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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걸음이 느려지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지게 만드는 북촌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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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21:37 조회 7,4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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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어보니 면지만 보아도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단박에 전해져 온다. 한옥마을과 그 주변을 담은 옛 지도가 그려진 면지. 앞쪽 면지에는 넓은 지역이 간략하게 그려져 있고, 맨 끝 면지에 실린 지도는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그린 것으로 정겨운 골목을 좀 더 알아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멀리서 보아왔던 한옥마을을 이제는 골목 안으로 깊이 들어와 걸어보자는 의미가 전해지는 대목이다. 작가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북촌 투어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날마다 북촌을 드나들다가, 그만 북촌의 매력에 푹 빠져서 자신을 사로잡은 북촌의 소소한 일상적 모습을 어린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수묵화를 배워 그림책을 만들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북촌을 소개하는 그림책에 수묵화는 그 어떤 기법보다 매우 적절했다. 이 책은 북쪽마을, 북촌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골목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박물관과 가게를 담백한 수묵화로 소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어 아쉬움을 자아내는 골목 안 풍경을,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고추나 강아지 등을 등장시켜 애써 일상적인 풍경에 대한 소개로 대신하려했지만 독특한 난방구조인 아궁이 외에는 한옥의 다른 특징에 대한 소개가 적어서 아쉽다. 한옥의 여러 매력들, 가령 창호지를 바른 창문이나 시원한 대청마루, 댓돌 같은 구조의 독특함이나 아름다움에 대해 소개해주는 내용이 좀 더 실렸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몇 해 전에 폴란드 소녀 한 명이 특별한 인연으로 이틀간 우리 집에 민박을 했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안나이고 당시 세종고
등학교 학생이었다. 세종고등학교는 세종대왕을 기리는 의미로 이름 붙인 바르샤바에 있는 고등학교다. 폴란드에 우리나라의 자본으로 학교가 지어져서 한글 이름을 가진 고등학교가 있고, 더욱이 세종대왕을 기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우리가족은 놀랍고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폴란드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온 안나는 세종대왕기념관과 세종문화회관을 가보고 싶어 했다.

세종대왕이 그려져 있는 만 원짜리 지폐는 그대로 기념품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차를 타고 창밖으로 지나치며 보여주었고, 경복궁과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인사동을 둘러보고, 우리나라의 고등학생처럼 놀이공원과 쇼핑을 좋아해서 롯데월드와 두타도 데리고 갔었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한국에 온 안나는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열심히 보고 듣고 질문하기도 했는데, 현대화된 서울의 모습 말고 옛 모습을 간직한 곳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집은 아파트이고 나름 깨끗하게 현대식으로 인테리어공사를 마친 터라 내심 자랑스럽게 안내를 했는데 오히려 어디에서고 한국적인 것을 볼 수가 없어서 실망이 되는 눈치여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안나가 우리에게 선물로 가져온 것 중에는 바르샤바를 소개하는 두툼하고 판형도 큰 칼라책자가 있었는데, 책장을 넘기며 해주었던 설명에 따르면 바르샤바는 역사를 담고 있는 도시로서 옛것이 현대와 조화롭게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광장을 기준으로 한쪽은 옛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다른 쪽은 현대적으로 개발하여 구성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옛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편리함만을 좇아 옛것은 불편하고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이 북촌을 알았더라면 당당하게 그곳으로 안나를 데리고 가서 우리의 옛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이 그림책이 반갑다.

이제 북촌은 책에서 소개된 부엉이박물관 외에도 티벳박물관이 있고, 옛 주거형태를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이와 부모에게는 문화체험의 거리로, 갤러리와 액세서리가게 외에도 옷가게 등 예쁘고 특색 있는 물건을 파는 가게가 많은 안국동과 가회동은 분위기 좋은 찻집도 여럿 있으며 이름난 맛집도 있어서 젊은 남녀에게는 데이트코스로 유명해졌다.

북촌에서 사진을 찍으면 기와지붕이 나지막이 연결된 골목길 뒤의 배경으로 잡힐 듯 가까운 서울도심의 고층빌딩이 보인다. ‘지금’을 배경으로 ‘옛날’을 찍는 오묘함이랄까? 이 미로 같은 골목길은 참 희한한 재주가 있다고 했다. 그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어느덧 걸음도 느려지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진다고 했으니. 작가의 말처럼 소소한 일상이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는 이곳, 시간이 더디게 흘러 서울이라는 곳이 얼마나 깊고 넓은 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 동네가 이렇게 그림책에 담겨져 전해질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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