이를 스스로 구해야 하는 수고를 하더라도 자유를 자랑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길들여진 동물들은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자기 본성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다독이고 눌리어 오직 사람들의 호기심과 편의를 위해 산다. 동물원에 갇힌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지도 모른다. 아니 알았다 해도 현실에 체념하고 순응해 버렸을 수도 있겠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기억들을 다 잘라내고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삶을 강요받고 있다. 다른 길이 틀린 길은 아닐 텐데 그 길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간혹 이게 아닌데 하고 깨달아도 다른 길로 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문제 의식을 접고 그냥 안주하는 그 모습도 우리는 서로 닮았다.
보통 코끼리는 육백여 일 만에 태어난다는데 이 동화의 주인공 초록 눈 코끼리는 천일 만에 태어난 천일둥이 코끼리다. 그것도 동물원에서. 백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이 선택받은 코끼리가 범벅이다. 어미는 범벅을 세상에 내어놓고 스러졌다. 코끼리 범벅은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 요구하는 코끼리 공연의 무엇이든 잘한다. 자신의 능력에 한껏 우쭐대는 범벅이는 코끼리계의 슈퍼스타다. 동물원 슈퍼스타로 안주하여 거만하게 살던 범벅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환희를 만나고 자신의 남다른 초록빛 눈을 확인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범벅이는 선명한 꿈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만나게 된다. 초록 눈이라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꿈을 통해 알게 된다. 자신이 백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길잡이임을 깨닫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 범벅은 초록 눈 길잡이 코끼리 본연의 모습을 찾아서 과감히 동물원을 나선다. 위험한 많은 순간들을 딛고 기어이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이 동화는 21세기 지구 문제와 오늘 우리의 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범벅이와 같은 날 태어났다는 환희는 열세 살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용기가 닮았다. 학교에는 안 다닐 거냐는 아빠의 질문에 환희는 학교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주지도,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도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야무지고 분명하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처음부터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애들이야. 모든 사람들이 같은 길로만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그냥 그 애들과 다른 길로 갈래. 아빠, ‘다른 길’이 ‘틀린 길’은 아니잖아?” _83쪽 인간들이란 참!세상에서 가장 선택받은 존재라 여기고 제일 현명한 척 힘센 척 오만하지만 사실 가장 겁 많고 나약해서 비굴한 것이 인간들…… 세상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특권이 있다고 느끼는지 지금도 눈앞의 이익에 인간의 편의대로 자연에 무지한 힘을 휘두른다.
우리 조상들은 농경문화를 일구며 모든 존재들은 동등하게 대지를 공유해야 한다고 여겼다. 일방적으로 죽이는 것도 없고 주검도 없는, 서로가 서로를 살리고 한없이 자연을 섬기며 살아왔다. 우리는 그 삶을 되살려 지금 자연이 보내오는 경고 메시지에 답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옛날부터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아기장수를 기다려 왔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누군가 나서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해
주고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제는 밖에서 기다리기보다 자기 안의 울림에 귀 기울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이끄는 아기장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초록 눈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가 초록 눈이 되어 자기 삶을 이끌자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