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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새책 현실의 익숙하게 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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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9:13 조회 6,06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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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언제 울까. 아기일 때 그저 관심을 끌고 싶어서 우는 것 말고, 감정으로 우는 것 말이다. 우선 꽤 어릴 때부터, 자신이 느끼기에 불공평함에 대해 운다. 동생이나 형에게만 새 옷을 사준다든지, 사실 내가 일방적으로 괴롭힘 당한 것인데도 여하튼 싸웠으니 둘 다 잘못했다며 나무라는 담임선생의 처우에 운다. 그보다 좀 더 나아가면 애틋함, 보답 받지 못한 애정 등 좀 더 복잡한 감정으로 운다. 더 성장하면 후회에 의해서 울기도 한다. 세상을 알게 되면서 그 이유는 점차 바뀌곤 하지만, 공통된 설명이 가능하다. 도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는데 이미 그 상황은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고, 이성의 노력으로 극복하기에도 감정의 전환으로 스트레스를 상쇄하기도 버거울 때, 자기파괴를 방지하는 마지막 보루처럼 눈물이 터지는 것이다. 울고 나서 후련해진다든지, 새롭게 다짐을 한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그 버거운 상황일까. 어려운 현실은 얼마만큼 어려워야 어려운 것이고, 자신이 그것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자신이 뭘 몰라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문제가 있어서일까. 어려움이 워낙 익숙해서 이제는 별반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면, 어렵지 않은 것이 될까. 시시껄렁한 자학적 농담이든 뭐든, 좌절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서 울지 않고 있으면 그것으로 괜찮을까. 울만한 불행과 울기에는 좀 애매한 불행의 경계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울기엔 좀 애매한』은 대학 만화과를 지망하는 입시미술학원 수험생들의 일상을 담은 만화다. 주인공의 이름은 원빈인데, 그저 그렇게 잘 생기지 않았다(유감스럽게도 그런 상태를 “못생겼다”라고 부르는 것이 관행이다). 집도 별 볼 일 없는데다가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기에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다. 대놓고 비극의 주인공을 표방할 정도가 아니라, 얼굴로 인기 끌기는 틀렸고 학원비나 대학등록금을 놓고 가계를 조정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될 정도로 불행한 정도다. 다만 그림에 재능이 있고 성격은 착해서, 꿈을 가졌기에 늦게라도 시작하게 된 입시미술이지만 얼추 따라잡고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부족한 조건들에 대해 자학농담으로 넘기며 친구들과 무난하게 지낼 수 있을 정도의 미덕을 지녔다. 그런 비슷한 수준의 다른 아이들, 다른 수준의 세계에서 살지만 같은 학급에 다니는 아이들, 비루한 현실을 자신의 과거와 함께 아직 직면할 줄 아는 젊은 독설가 선생님, 이미 세상의 구정물로 자기 지위를 만들 줄 아는 좀 더 나이든 선생님 등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능과 노력의 한계, 아르바이트 사기, 입시부정의 피해자 되기, 등록금 문제 등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지나가며 결국 입시철이 다가오고 또 지나간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성공을 당연시하고 그 이외 모든 것을 루저 취급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가감 없이, 즉 모순되고 애매한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주인공 원빈과 주변의 적지 않은 이들은 분명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훨씬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매일 보고 살아간다. 평범한 연애는 낭만적 감정의 영역일 것 같지만, 그것도 한정된 돈 벌 시간과 정신적 여력을 가져간다. 커다란 사기는 악의 범죄자가 일으키는 신문 사회면 이야기일 것 같지만, 똑똑한 진보 지식인 행세를 하는 동네 헌책방 아저씨가 학생 대상으로 알바비 떼먹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그런데 분노를 하고 싶어도, 무엇에 어떻게 분노해야 상황을 고칠 수 있을지, 뾰족한 답이 없다. 갑갑해서라도 한번쯤 울기라도 해야겠지만, 울 만큼 갑갑한 것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이미 너무나 익숙하게 겪어왔고 또 계속 안고 살아가야할 것 같은 삶의 조건들이다. 그렇게 해서 한 번 자학으로, 한 번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는 진심 없는 푸념으로, 한 번 실없는 무용담으로 마음을 비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현실의 무게가 쌓이고 그것을 잠시 유보해두는 보루였던 어떤 구체적 희망마저 흔들리게 될 때, 결국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이 울어도 충분한 상황으로 바뀐다.

다행히도, 이 책은 이런 씁쓸한 모습들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리도록 하는 설익은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한 쪽으로는 독설과 자학으로 비루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롱하는 대사가 직선적인 재미를 준다. 다른 쪽으로는 사실적인 듯하면서도 사실은 섬세한 과장이 담긴 캐리커쳐 인물묘사, 수채화풍의 열린 선의 느슨함 등으로 분위기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조절한다. 성격파 연기와 반전스릴러를 연상하게 하는 헌책방 시퀀스 같이 연출 자체의 능란함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웰메이드 작품으로 부족함이 없다.

다만 대리만족도 도피적 재미도 어떤 “해답”도 주장하지 않는 작품 속성상, 정작 출판사가 표방하는 독자층인 청소년들보다는 한 걸음쯤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는 성인독자들이 더 재미를 느낄 법하다. 성인들이 사서 도서관이나 집안이나 기타 서가에 비치하고, 청소년들과 함께 현실의 애매한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해가면서 읽는 것이 가장 나을 듯하다(그런 식의 도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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